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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18일 (수) 15:14 판
북방한계선(北方限界線. northern limit line)은 1953년 8월 30일, 당시 유엔군사령관이었던 마크 클라크가 설정한 경계선으로, 대한민국과 북한의 서해 및 동해 접경 지점의 한계선이다. 이는 남한의 함정 및 항공기가 초계활동을 할 수 있는 북방한계를 규정한 것이다. 남북 양측 간에 일어날 수 있는 무력 충돌을 방지한다는 정전협정의 실질적인 이행에 목적을 두고 있는 사실상의 해상경계선이자 군사 분계선이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체결 직전까지만해도 현재 북한 치하의 모든 바다, 모든 섬을 유엔군과 국군이 점령했다. 그러나 남한 및 UN군은 서해5도만 가지고 나머지는 북한 측에 양보하였다.
서해에서 남북 간의 해상 충돌이 자주 일어나 서해의 NLL이 주로 부각되나, 동해에도 NLL은 존재한다. 다만 동해에서는 서해와는 달리 전략적 요충지가 될 섬이 없고 위도를 따라 직선으로 그어진 현재 NLL은 북한에게 유리한 선이기 때문에[4] 충돌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 상황이다.
동해에는 육상 군사분계선의 연장선을 위도에 평행하게 직선으로 그어 설정하였으며, 서해에는 당시 국제적으로 통용되던 3해리 영해에 입각하여 서해 5도(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와 북한 지역과의 중간선을 기준으로 교동도 서쪽 바다의 지점으로부터 백령도 서북방까지 12개의 좌표를 연결하여 설정하였다.
육상에도 북방한계선이 있다. 그러나 이쪽은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북쪽으로 2km 지점에 위치해있고 이와 마찬가지로 남쪽으로도 2km 지점에 남방한계선이 위치해 있지만, 해상에는 완충 지대 없이 북방한계선이라는 경계선 하나만 존재한다. 이와 같은 차이는 걸어서 갈 수 있는 육지와 그럴 수 없는 바다의 각각의 특성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 문서에서는 서해에 설정된 해상 북방한계선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육상의 DMZ는 철책으로, 군사분계선은 작은 팻말로 분간되는 데 비해 바다는 비무장지대도 따로 없고, NLL도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육지에 비해서 방어가 어려운 편이다.
목차
개요
1953년 7월 27일 이루어진 정전협정에서는 남북한 간 육상경계선만 설정하고 해양경계선은 설정하지 않았다. 이후 1953년 8월 30일 당시 주한 유엔군 사령관이던 마크 클라크(Mark W. Clark)가 한반도 해역에서의 남북 간의 우발적 무력충돌 발생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서해상에 당시 국제적으로 통용되던 영해 기준 3해리에 입각하여 서해 5개 도서(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와 북한 황해도 지역의 중간선을 기준으로 '북방한계선(NLL;Northern Limit Line)'을 설정하였다. 또한, 동해상에는 군사분계선(MDL) 연장선을 기준으로 하여 '북방경계선(NBL;Northern Boundary Line)을 설정하였다. 1996년 7월 1일 동해상의 북방경계선을 북방한계선으로 명칭을 통일하여 지금에 이른다.
육상의 북방한계선은 본래 휴전 당시 남북 양측이 대치해 있던 군사분계선에서 북쪽으로 2㎞ 물러난 지역에 설정된 북측의 한계선으로, 남쪽의 남방한계선과 마찬가지로 이 선(線)의 남쪽 2㎞ 구역 안에는 출입이 통제된다. 즉 남북 양측의 한계선 밖 4㎞ 이내에는 출입이 통제되는 완충지대로서, 이 공간이 바로 비무장지대(DMZ)다. 그러나 군사 전력상 상대국을 감시하기 쉬운 장소로 각종 시설들을 이동시키면서 남측과 북측 한계선 안의 '전초(前哨)'인 'GP' 사이의 거리가 가까운 곳은 800m밖에 되지 않는 곳도 있다.
해양의 북방한계선은 서해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의 5개 섬 북단과 북한 측에서 관할하는 옹진반도 사이의 중간선을 말하는데, 북위 37도 35분과 38도 03분 사이에 해당한다. 1953년 설정 이후 1973년 10월 이전까지는 북한도 이 북방한계선에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준수하여 실질적인 해상경계선 역할을 함으로써 남북 사이에 별다른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1973년 10월 이후 들어 북한이 서해 5개 섬 주변수역이 북한 연해라고 주장하면서 이 수역을 항행하려면 사전 승인을 받으라고 요구하는 한편, 빈번히 북방한계선을 넘어옴으로써 남한 함정들과 맞닥뜨리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북한은 1977년 7월 1일 이른바 '200해리 경제수역'을 설정한 데 이어 8월 1일 '동해에서는 영해 기산선으로부터 50마일, 서해에서는 경제수역 경계선'으로 하는 '해상 군사경계선'을 일방적으로 설정하였다. 또 1999년 6월에 서해 연평해전을 일으킨 뒤 9월에 '조선 서해 해상군사분계선'을 선포하고 2003년에는 '서해 5개 섬 통항질서'를 발표하는 등 끊임없이 북방한계선의 무효를 주장하고 무력 도발을 일으키고 있다.
북방한계선이 국제법상 영해를 규정하는 경계선이라는 해석에 대해서는 국제법 학자들에 따라 견해를 달리하지만, 한국 정부는 북한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유엔사령부가 NLL 확정에 대해 통보했을 당시 북한 측의 분명한 이의 제기가 없었고 20여 년간 관행으로 준수해 왔으며, 1991년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 11조의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 7월 27일자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해 온 구역으로 한다'는 점 등을 들어 이를 침해할 경우 명백한 정전협정 정신 위반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북방한계선 설정 당시의 정세
북방한계선 설정 당시의 정세는 제해권과 제공권을 모두 UN군이 장악하고 있는 상태로, 현 휴전선 인근의 육상에서 전선이 교착된 것이 문제가 되고 있는 상태였다. 어느정도였냐면 압록강, 두만강 하구까지도 UN군이 점령한 상태였다.
북한 인근의 바다, 모든 섬이 유엔군 및 국군에 장악된 상태였다. 이를 기준으로 영토와 영해를 설정할 경우 북한에서는 자신들이 바다를 이용하는 것 자체가 불가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최종 협정까지 가는 것에 극렬히 저항하고 있었다.
유엔군의 입장에서도 그 상태로 모든 바다, 섬을 관할하여 북한의 서해안, 동해안을 포위할 경우 방어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북한의 반발로 무력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리하여 전쟁 전 남한의 영토였던 서해 5도(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만을 유엔군 사령관의 관할에 두는 것으로 제안하였고,[7] 이에 쌍방은 합의하였으나 해상 군사 분계선에 대해서는 합의하지 못하고(유엔군 측 주장은 3해리, 공산군 측 주장은 12해리) 정전협정이 체결된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을 방지하는 데 목적을 둔 정전협정을 안정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해상분계선의 필요성은 계속 제시되었다.
공산 진영의 해군력이 궤멸된 상태에서, 전쟁을 일단락 짓기 위해 UN군 사령부는 "(해상에서) 유엔군 및 국군은 이 선 위로 북진하지 말라"는 의미를 지닌 북방한계선을 선포하게 된다.
즉, 북방한계선은 정전협정을 지키기 위해 유엔군이 설정한 선으로서 북한측도 지난 수십 년간 실질적으로 NLL을 준수해왔다. 그리고 유엔사에서 "NLL을 넘어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나온다면 북측도 무력 충돌을 감수해야한다.
북한에서는 NLL이 유엔군 사령관이 일방적으로 공표한 선이라는 점을 들어서 '자신들은 북방한계선에 동의한 적이 없기 때문에 무효'라는 주장을 펼치며 남한의 어부를 납치하고 남한의 해군에 적대 행위를 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면적으로 NLL을 무시하는 행태는 보이지 못하고 있다.
전개와 충돌
북측의 '조선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 주장(1999년)
북측 해상경계선에 따르면 백령도와 연평도가 갇혀 있는 형태가 되며, 그나마 협상 당시 5개 도서를 유엔군 관할에 둔다고 한 건 의식하는지 섬을 오갈 때는 좌우 1마일씩의 해로로만 다니라고 요구했다.
북한은 NLL이 1953년 설정 당시 북한에 유리한 선이었기 때문에 1973년도까지는 NLL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실질적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초에 어선이 북쪽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인도해주던 남한의 방송선이 북한으로 피랍되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로는 북한 함정이 이 지역에 자주 출몰하여 남한 함정과 마주치는 등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 때부터 북한은 분쟁을 벌일 때 마다 어김없이 '북방 한계선 인정 못 하겠거든?'이라는 주장을 반복한다.
북한은 1973년 이후 '경기도-황해도 도계선' 북쪽 해면을 북한의 영해선으로 주장하기 시작하였으나, 1999년 도 경계선을 남북 등거리로 연장하여 소위 '조선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을 선포하였다. 즉 유엔군과 대한민국이 주장하는 북방한계선과, 북한이 주장하는 북방한계선 사이에 있는 해상지역은 두 세력이 각자 자기가 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상태.
단 주의할 것이, 흔히 알려져 있는 1999년 서해해상군사분계선은 북한 측에서도 철회한 상태라는 것이다. 당시 북한이 주장한 서해해상군사분계선은 국제법상 영해 설정의 원칙인 등거리원칙에서 '영토'를 '섬'이 아닌 '본토'라고 억지를 부려 설정한 선이기 때문. 북한도 이게 억지라는 걸 인식하였는지 2000년대 들어서는 아래에서 소개할 새로운 경계선을 주장하고 있다.
북측의 '조선 서해 경비계선' 주장(2000년대)
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북방한계선을 국제법상의 영해를 정의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즉, 헌법상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 전체이며, 이 영토 조항에 따라서 서해로는 압록강 하구까지, 동해로는 두만강 하구까지 모두 대한민국의 영해가 되는 것이다. 즉 국제법상 최소한의 영해 운운하는 북한의 주장은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인정할 수 없는 결과이다. 또한, 북한 역시 한반도 전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므로, 서해 해역에 국제법상의 '영해' 개념을 가져와서 근거로 삼는 주장은 그들의 헌법과도 논리적으로 모순이 된다.
2000년대 이후로 북한이 제시하는 해상경계선은 위 그림에서 붉은색 점선으로 표시된 '북 주장 경비계선'이다. 북한 측이 이 선을 제시할 때 지도를 들고 나오지 않고 기준점 좌표만 제시하거나 '기준 원칙'만 제시하는 식이기 때문에 지도마다 조금 상이한 경우도 있다. 국제법상 영해 기준인 영해기선에서 12해리 및 등거리 원칙을 적용한다면 저 선에 반박할 거리가 없다. 실제로 한국 해군은 NLL 후방, 어로통제선 전방에 합참 작전통제선을 별도로 설정하여 운용 중이다.
이 그림에서 보이는 '완충구역선'이 바로 합참 작전통제선. 위의 지도와 비교해보면 합참통제선 역시 영해설정기준과 거의 비슷한 기준으로 그어져 북한이 제시한 해상경계선과 거의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NLL=영해'로 취급하면 상대방이 떠들 거리가 무궁무진하니, 일반적인 학자들 사이에서도 영토개념을 들이대면 NLL은 물러설 수밖에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북한측 근거가 맞다며 북방한계선 무용론을 제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1999년도에 유엔군 사령부의 입장은 '북방한계선은 실질적인 해상분계선이며 지난 40년간 쌍방이 지켜온 엄연한 해상경계선으로 협의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조정하거나 물러설 생각이 없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물론 영해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은 문제점이 있을 수 있지만, 명백히 "영토고권"이며 군사분계선이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1992년 이후 역대 정권에서 NLL은 논의되지 않다가 2007년 노무현 정부에 들어 북한 측 논리를 검토하기로 하면서 논의가 수면 위로 부상한 바가 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을 포함한 미국 관리들이 30여년 전 미국과 한국에 의해 설정된 서해안의 북방한계선(NLL)은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당시 국무장관이던 헨리 키신저는 1975년 미국 비밀외교전문을 통해 "일방적으로 설정된 NLL은 확실히 국제법에 위배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키신저 장관은 구체적으로 "NLL은 일방적으로 설정됐고 북한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면서 "공해의 경계선을 일방적으로 설정하는 한 이는 확실히 국제법에 배치된다"고 언급했다. 이 전문들이 기밀에서 해제되면서 국내 언론에서도 기사가 쏟아졌다. 단, 키신저가 공개적으로 NLL을 부정한 적은 없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이러다 보니 대응논리로 나온 것이 "국제적으로도 특수한 사례에 한정해 등거리 원칙을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통상적인 영해설정 원칙을 적용할 경우, 즉 북한이 제시한 분계선을 따를 경우 연평도에서 소청도까지 가는 데 약 30km 정도의 손실이 발생한다는 것인데, 사실 연평도-소청도 사이가 뭔가 통상적인 교류가 있는 지역도 아니고 저 지역에서 우리 어선들의 어로행위가 있는 것도 아닌데다가 통상적인 한국 해군의 작전은 합참 작전통제선 내에서 수행되고 만일 전방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인천이나 평택에서 증원이 가지 연평도의 고속정을 빼서 백령도 일대에 증원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뭔가 여러모로 궁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결국 가장 현명한 방법은 NLL은 영해를 구분하는 국경선이 아니라는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다. 헌법상 북한 땅이 대한민국 영토임에도, 국제적으로 남북한이 타국으로 취급되는 상황에 이것이 인정받기는 어렵다는 주장도 있고, 한국전쟁 당시 획득한 강원도 접경지역의 경우 한국은 행정권만 가질 뿐, 실상은 유엔군 관할하에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앞으로 통일을 준비한다면 반드시 마주하게 될 국제법상의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대책을 세울 필요도 있다고 할 수 있다.
공동어로수역
공동어로수역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남북한의 우발적인 충돌을 막기 위해 NLL 인근 해역 가운데 남북 어민들이 함께 고기잡이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지정한 수역이다.
공동어로구역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논의를 시작하였는데, 이 공동어로수역에 대한 논쟁이 나왔던 사망유희 토론 변희재 vs 진중권에서 사실이 자세히 나와있다.
이미 1991년 협상 때, 북한의 필요로 인한 불가침조약과 비핵화 때문에 NLL을 인정하게 되며, 1992년의 부속 합의서의 경우는 이미 1991년의 협의가 이루어진 후 입장을 바꾼 북한이 NLL을 논의하자고 제안한 한 후 7차까지 북한 측의 뜻대로 협상이 되지 않았다가 임태순 대표단의 발언 때문에 결국은 추후논의하는 것으로 사실상 북한은 NLL논의를 포기하게 된다.
1992년 8월 26일 7차 군사분가위 회의에서 임태순 통일원 남측 대표단 발언 "남북한 간에 경계선이 없지만,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직후에 선포한 북방한계선을 지금까지 쌍방이 지켜왔다. 그것을 경계선으로 정하는 것은 검토할 수 있다"
이 이후로 2007년 노무현 대통령 전까지 단 한번도 대한민국에서는 북한의 NLL에 대한 협상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노무현 정부 때 처음 북한 측의 NLL입장을 받아들여 논의가 시작된다.
남북공동어로 수역에 대한 논의는 등거리의 개념이었다. 즉 NLL선 기준으로 같은 거리의 면적을 공동어로수역으로 설정하자는 것이었는데, 너무 북한 영토와 가까워진다는 점에서 북측이 거절했으나, 이후 제시된 등면적의 공동수역, NLL 기준으로 남측이 조금 더 같은 면적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설정하고, 북측이 같은 면적으로 남측 해안에 내려올 수 있도록 제시하였다. 그러나 등면적 공동수역이 설정될 경우, 북측 해군이 우리나라 인천 주변까지 내려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다.
실제로, 남한과 북한이 비공개적으로 논의를 하고 있는 남북공동어로수역은, 제7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에서 높으신 분들이 남북공동어로수역의 범위에 대해서 비공개적으로 토론을 진행하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북측 장교가 프로젝터를 통해 이 결과를 회담 중 공개하려고 하자 남측 장교가 이를 몸으로 막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2016년 6월, 중국 어선의 NLL 꽃게잡이 조업으로 인해 어업자원들의 고갈을 염려한 정부는 해경은 기동전단을 통해 불법 한강어귀와 우리 NLL 수역에서 조업 중인 중국 어선을 나포하는 등 어업자원을 확보를 하는 노력을 보였다.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14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역을 '남북공동어로수역'으로 지정하자고 제안하였다.
김정은의 북방한계선 불인정, 국경선 주장(2024년)
- 우리 국가의 남쪽국경선이 명백히 그어진 이상 불법무법의 《북방한계선》을 비롯한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수 없으며 대한민국이 우리의 령토, 령공, 령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도발로 간주될것입니다.
- 이와 관련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의 일부 내용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2024년 1월 15일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있던 김정은의 연설 중
2023년 연말 남한을 '대한민국'으로 지칭하며, 남북관계를 적대국 관계라고 주장하고 유사시 남반부 평정을 주장한 것을 시작으로, 2024년 1월 15일에는 헌법을 개정하며 영토와 관련하여 자신의 영역을 일컫는데 쓰던 북반부(북쪽의 반쪽 부분)라는 말도 없애겠다고 하였다. 한달 뒤인 2월 14일에는 바다수리-6을 시험발사하는 현장에서 해상 국경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에 대한민국 국방부는 이에 반박하는 입장을 밝혔다. "해상 NLL을 포함해서, NLL은 우리 장병들이 수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사수해 온 실질적인 해상 경계선이고 어떠한 경우에도 이 NLL을 지키고 수호하겠다는 것은 우리 군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하였다.
김정은의 주장대로 NLL을 국경선 취급하면, 국제법의 논리를 적용한다고 북한에서 나선다면 앞서 언급한 이유로 NLL의 지위가 더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어 사회주의헌법 개정 절차에 착수했는데, 구체적으로 NLL을 국경선으로 규정할지 등이 주목된다.
주요 사건
끊임없는 분쟁 때문에 이 지역에서 어민 납북 사건, 군함 간의 대치와 교전, 해안포 발사 등 수많은 사건사고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 해군 당포함 격침 사건 (1967): 동해상에서 발생한 유일한 사건이다.
-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1996): 북한의 무장공비 일당이 잠수함을 타고 동해의 NLL을 통과했다.
- 서해교전
- 제1연평해전 (1999)
- 제2연평해전 (2002)
- 대청해전 (2009)
- 천안함 피격 사건 (2010)
- 연평도 포격전 (2010): 참고로, 이 사태는 남한의 영토로 인정된 서해5도를 물리적으로 포격한 것으로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분쟁지역상의 우발적인 무력 충돌이 아니라 계획적으로 남한을 향하여 직접 발포한 것이다. 위의 사건·사고와는 성격이 다르며, 침략 행위로 간주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2020): 사건 이후 남한 군경이 피격자 수색을 계속하자 북한에서 다시금 자신들의 영해를 침범했다면서 NLL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 중국동방항공 559편 NLL 이북 침범 사건 (2024)
참고자료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