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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3일 (화) 23:0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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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잡주(펀잡어: ਪੰਜਾਬ) 또는 펀자브주는 인도 북서부에 위치한 주이다.[1][2] 같은 명칭의 펀잡주가 파키스탄에도 있기 때문에, 인도 펀잡주라고 부른다.
개요
펀잡주의 면적은 50,362km²이며 인구는 2774만 명이다. 서쪽으로는 파키스탄 펀자브주와 접하며 북쪽으로는 잠무카슈미르주, 북동쪽으로는 히마찰프라데시주, 남쪽으로는 하리아나주와 찬디가르, 남서쪽으로는 라자스탄주와 접한다. 주도인 찬디가르는 하리아나 주의 주도와 연방 직할지를 겸한다. 찬디가르는 펀자브 주에도, 하리아나 주에도 속하지 않은 별도의 지역이다.
지명의 어원은 페르시아어로 panj(five)+āb(water)로 '다섯 개의 물이 흐르는 곳'을 뜻한다.
바스마티 쌀이 특산물로 유명하며 다른 지역과 다르게 펀자브 지역에서 생산되는 쌀은 지역 내에서 자체적으로 소비되기보다는 다른 나라로 수출되는 편이다. 밀 농사와 벼농사 모두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펀잡주의 주요 종교는 시크교인데 이는 힌두교를 주로 믿는 일반적인 인도의 모습과 다른 편이다. 암릿차르에 있는 시크교의 성지 황금사원이 유명하다.
인도에서 농업이 발달한 지역이며, 밀·목화·옥수수·쌀·콩류·사탕수수의 생산량이 많다. 농경을 위한 관개 사업은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이므로 최근에는 수틀레지강에 거대한 댐이 건설되고 베아스강 개발계획도 진척되고 있다. 중간 규모의 공업도 발달하여 방직·시멘트·식품·자전거·종이류·전기기구도 많이 생산된다. 이밖에 물소·양·염소 사육도 활발하다.[3][4]
역사
펀자브 역사는 파키스탄 서부 펀자브와 인도 동부 펀잡으로 구성된 인도 북서부 아대륙의 지정학적, 문화적, 역사적 지역인 펀자브 지역의 과거 인류사를 설명해 주고 있다. 펀자브에 사람이 거주했다는 가장 초기의 증거는 기원전 774,000년에서 기원전 11,700년 사이에 소안 문화가 살았던 인더스강과 젤람강 사이의 포타르강 소안 계곡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대는 석기와 부싯돌 도구의 잔해가 발견된 제2빙하기의 첫 번째 간빙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펀자브 지역은 청동기 시대 하라파 문명이 번성했던 곳으로 그가 문명의 가장 초기 발상지 중 하나였다. 기원전 3,000년경과 1,000년 후, 기원전 1500년에서 500년 사이에 이 지역을 휩쓸었던 거대한 인도-아리안 이주와 함께 급속히 쇠퇴했다. Indo-Aryan 이주는 기원전 500년까지 지속된 Iron Age Vedic 문명을 탄생시켰다. 알렉산더 대왕의 침공과 포루스와 물탄의 마리 민족과의 갈등 이후, 찬드라굽타는 마우리아 제국을 세웠다. 쇠퇴 후 야바나, 사카족 및 Kushan 부족은 펀자브에서 왕국을 세웠다. 이 왕국의 통치자는 불교의 후원자였으며 탁실라는 학문과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북부 펀자브의 불교 간다라 문명은 서기 2세기에서 3세기까지 쿠샨 제국 치하에서 절정에 달했다. 기원전 4세기부터 서기 4세기까지 펀자브의 동부 지역은 인도-그리스 왕국을 물리치고 자체 동전을 발행한 여러 공화국(야우데야, 트리가르타스, 오둠발라, 아르주나야나)에 의해 통치되었다. 펀자브에 대한 파괴적인 훈족의 침공은 5세기와 6세기, 결국 바르다나 왕조에 의해 격퇴되었다. 대부분의 서부 펀자브는 투르눅에 의해 통합되었다. 중세 초기의 오디 샤히 왕국. 8세기부터 12세기까지 토마라 왕조와 카토크 왕조가 펀자브 동부를 통치했다. 우마이야 칼리프 왕조가 물탄까지 남부 지역을 정복했을 때 펀자브에 이슬람이 설립되었다. 칼리프는 855년 물탄 토후국 하에서 칼리프로부터 독립했다. Ghaznavids는 1025년에 이 지역을 정복했고, 그 뒤를 이어 델리 술탄국이 통치했다. 랑가르 술탄국은 15세기에 펀자브 남부 대부분을 통치했다. 서기 1526년에 건국된 무갈 제국은 광대한 문화 및 건축 유산을 가지고 펀자브를 떠났다. 라호르는 무굴 제국 시대에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16세기에 시크교는 구루 나나크(Guru Nanak)에 의해 중앙 펀자브(Punjab)에서 설립되었고 많은 추종자들을 끌어들였다. 18세기 무굴 제국의 쇠퇴로 인한 오랜 무정부 상태 이후, 시크 제국은 1799년에 펀자브 지역의 많은 부분을 통합했다. 이 지역은 2차 앵글로-시크 전쟁과 펀잡 주는 1857년에 설립되었다. 1947년 펀자브는 대량 폭력의 한가운데서 분할되었으며 라호르를 포함한 대부분의 펀자브는 현재 파키스탄의 일부에 속해 있으며 일부는 인도에 속해 있다.[5]
종교
2011년의 조사에 따르면 인도 대부분의 지역이 힌두교를 믿는 것과는 다르게 시크교가 57.69%, 힌두교가 38.49%, 이슬람이 1.93%, 기독교가 1.25%로 시크교가 다수이다. 다만 시크교도들의 대부분은 농촌에 거주하고 있어서, 대체로 도시 지역일수록 힌두교의 비중이 훨씬 더 높다.
시크교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일부 시크교도들은 펀자브 지방을 중심으로 독립해 칼리스탄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파키스탄 접경지역에다가 비옥해서 식량 안보에도 중요한 펀자브 지방을 인도에서 순순히 독립시켜줄리가 만무하다. 또한 시크교 신자들은 옛날부터 인도 사회에서 군인이나 경호원, 사업가 등으로 출세하여 인도의 상류층이 된 사람이 많고, 거기에 시크교도의 절대 다수는 자신은 인도인이라는 정체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어서 독립운동에 회의적이거나 아예 관심이 없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편이다. 게다가 전술했듯 비 시크교도들의 비중도 40%가 넘어서 시크교도들이 독립하겠다고 나오면 이들, 특히 힌두교도들이 격렬하게 반발할 것이 뻔하다. 따라서 현재는 독립보다는 자치 국가 수준의 자치나 낙후된 지역경제의 발전을 요구하는 여론이 더 많다.
시크교
시크교는 15세기 인도 펀자브 지방에서 주로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 창시된 종교이다.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와 같은 다르마 계통의 종교로 구분된다. 중세 인도의 악폐습을 개혁하려는 일종의 인도판 종교 개혁 움직임을 보이며 널리 전파되었다. 덕분에 후술되어있듯 인도의 주요 종교들에서 전근대적인 안 좋은 점들을 제거하고 좋은 점을 혼합한 이상적인 느낌도 드는 종교이다.
2020년대 기준 신자는 약 3천만 명, 성도는 인도 북부에 위치한 암리차르로, 시크교의 총본산인 암리차르 황금사원이 위치한다.
시크교도 특유의 머리 위 둥그렇게 칭칭 두른 터번 파그리(pagri)는 그들의 상징이다.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는 무슬림이 터번을 많이 하는 줄 아는데, 사실 이슬람권에서는 시아파의 일부만이 의무적으로 터번을 착용한다. 실제로 무슬림들이 가장 많이 착용하는 모자는 터번이 아니라 타키야(طاقية, taqiyah)라고 부르는 하얀 니트 모자로, 무슬림은 아니지만 셰프 정창욱이 착용하는 게 바로 그거다. 이슬람의 영향도 받았기에 겉으로 보이는 복장이나 외모 내지는 사원 건축 양식을 보면 이슬람교와 같은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인도 계통의 종교이기 때문에 각종 단어들이 산스크리트어로 된 것들이 많으며 개념적으로도 불교나 힌두교처럼 다르마나 윤회사상 같은 것들이 등장한다.
주요 도시
암리차르(Amritsar)
암리차르는 인도 서부 펀잡주의 도시로 파키스탄의 펀잡주에 속하는 라호르로 가는 길목에 있다. 암리차르는 시크교의 성지로 시내 중심에는 가장 유명한 암리차르 황금사원이 위치해 있다. 도시는 시크교의 4대 구루(Guru, 지도자)인 람 다스(Ram Das)에 의해 1577년에 건설되었다.
시크교는 카스트제도를 부정하고 여성차별 철폐,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장점만 취하려 한 일종의 인도판 종교개혁 운동의 산물로, 전 세계의 신흥종교가 으레 그랬듯 시크교는 무굴제국 치하에서 엄청난 박해를 받았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1947년에 종교 문제로 갈라질 때 파키스탄 땅에 살던 수천만 명의 시크교도가 인도 쪽으로 넘어와 이 도시에 정착했다.
시크교의 성지라고 불리우는 도시라 그런지 힌두교와 시크교의 비율이 막상막하로 시크교도 특유의 터번을 쓰고 있냐 안 쓰고 있냐로 시크교도인지 힌두교도인지 구별이 가능한데 아무래도 자신들 성지에 방문한 외국인 손님이라 그런지 시크교도들이 훨씬 친절한 편이다. 릭샤 한 번 타려 해도 기사 터번 유무에 따라 부르는 기본 요금부터가 다르다.
파키스탄 라호르로 이어지는 국경선 와가보더(Wagah Border)가 시내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데, 한국에서도 TV나 인터넷으로 알음알음 알려진 '인도 국기하강식'으로 유명한 곳이다. 나름대로 판문점 비슷한 곳인데 엄격 진지 근엄한 한국 판문점과는 천지차이 분위기. 두 나라는 라이벌 관계로 여기서 서로 자존심 배틀을 매일 벌이는데 거의 공연에 가까운 과장된 퍼포먼스 대결을 한다. 관객석에서 내외국인들은 자유롭게 구경하는데 양측이 A매치 응원하듯 환호하고 응원구호를 외치고 국기를 흔들면서 애국심을 불태운다. 인도-파키스탄 국경지대는 진짜로 위험한 북쪽 카슈미르 같은 지역도 있지만 여기는 진지하게 분쟁이 일어나는 곳은 아니고 인도 다른 데와 똑같은 여행유의 지역이다.[6]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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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 〈펀자브주 (인도)〉, 《위키백과》
- 〈인도/행정구역〉, 《나무위키》
- 〈펀자브(인도)〉, 《나무위키》
- 〈인도 펀자브〉, 《네이버 지식백과》
- 〈암리차르 〉, 《나무위키》
- 〈펀잡의 역사〉, Academic accelerator
같이 보기
남아시아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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