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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칭하이성'''(青海省, 청해성, {{발음|青海省}})은 [[중국]] 서북지역에 속하였으며 성도는 [[시닝]](西宁,{{발음|西宁}})이다. 동쪽과 북쪽은 [[간쑤성]], 서북쪽은 [[신장위구르자치구]], 남쪽과 서남쪽은 [[티베트자치구]], 동남쪽은 [[장시성]], 북쪽은 [[쓰촨성]]과 접하였다. | ||
== 개요 == | == 개요 == | ||
− | + | 칭하이성의 약칭은 약칭하여 '칭(青)'이라고도 부르며, 성도(省都)는 시닝이다. 면적은 721,000㎢에 달하며 반면 인구는 562만 명에 불과해 중국의 모든 성을 통틀어 가장 적다. 행정구역은 6개 [[자치주]]와 1개 [[지구 (행정구역)|지구]], 1개 [[지급시]](地級市)와 2개 [[현급시]](县級市), 30개 [[현 (행정구역)|현]], 7개 [[자치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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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칭하이성 이름은 칭하이성에 위치한 중국 최대 호수인 [[칭하이호]](青海湖)에서 유래했다. 칭하이는 중국어 명칭이며 원래 이 지방은 티베트의 일부로 티베트어로는 암도 지역이고 암도 및 현 [[쓰촨성]] 서부인 캄, 그리고 현 [[티베트 자치구]]와 함께 티베트를 구성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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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중국]]에서 [[강]] 길이 순위 1, 2위인 [[장강]], [[황하]]의 발원지가 모두 칭하이성에 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대한민국]]의 [[태백시]]와 비슷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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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구의 54.5%가 한족이나, 티베트족(20.7%)과 후이족(16%), 몽골계인 투족(4%) 등 소수민족 인구 비중이 거의 한족과 비슷한 수준이다. 실제 행정구역도 2개 시와 6개 소수민족 자치주로 이루어져 있다. 6개 소수민족 자치주들은 성 면적의 97%를 차지하나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5.9%로 한족들이 많이 거주하는 2개 시보다 적다. 반대로 성 면적의 3퍼센트 정도인 지급시 시닝시와 하이둥시의 인구구성은 한족이 우세하고 칭하이성 전체 한족의 80% 가까이가 두 지역에 거주 중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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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칭하이 호를 기준으로 남쪽은 대체로 티베트인이 많고 북쪽은 한족이 많이 산다. 위수 티베트족 자치주와 궈러 티베트족 자치주, 황난 티베트족 자치주, 하이난 티베트족 자치주는 티베트족이 각각 97%와 92%, 66%, 63%로 티베트인이 많이 산다. 특산물로 야생 상태의 동충하초가 유명하다.<ref>〈[https://namu.wiki/w/%EC%B9%AD%ED%95%98%EC%9D%B4%EC%84%B1 칭하이성 ]〉, 《나무위키》</ref><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48425&cid=40942&categoryId=40013 칭하이성]〉, 《네이버 지식백과》</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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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자연환경 == | ||
+ | 시짱(西藏]과 연결되어 [[티베트]] [[고원]]을 형성하며, [[평원]] 지역은 30%에 지나지 않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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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형에 따라 4개 구역으로 구분된다. ① 허황(河湟) [[골짜기]]:황허강의 지류인 황수이강(湟水)의 [[골짜기]]로서 해발 약 2000m이다. 칭하이성에서 가장 낮으며 가장 중요한 농경지역이다. ② 칭난(青南) [[고원]]:성 전체 면적의 약 절반을 차지한다. 쿤룬산(昆仑山)과 그 지맥인 바옌카라산(巴颜喀拉山) 등이 있으며, 해발 4000m 이상이다. 동부는 양쯔강(揚子江)과 황허강(黄河), 란창강(澜沧江) 등의 발원지로서 '[[하천]]의 원천'이라 불린다. 해발 6860m로 칭하이성의 최고봉인 부카다반펑(布喀达坂峰)이 있다. ③ 차이다무(柴达木) [[분지]]:서북부에 있는 내륙 분지로 면적 약 20만㎢이다. '차이다무'는 몽골어로 염택(鹽澤)이라는 뜻이다. ④ 아얼진산(阿尔金山)과 치롄산(祁连山) 지역:북부에 뻗어있으며 해발 3000~4000m 이상이다. 르웨산(日月山) 서쪽은 광활한 칭하이호는 과거에는 '[[서해]](西海)' 또는 함수(咸水)'라고 불렀고, 면적 4635㎢되는 [[분지]]이며, 동쪽은 [[하천]] 외류지역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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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후는 대륙성 건조 및 반건조 고원기후에 속한다. 겨울이 길고 여름이 짧으며, 일교차가 크다. 1월 평균기온은 -10~-16℃이고, 7월은 8~16℃이다. 무상기간(無霜期間)은 4월 초에서 5월 초에 시작되어 3~6개월 정도 지속된다. 일 평균기온이 0℃ 이상인 날이 140~200일, 10℃ 이상인 날이 40~160일이다. 연강수량은 차이다무 분지는 50㎜에 지나지 않으며, 남동쪽으로 가면면 400㎜까지 증가한다. 생장기의 농업용수 수요치는 400~1000㎜ 모자란다. 재해성기후로는 차이다무 분지가 모래폭풍으로 인한 피해를 겪고, 그밖에 우박 다발지역들도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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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역사 == | ||
+ | 고대 한나라 때 정복을 통하여 한족이 들어왔다가, 강족, 토욕혼 등과 섞이게 되어 오히려 한족들이 강족과 동화되는 상황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고대 한나라 때는 아직 따로 성리학이나 중국 불교 등으로 구분되는 한족 정체성이 발전하기 이전이라서, 변방의 한족들이 비한족들과 동화되는 경우가 흔하기는 했다. 5세기에는 토욕혼이 이 곳에 나라를 운영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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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세기에는 토번이 토욕혼을 점령한 이후부터 토번의 영토가 되었고 중세부터 근세까지는 티베트의 암도 지방이었다. 당군이 토번군에게 우세를 보였을 때는 하황 지대가 당에 넘어갔고, 안사의 난으로 당의 정예군이 반란 진압에 투입된 틈을 타, 토번이 다시 빼앗았다. 이후 선종 시기 장의조가 하서 일대를 비롯하여 하황 일대를 당에 바쳤으나, 장의조 사후 하서 일대가 회흘인들에게 넘어가고 하황 일대는 토번에 다시 빼앗겼다. 그 뒤 왕안석의 신법 하에 재정이 풍족해지자, 북송 시기 송군이 이 곳으로 영토를 더욱 확장하였다. 그러나 정강의 변 이후 송나라가 남쪽으로 내려가자 서하와 금나라가 하황 일대를 동시 관할하였고, 몽골 제국이 세계를 제패하던 시기 몽골군에 점령당한 이래 원의 땅이었으며, 원이 망한 뒤에는 오이라트의 일파 호쇼트 칸국이 장악하였다. 호쇼트 칸국이 준가르 칸국에 공격으로 예속되자 청나라 강희제 연간에 외몽골과 함께 준가르로부터 빼앗았다. 그땐 몽골어로 쾨케누르라고 불렸다.[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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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세까지는 티베트인이 대부분이었으나, 근세 청나라가 준가르 칸국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팔기군들을 주둔시키고, 팔기군 기지에서 둔전을 경작할 농민들과 군수품을 납품하는 상인들이 중국 본토에서 대거 이주하면서 인구 구성이 변하였다. 특히 [[간쑤성]]에서 후이족들이 많이 이주해왔다. 달라이 라마가 직접 관할하던 티베트 지방과는 달리 청나라 시기 청해로 분할되었으며, 별개의 이번원이 설치되었다. 이번원이 폐지된 이후에는 중화민국 시대에 청해성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의 통치하에 남아 성으로 강등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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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9년 1월, 군벌 펑위샹의 주도로 간쑤성에서 떨어져나와 성립되었다. 군벌 쑨롄중이 초대 성정부 주석을 맡았으며 1차 장풍전쟁 중 마씨군벌 마치(1869)가 정부주서에 임명되어 청해성의 지배자가 되었다. 이를 기점으로 오늘날의 간쑤성 일대의 회족 상당수가 이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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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칭하이성은 1931년 마치가 사망할 때까지 마치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으며 마치가 사망한 후 마씨 군벌들이 돌아가면서 지배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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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티베트는 티베트인들이 많이 사는 이 지역을 자신들의 고유 영토로 생각하여 침공하였으나 마부팡이 지휘하는 회족 군대에게 패전하고 이 지역은 마씨 군벌의 영지화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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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8년, 마치의 아들 마부팡이 장제스로부터 성정부 주석에 임명되면서 청해성의 지배자가 되었다. 1949년, 국공내전에서 중화민국이 무너질 때까지 마부팡의 지배를 받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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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소수민족지역이기는 하지만 주변의 티베트나 위구르와는 달리 독립운동은 거의 없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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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산업 == | ||
+ | [[토지]] 자원은 초원이 47%를 차지하고, [[경작지]]와 임지는 모두 1% 미만이다. [[방목지역]]의 목초가 영양가가 높고 모피 자원이 풍부하며, 광물자원과 수력자원의 대성(大省)이기도 하다. 매장량이 탐사된 광물이 60여 종이다. 그 가운데 염분류가 가장 풍부하여 칼리암염 매장량은 전국의 97%, 함수호 소금은 전국의 56%를 차지하며, 리튬·요오드·브롬 등도 모두 국내외에 잘 알려져 있다. 차얼한과 차카 등 유명한 함수호가 있다. 석면·규석·화학공업용 석회의 매장량은 모두 전국에서 1위이다. 수력자원 또한 전국에서 상위권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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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업은 재배업과 목축업의 비중이 각각 48%와 50%를 차지한다. 경작지는 대부분 르웨산[日月山] 동부에 분포한다. 1950년대 이래 차이다무와 칭하이호 주변에 속속 기계화 농장이 건설되었다. 주요 농작물은 밀·쌀보리·누에콩·완두콩·감자와 유채 등이며, 동부의 계곡에서는 온난기후를 좋아하는 과일과 야채가 생산된다. 또 중국의 5대 초원목초지역 가운데 한 곳으로, 매년 방목할 수 있는 기간이 7~8개월이다. 야크·짱몐양·낙타의 마릿수와 양털 생산량은 모두 전국에서 상위권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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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산품은 고원에서 기르는 짱몐양과 하오먼마[浩门马;과거에는 용구(龙驹)라 불림], 허취마(河曲马) 등이 있다. 짱몐양의 털은 '시닝마오(西宁毛)'라고 부른다. 약재로는 강늑조양(强肋助阳)의 효능이 있는 복수초, 생산량이 전국의 약 70%를 차지하는 동충하초와 칭베이무(青贝母), 윤폐보신(润肺补肾)의 효능이 있는 시닝의 대황, 고한지대의 초원에서 자라는 인삼과 등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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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업 부문은 에너지와 염광 자원이 풍부하지만 기초가 낙후되었다. 1950년대 이후에야 비로소 국가차원의 투자가 이루어져 주요 분야들이 건설되기 시작하여 초보적으로 기계·야금·건축자재·방직·식품을 위주로 하는 공업체계를 형성하였다. 오늘날 공업 생산액은 농공업 총 생산액의 74%를 차지하게 되었고, 경공업과 중공업의 비율은 1 대 3이 되었다. 룽양샤(龙羊峡) 수력발전소와 알루미늄공장, 마그네슘공장, 칼리비료공장, 정유공장 등이 건설되었고, 절삭기계공구와 모직 및 염화공업 등도 상당한 규모를 갖추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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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교통 == | ||
+ | [[교통]]이 원래 폐쇄적으로 1959년에 건설된 란칭철로가 대외 교통의 동맥 역할을 해왔으며, 2006년 7월 시닝에서 시짱(티베트)의 라싸까지 연결되는 칭짱철도의 전구간이 완공되었다. 철도의 운행거리는 1100여㎞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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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로]]의 운행거리는 2만 4003㎞이고, 시닝~핑안을 잇는 고속도로도 완공되었으며, 6개의 국도가 성내를 지나간다. [[항공]] [[교통]]은 시닝에서 [[란저우]]·[[베이징]]·거얼무 등지로 통하는 민항기 노선이 있다. 거얼무에서 라싸까지 연결되는 소형 송유관도 건설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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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민족갈등 == | ||
+ | 티베트 불교를 믿는 티베트족(장족)과 이슬람교를 믿는 후이족(회족)이 같이 사는데 이 둘 사이의 갈등이 제법 심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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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족과 티베트족 간 갈등은 매우 역사가 긴데, [[중앙아시아]]와 [[인도]][ 불교 [[이슬람]]의 공세로 쇠퇴하던 시기 이후에도 티베트 불교는 직접 이슬람과 대치하던 상황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8세기 당시 신장 지역 서부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에 해당하는 지역은 무슬림들이 정복하여 급속한 이슬람화가 진행되었으나, 신장 지역의 경우 토번 제국이 무슬림들의 진공을 저지하였고 이로 인해 위구르인들이 완전히 이슬람화하는 시점은 14~15세기로 늦춰졌다. 또한 명나라에서는 무슬림 살라르족을 이 지역 동부에 주둔시켜 티베트계 부족들을 견제했던 바 있다.[ 20세기 들어 마씨 군벌 통치기에는 티베트가 이 지역에 쳐들어왔다. 마씨 회족 군대에게 격퇴당하기도 했다. 이른바 장회충돌(藏回冲突) 혹은 회장충돌이라 불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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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이족과 티베트인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지만 칭하이성에서 상호 교류는 활발한 편이다. 티베트 요리도 후이족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는 티베트 불교에서는 도축을 권하지 않기 때문에 티베트인들이 도축과 육류 가공을 후이족에게 맡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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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만 후이족은 똑같은 티베트 불교를 숭상하던 만주족에게 탄압당했던 역사 때문에 반불교 감정이 심하고, 상대적으로 약자인 티베트인에게 화풀이하는 성향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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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티베트인들도 후이족이 배타적이라고 거부감을 느끼는 편으로 티베트인이 봉기하는 경우 한족뿐 아니라 후이족들도 표적이 되는 경우도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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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티베트계 무슬림들의 경우 일반 티베트인과 후이족 양쪽에게 모두 배척당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양쪽의 중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칭하이성의 티베트계 무슬림들은 라싸 일대의 까체족과 다르며 칭하이성과 간쑤성 경계 지대의 무슬림 소수민족 살라르족의 영향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한 경우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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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관광 == | ||
+ | 최적의 여름 피서 명승지로 꼽히는 성으로, 국가중점 보호 문화재가 11곳이 있다. 유서 깊은 시닝에는 천년 고적지 후타이가 있고, 둥관[东关]에는 이슬람 대사원, 베이산에는 당·송 시대에 건립된 불교와 도교 사찰이 있다. 황중현의 타얼사는 명나라 때 라마교의 거루파를 창시한 쭝카바가 태어난 곳으로, 한짱 예술의 결합체인 진와사를 비롯하여 경당과 부도가 있으며, 내부에는 현종·밀종·천문·의학의 4대 학원이 설치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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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닝 북서쪽의 [[칭하이호]]는 국가지정 명승 풍경 지역이다. 또 르웨산 위수에는 티베트왕 손챈감포에게 시집온 당나라 문성공주묘(文成公主庙)가 남아 있다. 그밖의 명승지로는 해마다 6월에 꽃축제가 열리는 러두의 '소고궁(小故宫)' 취셴사와 마둬의 황허강 발원지 탐험명승지가 있으며, 거얼무의 차얼한 함수호도 빼어난 경관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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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행정구역 == | ||
+ | [[파일:칭하이성 행정구역.png|썸네일|300픽셀|'''칭하이성 행정구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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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급시: | ||
+ | :* 시닝시(西宁市) | ||
+ | :* 하이둥시海东市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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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치주: | ||
+ | :* 하이시 몽골족 티베트족 자치주(海西蒙古族藏族自治州) | ||
+ | :* 하이베이 티베트족 자치주(海北藏族自治州) | ||
+ | :* 하이난 티베트족 자치주(海南藏族自治州) | ||
+ | :* 황난 티베트족 자치주(黄南藏族自治州) | ||
+ | :* 위수 티베트족 자치주(玉树藏族自治州) | ||
+ | :* 궈뤄 티베트족 자치주(果洛藏族自治州) | ||
== 지도 == | == 지도 == | ||
− | {{지도| | + | {{칭하이성 행정 지도|800}} |
+ | {{지도|칭하이성2}} | ||
+ | {{다단2 | ||
+ | |{{칭하이호 행정 지도}} | ||
+ | |{{하이시 몽골족 티베트족 자치주 행정 지도}} | ||
+ | }} | ||
+ | {{다단2 | ||
+ | |{{중국 서북지구 행정 지도}} | ||
+ | |{{중국 행정 지도}} | ||
+ | }} | ||
− | == | + | == 동영상 == |
− | + | <youtube>jfUSkmGY8Ew</youtube> | |
+ | <youtube>7PbiWtef9a8</youtube> | ||
+ | {{각주}} | ||
== 참고자료 == | == 참고자료 == | ||
− | * 〈[https://zh.wikipedia.org/wiki/% | + | *〈[https://ko.wikipedia.org/wiki/%EC%B9%AD%ED%95%98%EC%9D%B4%EC%84%B1#%EA%B2%BD%EC%A0%9C 칭하이성]〉, 《위키백과》 |
+ | *〈[https://namu.wiki/w/%EC%B9%AD%ED%95%98%EC%9D%B4%EC%84%B1 칭하이성 ]〉, 《나무위키》 | ||
+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48425&cid=40942&categoryId=40013 칭하이성]〉, 《네이버 지식백과》 | ||
+ | * 〈[https://zh.wikipedia.org/wiki/%E9%9D%92%E6%B5%B7%E7%9C%81 青海省]〉, 《维基百科》 | ||
* 〈[https://baike.baidu.com/item/%E9%9D%92%E6%B5%B7/31638?fromtitle=%E9%9D%92%E6%B5%B7%E7%9C%81&fromid=19428913&fr=aladdin 青海]〉, 《百度百科》 | * 〈[https://baike.baidu.com/item/%E9%9D%92%E6%B5%B7/31638?fromtitle=%E9%9D%92%E6%B5%B7%E7%9C%81&fromid=19428913&fr=aladdin 青海]〉, 《百度百科》 | ||
− | |||
== 같이 보기 == | == 같이 보기 == | ||
− | * [[ | + | * [[중국]] |
+ | * [[간쑤성]] | ||
+ | * [[신장위구르자치구]] | ||
+ | * [[티베트자치구]] | ||
+ | * [[장시성]] | ||
+ | * [[쓰촨성]] | ||
− | {{ | + | {{중국 행정구역|검토 필요}} |
2024년 1월 6일 (토) 15:34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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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하이성(青海省, 청해성, qīng hǎi shěng)은 중국 서북지역에 속하였으며 성도는 시닝(西宁,xī níng)이다. 동쪽과 북쪽은 간쑤성, 서북쪽은 신장위구르자치구, 남쪽과 서남쪽은 티베트자치구, 동남쪽은 장시성, 북쪽은 쓰촨성과 접하였다.
개요[편집]
칭하이성의 약칭은 약칭하여 '칭(青)'이라고도 부르며, 성도(省都)는 시닝이다. 면적은 721,000㎢에 달하며 반면 인구는 562만 명에 불과해 중국의 모든 성을 통틀어 가장 적다. 행정구역은 6개 자치주와 1개 지구, 1개 지급시(地級市)와 2개 현급시(县級市), 30개 현, 7개 자치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칭하이성 이름은 칭하이성에 위치한 중국 최대 호수인 칭하이호(青海湖)에서 유래했다. 칭하이는 중국어 명칭이며 원래 이 지방은 티베트의 일부로 티베트어로는 암도 지역이고 암도 및 현 쓰촨성 서부인 캄, 그리고 현 티베트 자치구와 함께 티베트를 구성한다.
중국에서 강 길이 순위 1, 2위인 장강, 황하의 발원지가 모두 칭하이성에 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대한민국의 태백시와 비슷하다.
인구의 54.5%가 한족이나, 티베트족(20.7%)과 후이족(16%), 몽골계인 투족(4%) 등 소수민족 인구 비중이 거의 한족과 비슷한 수준이다. 실제 행정구역도 2개 시와 6개 소수민족 자치주로 이루어져 있다. 6개 소수민족 자치주들은 성 면적의 97%를 차지하나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5.9%로 한족들이 많이 거주하는 2개 시보다 적다. 반대로 성 면적의 3퍼센트 정도인 지급시 시닝시와 하이둥시의 인구구성은 한족이 우세하고 칭하이성 전체 한족의 80% 가까이가 두 지역에 거주 중이다.
칭하이 호를 기준으로 남쪽은 대체로 티베트인이 많고 북쪽은 한족이 많이 산다. 위수 티베트족 자치주와 궈러 티베트족 자치주, 황난 티베트족 자치주, 하이난 티베트족 자치주는 티베트족이 각각 97%와 92%, 66%, 63%로 티베트인이 많이 산다. 특산물로 야생 상태의 동충하초가 유명하다.[1][2]
자연환경[편집]
시짱(西藏]과 연결되어 티베트 고원을 형성하며, 평원 지역은 30%에 지나지 않는다.
지형에 따라 4개 구역으로 구분된다. ① 허황(河湟) 골짜기:황허강의 지류인 황수이강(湟水)의 골짜기로서 해발 약 2000m이다. 칭하이성에서 가장 낮으며 가장 중요한 농경지역이다. ② 칭난(青南) 고원:성 전체 면적의 약 절반을 차지한다. 쿤룬산(昆仑山)과 그 지맥인 바옌카라산(巴颜喀拉山) 등이 있으며, 해발 4000m 이상이다. 동부는 양쯔강(揚子江)과 황허강(黄河), 란창강(澜沧江) 등의 발원지로서 '하천의 원천'이라 불린다. 해발 6860m로 칭하이성의 최고봉인 부카다반펑(布喀达坂峰)이 있다. ③ 차이다무(柴达木) 분지:서북부에 있는 내륙 분지로 면적 약 20만㎢이다. '차이다무'는 몽골어로 염택(鹽澤)이라는 뜻이다. ④ 아얼진산(阿尔金山)과 치롄산(祁连山) 지역:북부에 뻗어있으며 해발 3000~4000m 이상이다. 르웨산(日月山) 서쪽은 광활한 칭하이호는 과거에는 '서해(西海)' 또는 함수(咸水)'라고 불렀고, 면적 4635㎢되는 분지이며, 동쪽은 하천 외류지역이다.
기후는 대륙성 건조 및 반건조 고원기후에 속한다. 겨울이 길고 여름이 짧으며, 일교차가 크다. 1월 평균기온은 -10~-16℃이고, 7월은 8~16℃이다. 무상기간(無霜期間)은 4월 초에서 5월 초에 시작되어 3~6개월 정도 지속된다. 일 평균기온이 0℃ 이상인 날이 140~200일, 10℃ 이상인 날이 40~160일이다. 연강수량은 차이다무 분지는 50㎜에 지나지 않으며, 남동쪽으로 가면면 400㎜까지 증가한다. 생장기의 농업용수 수요치는 400~1000㎜ 모자란다. 재해성기후로는 차이다무 분지가 모래폭풍으로 인한 피해를 겪고, 그밖에 우박 다발지역들도 있다.
역사[편집]
고대 한나라 때 정복을 통하여 한족이 들어왔다가, 강족, 토욕혼 등과 섞이게 되어 오히려 한족들이 강족과 동화되는 상황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고대 한나라 때는 아직 따로 성리학이나 중국 불교 등으로 구분되는 한족 정체성이 발전하기 이전이라서, 변방의 한족들이 비한족들과 동화되는 경우가 흔하기는 했다. 5세기에는 토욕혼이 이 곳에 나라를 운영했다.
7세기에는 토번이 토욕혼을 점령한 이후부터 토번의 영토가 되었고 중세부터 근세까지는 티베트의 암도 지방이었다. 당군이 토번군에게 우세를 보였을 때는 하황 지대가 당에 넘어갔고, 안사의 난으로 당의 정예군이 반란 진압에 투입된 틈을 타, 토번이 다시 빼앗았다. 이후 선종 시기 장의조가 하서 일대를 비롯하여 하황 일대를 당에 바쳤으나, 장의조 사후 하서 일대가 회흘인들에게 넘어가고 하황 일대는 토번에 다시 빼앗겼다. 그 뒤 왕안석의 신법 하에 재정이 풍족해지자, 북송 시기 송군이 이 곳으로 영토를 더욱 확장하였다. 그러나 정강의 변 이후 송나라가 남쪽으로 내려가자 서하와 금나라가 하황 일대를 동시 관할하였고, 몽골 제국이 세계를 제패하던 시기 몽골군에 점령당한 이래 원의 땅이었으며, 원이 망한 뒤에는 오이라트의 일파 호쇼트 칸국이 장악하였다. 호쇼트 칸국이 준가르 칸국에 공격으로 예속되자 청나라 강희제 연간에 외몽골과 함께 준가르로부터 빼앗았다. 그땐 몽골어로 쾨케누르라고 불렸다.[6]
근세까지는 티베트인이 대부분이었으나, 근세 청나라가 준가르 칸국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팔기군들을 주둔시키고, 팔기군 기지에서 둔전을 경작할 농민들과 군수품을 납품하는 상인들이 중국 본토에서 대거 이주하면서 인구 구성이 변하였다. 특히 간쑤성에서 후이족들이 많이 이주해왔다. 달라이 라마가 직접 관할하던 티베트 지방과는 달리 청나라 시기 청해로 분할되었으며, 별개의 이번원이 설치되었다. 이번원이 폐지된 이후에는 중화민국 시대에 청해성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의 통치하에 남아 성으로 강등되었다.
1929년 1월, 군벌 펑위샹의 주도로 간쑤성에서 떨어져나와 성립되었다. 군벌 쑨롄중이 초대 성정부 주석을 맡았으며 1차 장풍전쟁 중 마씨군벌 마치(1869)가 정부주서에 임명되어 청해성의 지배자가 되었다. 이를 기점으로 오늘날의 간쑤성 일대의 회족 상당수가 이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칭하이성은 1931년 마치가 사망할 때까지 마치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으며 마치가 사망한 후 마씨 군벌들이 돌아가면서 지배했다.
티베트는 티베트인들이 많이 사는 이 지역을 자신들의 고유 영토로 생각하여 침공하였으나 마부팡이 지휘하는 회족 군대에게 패전하고 이 지역은 마씨 군벌의 영지화 되었다.
1938년, 마치의 아들 마부팡이 장제스로부터 성정부 주석에 임명되면서 청해성의 지배자가 되었다. 1949년, 국공내전에서 중화민국이 무너질 때까지 마부팡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소수민족지역이기는 하지만 주변의 티베트나 위구르와는 달리 독립운동은 거의 없다.
산업[편집]
토지 자원은 초원이 47%를 차지하고, 경작지와 임지는 모두 1% 미만이다. 방목지역의 목초가 영양가가 높고 모피 자원이 풍부하며, 광물자원과 수력자원의 대성(大省)이기도 하다. 매장량이 탐사된 광물이 60여 종이다. 그 가운데 염분류가 가장 풍부하여 칼리암염 매장량은 전국의 97%, 함수호 소금은 전국의 56%를 차지하며, 리튬·요오드·브롬 등도 모두 국내외에 잘 알려져 있다. 차얼한과 차카 등 유명한 함수호가 있다. 석면·규석·화학공업용 석회의 매장량은 모두 전국에서 1위이다. 수력자원 또한 전국에서 상위권이다.
농업은 재배업과 목축업의 비중이 각각 48%와 50%를 차지한다. 경작지는 대부분 르웨산[日月山] 동부에 분포한다. 1950년대 이래 차이다무와 칭하이호 주변에 속속 기계화 농장이 건설되었다. 주요 농작물은 밀·쌀보리·누에콩·완두콩·감자와 유채 등이며, 동부의 계곡에서는 온난기후를 좋아하는 과일과 야채가 생산된다. 또 중국의 5대 초원목초지역 가운데 한 곳으로, 매년 방목할 수 있는 기간이 7~8개월이다. 야크·짱몐양·낙타의 마릿수와 양털 생산량은 모두 전국에서 상위권이다.
특산품은 고원에서 기르는 짱몐양과 하오먼마[浩门马;과거에는 용구(龙驹)라 불림], 허취마(河曲马) 등이 있다. 짱몐양의 털은 '시닝마오(西宁毛)'라고 부른다. 약재로는 강늑조양(强肋助阳)의 효능이 있는 복수초, 생산량이 전국의 약 70%를 차지하는 동충하초와 칭베이무(青贝母), 윤폐보신(润肺补肾)의 효능이 있는 시닝의 대황, 고한지대의 초원에서 자라는 인삼과 등이 있다.
공업 부문은 에너지와 염광 자원이 풍부하지만 기초가 낙후되었다. 1950년대 이후에야 비로소 국가차원의 투자가 이루어져 주요 분야들이 건설되기 시작하여 초보적으로 기계·야금·건축자재·방직·식품을 위주로 하는 공업체계를 형성하였다. 오늘날 공업 생산액은 농공업 총 생산액의 74%를 차지하게 되었고, 경공업과 중공업의 비율은 1 대 3이 되었다. 룽양샤(龙羊峡) 수력발전소와 알루미늄공장, 마그네슘공장, 칼리비료공장, 정유공장 등이 건설되었고, 절삭기계공구와 모직 및 염화공업 등도 상당한 규모를 갖추고 있다.
교통[편집]
교통이 원래 폐쇄적으로 1959년에 건설된 란칭철로가 대외 교통의 동맥 역할을 해왔으며, 2006년 7월 시닝에서 시짱(티베트)의 라싸까지 연결되는 칭짱철도의 전구간이 완공되었다. 철도의 운행거리는 1100여㎞이다.
도로의 운행거리는 2만 4003㎞이고, 시닝~핑안을 잇는 고속도로도 완공되었으며, 6개의 국도가 성내를 지나간다. 항공 교통은 시닝에서 란저우·베이징·거얼무 등지로 통하는 민항기 노선이 있다. 거얼무에서 라싸까지 연결되는 소형 송유관도 건설되었다.
민족갈등[편집]
티베트 불교를 믿는 티베트족(장족)과 이슬람교를 믿는 후이족(회족)이 같이 사는데 이 둘 사이의 갈등이 제법 심하다.
회족과 티베트족 간 갈등은 매우 역사가 긴데, 중앙아시아와 인도[ 불교 이슬람의 공세로 쇠퇴하던 시기 이후에도 티베트 불교는 직접 이슬람과 대치하던 상황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8세기 당시 신장 지역 서부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에 해당하는 지역은 무슬림들이 정복하여 급속한 이슬람화가 진행되었으나, 신장 지역의 경우 토번 제국이 무슬림들의 진공을 저지하였고 이로 인해 위구르인들이 완전히 이슬람화하는 시점은 14~15세기로 늦춰졌다. 또한 명나라에서는 무슬림 살라르족을 이 지역 동부에 주둔시켜 티베트계 부족들을 견제했던 바 있다.[ 20세기 들어 마씨 군벌 통치기에는 티베트가 이 지역에 쳐들어왔다. 마씨 회족 군대에게 격퇴당하기도 했다. 이른바 장회충돌(藏回冲突) 혹은 회장충돌이라 불린다.
후이족과 티베트인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지만 칭하이성에서 상호 교류는 활발한 편이다. 티베트 요리도 후이족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는 티베트 불교에서는 도축을 권하지 않기 때문에 티베트인들이 도축과 육류 가공을 후이족에게 맡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후이족은 똑같은 티베트 불교를 숭상하던 만주족에게 탄압당했던 역사 때문에 반불교 감정이 심하고, 상대적으로 약자인 티베트인에게 화풀이하는 성향이 있다.
티베트인들도 후이족이 배타적이라고 거부감을 느끼는 편으로 티베트인이 봉기하는 경우 한족뿐 아니라 후이족들도 표적이 되는 경우도 있다.
티베트계 무슬림들의 경우 일반 티베트인과 후이족 양쪽에게 모두 배척당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양쪽의 중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칭하이성의 티베트계 무슬림들은 라싸 일대의 까체족과 다르며 칭하이성과 간쑤성 경계 지대의 무슬림 소수민족 살라르족의 영향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한 경우이다.
관광[편집]
최적의 여름 피서 명승지로 꼽히는 성으로, 국가중점 보호 문화재가 11곳이 있다. 유서 깊은 시닝에는 천년 고적지 후타이가 있고, 둥관[东关]에는 이슬람 대사원, 베이산에는 당·송 시대에 건립된 불교와 도교 사찰이 있다. 황중현의 타얼사는 명나라 때 라마교의 거루파를 창시한 쭝카바가 태어난 곳으로, 한짱 예술의 결합체인 진와사를 비롯하여 경당과 부도가 있으며, 내부에는 현종·밀종·천문·의학의 4대 학원이 설치되었다.
시닝 북서쪽의 칭하이호는 국가지정 명승 풍경 지역이다. 또 르웨산 위수에는 티베트왕 손챈감포에게 시집온 당나라 문성공주묘(文成公主庙)가 남아 있다. 그밖의 명승지로는 해마다 6월에 꽃축제가 열리는 러두의 '소고궁(小故宫)' 취셴사와 마둬의 황허강 발원지 탐험명승지가 있으며, 거얼무의 차얼한 함수호도 빼어난 경관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행정구역[편집]
지급시:
- 시닝시(西宁市)
- 하이둥시海东市
자치주:
- 하이시 몽골족 티베트족 자치주(海西蒙古族藏族自治州)
- 하이베이 티베트족 자치주(海北藏族自治州)
- 하이난 티베트족 자치주(海南藏族自治州)
- 황난 티베트족 자치주(黄南藏族自治州)
- 위수 티베트족 자치주(玉树藏族自治州)
- 궈뤄 티베트족 자치주(果洛藏族自治州)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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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