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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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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제

지제(芝制)는 대한민국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법정동이다. 행정동인 세교동(細橋洞) 관할이다.[1]

개요[편집]

평택시의 남동부에 위치하며, 평택시의 모곡동, 세교동, 신대동 및 고덕면 방축리, 동고리와 접한다. 1914년 경기도 진위 군(振威郡) 성남면의 지제리와 울성리, 여방면 영신리의 각 일부지역이 합쳐서 진위군 병남면(丙南面) 지제리가 되었다. 1926년 진위군 평택면 지제리, 1938년 평택군 평택읍 지제리, 1986년 평택시 세교동 관할의 지제동이 되었다. 1번 국도가 경부선과 병행하다가 지제동 북쪽에서 평택-충주고속도로, 45번 국도와 교차한다. 경부선의 지제역이 있고, 서쪽 고덕면 방축리와의 경계에 평택-충주고속도로의 평택터널이 있다. 도일천이 마을을 남북으로 관류하고 그 주변에 구대, 당현, 울성, 건너말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1]

역사[편집]

조선 후기 진위현 성남면이었다. 1914년 성남면 지제리·울성리, 오타면 울성리, 여방면 영신리 각 일부를 통합해 지제리라 했다. 고갯마루에 마을이 형성돼 ‘뒤재’라고 했던 것을 음이 변해 지제가 됐다고 한다.

  • 구대(舊垈) : 지제동의 자연마을. 500여 년 전 단양 우씨가 터를 잡았고 나중에 연안 차씨가 입향해 마을을 이루었다.
  • 당현 : 구대에서 여염리 방면으로 넘어가는 산마루에 서낭당이 있어 당고개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로 당현이라고 함. 당재말이라고도 하며 지제동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이다.
  • 우물말 : 당현의 자연마을. 공동우물이 있다.
  • 북우물 : 당현 북쪽의 우물가에 형성된 마을. 계곡 사이에서 건수가 나오는 우물이 있어 허드렛물로 사용했다.
  • 울성 : 성종의 14남 웅천군파와 15남 양원군파가 개척한 전주 이씨 동족마을이다. 고덕면 방축리성과 태미산성의 울안에 마을이 형성돼 유래됐다.
  • 새터 : 구대마을 북동쪽에 형성된 마을이다.
  • 태미산 : 당현과 울성 사이에 있는 산이다. 도일천 방면으로 불룩하게 솟았고 고려시대에 산성이 있었다고 한다.
  • 울성저수지 : 울성마을 뒤쪽에 있는 저수지다. 옛 문헌에는 도일천 변에도 울성보가 있었다고 한다.
  • 봉골저수지 : 당현마을 북쪽 골짜기에 있는 저수지다. 2013년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안에 포함됐다.
  • 지제역 : 2006년에 개통한 서울-천안(신창) 간 노선 전철역 운행한다.[2]

행정동[편집]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세교동은 남쪽의 아파트 단지(주택가)와 북쪽의 산업단지로 정리 할 수 있는 곳이다. 다만 그 동안 미개발지였던 1번 국도 위쪽에 세교도시개발구역이 설정되어 아파트 대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아파트 단지와 학교, 공원과 자그마한 먹자골목 외에 이렇다 할 큰 상가는 없는 편. 평택에서 송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기에 시내버스 교통은 좋다. 평택역과 평택 지제역도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북쪽에 있는 세교중학교와 평택여자고등학교는 원래 농촌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었는데, 지역의 개발로 인해 아파트 단지 사이에 둘러싸인 형태가 되었다. 인근의 오산시에도 같은 세교동이 존재한다.

주거[편집]

  • 원앙 부영아파트
  • 보성 청실아파트
  • 개나리 1차아파트
  • 부영 아파트
  • 현대 향촌아파트
  • 꿈 그린 우성아파트
  • 태영 청솔아파트
  • 세용 아파트
  • 평택 힐스테이트 1 차아파트
  • 평택 힐스테이트 2 차아파트
  • 평택 힐스테이트 3 차아파트
  • 지제역 힐스테이트 아파트
  • 평택 지제역 더샵 센트럴시티 - 2022년 5월[3]

평택 지제역[편집]

대한민국의 철도역. 수도권 전철 1호선과 SRT 고속철도가 정차하는 역이다. SRT 평택 지제역을 신설할 당시, 신설되는 고속철도 역명에 대한 설문조사를 평택시의 홈페이지에서 2014년 9월 시작하였다. 역명 후보는 신평택역, 평택 지제역, 지제역의 3개. 이 때의 투표 결과 시민 투표와 시의회 회의 등을 거쳐 명칭을 '평택 지제역'으로 확정했다. 그러나 2016년 4월 29일 국토교통부 고시에 의거하여 수서평택고속선 역명이 지제역으로 확정되며 시민 투표가 반영된 역명은 온데간데 없이 그냥 '지제역'으로 역명이 통일되어 2020년까지 영업하였다. 그러나 평택시에서는 시민 투표까지 마친 역명이 반영되지 않은 것에 대해 큰 반발이 일었고, 나름 고속철도까지 지나는 역인데도 전국 고속철도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지도 및 여론조사에서 23.1%만이 지제역이 평택시의 역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결과가 나와 꾸준한 시도 끝에 2020년 2월 시에서 정식으로 역명 변경을 요청할 것을 의결하기에 이른다. 이 역명변경에 대해서도 평택시민의 68.6%, 전국 철도이용자의 89.2%가 찬성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역명 변경의 합리성을 뒷받침해주었다고 기사에서 전하고 있다. 평택 시민이 아니라 오히려 타 지역 이용자들이 더 큰 찬성을 보낸 것에 대한 주요한 이유로는 "지제역이 어디에 있는 곳인지 몰라서"라고. 이러한 조사 결과들을 토대로 국가철도공단과 국토부 역명심의위원회를 거쳤고, 2020년 11월에 역명 변경안을 가결하여 2020년 11월 8일 "평택지제역" 명칭이 확정되었다.

평택 지제역 개통 당시부터 평택시에서 진행한 시민 의견을 수렴한 결과를 반영해 지제역 앞의 버스 정류장의 이름이 평택 지제역으로 표기되어 있었으나, 상술한 대로 그냥 지제역으로 개통이 진행되며 역명과 정류장명이 따로 노는 상태로 오랜 시간이 지났다. 결국 역명 변경안이 통과되고, 이를 인용해 2020년 11월 24일 국토교통부에서 확정고시되어 비로소 알맞는 정류장 명을 찾은 셈이 되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역 간판을 바꾸지 않아 지도에는 지제역으로 표시되어 있었으며, 수서역이나 동탄역 등 SRT 및 KTX 역에서도 지제역이라고 안내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2021년 7월 30일 역 간판과 스크린도어 모두 평택지제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지도 및 안내방송도 교체되었다. 하지만 스크린도어 LED는 지제로 표기되어 있다가 SRT에서는 2021년 8월 7일부터 정식으로 '평택 지제역'이라는 역명을 적용하기로 했다.[4]

관광[편집]

평택 지제동 태미산성은 성 안쪽에 생겨난 마을이라는 뜻으로 태미산 정상부는 사방을 선명하게 조망할 수 있는 요지이며 산 밑으로는 하천이 흘러 왜적을 방비하는데 유리한 지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산성은 태미산 동쪽 정상부를 따라 축성되다가 마을이 있는 서남쪽으로 완만하게 내려앉은 형태이다. 성벽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동남쪽에 성벽으로 추정되는 참호가 있을 뿐이다. 축성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두 가지 사실로 추론할 수 있다. 하나는 태미산 동쪽에 영신현의 치소(治所)가 있었기 때문에 고려말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쌓았을 가능성이고, 나머지 하나는 임진왜란 당시 사명당이 1,500명의 승병을 이끌고 이 지역에 머무르면서 왜군과의 전투에 대비하기 위해 울성 마을과 성두 마을에 성을 쌓았다는 설(說)을 근거로 삼고 있다.[5]

유적[편집]

평택 지제동 청동기 유적 (平澤芝制洞靑銅器遺蹟)[편집]

평택에서 수원 쪽으로 1번 국도를 따라가면 왼쪽에 지제동으로 철길을 넘어가는 육교가 나온다. 이 육교의 북북서 방향에 있는 나지막한 산봉우리 남쪽에 분포되어 있다. 1977년 11~12월 세종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시굴조사와 1999년 5~6월에 실시한 발굴조사를 통해 보고되었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은 빗살무늬토기, 민무늬토기, 구멍무늬토기, 골아가리토기, 붉은간토기 조각, 반달돌칼, 돌화살촉, 돌대패날, 돌도끼, 숫돌, 간돌검, 뗀석기, 돌창, 갈판, 갈돌, 흙구슬, 홈자귀, 흙가락바퀴 등이다. 다수의 청동기 시대 유적과 더불어 빗살무늬토기류가 일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이곳이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바뀔 무렵부터 생활 공간으로 사용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청동기시대의 집터는 모두 7기 발견되었는데 그 중 6기는 초지 조성으로 인해 파괴된 상태였다.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는 1기의 집터는 평면이 원형에 가까우며 6.5m 떨어진 곳에서 야외 화덕이 발견되었다. 또한 구릉의 가장 높은 곳에서 1기의 움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주거 용도라기보다는 저장 시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집터 주변에서는 조선시대의 널무덤 10기와 백자가 출토되기도 하였다. 유적지에서 남쪽으로 치우친 자리에는 현재까지 마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지제동은 청동기시대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의 거주지였던 것으로 판단된다.[6]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1.0 1.1 지제동〉, 《네이버 지식백과》
  2. 김지영 기자, 〈평택시史로 보는 ‘평택시 지제동’ 지명 유래〉, 《평택자치신문》, 2022-08-22
  3. 세교동〉, 《나무위키》
  4. 평택지제역〉, 《나무위키》
  5. 평택 지제동 태미산성〉, 《두피디아》
  6. 평택 지제동 청동기 유적〉, 《두피디아》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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