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 P1800
볼보 P1800(Volvo P1800)은 스웨덴의 자동차 제조사 볼보(Volvo)에서 생산했던 후륜구동 스포츠카이자 그랜드투어러, 왜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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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편집]
볼보 P1800은 세단을 주로 생산하던 볼보가 1961년 처음으로 내놓은 스포츠카이다.[1] 당시 볼보 사장이던 군나르 엔겔라우(Gunnar Engellau)가 높은 완성도와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모델을 제작할 것을 지시한 이후 4년간의 연구 끝에 1961년 5월 출시됐다. 디자인은 이탈리아의 디자인업체 카로체리아기아(Carrozzeria Ghia)가 맡았다. 2인승 좌석과 길고 큰 곡선 후드가 특징으로, 고풍적이면서 스포티한 디자인은 출시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지금도 스웨덴을 대표하는 모델로 기억되고 있다.[2] P1800은 당시 협소한 작업 공간으로 제작 공정을 분담하는 특이한 방식을 택했다. 디자인은 카로체리아기아가, 바디 제작은 스코틀랜드 프레스드스틸(Pressed Steel)사가, 섀시 부품은 스웨덴에서, 최종 조립은 잉글랜드 젠슨(Jensen)사가 맡았다. 1,778㏄, 4기통 엔진에 트윈 카뷰레터를 장착한 P1800은 날렵하고 섬세함을 강조한 독특한 디자인과 힘이 부각됐다. 그리고 타코미터 유압 온도계가 일렬로 놓여져 비행기 조종실을 연상케 한 인스트루먼트 패널이나 실내의 접이식 뒷좌석 등 공간 활용성과 적재능력이 우수해 실용성까지 갖춘 차로 평가받았다.[3]
역사[편집]
설계[편집]
볼보의 수장, 군나르 엥겔라우(Gunnar Engellau)는 볼보 차의 이미지가 안전하다는 것에 국한되지 않도록 획기적이고 세련된 디자인의 스포츠카를 원했다. 볼보의 생산 공장은 풀 가동 중이었기에 새로운 자동차를 양산할 수 없었다. 최초의 3점식 안전벨트를 적용한 아마존 시리즈의 주문량을 소화하기에도 벅찬 상황이었고, 그 당시 미국에서 잘 팔리던 포드 스타라이너나 캐딜락 엘도라도 등과 경쟁할 수 있을 만큼 매력적 디자인과 성능을 가진 스포츠카를 설계할 능력도 없었다. 그럼에도 엥겔라우는 스포츠카를 만들어 시장을 확대해야 한다며 이사회를 설득했고, 새로운 스포츠카 설계와 제조를 할 수 있는 사업 파트너를 찾아 나섰다.
그는 마침내 볼보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알릴 스포츠카 P1800를 디자인하고 프로토타입을 제조할 수 있는 회사를 찾았다. 그곳은 이탈리아 토리노에 위치한 프루아(Frua)라는 카로체리아, 즉 자동차 공방이었다. 이 공방은 피아트 1100C와 마세라티 A6 GCS 등 스포츠카를 설계하기도 했던 실력 있는 곳이었다. 이탈리아 공방이 볼보의 이미지를 홍보하고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 P1800의 설계를 맡은 것이다. 카로체리아에는 볼보 역사에 길이 남을 새로운 스포츠카를 디자인한 인재가 있었다. 바로 오랫동안 볼보 디자이너로 활동한 헬머 페테르손의 아들 펠르 페테르손이었다. 그는 뉴욕에서 자동차 설계를 공부한 덕분에 미국 자동차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또한 그의 아버지 덕분에 볼보가 원하는 자동차 디자인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었다. 볼보 최고 경영자였던 엥겔라우는 펠르의 P1800을 선정하고 승인했지만, 이후 헬머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고는 불공정한 경쟁이었다고 여겨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볼보가 펠르가 P1800을 디자인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데 약 50여 년이 걸렸다.
1957년에 마침내 P1800의 디자인 도면이 완성되었지만, 또 다른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P1800을 제조 및 생산할 업체를 못 찾았던 것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엥겔라우는 프루아 공방을 인수한 카로체리아 기아와 협업 중이던 독일의 메이커 카르만(Karmann)을 찾아갔다. 하지만 이 회사는 볼보의 제안을 받을 수가 없었다. 이 회사와 먼저 계약한 폭스바겐은 볼보의 새로운 스포츠카가 경쟁 모델이 될 것을 우려하여 카르만에게 볼보와 계약을 하면 기존 관계를 정리하겠다고 위협했다. 볼보에게 여러 자동차 업체들이 손을 내밀었지만 전 세계 시장이 만족할만한 성능과 생산 능력 그리고 판매 실적을 가진 회사를 찾고 있다는 이유에서 볼보는 거절했다.
프로토타입 공개[편집]
이후 3년간 P1800의 양산 프로젝트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볼보는 은행권과 주주들의 압박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런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1960년 1월 브뤼셀 모터쇼에서 P1800의 2번째 프로토타입이 공개되었다. 공개 후 미완성의 P1800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긍정적이었고 은행권 등의 불만도 자연스레 해결됐다. 이런 호응에 힘을 얻게 된 볼보의 책임자들은 영국에 건너가 젠센(Jensen)이라는 회사와 계약을 맺었다. 이 제조사는 오스틴 힐리 스포츠카를 생산 중이었고 스코틀랜드의 훌륭한 보디 제조업체인 프레스드스틸(Pressed Steel)과 협업 관계에 있던 조립회사였다.
1961년 젠센은 볼보의 스포츠카에 애스턴마틴의 4기통 2.3L DOHC 엔진을 얹은 모델로 좋은 테스트 결과를 볼보에 보고했다. 하지만 볼보는 애스턴 마틴의 비싼 엔진 값 때문에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 납득할만한 100마력 정도의 출력을 내는 4기통 1.8L 엔진을 젠센에게 요청했다. 볼보는 소비자들이 싼값과 스포티한 주행 특성을 보이는 뒷바퀴 굴림 스포츠카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P1800은 영국이나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고가의 애스턴마틴 DB4나 페라리 250 GT 등을 갖고 싶은 소비자들에게는 절반 이상 값싼 현실적 구매 대상이었다.
필름카 활약[편집]
많은 소비자에게 높은 관심을 얻을 무렵인 1962년 초, 영국 ITC TV는 레슬리 채터리스의 장편소설을 TV 시리즈로 기획하고 있었다. 드라마를 준비하는 과정에 전 세계를 다니며 활약하는 주인공과 어울리는 차로 재규어 E타입과 애스턴마틴 DB 시리즈 등이 물망에 올랐지만 선택받지 못했다. 제작자는 영국 브랜드 차보다 스웨덴의 P1800에 더 관심이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디자인하고 뒤 액셀은 미국식이며 유럽 여러 곳에서 부품을 받아 영국에서 조립하는 차가 주인공과 어울린다고 여겼다. 또한 도주와 추격이 잦은 내용상, 오버드라이브 기능을 가진 P1800이 안성맞춤이었다. 그렇게 P1800을 등장 시켜 제작한 드라마가 로저 무어 주연의 세인트(The Saint)였다.
시리즈의 첫 회부터 출연한 P1800은 화제가 될 만큼 형태가 수려했고,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주인공의 애마로서 볼보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주인공을 맡은 로저 무어도 P1800의 매력에 빠져, 직접 사서 관리하고 운행했다. 하지만 P1800의 생산은 드라마의 인기와 달리 순탄치 않았다. 1963년경 드라마와 여러 홍보 마케팅의 효과로 P1800의 주문량은 연일 늘어났지만, 젠센의 품질관리와 노사관계 그리고 물류 등 여러 문제가 발목을 잡히며 생산량을 늘릴 수가 없었다. 볼보는 젠센과 신뢰 관계를 유지할 수 없어, 최초 계약한 1만 대의 생산량을 6,000대로 조정하고 계약을 해지하기로 했다. 이후 P1800의 조립 라인은 스웨덴 예테보리와 룬드비베르켄(Lundbyverken)으로 이전했다.
파생 모델[편집]
이때부터 생산된 P1800은 이름 뒤에 스웨덴 생산을 뜻하는 S자가 더해졌다.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었다. 출력과 라인도 조금씩 바뀌었다. 예를 들면 1970년 생산된 P1800 E는 보쉬의 연료 분사 장치를 단 B20E 엔진을 얹은 모델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독일어 아인슈프리충(Einspritzung)의 첫 글자인 E를 붙여 생산되었다. 또한 P1800은 볼보 최초로 사륜 모두 디스크 브레이크가 적용된 첫 모델이기도 했다. 미국 시장에서 백설공주의 관(Snow White’s Coffin)이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한 P1800 ES는 세련된 왜건이었지만 관이라 별명처럼 P1800의 이름이 붙은 마지막 모델이 되었다. 1973년 볼보는 자신의 자동차 역사상 가장 독특하고 희귀한 뒷바퀴 굴림 모델을 단종시켰다. 그 이유는 미국의 배기가스에 관한 새로운 기준에 맞는 모델을 만드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P1800은 단종되었다.[4]
특징[편집]
기네스[편집]
P1800은 볼보자동차 모델 중 가장 두터운 마니아 층을 갖고 있다. P1800의 가격이 오르고, 부품들이 단종되는 어려움을 감안하면서까지 이어지는 차량 거래는 그 인기를 실감하게 한다.[5] P1800의 대표적인 마니아로 손꼽히는 영국의 아이빈 골든은 1966년 빨간색 볼보 P1800S를 구입해 미국 48개 주와 캐나다 그리고 유럽의 다섯 나라를 여행하기도 했다. 그는 46년 동안 P1800S와 함께 달려왔다.[6] 25살이 되던 1966년 P1800을 당시 자신의 일년치 월급인 4천 150달러를 들여 구입해 미국 대륙 구석구석을 누비기 시작했다. 그의 자동차 여행은 대부분 오토쇼에 가는 것이었지만 맛 좋은 커피를 찾아 다른 주로 여행을 가기도 하는 등 그의 일상생활은 언제나 P1800과 함께였다.[7] 매년 평균 8만5천 ~ 10만 마일을 달린 고든은 21년 만에 100만 마일(약 160만km)의 주행 거리를 돌파했으며 2002년에는 200만 마일(약 321만 km)을 달성하며 세계최장거리 주행 기록을 보유하게 됐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300만 마일(482만8천km) 돌파라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여전히 달리고 있다.[8]
로저 무어 애마[편집]
1960년대의 007 제임스 본드인 로저 무어(Roger Moore)[9]의 애마로 유명한 모델이 바로 P1800모델이다. 기존에 볼보는 단순히 안전에만 집중한, 단단하고 안전한 차량을 만드는 자동차 회사로만 유명했지, 독특하고 세련된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브랜드였으나 P1800 모델이 그 인식을 전환 시켜준 모델이다. 또한 영국TV 시리즈 더세인트(The Saint)에 영화배우 로저 무어의 차로 등장하기도 했다. P1800에 반한 로저 무어가 스웨덴 여성과 결혼하고 볼보박물관을 방문해 친필 사인을 남긴 일화는 유명하다.[10] 이렇게 로저 무어의 애마로도 유명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P1800이라는 모델을 알릴 수 있게 되었고 볼보도 세련되면서 스포티한 모델을 잘 만드는 브랜드라는 인식을 전달하는 것에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의 P1800은 스웨덴의 대표적인 스타일 아이콘으로 불리며 볼보의 감성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형성하는데도 많은 기여를 한 모델이다.[11]
각주[편집]
- ↑ 김상권 현대ㆍ기아차 연구개발본부장 사장, 〈(名車 이야기) 볼보 'P1800' ‥ 실용적 스포츠카 '명성'〉, 《한국경제》, 2006-04-02
- ↑ 〈볼보 P1800 - 최장거리를 주행한 자동차〉, 《네이버캐스트》
- ↑ 디지털뉴스팀 안광호 기자, 〈11. 제임스 본드의 애마, 볼보 P1800〉, 《경향신문》, 2011-12-23
- ↑ 자동차 칼럼니스트 윤영준, 〈예테보리가 낳은 기념비적 스포츠카, 볼보 P1800〉, 《라라클래식》, 2020-08-17
- ↑ 박진우 기자, 〈로저 무어의 차 '볼보 P1800' 탄생 50주년〉, 《한국경제》, 2011-05-30
- ↑ 최기성 기자, 〈볼보 P1800, 주행거리 450만km로 기네스북 올라〉, 《매일경제》, 2011-05-30
- ↑ 박진솔 기자, 〈볼보 P1800, 최장거리 기네스 기록 보유 화제〉, 《오토헤럴드》, 2012-07-16
- ↑ 오종훈 기자, 〈476만 km 달린 볼보 P1800〉, 《오토다이어리》, 2012-07-16
- ↑ 〈로저 무어 (1927년생 배우)〉, 《위키백과》
- ↑ 황재원 기자, 〈볼보, 클래식한 스타일 ‘P1800’ 탄생 50주년〉, 《탑라이더》, 2011-05-30
- ↑ Purnicb, 〈300만 마일을 달린 차 볼보 P1800〉, 《개인 블로그》, 2024-01-16
참고자료[편집]
- 〈볼보 P1800 - 최장거리를 주행한 자동차〉, 《네이버캐스트》
- 〈로저 무어 (1927년생 배우)〉, 《위키백과》
- 김상권 현대ㆍ기아차 연구개발본부장 사장, 〈(名車 이야기) 볼보 'P1800' ‥ 실용적 스포츠카 '명성'〉, 《한국경제》, 2006-04-02
- 박진우 기자, 〈로저 무어의 차 '볼보 P1800' 탄생 50주년〉, 《한국경제》, 2011-05-30
- 최기성 기자, 〈볼보 P1800, 주행거리 450만km로 기네스북 올라〉, 《매일경제》, 2011-05-30
- 황재원 기자, 〈볼보, 클래식한 스타일 ‘P1800’ 탄생 50주년〉, 《탑라이더》, 2011-05-30
- 박진솔 기자, 〈볼보 P1800, 최장거리 기네스 기록 보유 화제〉, 《오토헤럴드》, 2012-07-16
- 오종훈 기자, 〈476만 km 달린 볼보 P1800〉, 《오토다이어리》, 2012-07-16
- 디지털뉴스팀 안광호 기자, 〈11. 제임스 본드의 애마, 볼보 P1800〉, 《경향신문》, 2011-12-23
- 자동차 칼럼니스트 윤영준, 〈예테보리가 낳은 기념비적 스포츠카, 볼보 P1800〉, 《라라클래식》, 2020-08-17
- Purnicb, 〈300만 마일을 달린 차 볼보 P1800〉, 《개인 블로그》, 2024-01-16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