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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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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위치

나지란주(아랍어: نجران)는 사우디아라비아 남부에 위치해 있는 주이다. [1][2]

개요[편집]

나지란주의 면적은 149,511㎢이며 인구는 505,652명(2010년)이며 주도는 나즈란이다. 예멘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북쪽으로 리야드주, 동쪽으로 동부주, 서쪽으로 아시르주, 동쪽으로는 아시르주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하위행정구역은 8개 지구로 나뉘고 이 지구는 알카르크히르(Al Khirkhir), 바드르알자눕(Badr Al Janub), 후부나(Hubuna), 쿠바시(Khubash), 나지란(Najran), 샤루라(Sharurah), 타르(Thar), 야다마(Yadamah) 지구로 구성된다. 주도(州都)는 주 남단, 예멘과의 국경에 위치한 동명의 나지란이다. 20세기 초까지 예멘과의 국경분쟁지역에 해당했다. 1934년 알타이프 조약(Treaty of Al-Taif)에 의해 국경을 확정하여 1930년대 예멘 영토에서 사우디아라비아로 편입되었다. 주요 도시는 샤루라(Sharurah) 등이 있다.

서부는 아시르 고원, 중부는 나지란 고원, 동부는 룹알할리 사막에 위치한다. 비잔티움제국 시대(525~570) 대상이 드나들던 지역으로 고대부터 유향의 주 생산, 거래지였다. 10세기 이후 이슬람화가 진행되었고 옛부터의 토착민족은 이슬람교 시아파를 믿는 얌족(Yam)이다. 봄에 강수량이 많고 1982년에 완공된 나지란 댐(Najran Valley Dam)에 이를 저장하여 농업용수로 이용한다. 곡물 생산이 활발하며, 그 외 목축업이 이루어진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6세기의 고대유적 터인 오크두드(Okhdood)가 있다.[3]

교육[편집]

나지란대학교[편집]

나지란대학교는 사우디아라비아 나지란에 있는 공립 종합대학교이다. 나지란대학교는 킹칼리드 대학교에 속한 지역대학이었다가 2006년 압둘라 빈 압둘라지즈 사우디 국왕에 명령에 의해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종합대학교로 전환됐다. 지역대학은 주로 의학과 컴퓨터과학 등 직업교육에 치중하는 대학이다.

대학교로 승격한 것은 사회와 고용시장의 수요에 부응하는 인재를 양성하고 현대기술의 최적화와 응용연구를 통해 사우디의 지속적인 발전에 기여하자는 취지였다. 나지란대학교는 나지란 동쪽 외곽에 18㎢ 면적의 캠퍼스가 있다. 사우디에서 가장 넓은 캠퍼스로 남자 캠퍼스와 여자 캠퍼스로 나뉘어 있다. 학술조직도 14개의 남자대학과 10개의 여자대학으로 나뉘어 있다. 2023년 QS 세계대학순위에서 아랍지역 대학 가운데 121-130위권으로 평가됐다.

나지란대학교는 새로운 인터넷 포털시스템을 통해 학생과 교수진 등 대학교 구성원들의 소통을 강화해 교육효과를 향상시키고 있다. 이 시스템을 이용해 학사행정과 온라인교육이 이뤄진다. 일반시민들도 인터넷 포털에서 학교정보를 볼 수 있고 학교에 대해 민원을 넣을 수 있다.[4]

나즈란[편집]

사우디아라비아 서남부 나지란주의 주도이며 압하에서 동남쪽으로 150km 떨어진 협곡 분지에 위치한다. 나지란으로도 불리고, 인구는 약 55만 명이다. 예멘 국경에서 불과 7km 떨어져 있고, 1934년 이전까지는 예멘계 국가들의 영토였기에 지금도 예멘 문화가 짙게 남아 있다. 쿠란에도 언급될 만큼 유서가 깊은 도시이며, 향료 무역의 거점으로 발달하였다. 옛 지명은 알 우크두드(الأخدود)이며, 와디 나즈란 남안에 유적이 남아있다. 현대 도시는 강의 북안에 자리한다. 17-20세기 초에는 예멘계 나즈란 토후국의 수도로 번영하였고, 1934년 사우디아라비아에 병합되었다. 시가지가 해발고도 1200m에 자리하였기에 여름에도 40도 미만이고, 겨울에는 5도까지 떨어지는 등 압하나 타이프와 함께 사우디에서는 시원한 곳에 속한다.

역사적으로 나즈란은 남부 아라비아의 기독교 중심이었고, 6세기 초엽 힘야르 왕국의 박해로 많은 순교자를 배출하였다. 20세기 초까지는 유대인 공동체도 있었다. 현재는 카티프, 호푸프와 함께 사우디에서 쉬아 무슬림이 다수인 몇 안되는 도시이다. 다만 전자와 달리 쉬아 중에서도 이스마일파가 다수를 이루고, 북부 예멘의 주류인 자이드파 공동체도 존재하며 수니파 역시 존재한다. 예멘식 직물업이 발달하였고, 카바에 씌우는 키스와가 바로 나즈란에서 제작된다. 시내에는 옛 진흙 건물들이 남아있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낸다. 동부의 신도시 기준 동쪽 10km 지점에 나즈란 공항이 있고, 그 옆에는 나즈란 대학이 위치한다. 북쪽 60km 지점에는 202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히마 암벽화가 있다. 다만 2010년대 들어 예멘 내전에 사우디가 개입한 결과, 이따금씩 후티 반군이 국경을 넘어 반격하고 미사일을 날리는 등 긴장이 고조되어 출국 권고 지역이 되었다.

지명 나즈란의 유래에 대해서 현지인들은 첫 정착민인 나즈란 빈 자이단 빈 사바 빈 야흐줍 빈 야룹 빈 카흐탄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다만 상술했듯이 본래 지명은 알 우크두드 (الأخدود)였다. 고대 예멘에서 히자즈, 시리아, 이집트, 바레인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모두 이곳을 지났기에 도시는 번성하였다. 기원전 685년 마리브를 중심으로 한 사바 왕국의 카르빌 와타르 1세가 일대를 점령하였다. 사바 왕국 시기에 도시는 라그마트로 불렸고, 기원전 510년 국왕 이티아마르 바인에 의해 파괴당하기도 하였으나 곧 재건되었다. 그러던 기원전 25년, 로마의 이집트 총독 아엘리우스 갈루스는 예멘 (아라비아 펠릭스) 원정에 나서 나즈란에서 현지 군대를 격파하고 도시를 점령하였다. 갈루스는 로마인들에게 '네그라나'라 부른 나즈란을 거점으로 삼고 남하하였으나 마리브 함락에 실패하고 후퇴하였다. 이렇듯 나즈란은 예멘의 북쪽 관문 역할을 하였고, 군사적으로 중요한 거점이었다.

275년에 사바 왕국 대신 그 방계 가문이 세운 힘야르 왕국이 예멘의 패권국으로 떠올랐고, 나즈란 역시 힘야르 군주 샴마르 야흐리쉬에게 점령되었다. 다만 독립성이 강했던 나즈란 주민들은 바다 건너 악숨 왕국에 복속하며 자립을 시도하였고, 이에 후자에선 총독 스클름클름을 파견하였다. 다만 샴마르의 후계자인 일샤라흐 야흐디브에게 진압되었다. 328년에는 라흠 왕국의 군주 이므르 알 카이스 빈 암쿠의 공격을 받기도 했던 나즈란은 5세기 초반에야 확실히 힘야르 왕국령이 되었다. 한편 악숨 왕국의 영향력은 여전하였고, 320년대 악숨이 기독교를 수용하자 나즈란에도 역시 기독교가 침투하기 시작하였다. 354년에는 로마 황제 콘스탄티우스 2세에 의해 파견된 소코트라 섬 출신의 아리우스파 주교 '인도인' 테오필로스가 남부 아라비아에 파견되어 기독교를 포교했다고 한다. 다만 일대의 패권국인 힘야르 왕국은 380년 유대교를 국교로 삼았고, 이는 향후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7세기 들어 히자즈에서 발흥한 이슬람은 아라비아 반도 전역으로 팽창하기 시작하였다. 무함마드는 통상적으로 군사 행동에 앞서 서신을 보내어 개종을 권유했는데, 동로마 제국이나 사산 제국 외에 나즈란에도 칼리드 이븐 알 왈리드와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가 서신을 전달하였다. 나즈란 주민들이 거부하자 무함마드는 이례적으로 알 무기라를 재차 파견해 이슬람을 더 설명하게 하였다. 그러자 나즈란측 역시 킨다 부족장 압둘 마시흐, 주교 압둘 하리스 등 45인의 학자들을 포함한 60인의 대표단을 메디나로 파견하였다. 무함마드는 일부 무슬림들의 반발에도 대표단이 모스크에서 기도할 수 있게 허가하였고, 그들은 동쪽을 보고 예배를 올렸다. 무함마드가 제공한 숙소에 머물며 대표단은 신학 토론을 벌였다. 무함마드는 기독교의 가르침이 이슬람과 양립할 수 없고, 이슬람이 참된 종교라고 결론내렸다. 양측은 서로를 설득하는데 실패했지만, 친선을 맺었다.

페르시아인 이븐 알 무자위르에 의하면 서기 1000년 경에도 나즈란은 무슬림, 기독교도, 유대교도가 모두 인구의 1/3씩 구성되었다고 한다. 다만 13세기를 끝으로 나즈란의 기독교 공동체는 소멸하였고, 유대인 공동체만 이어졌다. 기독교도 구역이던 알 우크두드는 자이디 이맘국과 라술 왕조 간의 전란으로 폐허가 되었고, 와디 건너편에 세워진 나즈란은 이슬람 문화가 깊게 배여든 새로운 도시가 세워졌다. 중세 시기 나즈란은 무함마드 시대부터 철제 무기 제조로 유명했는데, 점차 유대인 수공업자들을 중심으로 한 직물업이 더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중세 시기 나즈란은 함단 왕조의 지배를 받았고, 그 국교이던 쉬아 이스마일파가 유입되었다. 11-12세기 이스마일파가 분열되던 때에 함단 조는 파티마 왕조와 마찬가지로 하피지 계열을 택하였다. 1174년 아이유브 왕조가 함단 조를 멸한 후 나즈란은 대부분의 시기 서남쪽으로 60km 떨어진 사다를 기반으로 한 자이디 이맘국에 속하였다.

사우디 국왕 압둘아지즈는 셰이크 자비르 아부 사크를 통해 나즈란의 다양성을 존중하기로 합의하였다. 압둘아지즈는 1942년 나즈란에 아마라 궁전을 세우는 등 애정을 보였고, 이는 후에 총독궁으로 활용되었다. 한편 천년 이상 공존하던 유대인들은 사우디 지배 후 탄압이 심해지자 1949년 10월, 국경을 넘어 아덴으로 피신하였다. 압둘아지즈는 이들의 반환을 요구했지만 예멘의 야흐야는 그들이 예멘계라며 거부하였다. 그후 20세기 후반 들어 나즈란은 신도시 개발지로 선정되어 기존 시가지 동쪽에 현대식 도시가 세워졌다. 따라서 1974년 5만 이하이던 인구는 1992년 9만, 2004년 25만을 거쳐 현재 50만이 넘는다. 하지만 이로써 타지의 순니 주민들이 유입되며 기존 이스마일파 주민들과의 갈등이 빚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96년 총독으로 부임한 미샤알 빈 수우드는 토착인의 주류인 이스마일파를 공직 임명과 재판 등의 영역에서 차별하여 반발을 야기하였다.

이러한 불만은 2000년 초엽 종교 행사일에 이스마일파 모스크가 폐쇄되며 폭발하였다. 4월 23일 경찰이 이스마일파 성직자를 체포하며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무장까지 갖춘 시위대는 미샤알 총독이 거처하던 홀리데이 인 (현 글로리아 인) 호텔에서 군경과 대치하였고, 몇시간의 요청에도 총독이 대면 협상을 거부하자 양측의 총격전이 이어졌다. 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후 시위대는 이스마일파 구역인 쿠샤이와에서 농성하였고, 사우디 군이 일대를 포위하였다. 다만 몇 시간이 지난 후 시위대가 해산하며 더이상의 사상자 없이 사태는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수십명의 시위 주모자들이 체포되어 고문당한 후 수감되었고, 21세기 들어서도 총독이 공개적으로 이스마일파를 모욕하고 와하비파를 비판한 이를 해고하는 등 부조리는 이어지고 있다.[5]

룹알할리 사막[편집]

아라비아 반도의 남부에 있는 사막이며 면적이 65만㎢이며 아라비아 반도의 20%를 차지한다. 동서길이 1,200km. 남북길이 650km. 예멘 ·오만 ·아랍에미리트의 일부를 포함하여 주로 사우디아라비아 남동부에 자리잡고 있다. 사막이름은 공허의 1/4이란 뜻이며 영어로는 엠프티 쿼터 (Empty Quarter)라고 한다. 그곳 사람들은 리말(모래)이라고 부른다. 일부에는 암반이 드러난 암석사막과 자갈로 덮여 있는 자갈사막이 있으나 대부분 모래사막이다. 모래사막의 언덕은 높이가 250m가 넘는 것도 있으며 이들 모래언덕 산맥을 '우르킨(정맥)'이라고 부른다. 대형 사막의 동쪽 지역은 여러 곳에 우물이 있어, 유목민이 정기적으로 찾아가지만, 서쪽 지역은 불모지로 생활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룹알할리 사막에서 살아가는 부족으로는 베두인족, 사르족, 라시드족, 마나힐족, 마라족, 아와미르족, 바니야스족, 다와시르족 등이 거친사막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싸우고, 협력하고 공격과 반격이 반복되는 복잡한 역사적 과거를 가지고 있다. 특히 우물과 오아시스를 두고 매우 끈질기고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매우 건조한 지역으로 거의 개발되지 않은 상태로 있었으나, 1975년 세계 굴지의 알가와르 유전(油田)이 발견되었다. 상대적으로 오일머니의 혜택이 적은 예맨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는 이들 유목민들에게 교육, 의료, 주거 등 무상지원을 하고 있으며 유목민들 중 상당한 수가 도시로 이주하기도 하였다.[6]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나지란주〉, 《위키백과》
  2. 나지란주〉, 《나무위키》
  3. 두산백과: 나지란주〉, 《네이버 지식백과》
  4. 세계의 대학: 나지란대학교〉, 《네이버 지식백과》
  5. 나즈란〉, 《나무위키》
  6. 두산백과: 룹알할리 사막〉,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서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아라비아 국가
페르시아 국가와 지역
아나톨리아 국가
레반트 국가
남캅카스 국가
아라비아 도시
페르시아 도시
아나톨리아 도시
레반트 도시
남캅카스 도시
서아시아 문화
서아시아 지리
서아시아 바다
캅카스 지리
서아시아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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