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기
백설기(baekseolgi, Steamed Rice Cakes)는 시루떡의 하나이다. 멥쌀가루를 켜를 얇게 잡아 켜마다 고물 대신 흰 종이를 깔고, 물 또는 설탕물을 내려서 시루에 안쳐 깨끗하게 쪄낸다. 어린아이의 삼칠일, 백일, 돌이나 고사(告祀) 따위에 쓴다.
개요[편집]
백설기는 쌀가루 반죽으로 만든 한국의 시루떡이다. 백편, 흰무리떡, 설기라고도 한다. 백설기는 보통 특별한 행사 날에 먹는데, 아기의 삼칠일이나 100일에 먹는다. 특히 삼칠일의 백설기는 대문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가족 구성원끼리만 먹는 풍습이 있다. 산신제 등의 고사(告祀)에도 쓴다. 떡은 순수와 신성을 나타내는 흰색이다. 백설기는 흰무리라고도 한다. 17세기경 여러 가지 음식조리서가 등장하였는데 백설기의 명칭은 《규합총서》에 기록되어 있다. 티없이 깨끗하여 신성한 음식이란 뜻에서 어린이의 삼칠일·백일·돌의 대표적 음식이고, 사찰에서 재(齋)를 올릴 때 또는 산신제·용왕제 등 토속적인 의례에서 쓰인다.[1][2]
상세[편집]
백설기는 멥쌀가루를 고물이 없이 시루에 안쳐 쪄낸 떡을 말한다. 흰무리라고도 한다. 백설기는 말 그대로 멥쌀가루를 하얗게 쪄낸 떡이다. 티없이 깨끗하고 신성한 음식이라는 뜻에서 어린이의 삼칠일·백일·첫돌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쓰이고 사찰에서 재를 올릴 때 또는 산신제·용왕제 등 토속적인 의례에 많이 쓰인다.
설기떡은 김해나 웅천 등지에서 출토된 시루, 안악고분벽화의 시루에다 무엇인가를 찌고 있는 아낙네, 무문토기시대의 유물인 제분용 연석 등으로 미루어, 1∼2세기경부터 존재한 것으로 추측된다.
또, 『삼국유사』 효소왕대죽지랑조에 설병(舌餠)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 음이 설고(雪餻)와 비슷한 점을 들어 이 설병을 백설기로 보기도 한다. 따라서 백설기에 관한 중국 기록은 남송 말기의 『무림구사(武林舊事)』에 설고라는 이름으로 나오고 있으므로 백설기에 관한 기록은 중국보다 앞섰다고 할 수 있다.
이색(李穡)은 『목은집(牧隱集)』 속의 「영설고(詠雪餻)」에서 설기떡을 절찬하였고 『지봉유설』에 고려에서는 쑥설기떡을 음식물의 으뜸으로 삼는다고 한 기록이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에는 설기떡이 완전히 뿌리를 내린 시대라 할 수 있다.
17세기경에는 음식의 재료뿐 아니라 만드는 방법까지를 적은 여러 조리서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백설기라는 이름은 『규합총서(閨閤叢書)』에만 나오고, 『규곤시의방(閨壼是議方)』에는 밤설기, 『시의전서(是議全書)』에는 막우설기가 기록되어 있다.
조리서에 고려시대에 뿌리를 내렸던 설기떡에 관한 기록이 적은 이유는 설기떡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쇠퇴된 것이 아니라 식품 이름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하였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지금도 백설기는 거의 모든 행사에 사용되고 있으며 지역이나 계절에 상관없이 만들어 먹는 가장 대중적인 떡이다.[3]
역사[편집]
백설기는 시루떡의 종류로,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하얀색이 특징이다. 건포도나 콩, 잼이 들어있는 백설기도 있다. 요즘에는 떡케이크 베이스로도 많이 쓰인다. 만드는 방법은 멥쌀가루를 켜를 얇게 잡아 켜마다 고물 대신 흰 종이를 깔고, 물 또는 설탕물을 내려서 시루에 앉여 깨끗하게 쪄 낸다고 한다.
예로부터 하얀 떡은 그 자체로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서 깨끗하고 신성한 음식이라는 의미로 제사상에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에도 어린 아이의 삼칠일, 백일, 첫돌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쓰이고 사찰에서 재를 올릴 때 또는 산신제, 용왕제 등 토속적인 의례에 많이 쓰인다.
이런 설기떡은 그 유래가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삼국시대 초기인 1~2세기의 시루가 발견되는 등 예전부터 해먹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유사》 효소왕 기사에 설병이라는 음식 이름이 나오는데 오늘날 이것을 백설기로 보기도 한다. 중국의 경우 백설기에 대한 기록이 남송의 《무림구사》에 설고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것으로 봐서 설기떡은 한국에선 중국 이상으로 오래된 유래를 가지는 떡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색은 《목은집》에서 설기떡(영설고)을 절찬하였고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고려에서는 쑥설기떡을 음식물의 으뜸으로 삼는다고 한 기록이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고려 시대에는 설기떡이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고 할 수 있다.
17세기경에는 음식의 재료뿐 아니라 만드는 방법까지를 적은 여러 조리서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백설기라는 이름은 《규합총서》에만 나오고, 《규곤시의방》(음식디미방)에는 밤설기, 《시의전서》에는 막우설기가 기록되어 있다.
고려시대에 뿌리를 내렸던 음식임에도 조리서에 백설기에 관한 기록이 적은 이유는 설기떡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쇠퇴된 것이 아니라 식품 이름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하였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지금도 백설기는 거의 모든 행사에 사용되고 있으며 지역이나 계절에 상관없이 만들어 먹는 가장 대중적인 떡이다.[4]
조리법[편집]
백설기는 멥쌀가루에 설탕물과 꿀을 내려 시루에 안쳐 찌는 가장 기본이 되는 흰 무리떡으로 <규합총서(閨閤叢書), 1815>에서 '백설고(白雪糕)'로 기록된 이후, 계속 이용해 온 전통적 시루떡이다. 흰눈과 같다는 의미의 백설기는 예로부터 순진무구하고 신성한 것으로 여겨져 어린아이의 삼칠일·백일·첫돌 등의 의례행사에 필수음식으로 쓰였으며 사찰에서 제를 올릴 때나 산신제·용왕제 등의 토속적 의례에서도 쓰여졌다. 한편, 백설기는 햇볕에 잘 말려서 고운 가루로 만들어 이유식인 암죽을 쑤어 먹거나 백설기 가루에 꿀을 섞어 다식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재료 및 분량
- 멥쌀 800g(소두 1되, 멥쌀가루 12컵), 소금 2작은술, 꿀 3큰술
- 설탕물 - 설탕 1/2컵, 물 1컵
만드는 법
- 1. 멥쌀은 깨끗이 씻어 물에 6시간 이상 충분히 불렸다가 건진 다음, 소금 간을 한다.
- 2. 곱게 빻아 체에 내려서 고운 가루를 만든다.
- 3. 체에 내린 멥쌀가루에 끓여 식힌 설탕물과 꿀을 넣어 고루 비빈 후 체에 다시 한번 더 내린다.
- 4. 멥쌀가루에 물이 적당하게 들어갔는지를 알려면 체에 내린 멥쌀가루를 주먹으로 쥐어보아 덩어리가 깨지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된다.
- 5. 시루에 시루밑 또는 젖은 베보자기를 깔고 멥쌀가루를 손으로 솔솔 뿌려 위를 고르고 편편하게 한다.
- 6. 깊숙하게 칼금을 넣는다.
- 7. 시룻번을 붙인 후 불을 올려 김이 오르면 뚜껑을 덮어 20분 정도 더 찐다.
- 8. 대꼬치로 찔러보아 흰 가루가 묻어나지 않으면 불을 끄고 5분 정도 뜸을 들인 후 도마에 쏟아서 한 김 나간 다음 큼직하고 네모지게 썰어 목기나 그릇에 담아낸다.
참고
- 멥쌀가루를 시루에 안칠 때는 손으로 솔솔 뿌려 가면서 안쳐야 공기가 많이 들어가서 떡이 부드럽게 잘 쪄진다. 꼭꼭 눌러 안치면 공기 구멍이 막혀 설익을 수가 있으므로 주의한다.
- 시룻번은 밀가루를 반죽해 가늘게 만들어 시루와 솥 사이를 돌려 가면서 틈이 없도록 잘 밀착시켜 바른다.
- 멥쌀가루를 안친 후 미리 원하는 크기로 깊숙이 칼금을 내어 찌면 나중에 떼기가 수월하다.[5]
기타[편집]
조선 통신사가 일본에 갔을 때 카스텔라를 대접받았는데, 통신사 측에서는 이를 백설기를 가리키는 '설고(雪餻, 雪糕)'라고 기록해 놓았다. 설고는 본래 본 문서 백설기를 이르는 다른 명칭이니, 카스텔라를 백설기의 일종으로 여겼던 듯하다.
고물이나 내용물이 없는 것이 보통이고, 밍숭맹숭 부담없는 맛이다 보니 그냥 먹기 보다는 우유 등의 음료와 함께 종종 잼이나 케첩, 꿀 같은 것과 같이 발라서 먹는 경우가 있다. 서양인들이 빵에 우유 혹은 잼이나 버터 같은 것을 곁들여 먹는 것과 비슷한 케이스. 특히 사과잼과 백설기의 조합은 꽤 잘 어울린다.
제과기업에서 만드는 양산빵 종류 중에서도 '백설기빵'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빵 종류가 있는데, 이것은 떡이 아니라 밀가루로 만든 하얀 찜케이크 종류이며, 건포도가 들어가기도 하지만 콩을 넣은 종류도 있다. 백설기빵은 백설기를 모티브로 하서 만들어지는 하얀 케이크빵의 일종. 백설기처럼 위에 건포도나 콩이 올라가는 것이 특징이다. 대개는 밀가루와 쌀가루를 혼합하여 제조한다.[6][4]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백설기〉, 《네이버 국어사전》
- 〈백설기〉, 《두산백과》
- 〈백설기〉, 《위키백과》
- 〈백설기〉, 《나무위키》
- 〈백설기〉,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백설기〉, 《음식백과》
- 〈백설기빵〉, 《나무위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