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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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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남

영호남(嶺湖南)이란 대한민국 영남호남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1]

개요

영남 지방은 지형적으로는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에 둘러싸인 내륙 지방과 해안의 영향을 받는 동해안 지역, 낙동강에 가까운 중앙 저지대 지역으로 크게 구분된다. 영남 내륙 지방은 위도에 비해 한서의 차가 심하고 강수량이 적은 특징을 지닌다. 동해안 지역은 동한 난류의 영향으로 대체로 온화하고 한서의 차이가 적으며 지형성 강우가 빈번히 나타난다. 저지대 지역은 낙동강 중상류를 중심으로 이어진 소규모의 평야와 안개가 유명하며, 낙동강 하류에 위치한 특유의 범람원과 김해평야는 국제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동해안은 해안선이 단조로운 편이고, 남해안은 침강성 리아스식 해안으로 다도해를 이루어 작고 큰 만과 섬들이 발달해 있다. 호서 지방, 호남 지방과 함께 한국 남부를 이루고 있다. 호남 지방은 김제 벽골제와 금강 하류의 남쪽에 위치한 지방이다. 동쪽으로 소백산맥이라는 자연적 장애물로 영남 지방과는 지리적으로 단절되어 있다. 소백산맥이 끝나는 지리산의 남동부에는 섬진강이 흐르며, 영남 지방과 경계를 이룬다. 서북쪽으로는 호서 지방과의 경계를 따라 금강이 흐르고, 동북쪽으로는 대둔산(878m)과 민주지산(1242m)의 산맥을 기준으로 호서 지방과 자연적 경계를 이룬다. 지질학적으로는 옥천 지향 사대(沃川地向斜帶)에 속한다. 호남 지방을 흐르는 대표적인 강으로는 영산강과 섬진강, 만경강, 동진강, 탐진강, 금강이 있다. 금강은 전라북도 장수군에서 발원하여 진안군을 거쳐 북쪽으로 흘러 충청도로 들어가고, 하류는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가 된다. 나머지 네 강은 호남 지방 안에서 흐르는데, 만경강은 완주군에서 발원하여 전주시, 익산시를 거쳐 김제시에서 황해로 흘러들고, 동진강은 정읍시에서 발원하여 김제시를 거쳐 부안군에서 황해로 흘러든다. 섬진강은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에서 발원하여 임실군을 지나 전라남도 곡성군과 광양시로 흐르며, 전라남도 남부를 흐르는 큰 지류 보성강이 있다. 영산강은 전라남도 담양군에서 발원하여 광주광역시, 나주시를 거쳐 영암군에서 황해로 흘러든다.[2] [3]

역사

영남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되었고, 2004년 경부고속철도가 개통되었다. 경부 축을 따라 구미, 대구, 포항, 울산, 부산, 창원에 공업이 발달하여 수도권에 이은 한국 제2의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 부산항은 세계 3위권의 컨테이너 항이 되었다. 2002년에는 부산광역시에서 아시아 경기대회가 개최되었고 2011년에는 대구광역시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개최되었다. 1996년부터 부산광역시에서 부산국제영화제가 매년 열린다.

  • 1914년 : 대구부를 대구부와 달성군으로, 부산부를 부산부와 동래군으로, 마산부를 마산부와 창원군으로 분리하였다. 경상남도 울도군을 경상북도로 이관하였다.
  • 1915년 : 울도군을 울릉도로 개칭하였다.
  • 1925년 : 경상남도청을 진주군에서 부산부로 이전하였다.
  • 1939년 : 진주군 진주읍을 진주부로 승격하고, 진주군을 진양군으로 개칭하였다.
  • 1949년 : 김천군 김천읍을 김천부로 승격하고, 김천군을 금릉군으로 개칭하였다. 영일군 포항읍을 포항부로 승격하였다. 대구부, 부산부, 마산부, 진주부, 김천부, 포항부, 울릉도를 대구시, 부산시, 마산시, 진주시, 김천시, 포항시, 울릉군으로 개칭하였다.
  • 1953년 : 통영군 거제도 일원을 거제군으로 분리하였다.
  • 1955년 : 경주군 경주읍을 경주시로 승격하고, 경주군을 월성군으로 개칭하였다. 창원군 진해읍을 진해시로, 통영군 통영읍을 충무시로 승격하였다.
  • 1956년 : 사천군 삼천포읍을 삼천포시로 승격하였다.
  • 1962년 : 울산군 울산읍, 방어진읍을 울산시로 승격하고, 울산군을 울주군으로 개칭하였다.
  • 1963년 : 부산시를 부산직할시로 승격하고, 동래군 구포읍, 사상면, 북면, 기장면 일부를 편입하였다. 안동군 안동읍을 안동시로 승격하였다.
  • 1973년 : 동래군을 폐지하고 양산군에 편입하였다. 창원군 창원면, 상남면, 웅남면을 마산시에 편입하고 창원출장소를 설치하였다.
  • 1978년 : 선산군 구미읍, 칠곡군 인동면을 구미시로 승격하였다. 김해군 대저읍, 명지면을 부산직할시에 편입하였다.
  • 1980년 : 영주군 영주읍을 영주시로 승격하고, 영주군을 영풍군으로 개칭하였다. 마산시 창원출장소를 창원시로 승격하고, 창원군을 의창군으로 개칭하였다.
  • 1981년 : 대구시를 대구직할시로 승격하고, 달성군 성서읍, 월배읍, 고산면, 칠곡군 칠곡읍, 경산군 안심읍, 고산면을 편입하였다. 영천군 영천읍을 영천시로, 김해군 김해읍을 김해시로 승격하였다.
  • 1983년 : 경상남도청을 부산직할시에서 창원시로 이전하였다.
  • 1986년 : 상주군 상주읍을 상주시로, 문경군 점촌읍을 점촌시로 승격하였다.
  • 1989년 : 김해군 가락면, 녹산면, 의창군 천가면을 부산직할시에 편입하였다. 경산군 경산읍을 경산시로, 밀양군 밀양읍을 밀양시로, 거제군 장승포읍을 장승포시로 승격하였다.
  • 1990년 : 월성군을 경주군으로, 의창군을 창원군으로, 울주군을 울산군으로 개칭하였다.
  • 1995년 : 부산 직할시를 양산군에서 분리한 기장군과 통합하여 부산광역시로, 대구 직할시를 달성군과 통합하여 대구광역시로 개칭하였다. 김천시와 금릉군을 김천시로, 포항시와 영일군을 포항시로, 경주시와 경주군을 경주시로, 안동시와 안동군을 안동시로, 구미시와 선산군을 구미시로, 영주시와 영풍군을 영주시로, 영천시와 영천군을 영천시로, 상주시와 상주군을 상주시로, 문경군과 점촌시를 문경시로, 경산시와 경산군을 경산시로, 진주시와 진양군을 진주시로, 충무시와 통영군을 통영시로, 삼천포시와 사천군을 사천시로, 울산시와 울산군을 울산시로, 밀양시와 밀양군을 밀양시로, 김해시와 김해군을 김해시로, 장승포시와 거제군을 거제시로 통합하였다. 창원군을 폐지하고 마산시, 창원시에 분할 편입하였다.
  • 1996년 : 양산군을 양산시로 승격하였다.
  • 1997년 : 울산시를 울산광역시로 승격하고, 울주군을 설치하였다.
  • 2010년 : 마산시, 창원시, 진해시를 창원시로 통합하였다.
  • 2016년 : 경상북도청을 대구광역시에서 안동시로 이전하였다.

호남

  • 1914년 : 군산부를 군산부와 옥구군으로, 목포 부를 목포부와 무안군으로 분리하였다. 전라북도 구례군을 전라남도로, 충청남도 개야도, 어청도 등을 전라북도로 이관하였다.
  • 1915년 : 제주군을 제주도로 개칭하였다.
  • 1935년 : 전주군 전주읍을 전주부로 승격하고, 전주군을 완주군으로 개칭하였다. 광주군 광주읍을 광주부로 승격하고, 광주군을 광산군으로 개칭하였다.
  • 1946년 : 제주도를 전라남도에서 분리하였다.
  • 1947년 : 익산군 이리읍을 이리부로 승격하였다.
  • 1949년 : 순천군 순천읍을 순천부로 승격하고, 순천군을 승주군으로 개칭하였다. 여수군 여수읍을 여수부로 승격하고, 여수군을 여천군으로 개칭하였다. 군산부, 목포부, 전주부, 광주부, 이리부, 순천부, 여수부를 군산시, 목포시, 전주시, 광주시, 이리시, 순천시, 여수시로 개칭하였다.
  • 1963년 : 전라북도 금산군을 충청남도로, 전라남도 영광군 위도면을 전라북도 부안군으로 이관하였다.
  • 1969년 : 무안군 도서 지역을 신안군으로 분리하였다.
  • 1981년 : 정읍군 정주읍을 정주시로, 남원군 남원읍을 남원시로, 나주군 나주읍, 영산포읍을 금성시로 승격하였다.
  • 1986년 : 광주시를 광주직할시로, 광산군 송정읍을 송정시로, 여천군 삼일읍을 여천시로 승격하였다. 금성시를 나주시로 개칭하였다.
  • 1988년 : 송정시와 광산군을 광주직할시에 편입하였다.
  • 1989년 : 김제군 김제읍을 김제시로, 광양군 골약면, 태금면을 동광양시로 승격하였다.
  • 1995년 : 광주직할시를 광주광역시로 개칭하였다. 군산시와 옥구군을 군산시로, 이리시와 익산군을 익산시로, 정주시와 정읍군을 정읍시로, 남원시와 남원군을 남원시로, 김제시와 김제군을 김제시로, 순천시와 승주군을 순천시로, 나주시와 나주군을 나주시로, 동광양시와 광양군을 광양시로 통합하였다.
  • 1998년 : 여수시, 여천시, 여천군을 여수시로 통합하였다.[2][3]

경제

  • 영남 : 대한민국에서 수도권 다음으로 경제가 가장 발달한 지역이다. 1공업이 번성한 지역으로 중공업(조선, 자동차, 기계, 철강, 화학), 경공업(의류, 식품)이 고루 발전한 지역이다. 부산과 창원, 울산, 포항을 중심으로 하는 남동임해공업지역(南東臨海工業地域) 대구와 구미를 중심으로 하는 영남내륙공업지역(嶺南內陸工業地域)이 경상도 일대에 펼쳐져 있다. 거제는 조선업, 진주, 경주지역 일대에는 관광산업이 발달하였으며, 김해, 의령등은 농업이 발달하였다. 사천시는 항공산업이 발달하였다.
  • 호남 : 호남 지방은 평야지대에 위치한 김제, 익산, 나주 등을 중심으로 한국에서 쌀 생산량이 가장 많은 지역이였다. 최근에는 여수, 광양을 중심으로 호남의 중화학공업이 발달하였으며, 목포와 영암을 중심으로 산업단지가 형성되고 있다. 서해안에는 군산항, 법성항, 목포항 등이 있으며 남해안에는 완도항, 노력항, 녹동항, 여수항, 광양항 등이 있다. 주요 산업으로는 식품, 석유, 섬유 산업 등이 있으며, 주요 특산물로는 호남평야에서 재배되는 쌀이 있다.[2][3]

영호남 지역갈등

영남과 호남, 아울러 영호남 또는 양남(兩南)은 서로 1970년대부터 2020년대 들어서까지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이를 영호남 지역갈등이라 하는데 지역갈등이 대개 문화, 민족, 종교 따위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것과 달리 양남의 갈등은 정치인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만들었다. 다만 '영호남의 갈등'이라는 표현을 표면적으로만 이해하면 수십년 간 자행된 일방적인 호남 소외 및 차별을 무시할 수 있으므로, 영호남 지역갈등 내에 반호남 지역주의나 호남 지역차별적인 특성이 있음을 이해해 두어야 한다. 현재에도 여전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장 규모가 큰 지역감정이며 이로 인해 인터넷상에서는 갖가지 병림픽의 향연이 난무한다. 세계적으로 보면 영호남 정도는 그냥 친구수준이다. 물론 그 경우들이야 대개는 수천 년을 따로 살다가 정치적 이유로 한 나라로 묶이면서 생긴 사단이지만 이 경우는 적어도 천년 이상을 한 나라, 한 민족으로 살아온 사람들 간의 문제라는 점에서 애초에 다른 케이스다.

영호남 지역감정이 1970년대 이전에도 있었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데 주로 1950년대에도 호남에 대한 지역감정이 있었다는 증거로, 1959년 잡지 월간'야화'(夜話) 6월호에 조영암(趙靈巖)이라는 작가가 전라도 주민들을 가리켜 개땅쇠, 하와이, 인류가 아니다 라는 식으로 사적인 감정을 담은 글을 실은 사례를 든다. 이 하와이란 명칭에 대한 썰은 민들레씨처럼 떠돌지만 미군정이 우리나라에 가설한 직통전화의 지역별 호출 암호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크다.[3] 부산 미 제98군정 그룹을 플로리다, 광주 미 제101군정 그룹을 하와이로 한 데서 나왔다는 것인데,유독 하와이만 기승을 떨쳤던 건 1. 조정래 작가의 소설 <한강>에서도 묘사된 이승만의 ‘하와이’ 야유와 2. 조영암의 필화가 한몫했을 수도 있다. 즉 이승만이 공석에서 최초 언급하고, 이후 작가 조영암이 잡지에 실어 해당 단어를 알린 덕분에 유독 하와이란 미군정 지역 호출명이 유명해졌다는 것이다.

하와이란 명칭이 호남지역을 나타내는 말로 "공식석상에서 최초로 등장"한 건, 이승만이 백범을 열렬히 환영하며 강연을 요청하는 호남인들에 관한 소식을 들은 후, 젊은시절 외교독립노선을(이승만과 정한경이 미국의 윌슨 대통령에게 ‘조선 위임통치 청원서’를 보냄) 지지하지 않았던 하와이 교포들에 빗대며 화를 낸 사건에서 비롯되었다고 조정래는 소설 <한강>에서 주장한다. 8·15 해방 후 통일지향의 김구와 분단지향의 이승만은 대립했는데, 백범이 전국 순회강연에 나섰다. 큰 도시에서만 강연을 하곤 지나치려는데, 유난히 열렬한 호남에서는 “작은 군에서 사람들이 몰려나와 겹겹이 기찻길을 가로막는 바람에 김구는 예정에 없던 강연을 하고서야 기차가 움직일 지경”이었다. 이 보고를 다 받은 이승만이 기분이 나빠져 한 마디 내뱉은 것이 "하와이놈들 같으니라고!"었다는 것이다. 하와이에서 독립투사 박용만에게 미국의 위임통치를 중심내용으로 하는 외교노선을 주장하다 쓴맛을 본 이승만의 트라우마였으며, 경무대에서 궁중용어를 쓰던 시절이었던 만큼, 그 궁중용어의 대상(이승만)이 쓰는 표현 역시 그 주변 지도층 인사들에게 파장이 있었던 것이다.

호남과 영남간의 지역감정은 사실 실질적으로 그 지역 주민들의 살림살이와는 거의 관계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껏해야 정치 엘리트와 지역 토호 몇몇의 이해관계와만 결부되었을 뿐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사람들의 실질적인 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가장 큰 지역감정은 수도권 vs 지방이다. 하지만 무려 35년 이상 대통령 등 국가권력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영남의 케이스처럼 정치권력이 국가의 집권 세력의 다수로 장기간 국가 주도 개발을 해오면서 인구와 예산, 산업 등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지역 주민들에게도 상당히 미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한 엄청난 경제적 대격변이 일어나기 전만 해도 국가주도 개발시기에 영남 쪽을 기반으로 성장하여 경제권력을 쥐게 된 재벌들이 수두룩했고, 지금도 그 영향력이 상당부분 남아 있다. 사실 이처럼 과거부터 관가와 민가에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곳들의 인사권과 예산권을 장악하는 것으로 지역에 따라 주민들조차 유불리를 겪을 수 있었고, 과거 사례라 통신과 촬영, 녹음기술 등이 발달한 현재와 달리 증거를 묻어버리기도 쉬웠는데 특히나 이승만, 박정희를 겪었던 한국에서는 정치권력이라는 건 거의 모든 분야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전리품이었다.

호남에 대한 경제적 소외와, 호남 소외의 원인을 여러가지 이유로 영남 집중에서 찾았던 것. 양 지역 주민들의 발전 욕구가 정치적인 요구로 분출되었던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이 7대 대선에 폭발해서 지금까지 내려왔다는 분석이 다수설이며, 호남 소외에 대해선 세월이 흐르며 지역감정을 대놓고 조장하는 것을 자제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왔고, 21세기 들어서는 워낙 수도권 집중이 심해 영호남을 막론하고 지방 전반적인 경제가 침체, 하향평준화되고 있어서 대결구도도 다소 완화되어왔지만, 여전히 수출경제로 인한 입지적 조건과 압도적 인구수의 차이로 인해 영남과의 차이를 좁히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심지어 그 격차가 줄어든 편인 21세기에도 정권에 대한 불만이 지역감정으로 변질되어 더더욱 극복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대해선 여론을 주도하는 특정 세력이 있다는 점 등도 원인일 수 있다. 그래서 양 지방간에 혐오와 이에 대해 반작용이 나오면서 민생과는 관계없는 갈등구도가 생긴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4]

동영상

각주

  1. 영호남〉, 《네이버 국어사전》
  2. 2.0 2.1 2.2 영남지방〉, 《네이버 국어사전》
  3. 3.0 3.1 3.2 호남지방〉, 《네이버 국어사전》
  4. 영호남 지역갈등〉, 《나무위키》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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