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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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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경기(京畿)란 서울을 중심으로 한 가까운 주위의 지역을 뜻한다. 경기도(京畿道)는 대한민국의 북서부에 있는 도(道)이다. 간략히 경기라고 한다.[1]

개요[편집]

대한민국 전체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유일하게 인구가 1,000만 명을 넘는 광역자치단체'이다. 경기도충청남도와 더불어 시가 군보다 더 많은 지역으로 산하의 31개 기초 자치단체 중 군은 단 3개뿐이며(가평군, 양평군, 연천군) 나머지는 모두 시(市) 행정을 실시하고 있고, 특히 이들 중 10개 시는 50만 내지 100만 인구를 초과하여 대도시 특례 행정을 실시하고 있을 정도로, 번화한 권역이기도 하다. 심지어 양평군조차도 광역시 산하 군 지역을 제외한 군 중에서는 인구 수 1위인 지역이다. 강원도, 황해도와 더불어 남북 분단된 3개의 도 중 하나이다. 물론 휴전선 이북의 경기도 지역은 북한이 개성시, 황해북도, 강원도로 흡수시켰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 분단된 도는 강원도 뿐이다. 반대로 대한민국이 변경한 행정구역에서도 남한령이 된 황해도 지역은 경기도로 흡수했으나, 현재는 인천광역시 관할이다.[2]

명칭 유래[편집]

  • 다른 도의 이름은 고려 시대~조선시대 지역 내의 대표 도시 두 곳의 첫 글자를 딴 것이지만, 경기도라는 이름은 수도 주변 지역을 말하는 '경기(京畿)'에서 따온 명칭이다. 고유 명사가 아닌, 일반 명사 경기(京畿)는 서울(수도)을 뜻하는 '서울 경(京) 자'와 수도의 주변 지역을 뜻하는 '경기 기(畿)자'가 합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수도를 중심으로 한 가까운 주위의 지방을 뜻한다. 그리고 여기에 행정구역의 한 단위인 도(道)를 붙여 고유 지명인 경기도(京畿道)가 된 것이다. 경기도라는 명칭은 본래 중국의 당나라에서 수도였던 장안의 권역을 가리킬 때 사용했고, 당나라의 행정구역 용어를 차용한 고려와 조선에서는 경기의 세부 구역에 각각 경기○도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를 아울러 부르거나 경기 하나만을 운영할 때는 경기라는 명칭으로 사용했으며,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다시 경기도라는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간혹 문화적 측면에서 수도를 포함한 해당 "권역" 일대를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고대부터 수도권이라는 의미로 경기, 기내(畿內) 등의 표현이 사용되었다.
  • 우리 역사 속 경기가 기록된 사례는 신라 때가 최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서는 수도 서라벌 중심지(경주 분지 가운데 지역) 동쪽은 대성 군(大城郡), 서쪽은 상성 군(商城郡)을 두었는데, 전국 다른 군은 밑에 현(행정구역)이 있는 것과 달리 이 대성 군과 상성 군 두 군은 특이하게 아래에 현 대신 정(停)이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상성군은 남기정(南畿停), 중기정(中畿停), 서기정(西畿停), 북기정(北畿停), 막야정(莫耶停) 5개의 정으로 되어있고, 대성 군은 약장현(約章縣)과 동기정(東畿停)으로 되어있다. 여기서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기(畿) 자는 '도읍의 주변'이란 뜻으로, 바로 경기도 할 때의 기 자다. 지리적 위치로도 짐작할 수 있지만 대성 군과 상성 군은 일종의 경기도, 내지는 수도권 역할에 해당하는 특수 행정구역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정황상 여기까지는 보편적으로 왕경으로 간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에 일반적으로 말하는 신라의 수도 서라벌 역시 이 정도 범위까지 포함된 개념을 말한다. 그리고 신라의 공식 행정구역명은 '동서남북+기'로 여러 개로 쪼개져 있었지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여러 구절에 의하면 이를 통틀어 경기(京畿)라는 이름도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다.
  • 경기라는 이름으로 실제 행정구역 명칭으로 사용된 사례는 고려 왕조 때가 최초다. 1062년, 제11대 국왕 문종이 서경에 부속도서 '경기사도(京畿四道)'를 설치했는데, 이것이 한국사 최초의 경기도다. 서경을 중심으로 경기도가 네 구역으로 나뉘어 감싼 것으로, 지금의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 1390년, 고려 마지막 국왕인 공양왕은 수도 개성부에 부속 행정구역 '경기좌·우도(京畿左右道)'를 설치했다. 이것은 중앙 수도에 경기도가 설치된 최초의 사례다. 신라나 고려의 경기는 당시의 수도였던 경주시, 개성시 주변 지역을 일컫는 말이었으며, 조선 건국 후 공양왕의 전례를 따라 수도 한성부를 중심으로 교외 행정구역 경기좌·우도(京畿左右道)를 설치했다가 다시 태종 때 경기좌·우도를 경기라는 이름으로 통합한 것이 바로 지금 대한민국의 경기도다. 한편 이렇게 경기를 만들면서 기존의 양광도에서 북쪽 반 쪽 정도가 잘려나갔는데, 양광도의 남은 반쪽을 기반으로 충청도가 만들어졌다.[2]

역사[편집]

  • 고대부터 현대까지 거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한반도의 핵심 중의 핵심을 지킨 지역으로 중국의 '중원'과 같은 위상을 지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역이다. 미수복 경기도를 포함하면 이곳에 중심을 둔 정치체는 마한, 백제, 태봉, 고려, 조선, 대한 제국, 현대 대한민국이고 특히 고려 시대 이래 1100여 년간 한반도의 중심 지위를 잃은 적이 없는 동네다. 초기 백제가 터를 잡았던 지역이며 장수왕 때 고구려의 영역이 되었다가 진흥왕 때 신라가 차지했다. 삼국이 돌아가며 한강 유역을 차지한 것이 각자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여겨질 정도로 그 위상이 공고했다. 이때 신라가 이 지역을 접수했음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 국보인 북한산 순수비다.
  • 통일신라 때는 9주 5소경 중 한주(한산주)였는데, 지금의 도청(행정)에 해당하는 주치는 지금의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이성산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한주의 중심 도시가 지금의 광주시라고도 많이 알려져 있는데, 당시 한주가 고려 시대 광주가 됐고 광주에서 나중에 하남시가 독립한 것이므로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이 당시에는 행정구역의 숫자가 적어 신라의 변방으로 인구 밀도는 낮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군사적으로는 중요해서 지방 군인 10정을 다른 주에는 1정씩 배치했으나 한주에는 특별히 2정 배치하기도 했다.
  • 고려 시대에는 패서 지역의 호족이었던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다시금 중요한 지역으로 부상했다. 고려 시대의 경기는 당시의 수도였던 개경(송도) 및 그 주변 지역에 해당되었는데, 이 당시의 경기는 현재 북한에 남은 경기도 범위와 비슷하다. 중기 이후 남경(南京, 현 서울특별시 사대문안 일대)이 중요시되면서 경기의 영역이 남경 일대까지 확대되었다. 고려 시기 경기가 본격 확장된 것은 문종 23년(1069년)인데, 이 시기에 양광도에서 경기로 편입된 지역은 지금의 서울(단, 구 광주군 지역인 강남, 송파, 강동 제외), 인천, 부천, 김포, 광명, 시흥, 안산, 화성 서부(구 남양군), 안양, 과천, 군포, 고양, 파주, [[의정부, 양주, 동두천, 포천, 구리, 남양주 일대에 속한다. 다만 이 시대의 경기는 개성 중심의 주변지역이었으므로 지금의 황해도 동부까지 경기에 속했고, 도(행정구역) 중 하나가 아니라 그냥 '경기'라는 특수한 행정구역이었다.
  • 조선 건국 후 수도가 남경(한성부, 한양)으로 천도되면서 현재의 경기도 영역이 확정되고 사실상 다른 도와 같은 행정구역이 되었다. 그러나 명칭에는 특수성이 남아있어서 정식 명칭은 여전히 경기였고, 잠깐 쓰이다 1413년(태종 13) 최종적으로 폐지된 세부 구역인 경기좌·우도를 가리킬 때만 도라고 불렀다. 이 지역을 총괄하던 지방관인 종2품 관찰사 역시 '경기도관찰사'가 아니라 '경기관찰사'였다. 실록에서 검색되는 '경기도관찰사'는 원문을 찾아보면 '京畿道觀察使'가 아니고 '京畿都觀察使'인데, 도관찰사(都觀察使)는 세조 때 관찰사(觀察使)로 개칭되기 이전의 명칭으로 道와는 상관이 없다. 즉 '경기도 관찰사'가 아니라 '경기 도관찰사'라는 것. 연산군 때 평택, 진위를 편입하였다가 중종 때 충청도로 환원되었다. 1896년 진위를 편입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서울(경성부)이 경기도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평택군을 편입하였다.
  • 해방 이후에는 미 군정 시기에는 북위 삼팔선 이남의 황해도 영역을 경기도에 임시 편입시켰다. 황해도를 실질 지방자치단체로 살리기에는 면적과 인구가 너무 좁았기 때문이다. 그 뒤 6.25 전쟁을 거치면서 황해도 영역은 서해 5도만 남기고 모두 군사분계선 이북으로 넘어갔다. 서해5도는 현재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 옹진 군로 재편입된 상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해방 이후 1946년까지는 서울은 잠시 동안 경기도 서울시(경성부)였던 적이 있었다. 1946년 8월 15일에 미 군정청에 의해서 당시 경기도 경성부(서울시)가 경기도 관할에서 분리 승격되어서 다른 도와 같은 급인 "서울특별자유시"로 하는 서울시 헌장이 발표되는 것을 시작으로 1946년 9월 28일에는 경성부에서 서울시로 바뀌었다.
  • 1947년 서울시가 서울특별 자유시(1949년 현재의 서울특별시로 개칭)로 승격되었다. 서울시가 경기도에서 분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도청은 그대로 서울 시내에 있다가 1967년 수원으로 옮겨갔다. 다만 1896년부터 수원으로 이전, 1910년까지 14년 동안 있었다. 1967년 당시 경기도청 유치 과정에서 경기도의 양대 대도시였던 수원과 인천이 치열하게 유치 전쟁에 나섰다. 결국 유치전에서 수원이 승리했는데, 앞의 주석에서 설명한 대로 구한말에 14년 동안 경기도 관찰부가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 그리고 사통팔달 교통이 편리하여 접근성이 뛰어난 점을 감안한 듯하다. 이후 인천은 1981년 경기도 인천시에서 인천직할시로 분리되어 독립된 행정구역으로 변경된다. 역사 관련 서적에서(특히 조선 이전의 시기를 설명할 때) '경기 지역', '경기 일대'이라는 표현은 행정구역 상 지금의 경기도 뿐만 아니라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와 북한 치하의 미수복 경기도, 즉 개성시, 개풍군, 장단군을 포괄하는 개념이다.[2]

지리와 기후[편집]

경기도의 면적은 전 국토의 약 10%인 10,185㎢이며 북쪽으로는 86km의 휴전선에 서쪽으로는 332km의 해안선에 접해있으며, 동쪽으로는 강원도, 남쪽으로는 충청도와 인접해 있고 그 중앙에는 서울이 위치하고 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한강에 의해 남,북지역으로 나누어져서 한수이북은 산간지역, 한수 이남 지역은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다. 경기도의 땅 모양은 광주산맥과 차령산맥이 동쪽에서 뻗어와 차츰 낮아지는 모습이고 서쪽은 김포, 경기, 평택 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다. 그래서 예부터 동쪽 땅이 높고 서쪽 땅이 낮은 땅(경동지형)이라 했다. 경기도의 기후는 여름과 겨울의 기온 차이가 심한 대륙성 기후로서 연평균 기온은 11~13C° 로서 북동부 산악지대가 낮고 남서쪽 해안지역이 약간 높다. 1월 평균기온은 경기만 일대가 -4C°, 남한강 유역이 -4 ~ -6C°이고 북한강과 임진강 유역이 -6 ~ -8C°로 해안에서 내륙으로 갈수록 한랭하고 기온차가 커진다. 여름은 겨울보다 지역차가 적으며 내륙 지방이 경기만 일대보다 높아 가장 더운 곳은 평택으로 8월 평균기온이 26.5C°다. 연평균 강수량은 1,100mm 내외로 비의 양이 많다. 북동부 내륙 지방인 북한강 유역과 임진강 상류는 강수량이 1,300~1,400mm나 되지만 해안지방 강수량이 900mm 정도 된다. [3]

경제[편집]

경기도는 서부 위주로 발전한 탓에, 동서 차이가 매우 심한 편이다. 경기 동부라고 일컫는 지역들은 서부 지역들에 비해 확연히 푸대접 받는 지역이다. 일단 연천군의 경우에는 휴전선과 접해있는 탓에 북한의 도발 위협에 노출되어 있으며, 경기 동부는 상수원 등의 문제로 개발 제한이 걸려 있거나 교통이 비교적 불편한 편이라서, 투자자들이 개발을 꺼리기 때문이다. 또 군 부대가 많고, 민간 인구도 적다보니 지역 목소리가 작고, 목소리가 작으니 정책 우선순위에서 항상 밀린다. 그나마 경기 동부 중에서 도시 규모가 있고 서울에 붙어있는 성남시, 구리시, 남양주시, 의정부시는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경기도에서 시골인 연천군, 포천시, 가평군, 양평군, 여주시의 낙후도는 인천광역시의 강화군, 옹진군의 낙후도와 거의 대등할 정도로 심각한 편이다. 대신 여주와 가평, 양평 같은 경우 개발이 덜 돼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으면서 서울 및 경기도 도시들과 가깝다는 이점으로 근교 휴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또한 분단국가라는 특수성때문에 군사분계선과 비교적 가까워 군부대가 많은 북부지역은 개발 우선순위에서 늘 밀렸고 이때문에 남북 차이도 매우 심한편이다. 일단 인구가 7,80만명 이상의 준대형급 도시들이 수원, 용인, 성남, 부천, 화성 등 남부에 주로 포진해있다. 북부에는 고양과 남양주 단 두 도시 뿐이다. 다만 북부청사가 있는 의정부의 인구가 가파르게 증가해 약 46만명에 달한다. 또한 대기업 공장, 연구소 등도 남부에 집중되어 있다. 때문에 지속적으로 경기북도와 경기남도로 나누자는 논쟁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분도될 확률이 크다.[2]

산업[편집]

서울특별시에 본사를 둔 기업들의 공장과 연구소가 많이 있다. IT,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이 많이 발달한 편이다. 수도권 집중화로 인해 비수도권 지역에 있던 공장이나 연구소 등이 경기도로 많이 옮겨왔으며 신규 투자도 집중되고 있다. 이는 남방한계선이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수도권 선호가 심해지면서, 기업들 입장에서는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수도권에 위치하는 것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편집]

경제자유구역은 외국인 투자 유치 등을 위해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주어지는 곳을 의미한다. 경기도 내에선 평택 포승지구, 현덕지구, 시흥 배곧지구 등으로 구성된 경기도 경제자유구역이 존재하며 원활한 해운 운송을 위해 바다를 끼고 있다. 수원 군 공항 이전에 따라 경기국제공항이 경기 남부지역으로 선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경기도경제자유구역의 기업들이 해당 시설을 통한 항공 운송으로 경제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게 김 전문위원의 설명이다. 특히 경기 남부지역은 반도체 산업의 집약체인데다 바이오 산업도 최근 이곳에서 급부상하기에 기존 해운 운송에다 항공 운송까지 더해지면 경기도경제자유구역이 혜택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경기국제공항 건설에 따른 교통 인프라 확충도 내다봤다. 일례로 지난해 2월 정부가 건설을 선언한 가덕도신공항(부산광역시 강서구)의 경우 관련 지자체는 부산신항~김해간 고속도로 가덕신공항 연장, 창원 신산업선 등 도로와 철도 인프라 확충을 건의하고 있다. 또 경북 군위·의성군으로 이전이 확정된 대구통합신공항 인근지역 역시 도청~신공항 간선도로와 같은 도로 사업이 추진되는 등 공항 건설에 따른 교통망 확충은 자명하다는 게 김 전문위원 설명이다.[4]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경기〉, 《네이버 국어사전》
  2. 2.0 2.1 2.2 2.3 2.4 경기도〉, 《나무위키》
  3. 지리와 기후〉, 《경기도청》
  4. 이정민 기자, 〈경기국제공항 건설은 경기도경제자유구역 활성화 요소〉, 《경기일보》, 2022-12-06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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