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선
38선(三八線, 38th parallel north line)은 대개 제2차 세계 대전이 종전된 후, 대한민국이 8.15 광복을 맞은 직후부터 6.25 전쟁 때까지 남북의 경계선 역할을 한 북위 38도 위선을 이른다. 현재는 휴전선이 이 역할을 한다.[1]
목차
역사
미국 육군부 작전국의 초안
1945년 7월에 미국 육군부(현재의 미국 국방부) 작전국(OPD)에서 처음으로 연합국이 한반도를 분할 점령할 계획안을 마련했다. 이 안은 미국이 경기도 · 강원도(함경남도 원산, 안변 포함) · 충청북도 · 경상남북도를, 소련이 함경남북도(원산·안변 제외)를, 영국이 평안남북 도와 황해도를, 중화민국이 충청남도와 전라남북 도를 점령하는 계획이었다.
미국 합동전쟁계획위원회의 초안
1945년 8월 미국 합동참모본부 내 합동전쟁계획 위원회(JWPC)는 '일본 주요 열도와 한국에 대한 연합국 관리 및 점령군 계획(JWPC385/1)'에서 일본 열도와 한반도에 대한 4국 분할 점령 계획을 작성했다. 미국, 소련, 영국, 중화민국 4개국은 일본군을 무장해제시킨 후 서울, 청진, 원산, 평양, 군산, 제주 등 주요 전략 지점에 연합군을 주둔시키고, 이후 한국이 독립할 때까지 한반도를 분할 관리한다는 계획을 입안했다. 하지만 9월 22일 작성된 수정안 'JWPC385/5'에서는 38도 선 분할이 확실시되어 영국과 중화민국을 배제하고 미국과 소련 양국의 분할 점령 안으로 바뀌었다. 'JWPC385/1'은 현실적으로 군사적 점령이 불가능하다는 미국 군부의 반대로 채택되지 않았다.
3부 조정위원회의 최종안
38선을 확정한 것은 미국 국무부, 육군부, 해군부 기관원의 협의체인 3부 조정위원회(SWNCC)였다. 소련군이 만주 전략 공세 작전을 개시한 후, 3부 조정위원회 위원장인 국무차관보 제임스 던(J. Dunn)은 1945년 8월 11일에 육군부 작전국에 소련군의 남진에 대응하여 미국이 서울과 인천을 점령하도록 하는 군사분계선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미국 육군부 작전국의 본스틸(Charles H. Bonesteel, 이후 주한미군 사령관 역임) 대령과 미 육군장관 보좌관이었던 딘 러스크(Dean Rusk, 이후 케네디와 존슨 정부에서 국무장관 역임) 중령은 작전국에 걸려 있던 내셔널 지오그래픽사의 벽걸이 지도에 38선을 그어본 후 38선 분할 점령 안을 미국 합참과 3부 조정위원회에 보고했고, 이 안이 대통령에게 보고되어 '일반 명령 제1호'로 맥아더 사령관에게 전달되었다. 38선 분할 점령 안을 미국이 제안하자 소련은 별 이의 없이 이를 받아들였고, 1945년 8월 23일 개성시까지 내려갔던 소련군은 9월 초에 38도 선 이북으로 철수했다.
한반도의 분할
미국과 소련은 1945년 9월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였다. 해주항이 위치한 해주시의 룡당포(龍塘浦)는 38도선 이남이지만, 미·소군정은 이를 38선 이북으로 간주하기로 합의하였다. 미군정은 38도 선 이남의 연천군을 파주군에, 양구군을 춘천군에, 인제군을 홍천군에, 양양군을 강릉군에 편입하고, 벽성군은 해주시의 서쪽 지역을 옹진군에, 동쪽 지역을 연백군에 편입시켰다. 소련군정은 38도선 이북의 춘천군 사내면(가평군 포함)을 김화군에, 그 밖의 춘천군 지역을 화천군에 편입시켰고, 개풍군과 장단군의 38선 이북 지역은 장풍군으로 통합하였으며, 옹진군의 38선 이북 지역은 벽성군에 편입하였다. 또, 포천군의 38선 이북 지역은 영평군으로 개칭하여 관리하다가 1946년 12월에 철원군에 편입하였다.
정전협정에 따른 군사분계선으로 대체
1953년 7월 27일 발효된 한국 전쟁의 정전협정에 따라 설정된 군사분계선은 위도상 북위 38도 부근에 위치하고 있지만, 38선과 비교해 서쪽 경계가 남하하였고 동쪽 경계가 북상하였다. 이에 따라 38선 남서쪽의 황해도 옹진군·연백군과 경기도 개성시·개풍군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38선 북동쪽의 경기도 연천군과 강원도 철원군·화천군·양구군·인제군·양양군·고성군은 대한민국에 속하게 되었다. 38선(1945.9.2 - 1950.6.25)과 현재의 군사분계선(1953.7.27 - )은 다르지만, 한반도 분단에 있어서 차지하는 상징성이 크고 분단의 직접적 원인이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군사분계선을 '38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현재도 38선은 대한민국의 행정 구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파주시 적성면, 양주시 남면, 홍천군 내면은 38선 분단에 따라 변경된 행정 구역이 유지되고 있고, 북위 38도 선 이북인 화천군 사내면과 연천군 미산면 삼화리는 38선 분단 전과는 다른 행정 구역에 속해 있다.[2]
지형지물
1953년 정전협정 이후 기준의 삼팔선 통과 지역의 지형지물과 좌표이다. 삼팔선이 지나는 곳 기준으로 군사분계선이 교차하는 곳은 백령도 동쪽 앞 바다, 경기도 연천군 매현리와 황해북도 장풍군 매현리이다. 휴전선이 38선보다 북쪽에 위치한 대한민국 실효지배 지역은 38선을 쉽게 넘어 다닐 수 있으며 백령도를 제외한 지역 기준으로 38선을 통과하는 도로 앞에 "여기는 38선입니다" 등의 38선 표지석, 표지판이 있다. 38선 표지석, 표지판은 38선 반경 1km 이내의 도로 앞에 설치되어 있으며, 설치되지 않은 곳도 있다. 아래의 지형지물은 바다, 산, 하천, 호수, 교통시설, 마을, 관광지 같은 곳이다.[1]
실효 지배국 | 지형지물 | 소수점 좌표 |
---|---|---|
대한민국 | 백령도 앞 바다 | 38 124.700000 |
대한민국 | 서해 북방한계선 교차점 | 38 124.850000 |
대한민국 |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통구리 | 38 126.916670 |
대한민국 | 37번 국도(동서로) | 38 126.988320 |
대한민국 | 3번 국도(평화로) | 38 127.070000 |
대한민국 | 37번 국도(동서로) | 38 126.964990 |
대한민국 | 신천 | 38 127.076660 |
대한민국 | 87번 국도(포천로) | 38 127.167910 |
대한민국 | 37번 국도 | 38 127.235980 |
대한민국 | 포천천 | 38 127.238050 |
대한민국 |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 일대 | 38 127.242500 |
대한민국 | 관모봉 | 38 127.281100 |
대한민국 | 47번 국도(금강로) | 38 127.340550 |
대한민국 | 75번 국도(가화로) | 38 127.441400 |
대한민국 | 화악산 일대 | 38 127.507500 |
대한민국 | 5번 국도(영서로) | 38 127.641800 |
대한민국 | 북한강(춘천호) | 38 127.650000 |
대한민국 | 407번 지방도(춘화로) | 38 127.732210 |
대한민국 | 구 46번 국도(배후령길, 배후령 일대) | 38 127.790550 |
대한민국 | 46번 국도(춘양로, 배후령터널) | 38 127.794950 |
대한민국 | 오봉산 일대 | 38 127.806100 |
대한민국 | 소양강(소양호) | 38 127.926100 |
대한민국 | 46번 국도(삼팔선로) | 38 128.051800 |
대한민국 | 강원도 인제군 남면 부평리 빙어마을 일대 | 38 128.101000 |
대한민국 | 44번 국도(설악로) | 38 128.115270 |
대한민국 | 인제 자작나무숲 일대 | 38 128.200270 |
대한민국 |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원대리 자작나무마을 인근 | 38 128.236400 |
대한민국 | 강원도 인제군 남면 부평리 빙어마을 일대 | 38 128.101000 |
대한민국 | 내린천 | 38 128.280550 |
대한민국 | 인제 스피디움 | 38 128.291670 |
대한민국 | 조침령 일대 | 38 128.508330 |
대한민국 | 서울양양고속도로 | 38 128.536670 |
대한민국 | 56번 국도(구룡령로) | 38 128.537650 |
대한민국 | 펜션 | 38 128.538000 |
대한민국 | 후천 | 38 128.540550 |
대한민국 | 정족산 일대 | 38 128.575565 |
대한민국 | 59번 국도(남대천로) | 38 128.638050 |
대한민국 | 놀골교 | 38 128.641030 |
대한민국 | 양양남대천 | 38 128.642220 |
대한민국 | 한천산 일대 | 38 128.664730 |
대한민국 | 418번 지방도(부소치길) | 38 128.680410 |
대한민국 | 동해고속도로 | 338 128.715550 |
대한민국 | 7번 국도(동해대로) | 38 128.737350 |
북한 | 운동저수지 | 38 125.310000 |
북한 | 해주만 | 38 125.640000 |
북한 | 해주시 털섬 | 38 125.696950 |
북한 | 해주만 | 38 125.740000 |
북한 | 배천군 배천읍 일대 | 38 126.310000 |
북한 | 예성강 | 38 126.400830 |
북한 | 경의선 | 38 126.445700 |
북한 | 개성평양고속도로 | 38 126.510290 |
북한 | 송악산 일대 | 38 126.550470 |
북한 | 육상 군사분계선 교차지역 | 38 126.812470 |
문제점
고립된 지역 발생
황해도 서남단의 옹진반도는 남한 땅이지만 옹진반도에서 개성 쪽으로 향하는 유일한 육상로인 해주는 북한 땅이라서 육로 교통이 차단된 월경지가 되었다. 또 38선 이북에 위치한 해주의 경우 해주항이 위치한 용당포 일부 지역이 38선 이남에 있어서 해주항 일부가 월경지가 될 판국이었다. 때문에 해주의 경우 용당포를 포함한 해주 전체를 소련이 관할하고 38선 이남의 해주만은 미국이 관할하는 것으로 미군정과 소군정이 합의를 해서 월경지가 생기는 건 피했으나 해주항과 서해를 연결하는 해주만이 막혀버리는 바람에 6.25 이전까지 해주는 이름처럼 바다와 접하고 있는데 정작 바다를 쓰지는 못하는 무늬만 항구도시로 전락하기도 했다.
강제 분리되는 행정구역
삼팔선은 자연 지물 (하천, 산, 호수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지나가기 때문에 하나의 면(面)이나 리(里)가 삼팔선에 의해 분리되어 미국과 소련의 군정 당국 간에 마을의 관할권을 두고 다툼이 자주 일어났다. 심지어 어느 쪽에 귀속될지를 놓고 주민들이 좌익과 우익으로 나누어져 충돌이 발생하는 일도 많았다. 이것만 해도 큰일인데 행정구역이 나누어지는 것도 불균등하게 나누어지므로 사태가 더 커졌다. 당장 개성시의 경우 시가지는 한국령인데 바로 윗산인 송악산은 북한령이다. 또한 필수적으로 같이 운용해야 하는 시설이 양분된다. 황해도 연백군과 옹진군에서는 농토는 남쪽에, 저수지는 북쪽에 있어서 농사를 지을 때마다 농사용 물 문제로 다툼이 잦았다.
방어상의 문제점
북한의 경우에는 삼팔선 인근에 고지대를 형성한 곳이 많아서 쉽게 방어진지 가설이 가능했지만 남한의 경우에는 북한의 고지가 쉽게 관측할 수 있는 산비탈이나 평지에 방어선을 만들어야 하니 유사시 방어에 엄청난 차이가 난다. 덤으로 앞서 언급한 옹진, 연백, 개성 지역은 조금만 밀려도 바로 바다나 강이 나오기 때문에 자연적인 배수진이라서 유사시 일단 포기하는 지역으로 선정되고 실제로 이 지역들은 6.25 전쟁이 끝난 후 결국 북한이 차지하게 된다. 이런 이유와 함께 북한은 이미 김일성이 주도해서 남침을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조선인민군의 장비와 숫자를 크게 늘렸다.
반면에 남한의 경우에는 이승만 정부 때 신성모 국방장관이 전쟁이 벌어지면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등 대책 없는 강경 연설로 북한이 중국과 소련에 군사원조를 받아내는 근거로 활용됐으나 근거 없는 북진 연설 등에 기겁을 한 미국은 오히려 남한에 원래 약속한 장비와 물자도 제대로 주지 않았고 중장비는 거의 없었으므로 국군의 수와 질이 모두 떨어진다는 것도 작용했으므로 삼팔선 자체는 엄중한 경계가 펼쳐지지 않았다. 즉 38선에는 주요 도로에만 검문소 비슷한 경계 진지를 만들어놓고 삼팔선을 지키는 주력 병력은 약간 후퇴한 전술적 요지에 주진지를 만들어서 경비했다는 것이다. 덤으로 조선인민군은 따로 삼팔선 경비부대를 창설할 정도로 병력과 장비가 풍부해서 일단 38선 북쪽에 주진지가 없는 곳이 거의 없었던 데 반해 한국군은 앞서 말한 대로 병력과 장비가 모자라기 때문에 방어가 불능하다고 생각되는 지역은 경찰이 담당하거나 아예 방어를 포기했다. 그래서 개전 초반에 북한군이 깊숙이 침투할 수 있었던 것이다.[1]
관련 기사
- 우리는 아픈 역사를 마주해야 한다. 슬픈 사건들, 잘못된 선택들을 발판 삼아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인제에는 역사를 따라 그어진 38선의 흔적이 남아있다. 현재의 휴전선 이전에 그어진 분단의 흔적, 38선은 우리나라를 점령한 미국과 소련의 대립 속에서 1945년 8월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그어진 임시 군사 분계선이다. 이후 미국과 소련에 의해 두 개의 독립된 국가가 되어 다른 체제를 가지게 된다. 분단의 시작이었다. 38선은 한반도를 반으로 가르며 남북을 잇는 모든 도로와 철도를 끊었다. 의도하지 않았던 단절로 가족들이 생이별하며 한반도에는 통곡 소리가 퍼져 나갔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38선은 무너졌지만 1953년에 성립된 지금의 휴전선이 생길 때까지 남북의 정치적 경계선이었다. 인제는 그 기억을 잊지 않았다. 흐려져 가는 역사의 중요한 지점을 그 자리에 남겨두고, 다시 한번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3]
- 조선 최고의 기행문 <열하일기>는 황해도의 깊은 산골 연암협에서 태어났다. 동네 앞에 제비바위(연암·燕巖)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산골짜기 마을. 연암 박지원이 처음 발견하고 너무 좋아 자신의 거처로 삼았던 곳이다. 박지원의 호(號) 연암은 이곳에서 따왔다. 하지만 38선 분단 이후 북한에 속하게 된 이곳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2015년 12월에 찍은 위성지도를 보면 북위 38도 4분 2초, 동경 126도 41분 13초 지점에 연암협(빨간 동그라미 표시)이 펼쳐진다. 사미 천이 W자처럼 휘어 도는 지점이다. 겨울에 찍은 위성지도라 사미천은 하얀 선으로 나타난다. 연암 협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주는 지형적 특성은 시냇물이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본 위성지도에서 사미천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간다. 그 후 북쪽 장풍읍 쪽에서 흘러나오는 와룡천과 합쳐져 남한의 고량포 쪽 임진강 본류로 합류한다. 남쪽에서 연암협을 보면 왼쪽과 오른쪽 야산에 둘러싸여 있고, 10여 호의 농가가 보인다. 오른쪽 야산이 제비 바위가 있는 곳이다. 연암이 살던 마을에서 보면 왼쪽이다. 연암은 홍대용에게 보낸 편지에서 “집 앞 왼편으로 깎아지른 듯 푸른 벼랑이 병풍처럼 서 있고, 깊숙한 바위틈 사이가 동굴 같다. 그 속에 제비가 둥지를 틀었으니 연암, 즉 제비 바위라고 부른다고 표현했다. 위성지도에서 제비 바위는 제비꼬리 모양을 하고 있다. 이 모양만 봐도 제비 바위 이름의 유래를 색다르게 해석해 볼 수 있다.[4]
동영상
각주
- ↑ 1.0 1.1 1.2 〈삼팔선〉, 《나무위키》
- ↑ 〈북위 38도〉, 《위키백과》
- ↑ 신은정 기자, 〈분단의 흔적, 인제 38선〉, 《아웃도어뉴스》, 2022-06-09
- ↑ 윤호우 논설위원, 〈하일기가 태어난 곳, 지금은 갈 수 없는 땅 ‘연암협’ 찾았다〉, 《경향신문》, 2022-09-11
참고자료
- 〈삼팔선〉, 《나무위키》
- 〈북위 38도〉, 《위키백과》
- 신은정 기자, 〈분단의 흔적, 인제 38선〉, 《아웃도어뉴스》, 2022-06-09
- 윤호우 논설위원, 〈하일기가 태어난 곳, 지금은 갈 수 없는 땅 ‘연암협’ 찾았다〉, 《경향신문》, 2022-09-11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