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랑가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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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랑가나주(텔루구어: తెల౦గాణ, 우르두어: تلنگانہ)는 인도 중남부에 있는 주다.[1][2]
개요[편집]
텔랑가나주의 면적은 112,077km²이며 인구는 3500만명이다. 인도를 구성하는 29개 주 중의 하나로 남부에 위치한다. 북쪽으로 마하라슈트라주, 북동쪽으로 차티스가르주와 오디샤주, 남동쪽으로 안드라프라데시주, 서쪽으로 카르나타카주와 경계를 이룬다. 주도(州都)는 주의 중서부에 위치한 하이데라바드이며 그 외 주요 도시로는 와랑갈, 니자마바드, 마부브나가르, 아딜라바드, 카림나가르, 만체리알 등이 있고 하위행정구역은 31개의 지구(地區, district)로 나뉜다.
안드라프라데시와 함께 텔루구인이 다수인 주로 주도는 하이데라바드로 텔루구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이 외에 하이데라바디 무슬림들이 쓰는 우르두어도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인구의 다수가 지방에 거주하고 약 30%가량이 도시에 거주한다. 언어는 안드라프라데시주를 포함하여 인도 남동부에서 주로 사용하는 텔루구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소수의 인구가 우르두어와 힌두어를 사용한다. 종교는 힌두교(85%)가 가장 우위이고 다음으로 이슬람교(12.7%)를 믿는다.[3][4]
자연환경[편집]
북부는 데칸고원의 중부에 위치하고 남부는 골콘다 고원에 자리잡고 있다. 삼림지가 전체 면적의 25% 가량을 차지하며 평균 해발고도는 약 500m이다. 주요 수원으로는 북부를 흐르는 고다바리강과 남부의 크리슈나강이 있다. 반건조기후로 계절의 구분은 건조하고 무더운 하절기와 강우기로 나뉘며 하절기는 3~6월, 강우기는 6~9월 경이고 연간 강수량은 약 900mm이다.
역사[편집]
인도 독립 이전에는 하이데라바드 왕국의 중심 지역이었다. 현재 텔랑가나주의 행정구역이나 정체성은 모두 하이데라바드 왕국 시절에 정립된 것이 이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이데라바드는 왕족과 관리들은 이슬람을 믿었지만 주민들은 힌두교가 다수였다. 영국 식민지 시절에도 하이데라바드 왕국은 존속되었으며 영국령 인도 제국 내에서 가장 현지 군주의 권리가 강하고 부유했으며 인프라가 발달한 지역이었다.
인도의 독립 이후 인도 정부는 하이데라바드를 인도에 편입시킬 것을 주장했다. 당시 니잠 아사프 자 7세는 반대하고 1947년 6월, 하이데라바드 왕국의 독립을 선언한다. 1948년 폴로 작전이라 불리는 인도군의 공격으로 하이데라바드 왕국은 무너지고정작 힌두교 왕족에 무슬림 주민인 카슈미르도 집어삼킨건 내로남불 하이데라바드 주가 되었다. 이후 1956년 언어권에 따라 주를 재편성하는 과정에서 인도 정부는 주정부 재조정 위원회의 합병불가 의견을 무시한 채 하이데라바드주를 언어권에 따라 해체하여 텔루구어를 사용하는 텔랑가나 지역을 같은 텔루구어권이었던 안드라 주와 통합해 안드라프라데시주를 만들었다.
텔랑가나주 독립[편집]
텔랑가나 주 설립을 위해 반정부 운동이 벌어졌으며 텔랑가나주 분리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텔랑가나 라슈트라 사미티(TRS)라는 지역 기반 최대 정당 및 지역 정당 몇 개 차원의 분리 요구일 뿐 실지 전망은 분리 전과 후가 다른 것이 없어 실질적인 주 내 주민 지지는 얻지 못하고 있었다. 이후 분리주의자들이 강경 노선을 걷자 본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던 분리주의에 대한 민심 이반이 가속화 됐다. 인도 중앙정부는 이러한 분리주의 움직임에 무시정책으로 응대하고 있다. 무굴 제국이 성립되기 전에 인도 아대륙은 다수의 개별 독립왕국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텔랑가나주를 독립 시킨다면 타 주에 형평성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텔랑가나를 분리시키면 다른 주도 연쇄적으로 들고 일어날 거이다. 거기다 독립이 된다면 하이데라바드는 텔랑가나주의 주도(州都)가 될 건데, 안드라 프라데시주에서 가장 발전한 이 알짜배기 도시를 주지사가 포기할리 만무하기에 분리주의자들이 원하는 독립은 요원한 일이 될 듯 했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가 갑자기 2013년 8월 여당이 표를 얻기 위해 주 분리를 공약하여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종적으로 2014년 6월 2일자로 분리하는 법안이 인도 의회를 통과, 3월에 공포되었다. 하지만 분리된 이후에도 여론은 영 안 좋다. 오죽하면 자기 지역 공무원 수 늘리고 의회 새로 놓으려고 이 민폐를 끼쳤다는 소리가 나왔겠는가. 그리고 안드라 프라데시 주의, 특히 주도인 하이데라바드의 기반은 안드라 지방 출신 사람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 만약 텔랑가나 지역 사람에게 특혜를 주는 등 차별을 한다면 몽땅 철수해버리겠다고 벼르는 안드라 지방 사람들이 상당하다.
이 독립 운동으로 이익을 본 사람은 있다. 텔랑가나 독립을 주도한 K. 찬드라셰카르 라오(Kalvakuntla Chandrashekar Rao, 줄여서 KCR)과 그 지지자들. 분리 독립을 주도해서 그런지 결국엔 텔랑가나의 첫 주지사가 되었다. 전임자들이 간신히 쌓아 놓은 인프라를 독립 운동으로 몽땅 말아 먹었다고 뒤에서 욕을 먹지만 안드라 프라데시 주의 비자야와다(Vijayawada)와 군투르(Guntur) 지역 사람들. 텔랑가나 분리 후의 안드라 프라데시 주의 주도로 지정되면서 땅값이 왕창 뛰었다. 그 전에는 그냥 그저 그런 도시였지만. 물론 땡잡은 사람들의 뒤에는 손해를 본 사람도 있었다. 시위 등으로 제대로 영업을 못 하거나 KCR이 회사들에 대놓고 금전적인 지지를 요청하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짐싸들고 이전한 회사가 상당히 있으며, 이렇게 경제 기반이 흔들리면서 인프라도 무너졌다. 게다가 교육도 막장이 되었다. 독립 운동 때문에 교육기관들이 휴교한 기간을 합치면 달 단위가 된다. 대학도 학내 시위로 제대로 강의를 못 했고, 수업 일수 모자라서 졸업 못한 학생들도 상당수다. 이 후유증을 다 치료하려면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거기다 전임자인 N. Chandrababu Naidu(줄여서 NTR NCR)가 쌓아 놓은 업적이 주민들에게 굉장히 고평가되어서 어지간히 잘 하지 않으면 더더욱 비교될 것이다. 분리가 확정된 이후 잔류한 지역만을 지칭할때는 시만드라(Seemandhra)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기존의 안드라프라데시주의 주도 하이데라바드는 텔랑가나주 지역에 포함된 도시로, 1589년 골콘다 왕조의 수도로 설립된 이래 무굴 제국에 잠시 편입되었다가 1724년부터 하이데라바드 왕국의 수도로 번영하였다. 하이데라바드 시는 텔랑가나 주의 설립 후 10년간 안드라프라데시주의 주도를 겸하고, 2024년부터 텔랑가나주의 독립된 주도로 지정될 예정이다.
산업[편집]
주된 산업은 농업과 광업이며 주요 농산물은 열대과일과 수수·콩류·옥수수·쌀·면화가 생산된다. 광물은 석탄을 가장 많이 채굴하고 그 외 주석과 보크사이트·석회석·중정석 등이 채광된다. 주도 하이데라바드에서는 정보기술산업과 화학공업 등의 산업이 발전하였다.
관광[편집]
국립공원은 총 3개로 KBR(Kasu Brahmananda Reddy), 마하비르 하리나 바나스탈리(Mahavir Harina Vanasthali), 마루가바니(Mrugavani) 국립공원이 소재한다. 16세기 골콘다 왕국 시대의 이슬람 사원을 비롯하여 다수의 문화유산이 하이데라바드 시에 집중되어 있다. 대표 유적으로는 와랑갈 요새 터(Fort of Warangal)와 팔라크누마 궁(Falaknuma Palace), 차르미나르 모스크(Charminar Mosque)가 있다.
여담[편집]
하이데라바드의 비르야니가 참 유명하다. 하이데라바드의 어느 식당에 가서 주문을 하던 맛은 기본은 해 줄 정도다. 인도의 다른 지역에서도 Hyderabadi Biryani 하면 알아준다. 하이데라바드는 남인도 지방이지만 무슬림 왕족들의 영향으로 북인도 요리의 영향도 적지 않게 받아서 그런지, 비르야니 외에도 다른 음식들도 맛있는 것으로 유명한 지방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마이크로소프트의 3대 CEO인 사티아 나델라가 안드라프라데시 소속이던 시절의 하이데라바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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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남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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