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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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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위치

차오양구(중국어: 朝阳区 cháo yáng qū)는 중국 베이징시 북동쪽에 위치해 있는 이다. [1][2][3][4]

개요[편집]

차오양구의 면적은 470.8㎢이며 인구는 354만5,000명(2013년)이다. 둥청구, 충원구, 펑타이구, 하이뎬구, 창핑구, 순이구, 퉁저우구, 다싱구와 접한다.

베이징의 CBD인 베이징상무중심구(北京商务中心区)가 위치한 구역으로, 이로 인하여 중국 전국 및 베이징에서도 이름나게 부유한 지역이다. 베이징에 존재하는 현대식 빌딩 및 마천루들은 이 차오양구에 상당수가 밀집해 있다.

또한 베이징의 경제중심지인 만큼 기업 연구시설도 가장 많이 포진 해 있으며 차오양구 내에는 하이뎬구와 함께 베이징에서 이름난 대학 밀집지로도 유명하다.

차오양구 북부는 올림픽공원이 거대한 크기로 존재하며, 2008 베이징 올림픽과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베이징 4환 내 경기장은 전부 차오양구에 존재한다.

또한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의 1, 2터미널도 차오양구에 있다. 다만 서우두 국제공항은 말만 차오양구이고 실제로는 순이구에 둘러싸여 있는 월경지이다. 그리고 서우두공항 3터미널은 순이구 소속이다.

한국과 나름 연이 있는 곳인데, 베이징의 코리아타운인 왕징(望京)이 이 차오양구에 위치 해 있다. 옥류관 베이징분점 역시 이 왕징에 있으며 한국인 외에도 조선족이나 북한인도 다수 거주중이다.

차오양구는 중국에 존재하는 여러 대사관들의 소재지이기도 하며, 싼리툰가도(三里屯街道) 북부와 후자러우가도(呼家楼街道), 마이쯔뎬가도(麦子店街道) 북부 인근에 밀집 해 있다. 이 중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관은 마이쯔뎬가도에 있는 둥팡둥루(东方东路)에 소재 해 있다.

차오양구는 전국에서 문화자원이 가장 집중된 구역으로 중앙방송국(CCTV), 로이터통신 등 400개에 달하는 국내외 유명 미디어 기구와 둥방연예(東方演藝)그룹, 중국교향악단 등 80여개 유명 공연단체가 모여 있다. 2014년 이래, CBD—딩푸좡(定福莊)국제미디어산업회랑을 중심으로 전국 최초의 국가 문화산업 혁신 실험구을 구축하여 정책과 서비스 허브를 조성함으로써 노후 건물의 문화 단지로의 전환 및 업그레이드하는 생생한 본보기가 됐다. 차오양구는 또한 국가 공공문화 서비스 체계의 시범구로서 박물관 52개를 갖고 있으며 이는 베이징시의 1/4를 점한다. 24시간 셀프도서관, 디지털문화커뮤니티, 도시서점을 비롯한 일련의 특색 문화 브랜드 또한 형성됐다.[5][6]

자연환경[편집]

베이징 충적평야 중심에 위치하여 전체적으로 평탄한 지형이며 북서부가 높고 남동부가 낮다. 내몽골 고비 사막이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황사의 피해가 심한 편이다. 기후는 추운 스텝 기후(Bsk)에 해당하여 일단 여름에는 엄청 덥고 비가 약간 내리며 겨울에는 춥고 건조하며 바람도 강하다. 냉대기후건조기후 중간에 있다고 봐도 된다.

사막 바로 아래 있어서 극단적으로 건조하며 연교차도 매우 크다. 전 세계를 통틀어 인구 천만에 준하거나 그 이상급의 메갈로폴리스 중 서울과 함께 연교차가 가장 큰 도시이다. 대륙 동안 기후와 사막 기후가 섞인 형태이기 때문인데 5월부터 최고기온 40도를 찍는 경우가 흔하다. 반대로 겨울은 서울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춥다. 여름에도 비가 잘 오지 않을 정도인데다 겨울에는 아예 사막 수준으로 매우 건조해서 실제 최고-최저기온은 서울을 능가할 정도로 연교차가 크지만, 체감 연교차는 서울에 못 미친다. 또한 여름에 열사병 위험이 있으며, 겨울에는 꽤 추운 날씨임에도 대구광역시나 부산광역시에 비견될 정도로 눈이 오지 않는다.

또한 한국, 일본과 다르게 봄철의 극값과 평균 기온 모두 가을철보다 높게 나타나며 상반기(3월 이후)에는 기온 상승 폭이 매우 크고 하반기(8월 이후)에는 하강 폭이 매우 크다.

1981년-2010년 기준 최한월 1월의 평균 기온은 -3.1℃이다. 최난월 7월 평균 기온은 26.7℃이며, 연 평균 기온은 13.2℃로 숫자만으로는 한국의 남부 내륙지역과 비슷하다. 21세기 들어 가장 심한 한파는 2021년 1월 7일의 -19.7℃이고, 그 다음에는 2016년 1월 23일, 영하 17.4℃였으며 최고기온은 -11.0℃에 불과했다.

폭염은 더 심한데 5월부터 폭염 수준 더위가 찾아오기 시작하고 한여름엔 40도 이상 올라가기도 한다. 2017년 7월 14일 아프리카에서 온 관광객이 베이징의 더위에 탈진한 일도 있었는데, 당시 온도계는 무려 42.5도를 나타냈다. 다만 습기가 별로 없다 보니 견딜 만한 편이다. 1951년 이후 기록된 역대 최저기온은 -27.4도 이며 역대 최고기온은 41.9도 이다.물론 이는 베이징 시내 중심부의 기온이며 외곽 지역인 화이러우구 등은 겨울철 영하 30도까지도 떨어지는 등 기온편차가 심하다. 이는 도심 열섬현상이 원인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체감 온도는 비슷하거나 덜하지만 건조기후의 영향으로 단순 최고-최저 기온 수치로는 서울을 능가하는 연교차를 자랑한다.

연간 강우량은 500~560㎜이다. 생장기의 농업용수 수요치는 200~300㎜가 부족하다. 재해성기후로 남부는 가뭄과 황사 등이 많이 발생하는 편이고, 서북쪽 산간지역은 여름에 흙·모래·돌이 섞인 물사태가 쉽게 발생한다. 겨울에 춥지만 워낙 건조하다보니 눈이 아예 안 오며 차량 통행도 많은 데다 베이징 외곽에 잔뜩 자리한 공장들로 인한 대기오염이 심각하다. 황사와 대기오염 때문에 공기가 매우 안 좋다.

2013년 1월에 들어 사상 최악의 스모그가 발생해 베이징을 뒤덮었다. 스모그가 뒤덮었다지만 사진만 보면 안개로 뒤덮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미묘하다. 이 대기오염 등이 문제로 지적되자 2008 베이징 올림픽 때에는 아예 올림픽 기간 동안 베이징 근교 공장 올 스톱이라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정부에서 닫으라고 했다. 덕분에 공장 노동자들은 8월 내내 유급휴가를 받았다. 현재는 정상회담/엑스포 등 국가 중요 행사가 열리면 닫아라 공장을 시전한다. 그리고 이렇게 중국의 국가 주요 행사가 베이징에서 개최되면 이후로 3일에서 1주일간은 서울 공기도 덩달아 깨끗해지는 경향이 있다.

역사[편집]

기원전 1000년 경 춘추전국시대의 나라 중 하나인 연(燕)의 수도인 계(薊)가 오늘날 베이징(北京)이 있는 곳에 건립되었다. 이후 기원전 221년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 한 후 계성은 주(州)가 되었고 삼국 시대에는 공손찬과 원소가 보유하다가 조조의 위나라에게 함락되었다 936년 현재 베이징을 포함한 북부의 넓은 영토를 거란의 요(遼)에게 대부분 정복되었다. 938년에 요는 지금의 베이징을 정복하여 한족들을 유린한 다음 두 번째 수도를 건립했고 그것을 남쪽의 수도라는 뜻인 남경(南京)으로 불렀다. 1125년 여진의 금(金)왕조는 요를 합병하고 1153년 동북의 회령에서 이곳으로 천도하여 중앙수도라는 뜻의 중도(中都)라고 개칭했다.

1215년에 몽골이 1267년에 북쪽에서 상도(上都)를 건설했다. 중국의 전 지역을 정복하기 위한 준비로 원(元)왕조의 시조 쿠빌라이 칸은 베이징보다 북쪽에 칸발리크 (汗八里, Khanbaliq)(위대한 칸의 거주지라는 뜻) 혹은 대도(大都)를 건설하여 수도를 삼았고 이 위치는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 속에 'Cambuluc'로써 잘 나타나 있다.

1368년 원의 멸망 후 도시는 명(明)조에 의해 다시 재건되었고 순천(順天)지사 관저가 도시의 주위 지역에서 설립되었다. 1403년 이 곳이 수도인 난징(南京)보다 북쪽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베이징(北京)으로 개명한 뒤 남경에서 북경으로 천도를 단행하였다. 북경은 또한 경사(京師)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는 단순히 수도라는 뜻이다. 명나라 시기 동안 전통적인 베이징의 구획이 확립되었다. 자금성과 천단 등의 건축물이 1406년에서 1420년대 사이에 건설되었다. (현재의 천안문(중국어 정체자: 天安門)은 1651년에 마지막으로 재건된 것이다.) 1644년, 만주족의 청나라가 베이징을 점령한 뒤 베이징을 유린하였고 베이징은 청의 통치 기간 동안 중국의 수도로 남게 되었다.

1911년, 신해혁명을 일으킨 혁명 정부는 베이징은 만주족의 수도라는 주장으로 난징을 수도로 정하고자 하였다. 의 치열한 대화 끝에 베이징은 난징과 같이 수도로서의 역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1916년 중국은 지방 군벌들의 내전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으며, 각자 베이징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벌였다. 1928년, 국민당 정부는 북부의 군벌을 소탕하고, 난징을 공식적인 중화민국의 수도로 정한 뒤, 베이징을 북부의 평화 또는 북부의 평화를 회복시켰다는 뜻의 베이핑(北平)으로 개칭하여 베이징의 상징적인 의미를 떨어뜨렸다. 이후 일본제국이 베이징을 정복하였다.

제2차 중일전쟁 당시인 1937년 7월 29일, 베이징(베이핑)이 일본 제국에게 정복된 기간 동안 도시는 그 이전의 이름인 베이징으로 개명되었고, 일본 제국에 의해 많은 한족들이 강간되었다. 이 곳에 일본에게 점령된 화북의 일부 한인들이 설립한 괴뢰정부인 중화민국임시정부(中華民國臨時政府)가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미국에 패전하게 되고, 한편으로 소련이 만주 지역을 점령하는 등과 같은 영향에 따라 베이징의 이름은 다시 베이핑으로 바뀌었다.

1949년 1월 31일, 공산당 세력은 베이핑으로 무혈입성 하였고, 같은 해 10월 1일, 베이징에서의 중화인민공화국 설립을 발표하였다.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중국어 정체자: 中國人民政治協商會議)에서 베이핑은 공산 정권의 수도로 확정되었고, 이름도 다시 베이징으로 개명되었다.)

차오양구는 1990년대 초반 베이징 CBD(Central Business Center)라고 부르는 상공업 집중 지구가 지정되어 이를 중심으로 상공업이 급속히 발전하였다. 특히 섬유, 화학, 자동차, 전자, 의학 등이 발달하였다.

산업[편집]

베이징 도시 마스터플랜에서 차오양구는 도심으로서 '국제 일류의 중심 업무지구, 국제 과학기술문화 체육 교류구, 각종 국제화 커뮤니티 플랫폼, 혁신이 선도하는 수도 문화의 창구, 대규모 생태 환경 건설 시범구, 높은 수준의 도시화 종합 개혁 선행구'라는 지위를 확정하였다. 현재 '문화, 국제화, 대규모 녹지'를 주요 발전 방향으로 삼아 경제사회 각 측면의 고품질 발전을 대대적으로 추진하여 베이징시의 선봉대가 되기 위해 노력을 다하고 있다.

차오양구의 주요 지표는 줄곧 베이징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2019년 지역 총생산, 일반 공공예산투입, 투자, 소비는 베이징시에서 각각 21%, 9%, 15%와 24%를 차지했고 외자, 수출입은 베이징시의 30%와 47%를 차지했다. 비즈니스, 금융, 문화, 과학기술을 주도로 하는 산업구조는 지속적으로 최적화되고 있고 서비스업 비중은 93%를 초과했다. 세계 10대 자문회사 중 6개, 100대 브랜드 인적자원 서비스기구 중 40개를 갖고 있고 금융업, 문화산업의 수입은 각각 베이징시의 16%과 20%를 점하며, 유니콘 기업은 베이징시의 1/3, 국가 첨단기술기업은 베이징시의 15%를 차지한다. 산업집중도가 높아 중심상업업무지구(CBD), 중관춘(中關村) 차오양원, 올림픽 3대 기능구역의 재정수입은 전체 구역의 90%에 해당한다. 비즈니스 환경 또한 베이징시에서 선두로서, 가장 먼저 기업을 대상으로 '서비스 패키지' 등 우대 서비스를 실시한 구역이다. 구급(區級) 정무 서비스 '원스톱 처리·접수 및 정무처리'를 실현하였고 신규 기업, 부동산 등록에서 '급속' 모델을 창출하였다.

'중국 대외교류의 선두'로 잘 알려진 차오양구에는 99%에 달하는 주중 외국 대사관, 베이징시에서 80%에 이르는 국제기구와 국제상회, 70%에 달하는 다국적기업의 중화권 본부, 65%에 이르는 외자금융기구 및 50% 이상에 달하는 국제회의가 운집되어 있다. 인타이(銀泰)센터, 국제무역센터 3기, 중국쭌(尊) 등 각 시기별 랜드마크 건물 및 치오푸팡차오디(僑福芳草地), 산리툰타이구리(三裏屯太古裏), 스마오톈제(世貿天階) 등 현대감이 풍부한 거리가 모여 있어 국제화 대도시의 수도 건설 성과를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베이징시 시범구로서 연속 3년 서비스업 확대 개방 업무에 주력함으로써 좋은 외상 투자환경을 조성했다. 특히 CBD는 베이징시 6대 첨단 산업 기능구 중 하나로 산업 업그레이드, 문화교류, 개방혁신에서 중요한 역할을 발휘하고 있다. 국제의료기구 8개를 보유하고 있고, 베이징시 19개 외국인 자녀 학교(국제학교) 중 16개가 차오양구에 있는 등 완비한 국제 서비스 기능을 갖고 있다. 왕징(望京)국제인재 커뮤니티의 건설이 가속되면서 국제 일류 개방 환경이 형성되고 있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차오양구 (베이징시)〉, 《위키백과》
  2. 차오양구(베이징시)〉, 《나무위키》
  3. 베이징시〉, 《위키백과》
  4. 베이징시〉, 《나무위키》
  5. 차오양구 소개〉, 《베이징시 인민정부》
  6. 두산백과: 차오양〉,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국가
동아시아 도시
동아시아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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