양곤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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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곤지구(버마어: ရန်ကုန်တိုင်းဒေသကြီး)는 미얀마 심장부에 위치해 있는 주이다. [1][2]
개요
양곤지구의 면적은 10,170㎢이며 인구는 5,560,000명(2000)이며 주도는 양곤이다. 북쪽과 동쪽으로 버고지구, 남쪽으로 마르타반만, 서쪽으로 에야워디지구와 접한다. 다른 중요한 도시로는 탄린과 트완테가 있다. 미얀마에서 가장 많이 개발된 지역이자 주요한 국제적 관문이다.
'양곤(Yangon)'의 원래 이름은 '다공(Dagon)'이었는데 이 지명은 11세기 하부 버마에 거주했던 몽족에 의해 건립되었던 한따와디(Hanthawaddy)왕조의 도시이름이었다. 하지만 1755년 버마족에서 계승된 꽁바웅 왕조의 알라웅퍼야(Alaung payar)왕에 의해 '다공'이 점령되면서 '양곤'으로 불리게 됐으며 "양(Yan)"의 뜻은 미얀마어로 '적' 또는 '분쟁', "곤(gon)"은 '사라지다'의 의미로 풀이하면 '적이 사라지다.' 또는 '분쟁의 끝' 곧 평화를 의미한다.
버마족, 카인족, 몬족과 같은 토착 미안먀인들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구에는 또한 많은 수의 중국인과 인도인들이 살고 있다. 주민의 대다수는 상좌부 불교도이고 이슬람교도와 크리스트교도가 뒤를 잇는다. 언어는 버마어가 공식 언어로 사용된다. 영어는 양곤의 엘리트 사이의 주요 제2언어이다.
미얀마의 행정 구역은 크게 7개의 삐내(버마어: ပြည်နယ် 삐내)와 7개의 따잉데따찌(버마어: တိုင်းဒေသကြီး 따잉 데따 찌)로 나뉜다. 도의 이름은 에야워디도와 떠닝따이도를 제외하고는 도의 소재지의 이름이 도의 이름이 되었다. 또한 도와 주는 민족 간의 경계가 되어 도는 버마족이 다수를 이루는 반면, 주는 소수 민족이 다수를 이룬다. 도와 주의 하위 행정 구역으로는 군(버마어: ခရိုင် 커야잉)이 있다.[3][4]
자연환경
양곤은 안다만해 연안에 위치하였으며, 미얀마 저지대의 주요 하천인 양곤강과 바고강의 합류부에 위치한다. 특히 양곤 강은 미얀마에서 가장 큰 하천인 이리와디 강에서 갈라져 나온 부분으로, 양곤은 이라와디강의 삼각주 상에 위치한 도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양곤의 해발 고도는 23m로 다소 낮은 편이다. 또한 조류의 영향으로 양곤 도시권의 생태시스템은 조간대 생태시스템의 특성을 보인다. 명확한 산지는 북쪽으로 50km 정도 떨어져 있다. 깐도지 호(Kandawgyi Lake)는 양곤 중심부에 위치하였으며 유명 관광자원인 쉐다곤 파고다(Shwedagon Pagoda) 의 동쪽에 위치한 인공호수이며 영국 식민지 시기에 수자원 공급을 위해서 건설되었다. 인야호(Inya Lake) 또한 영국 식민지 시기 만들어진 인공 호수로 수자원 공급과 홍수 예방을 위해 만들어졌다. 이 호수권역은 양곤에 대한 수자원 공급 뿐 아니라 자연공원으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양곤은 과거에는 양곤 강과 바고 강의 북쪽 지점에 반도의 형태로만 도시권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도시가 발달하면서 강의 반대 편인 서남쪽과 동남쪽, 북쪽으로 도시가 확장되었다.
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르면 양곤은 열대계절풍기후(Am)지역이다. 총 강수량 2,700mm중의 대부분이 우기인 5월에서 10월 사이에 내리며, 특히 7~9월에는 500~600mm이상의 강한 월 강수량을 보인다. 열대계절풍기후 지역 중 다소 위도가 높은 편이기 때문에 기온의 계절적 차이가 다소 나타난다. 연평균기온은 27.4℃이며, 겨울인 12월과 1월에도 25℃ 수준으로 덥다. 또한 최고 기온 또한 연중 30℃이상으로 높고, 오히려 우기인 여름철의 최고기온이 더 낮은 편이다. 그러나 최저 기온에서 큰 폭의 차이를 보이는데, 우기와 여름철인 6~8월의 최저기온은 23~4℃를 나타내지만, 12월과 1월은 18℃이하로 떨어지며, 10℃내외의 추위가 찾아오기도 한다.
양곤은 인도양 동부의 열대 폭풍인 사이클론에 취약한 지역이다. 사이클론의 발생 지점과 가깝고 저지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수 차례 열대 폭풍의 피해를 입었다. 2008년 사이클론 나르기스는 양곤과 그 주변 일대에 큰 홍수와 바람 피해를 유발했다. 양곤이 미얀마 수도의 지위를 잃은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양곤 일대의 열대저기압에 대한 취약성 또한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5]
역사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몬족이 살고 있었다. 정치적으로 이 지역은 1057년 이전에는 몬 왕국의 지배를 받았고 1057년 이후에는 약간의 시기를 제외하고는 북쪽의 버마족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지역의 지배권은 1287~1539년과 1740~1757년에 바고를 본거지로 하는 몬 왕국에게 되돌아왔다. 포르투갈인들은 1599~1613년까지 탄린(시리암)과 그 주변 지역을 지배하였다. 18세기 중반에 얼라웅퍼야 왕이 슈웨다곤 파고다 주변의 강 건너의 작은 어촌을 확장시키기로 하기 전까지, 탄린은 저지 미얀마의 가장 중요한 항구 도시였다.
영국은 제1차 영국-미얀마 전쟁 때 양곤을 처음 점령하였으나 전쟁 후에 다시 버마족의 관할로 돌아왔다. 영국은 1852년의 제2차 영국-미얀마 전쟁 때 양곤과 저지 미얀마를 모두 점령하였고, 양곤을 영국령 버마의 상업과 정치의 중심지로 변모시켰다. 양곤은 영국령 버마와 오늘날의 양곤 관구와 바고 관구를 포함하는 한타와디 주의 수도가 되었다. 영국인들은 많은 인도인들을 데려와 노동자와 공무원으로 일하게 했다. 1930년대까지 인도인들은 양곤 시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였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에 양곤은 버마 민족주의 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양곤 관구는 1942년 4월부터 1945년 5월까지 일본의 점령하에 있었다.
1948년 1월에 미얀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에 한타웨이 주는 페구(바고) 관구로 개칭되었고 양곤은 그 수도가 되었다. 1964년에 양곤 관구가 바고 관구로부터 분리되었다. 바고 관구의 수도는 양곤에서 바고로 바뀌었다. 1974년 6월에 한타웨이와 흐모비가 바고 관구에서 양곤 관구로 편입되었다.
전쟁 후에 양곤은 크게 성장하였다. 미얀마 정부는 양곤 주변에 위성 도시들을 세웠다. 오늘날 양곤 관구는 본질적으로는 양곤 대도시권과 그를 둘러싼 배후지이다.
산업
양곤지구는 미얀마에서 가장 잘 개발된 지역이다. 양곤은 저지 미얀마의 모든 상품의 교역의 중심이다. 바인나웅 시장은 쌀, 콩 등의 농산품이 거래되는 미얀마에서 가장 큰 도매 시장이다. 미얀마의 합법적인 수출입의 대부분은 미얀마에서 가장 크고 분주한 항구인 탄린의 틸라와 항을 통과한다. 양곤에는 최소한 14개의 경공업 지대가 있으며 수 천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양곤 도시권 밖은 벼농사가 지배적이다. 다른 작물로는 황마, 고무, 사탕수수, 땅콩이 있다.
교통
양곤지구는 미얀마에서 최고의 교통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미얀마의 다른 지역으로 가는 모든 운송수단은 양곤을 통과한다. 5개의 고속도로가 양곤과 미얀마의 다른 지역을 연결한다. 양곤 국제공항은 미얀마의 주요한 국제간의 관문이다. 양곤 중앙역은 5,068km의 미얀마 철도의 중심축이다. 양곤과 아예와디 관구를 연결하는 트완테 운하 또한 수송과 교역을 위해 널리 사용된다.
자동차는 값비싼 교통 수단이기 때문에 버스가 중요한 교통 수단이다. 2008년 1월 기준으로, 양곤 관구에는 거의 182,000개의 자동차가 있어, 나라 전체의 17.7%를 차지한다.
문화 및 관광
양곤은 미얀마 중남부에 위치한 미얀마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상업도시이다. 영국 식민지 시대 핵심도시였던 만큼 관련 건축물 유산들이 잔존해 있으며 일부 정부기관에서는 여전히 이 건물들을 사용하고 있다. 시내에는 역사적이며 전통적인 불교 유적지와 식민시대의 건축물 그리고 현대화된 건축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과거와 현재를 공존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도시의 중심에는 2개의 큰 호수가 있으며, 전통 시장과 야시장 또한 주요 관광 장소이다.
양곤에서 가장 유명한 유적지는 쉐다곤 파고다이다. '쉐(Shwe)'는 미얀마어로 금을 의미하며 '다곤(Dagon)'은 현 양곤의 옛 지명을 뜻한다. 전 국민의 89%가 불교신자인 미얀마 국민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사찰로 높이는 99m이며 4톤의 황금판으로 둘러 싸여 있고 최상부에 위치한 '티(봉오리)'에는 72캐럿의 다이아몬드와 루비 등 값비싼 보석들로 장식되어 있으며 탑 내부에는 석가모니의 여덟 가닥의 머리카락이 안치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고고학자들은 6세기에서 10세기 사이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미얀마의 종교학자들은 석가모니가 현존하던 당시 건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불탑이라고 주장한다. 쉐다곤 파고다는 현재도 5년마다 금박 교체 작업을 하는데 15세기 신소부(Shin Sawbu) 여왕이 본인의 몸무게와 동일한 40kg의 금을 기부하면서 금박을 바르는 유래가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시내 중심 지역인 시청 바로 옆에 위치한 술레 파고다(sule pagoda)는 양곤의 센터에 위치한다. 불탑이 지어진 시기에 대한 정확한 사료는 없다. 단지 전설에 의하면 석가모니가 현존하던 2600여 년 전부터 존재했다고만 전해진다. 불탑은 8각형으로 되어 있으며 19세기 중반 영국의 식민지 직후 도시 계획을 하던 중 파고다를 중심으로 계획되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불탑은 로터리로 이용되고 있는데 이 주변으로 시청과 관공서, 차이나타운과 시장, 배낭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게스트 하우스 등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도시 중심에 자리하고 있어 1988년 민중봉기, 2007년 샤프란 혁명, 2021년 봄의 혁명 당시 민중들의 집결지로 미얀마 정치 역사의 상징물과도 같은 곳이다.
양곤시내의 명소 중 한 곳으로 보족시장(Bogyoke Aung San Market)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시장은 영국 식민지 통치 말기인 1926년에 건설되었는데 미얀마에 축구를 소개한 영국 관리 제임스 조지 스콧(James George Scott)의 이름을 본 따 스콧 마켓으로도 불리었다. 1948년 독립 이후 미얀마 독립의 아버지인 아웅산 장군의 이름을 따서 지금의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이 시장은 양곤 문화재 리스트에 올라있으며 현재는 골동품과 수공예품, 미술품 갤러리, 전통 의류 매장 등 여러 기념품을 판매하는 전통시장으로 매년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이 밖에 유원지로는 쉐다곤 파고다 옆에 위치한 깐도지(Kandawgyi)라는 호수공원이 있으며 공원 내에는 꺼러웨익(Karaweik)이라는 왕실 전통 배 모양을 한 식당 건축물이 있는데 야간 전통 공연과 전통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극장식 식당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양곤시내 차이나 타운에서는 야시장과 바비큐와 생맥주를 즐길 수 있는 19번가 식당가 거리가 있는데 다양한 음식들을 접할 수 있다.[6]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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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 〈양곤도〉, 《위키백과》
- 〈미얀마/행정구역〉, 《나무위키》
- 〈미얀마의 행정구역〉, 《위키백과》
- 〈두산백과: 양곤〉,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양곤 기후와 자연환경〉,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양곤 문화 및 관광〉,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
동남아시아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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