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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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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위치
마카오 위치

대당구(중국어: 大堂区 dà táng qū)는 중국 마카오마카오반도 동남부에 위치해 있는 당구이다. [1][2][3]

개요[편집]

대당구의 면적은 3.4km²이며 인구는 4.6만 명(2011)이다. 마카오에서 2번째로 넓은 지역이다. 구 이름은 이 지역에 위치한 가톨릭 주교좌성당(대당, 大堂)에서 유래되었다.

서부에는 마카오의 오래된 금융 중심인 남만중심상업지구(南灣中心商業區)가 있다. 마카오 내 20여개의 은행이 이 지역에 모여 있으며, 리스보아 호텔, 샌즈마카오 등 고급 식당 및 카지노가 있는 호텔이 있다. 고층 빌딩이 간척지인 당구 동부에 집중되어 있으며, 동단에는 홍콩-마카오 페리 터미널이 있다. 관광 명소로는 마카오 타워, 세나두 광장, 신마로 등이 있다.

고급 음식점과 4, 5성급 호텔이 많이 들어서 있으며 바다와 인접한 대당구 동부 지역에는 고층 빌딩과 마카오 외항 페리 터미널이 들어서 있다.[4] [5][6]

자연환경[편집]

대당구는 대부분 매립된 토지 위에 형성되어 있으며, 동쪽으로는 마카오 역사적인 상업 중심지와 이어지고, 서쪽으로는 신마로와 초퇴가를 따라 반도 서해안까지 이어지는 좁고 긴 지형을 가진다.

마카오는 덥고 습한 아열대 기후로 평균 습도는 75% ~ 90% 정도이다. 계절별 날씨는 몬순에 크게 좌우되며, 겨울과 여름의 기온차가 급격하다. 연간 평균 기온은 22.3 °C로, 7월은 가장 더운 달이고, 평균 28.6 °C를 기록한다. 가장 추운 달은 1월이며, 평균 14.5 °C이다. 중국 남부의 해안부에 위치하여, 연간 2,030mm의 많은 강수량을 가진다. 그러나 1월에서 3월까지의 겨울은 대부분 대륙성 몬순의 영향으로 건조하며, 10월에서 12월까지의 가을은 화창하며 따뜻하고 습도가 낮다. 겨울은 비교적 춥지만 화창하고, 4월에서 6월까지 봄에는 무덥고 습한 기운이 여름까지 이어진다. 여름은 가장 덥고 습하며, 때로는 비와 태풍을 동반한다.

역사[편집]

포르투갈 상인이 마카오를 발견하기 전에는 푸젠성의 어민과 광둥성의 농민이 이곳에 첫 번째로 정착한 사람들이었다. 포르투갈인인 조르쥬 알바레스(Jorge Alvares)가 1513년 마카오에 와서 무역을 시작한 최초의 유럽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포르투갈 상인이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마카오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접목된 지역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포르투갈인들이 마카오에 본격적으로 정착하기 시작한 시기는 1557년이다. 당시 중국의 명나라는 세수를 확보할 수 있는 무역 활성화와 해적이나 지역 적대세력으로부터의 해안방어를 위해서 포르투갈인의 정착을 허용했다. 명나라는 포르투갈로부터 일정 금액의 임대료를 받고 마카오를 임대의 형태로 내어주게 된다.

1557년부터 1640년 사이에는 마카오가 아시아 해상무역의 주요 상업적 연결망이 되면서 포르투갈인, 일본인, 인도인, 유라시아인 등 다양한 집단이 유입되었다.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유럽식 건축물과 문화의 특징이 이 시기부터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중국으로 향하는 관문으로서 중요한 위상을 확보하였다. 1640년부터 1750년까지는 네덜란드의 믈라카 점령, 청나라로의 세대교체, 포르투갈의 스페인에 대한 봉기 등으로 인해 마카오의 경기가 침체되었고 인구가 감소했다. 이후 아편전쟁을 거치면서 영국인, 네덜란드인, 미국인 등 광동지역을 통해 유럽과의 무역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항구도시로서 마카오의 중요성은 홍콩에 비해서 줄어들었다.

따라서, 1887년 중국-포르투갈 우호통상조약에 따라 청나라로부터 마카오의 통치권을 확보한 포르투갈이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역이 아닌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주변 국가에서 금지되었던 도박을 마카오에서 합법화하여 경제부흥을 위한 새로운 전략으로 활용하였다. 도박을 합법화하자 외국의 관련 자본이 마카오의 도박산업에 집중되면서 경제가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도박은 마카오 경제의 중요한 축으로 작동하고 있다.

1951년 포르투갈은 헌법을 개정하면서 마카오를 본국에 편입하여 해외 주라는 위상을 부여하고 포르투갈 정부가 임명하는 총독이 마카오를 통치하도록 했다. 이 시기에는 도박뿐만 아니라 관광을 진흥하였으며, 난민의 유입에 따른 저렴한 노동력으로 인해 제조업도 조금씩 성장하였다. 현대적인 아파트, 사무공간, 호텔, 카지노 등 새로운 건물이 건립되면서 오래된 식민지의 경관을 조금씩 변화시킨 시기이기도 하다. 농업토지가 점점 줄어들었고, 홍콩의 경제성장에 보다 의존하게 되는 시기를 맞이하기도 하였다.

1974년 포르투갈에서 독재정권에 저항한 카네이션 혁명이 발생한 이후 1975년 포르투갈은 해외 식민지에 대한 권리를 모두 포기하였다. 1985년 포르투갈과 중국이 마카오의 주권을 둘러싼 논의를 시작하였고, 1987년 3월 마카오를 1999년 12월 중국으로 반환하기로 합의하였다. 이후 급격하게 발전하는 중국 남부의 해안지역에서 홍콩 옆에 위치한 관문으로서 경제적, 사회적, 건축적, 지리적, 문화적, 정치적 발전이 이루어졌다.[7]

산업[편집]

대당구는 마카오의 금융 및 상업 중심지로, 많은 기업과 기관이 이곳에 본사를 두고 있다. 동부 매립지에 위치한 남만 중심 상업 지구는 지난 20년간 빠르게 성장하여 현대적인 상업 및 금융 허브로 발전하였다.

대당구는 마카오 지역의 경제 중심지이며, 중화인민공화국 마카오 특별행정구 정부 본부가 위치한 지역이다. 동부는 마카오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번화한 상업 지구로, 신마로(新马路), 잉디다제(营地大街), 차오두이제(草堆街), 시월초오제(十月初五街) 등이 포함된다.

중남부는 지난 10여 년에서 20년 사이에 빠르게 성장한 남만(南湾) 중심 상업 지구로, 과거 마카오는 작은 도시로 상업 지구가 크지 않고 분산되어 있었으며, 금융업 또한 발달하지 않아 중심 상업 지구가 형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간 마카오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면서 신마로 동단, 인황즈다마로(殷皇子大马路) 및 이와 교차하는 남만제(南湾街) 일대에 10여 개의 고층 상업 빌딩이 세워졌다. 마카오 전역에 있는 20여 개 은행 중 대부분의 본점이나 주요 사무소가 이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상업 빌딩들에는 다양한 상업 기관, 무역 회사, 보험 회사, 건축 회사, 로펌, 회계 법인 등이 입주해 있다. 이 지역은 마카오의 금융 및 상업의 심장부로 자리 잡았으며, 현대적인 도시의 중심 상업 지구가 이곳에서 형성되었다.

이 구역의 동부는 광대한 매립지로 조성된 지역으로, 신흥 고급 상업 및 주거 지역으로 발전 중이며 잠재력이 매우 크다. 동쪽 끝에는 홍콩-마카오 페리 터미널이 위치하고 있으며, 고급 호텔 또한 이 구역에 집중되어 있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세 당구〉, 《위키백과》
  2. 마카오〉, 《위키백과》
  3. 마카오〉, 《나무위키》
  4. 두산백과: 대당구〉, 《네이버 지식백과》
  5. 중국행정구획총람: 다당구〉, 《네이버 지식백과》
  6. 大堂区〉, 《百度百科》
  7. 두산백과: 마카오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국가
동아시아 도시
동아시아 지리
동아시아 바다
동아시아 섬
동아시아 강
동아시아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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