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카스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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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카스공화국(러시아어: Хака́сия) 또는 하카시야공화국은 러시아 시베리아연방관구에 속해있는 공화국이다.[1][2]
개요[편집]
하카스공화국의 면적은 61,569km²이며 인구는 532,036명(2021년)이다. 러시아의 시베리아 지방의 남부에 위치한다. 모스크바(Москва, Moscow)에서 남동쪽으로 약 3,400km 떨어져 있으며, 시베리아연방관구(Сибирский федеральный округ)의 동시베리아경제지구(Восточно-Сибирский экономический район)에 속하는 지역이다. 공화국의 수도는 아바칸(Абакан, Abakan)이다. 북쪽과 동쪽으로 크라스노야르스크변경주(Красноярский край), 남쪽으로 투바공화국(Республика Тыва)과 알타이공화국(Республика Алтай), 서쪽으로 케메로보주(Кемеровская область)와 접한다. 크라스노야르스크 시간대 (KRAT)에 놓여 있다. UTC와의 시차는 +08:00 (KRAT)이다.
하카시야는 투르크계 하카스인(Khakass)에서 비롯된 지명으로 하카시야인은 공화국 전체 인구의 10% 정도를 차지한다.
하카시야는 시베리아 고고학의 메카로 불릴 정도로 고고학적인 유적지가 아주 많은 곳이다. 과거 3만 년 동안 이 지역에 거주했거나 이곳을 거쳐간 다양한 민족들이 남긴 묘지와 성지, 암각화, 오벨리스크, 폐허가 된 도시와 요새들, 고인돌 등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3][4]
자연환경[편집]
공화국 전체 면적의 약 3분의 2가 쿠즈네츠크알라타우(Kuznetsk Alatau)와 아바칸산맥 동쪽 사면에 위치한 산악 지형이고 나머지는 평탄하다. 남부와 서부에 산림이 우거져 있다. 가장 큰 강인 예니세이강이 공화국의 북동쪽 경계선을 따라 흐르고 그 지류인 아바칸강이 남서 방향으로 흘러든다. 예니세이강과 동쪽의 산맥 사이에는 출림(Chulym)강이 있다. 염분을 머금은 소금호수를 포함해 약 300개의 호수가 있다. 해발고도 2,000m에 이르는 사얀산맥의 영향으로 영토의 2/3가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악지대와 타이가, 대초원 지대가 나타난다. 주요 수종은 소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이다. 예니세이강에서 발원한 호수가 많아 수자원이 풍부하며, 철, 금, 석탄 등의 천연자원을 다량 보유하고 있다.
시베리아의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의 특징이 나타난다. 따라서 매우 건조하며, 짧은 여름과 혹한의 추위가 지속되는 긴 겨울이 나타난다. 겨울철인 1월의 평균 기온은 -18.9℃, 여름철인 7월의 평균 기온은 17.9℃이나, 지역에 따라 기온 편차가 크다.
역사[편집]
현재의 하카스공화국에 해당하는 영토의 원주민은 유목민이었던 시베리아 투르크계 민족이다. 9세기 무렵부터 키르기즈 카간국(Кыргызский каганат, Kyrgyz Kaganate)의 영향 하에 있었으나, 13세기 몽골의 침략으로 몽골제국에 점령되었다. 이후 러시아제국과 중국 청나라 간의 국경 조약이 체결된 1727년 8월 20일에 이르러 러시아제국의 영토로 통합되었다. 18세기부터 구리 광산이 개발되고, 1980년대 초 대규모 수력발전소가 예니세이강 유역 사야노고르스크(Саяногорск, Sayanogorsk)에 건설되면서 미누신스크 분지의 산업 발전에 전기(轉機)를 가져왔다. 1923년 11월 하카시야군(Хакасский уезд)이 설립되고, 1930년 10월 하카시야자치주(Хакасская автономная область)로 승격되었으나, 1934년에는 크라스노야르스크변강주(Красноярский край)로 편입되었다. 이후 1991년 7월 3일 공화국의 지위를 부여받아, 1992년 1월 29일부터 하카스공화국이 되었다.
하카스가 중앙 정부로부터 자치권을 인정받은 것은 1930년으로 굉장한 이른 사례에 속하지만, 오히려 러시아인들이 이 지역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쌓기 전에 자치권이 부여된 탓인지 당시의 하카스 자치주가 형성된 과정이 심하게 졸속이었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고 있다. 2016년부터는 다시 크라스노야르스크 지방과 통폐합 하는 것이 진지하게 논의될 정도. 소련 시절에 하카스 자치주를 형성시켰던 러시아 연방 공산당마저 야당이 된 2010년대에 와서는 아예 기관지인 프라우다를 통해 하카스공화국의 형성이 역사적인 실수였으며 크라스노야르스크로 통합하는 것을 지지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이런 얘기가 나오는 이유 중 하나로는 "하카스 자치구"라고는 했지만 정작 여기서 말한 "하카스 민족"이라는 개념이 사실 서로 이질성이 심한 다섯 민족을 뭉뚱그려 말한 것이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렇다 보니 하카스 자치구 자체의 위치를 가지고도 말이 많았는데, 물론 수도인 아바칸이 대도시라고는 하나 애당초 하카스인들 중에는 유목민의 비율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이 또한 그다지 의미가 없다. 결국 러시아 연방 내에서는 2020년쯤이 되면 하카시야 공화국을 크라스노야르스크 지방에 온전히 통폐합 하는 것에 착수할 것으로 보는 듯 하다.
2018년에는 러시아 내 야당들의 전반적인 부진에도 불구하고 공산당 출신 후보 발렌틴 코노발로프(Валентин Коновалов)가 하카시야 공화국 수반으로 선출되는 이변이 연출되기도 했다. 러시아 연방 공산당이 하카스공화국을 크라스노야르스크로 통폐합 하는 방침을 공공연하게 밝혔음에도 그다지 큰 화제거리로 작용하지는 않고 있는 듯하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통합 러시아가 공산당의 이러한 방침에 대해 문제를 삼지 않은 것은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산업[편집]
주요 산업은 수력발전을 이용한 에너지 산업과 알루미늄 생산을 비롯한 광업 및 농업, 축산업이다. 합금 등에 활용되는 몰리브덴 매장량이 러시아에서 가장 많다. 석탄과 원석 채굴, 목재산업 등이 발달했다. 전통적으로 미누신스크 분지를 주축으로 양과 염소 등의 방목을 하여 왔으나 관개수로가 정비되고, 공화국 총 면적의 30%를 농경지로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농업이 발달하였다. 주요 농작물은 밀, 보리, 귀리, 기장, 해바라기, 수수, 사탕무, 감자, 옥수수 등이다. 18세기에 구리광산이 개발된 이래로 미누신스크 분지에서는 석탄이, 아바칸에서는 철광석, 구리, 몰리브덴 등이 채굴되고 있다. 러시아 연방의 3대 제련소 중 하나인 사얀 알루미늄 제련소(Саянский алюминиевый завод)가 이곳에 있다.
교통[편집]
도로망은 북동쪽 경계선 인근의 수도 아바칸, 서쪽과 남서쪽의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발달했다. 연방고속도 R-257번이 아바칸을 지나간다. 아바칸에서 지방고속도로 A-161번이 아바칸계곡을 따라 남서쪽의 아바자(Abaza)를 지나 산맥을 가로질러 남쪽의 투바주까지 이어진다. 주요 도로를 제외하고 소도시로 가는 길은 비포장도로가 많다. 수도 아바칸을 중심으로 타이셰트·노보쿠즈네츠크로 철도가 통하고 있으며, 아바칸강 하류와 예니세이강은 가항하천(可航河川)으로 각종 선박이 운항한다.
아바칸에서 이르쿠츠크의 타이셰트(Taishet)역까지 지역 철도가 연결되어 있다. 타이셰트역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로 갈아탈 수 있다. 아바칸-칼타스(Kaltas)간 전철 구간을 비롯해 여러 개의 지역 철도 노선이 운행된다. 아바칸국제공항에서 모스크바와 노릴스크, 노보시비르스크, 톰스크, 크라스노야르스크, 블라디보스톡행 정기항공편이 운행된다.
관광[편집]
하카시야 문화의 중심지인 아바칸을 주축으로 명소와 문화재들이 위치한다. 특히 1931년 개관한 하카시야 향토 박물관(Хакасский краеведческий музей)과 러시아 공화당 드라마 극장(Русский республиканский драматический театр имени М. Ю. Лермонтова), 하카시야 민족 드라마 극장(Хакасский национальный драматический театр имени А. М. Топанова)이 대표적이다.
북쪽의 시라(Shira)는 소금호수인 시라호수 근처의 마을로 오래된 온천이 유명하다. 남쪽 하카시야자연보존구역의 돌이 올려진 고대 무덤과 북쪽 순두키(Sunduki)의 불룩 솟은 8개의 사암봉우리도 주요 명소다.
아바칸[편집]
아바칸은 러시아 중남부 하카스공화국의 수도이다. 아바칸강이 예니세이강과 합류하는 곳에서 가까운 왼쪽 강변에 자리 잡고 있다. 서남부 시베리아 마누신스크 분지의 중심부에 있으며, 예전에는 우스트아바칸스코에라고 불렀다. 아바칸은 원래 하카스자치주의 주도였으나, 소련 해체 직전인 1991년 7월 하카스자치주가 공화국으로 승격하면서 하카스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금속, 신발, 식품 가공산업이 발달하였으며, 인근에 석탄광산과 철광산이 있다.
아바칸스크라고도 알려진 아바칸스키 요새는 1675년 아바칸강 어귀에 세워졌다. 1780년대에 우스트아바칸스코예란 마을이 이 지역에 개척되었다. 마을 주민은 1859년 21가구, 183명에서 1917년 116가구, 539명으로 늘어났다. 우스트아바칸스코에는 459km 거리에 있는 크라스노야르스크 크라이의 아친스크까지 가는 철도가 1925년에 개통되면서 획기적인 발전의 계기를 맞이하였다. 우스트아바칸스코예는 1931년 도시로 승격하면서 이름이 아바칸으로 바뀌었다.
1940년 러시아 건설노동자들이 아바칸과 아스키즈 사이에 고속도로를 건설하던 도중 고대 유적을 발견하였다. 소련 고고학자들이 1941~45년까지 발굴하고 보니 이 지역에 매우 독특한 건물이 존재하였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면적이 1,500m2(약 450평)나 되는 중국 양식의 이 건물은 한나라 시대(206 B.C.~220 A.D.)의 대저택으로 추정되었다.
한나라와의 국경에서 멀리 벗어난 곳에서 중국식으로 사치스럽게 살았던 고위 인물의 정체가 누구인가는 이후 줄곧 논의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러시아 고고학자 예브튜코바는 기원전 99년 흉노족에 패한 후 시베리아로 망명한 한나라의 리링 장군이었을 것으로 추측하였다. 후한(後漢)시대를 연 광무제에게서 왕권을 찬탈하려던 루팡(盧芳)의 저택이었다는 코발료프의 주장도 있다.
18세기 후반~19세기에 걸쳐 리투아니아인들이 아바칸 주변 지역으로 대거 유입되었다. 러시아의 지배에 항거하여 1794년, 1830~31년, 1863년에 각각 일어난 반란에 가세하였다가 유배된 사람들이다. 수용소가 여러 곳에 설치되었고, 유배자들은 탄광에서의 강제 노동에 투입되었다. 스탈린이 죽은 후 리투아니아인 유배자들이 인근 정착촌에서 아바칸으로 이주하였다.
아바칸은 1960년에 개통된 남부 시베리아 철도의 기점으로, 노보쿠즈네츠크를 거쳐 바르나울, 아크몰린스크, 마그니토고르스크로 연결된다. 이르쿠츠크주의 타이셰트까지 가는 노선도 개통되어 있는 등 아바칸은 철도 교통의 주요 분기점이다. 항공편은 아바칸국제공항에서 이용할 수 있다.
아바칸은 강수량이 적고 추운 겨울이 특징인 냉대 기후(쾨펜 분류 Dwb)와 서늘한 반 건조성 스텝 기후(쾨펜 분류 BSk)의 경계선에 위치한다. 계절 사이에 기온차가 극심한 것은 시베리아의 전형적인 현상이다. 연중 가장 더운 7월의 최고 기온 평균은 26.8°C이고, 가장 추운 1월의 최저 기온 평균은 -23.3°C다. 연평균 강수량은 310mm 안팎에 불과하다. 그나마 여름에 집중되지만, 인근 산악 지역의 비그늘 현상(산맥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의 반대편 사면에 비가 내리지 않는 건조한 지역)으로 인해 비가 많이 내리는 편은 아니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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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하카스 공화국〉, 《위키백과》
- ↑ 〈하카시야 공화국〉, 《나무위키》
- ↑ 〈하카시야공화국〉, 《네이버 지식백과》
- ↑ 〈유럽지명사전 : 러시아 하카시야〉, 《네이버 지식백과》
- ↑ 〈유럽지명사전 : 러시아 아바칸〉,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 〈하카스 공화국〉, 《위키백과》
- 〈하카시야 공화국〉, 《나무위키》
- 〈하카시야공화국〉, 《네이버 지식백과》
- 〈유럽지명사전 : 러시아 하카시야〉, 《네이버 지식백과》
- 〈유럽지명사전 : 러시아 아바칸〉,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러시아유럽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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