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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스코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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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위치
북서연방관구 위치
프스코프주 위치

프스코프주(러시아어: Пско́вская о́бласть)는 러시아 북서연방관구에 속해있는 주이다.[1][2]

개요

프스코프주의 면적은 55,399㎢이며 인구는 620,249명(2021)이다. 모스크바(Москва, Moscow)에서 북서쪽으로 6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러시아북서연방관구(Северо-западный федеральный округ)의 북서경제지구(Северо-западный экономический район)에 속하는 지역이다. 주도(州都)는 프스코프(Псков, Pskov)이다. 동쪽으로는 노브고로드주(Новгородская область)와 트베리주(Тверская область), 남동쪽으로는 스몰렌스크주(Смоленская область), 북쪽으로는 레닌그라드주(Ленинградская область)와 경계를 접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벨라루스(Belarus), 라트비아(Latvia), 에스토니아(Estonia)와 국경을 접한다. 러시아 주 중에서는 가장 많은 나라와 국경을 맞댄 지역이다. 주민의 대부분은 러시아인이며 일부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도 있지만, 페초리지역에는 에스토니아인들이 일부 거주하고 있다. 모스크바 시간대 (MSK/MSD)에 놓여 있다. UTC와의 시차는 +0300 (MSK)/+0400 (MSD)이다.

주민의 95%가 러시아인, 2%가 우크라이나인, 나머지는 에스토니아인이다.

프스코프주는 무소륵스키가 태어난 곳이다.[3]

자연환경

대륙성 기후와 해양성 기후가 병존한다. 따라서 백야현상이 관측되는 여름철은 습하고 서늘하며, 겨울철은 러시아 연방 내에서 비교적 온화한 편에 속한다. 연평균 기온은 4.3℃이며, 겨울철인 1월의 평균기온은 -8℃, 여름철인 7월의 평균기온은 18℃를 기록한다. 연평균 강수량은 600mm 내외이며, 남동풍이 주로 분다.

영토 대부분이 평지이며, 북서부에 프스코프-추드 호수(Псковско-Чудское озеро, Lake Peipus)를 끼고 에스토니아와 국경을 접한다. 프스코프-추드 호수 인근에는 저지대 습지와 범람원이 발달하여 있다. 영토의 31%는 삼림이 차지하며, 식생은 침엽수림이 우세한 혼합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수종은 소나무, 가문비 나무, 자작나무, 아스펜, 오리 나무, 참나무 등이고, 곰, 늑대, 여우, 밍크, 담비, 엘크사슴 등이 서식한다. 토양은 포드졸(podzol)이 분포하며, 이탄, 점토, 석회암 등이 매장되어 있다.

역사

현재의 프스코프주에 해당하는 지역은 고대부터 인류의 정착과 거주가 이루어진 러시아의 초기 정착지들 중 하나이다. 10세기 경부터 키이우 루시(Киевская Русь)에 복속되었으며, 12세기부터 노브고로드공국의 영향 하에 놓였다. 이후 1348년 민회(民會)인 베체(вече, veche)를 갖춘 민주적이고 독립적인 행정체제인 프스코프공화국(Псковская вечевая республика)이 성립되면서, 무역 및 수공업의 거점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1510년 모스크바 대공국에 편입되면서 모스크바 대공국의 서부 전초기지로서 역할하게 된다. 러시아 제국의 예카테리나 2세(Екатерина Ⅱ, 1729~1796) 재위 시기인 1772년 프스코프현(Псковская губерния)이 신설되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독일군에 의해 점령되어 지역이 완파되고, 다량의 문화재와 유적이 소실 및 약탈되었다. 1927년 레닌그라드주(Ленинградская область)에 편입되었다가, 1944년 8월 레닌그라드주에서 분리되면서 현재의 프스코프주가 형성되었다.

일부 지역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의 영토였다가 소련 시절에 러시아 쪽으로 편입되면서 에스토니아라트비아와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었다. 재독립 이후 러시아에 속한 이반고로드, 페초리는 에스토니아에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고, 피탈로보라는 지역은 라트비아에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었다. 2007년 러시아-라트비아 국경조약 승인트로 피탈로보 영유권 분쟁은 끝났으나, 이반고로드 등은 2014년 러시아-에스토니아 국경조약이 맺어지고도 양국 의회의 비준을 받지 못하여 현재진행형이다.

산업

주요 산업제조업, 농업, 임업, 목공, 운송, 식품가공, 기계, 건설업 등이다. 농업으로 호밀, 밀, 귀리, 감자, 아마를 주로 재배하고 있으며, 목초지에서는 축산업이 활발하여 각종 유제품을 생산한다. 모글리노(Моглино, Moglino) 경제 특구를 지정하여 운영하고 있다.

교통

M9, M20 연방고속도로를 통하여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벨라루스까지 이동이 가능하며, 철도 시설이 발달하였다. 발트해 수로가 무르만스크 및 칼리닌그라드의 항구까지 연결된다. 수도 프스코프시(市)에 프스코프 국제공항(Международный аэропорт Псков имени княгини Ольги)이 위치한다.

관광

연방 박물관을 비롯하여 다수의 주립 박물관들이 운영된다. 러시아 고대와 중세 유적지들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12세기에 건축된 크렘린과 이바노프 수도원(Ивановский монастырь), 미로지스키 수도원(Мирожский монастырь) 등이 대표적인 지역 명소이다.

프스코프

프스코프는 러시아 서북부 프스코프주의 주도이다. 벨리카야강이 지류인 프스코바강을 받아들이는 곳의 유역에 자리잡았다. 에스토니아 국경까지의 거리가 20km 정도밖에 안 되는 국경도시다. 프스코프는 역사가 깊은 도시이다. 한때 프스코프공화국의 수도였으며, 한자동맹의 교역소가 있었다. 16세기 이래 모스크바 대공국과 그 뒤를 이은 러시아제국의 지배를 받아 왔다. 프스코프는 중요한 철도 분기점이다. 군용으로도 이용되던 프스코프공항이 있다. 프스코프는 수많은 전쟁에 시달리면서도 역사적 건물들을 꽤 많이 간직해왔다. 가장 주목할 만한 건축물은 17세기에 지어진 삼위일체 대성당이다.

프스코프는 14세기에 이르러 사실상의 독립된 공화국의 수도로 기능하였다. 프스코프의 가장 강력한 힘은 마을을 한자동맹으로 끌어들인 상인들이었다. 프스코프의 독립은 1348년 노브고로드에 의해 정식으로 인정되었다. 몇 년 후 베체(민회)는 프스코프 헌장이라는 법전을 공포하였다. 이 헌장은 1497년에 간행된 전 러시아 법전의 주요 원천 중 하나가 되었다. 프스코프공화국은 러시아로서는 유럽으로 나가는 다리였고, 유럽으로서는 러시아의 서쪽 전초기지였다. 한자동맹은 16세기 전반에 교역소를 프스코프에 두고 있었다. 프스코프에서의 교역은 튜턴기사단의 지파인 리보니아기사단,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스웨덴과의 전쟁들로 인해 지장을 받기는 하였으나 17세기까지 유지되었다.

프스코프는 전략적 중요성으로 인해 역사적으로 수많은 포위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프스코프 성채는 15세기에만 26번의 포위공격을 견디어냈다. 다섯 겹의 돌벽으로 둘러싸인 이 성채는 사실상 난공불락이었다. 프스코프에서 성화제작학교가 번성하였고, 이곳의 석공들은 러시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았다. 러시아 건축의 독특한 여러 특징이 프스코프에서 처음 도입되었다. 프스코프공화국은 1510년 모스크대공국에 함락되었다. 이반 4세의 명령으로 프스코프의 귀족들이 1570년 모스크바로 추방당한 사건이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오페라 ‘프스코프의 소녀’(1872)의 주제가 되었다.

모스크바 대공국 제2의 도시로서 프스코프는 여전히 외세의 침입이 끊이지 않았다. 가장 유명한 것은 프스코프가 리보니아 전쟁(1581~82)의 마지막 단계에서 폴란드군 5만여 명의 장기 포위공격을 방어한 것이다. 스테판 바토리 폴란드 왕은 프스코프를 31번이나 덮쳤다. 프스코프는 당시 주로 민간인들이 방어하고 있었다. 프스코프인들은 성벽 하나가 부서졌는데도 굴하지 않고 성벽을 보수한 뒤, 적군의 공격을 물리치는 데 성공하였다.

표트르 1세가 스웨덴과의 북방전쟁(1700∼21)을 승리로 이끌고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를 정복함에 따라 프스코프는 안보에 필수적인 국경 요새와 러시아 내부로 들어가는 관문으로서의 전통적인 역할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 결과 프스코프는 1777년 이후 별도로 분리된 행정구역의 중심지로는 남았지만, 도시의 중요도와 활력은 급격히 떨어졌다. 제1차 세계대전 때 프스코프는 많은 후방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가 1917년 3월 퇴위를 선언하는 성명서에 서명한 곳이 바로 프스코프역 근처에 정차한 황제 전용 열차칸이었다. 프스코프시는 1997년 이 역사적 사건의 8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비를 세웠고, 2003년에는 니콜라이 2세 사망 85주년을 기념하는 성당을 프스코프역 광장에 건립하였다.

1918년 체결된 러시아독일의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이후 독일제국이 이 지역을 침공하였다. 1919년 5~8월에 프스코프는 에스토니아군에 점령되었다. 소련 정부 치하에서 프스코프는 많은 부분이 재건되었고 중세 시대의 여러 건물, 특히 성당들은 새로 지을 공간을 마련하기 위하여 철거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프스코프의 성채는 나치 독일군의 현대식 대포의 포격에 파괴되었다. 도시는 1941년 7월~1944년 7월까지 3년여의 독일 점령 기간에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전쟁 중 수많은 주민이 사망하였다.

프스코프는 습한 대륙성 기후를 띠지만, 발트해와 핀란드만에서 비교적 가까워 해양의 영향도 받는다. 대개 연간 5개월 지속되는 겨울이 길기는 하나 러시아 기준으로는 비교적 온화한 편이다. 가장 추운 2월 최저기온의 평균은 –9.1℃이다. 여름은 선선하다. 가장 더운 7월 최고기온의 평균은 23.6℃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700mm 안팎이다. 비는 여름과 가을에 많이 내린다.[4]

지도

러시아유럽 행정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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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1. 프스코프주〉, 《위키백과》
  2. 프스코프〉, 《나무위키》
  3. 프스코프주〉, 《네이버 지식백과》
  4. 유럽지명사전 : 러시아 프스코프〉,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

같이 보기

러시아유럽 같이 보기

러시아유럽 행정구역
러시아유럽 도시
러시아유럽 바다
러시아유럽 지리
러시아유럽 문화
러시아유럽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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