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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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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위치

창핑구(중국어: 昌平区 chāng píng qū)는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시 북서쪽에 위치해 있는 이다. [1][2][3][4]

개요

창핑구의 면적은 1,343.5㎢이며 인구는 216.6만명(2019년)이다. 먼터우거우구, 하이뎬구, 차오양구, 순이구, 화이러우구, 옌칭구와 접한다.

본래는 말만 베이징인 농촌이었으나 베이징시신도시 지구로 지정되면서 대규모로 택지개발이 일어났으며, 그 덕분에 현재 창핑구는 인구가 200만이 넘어가는 거대구로 성장하였다. 현재 창핑구 내부에는 학술지구인 사허고교원구(沙河高教园区), 후이룽관 문화거주구(回龙观文化居住区) 등의 공공개발 지구가 숱하게 존재한다.

지역 특산물로 딸기가 존재한다. 창핑 딸기(昌平草莓)는 현재 지리적 표시제로 인하여 고유한 품종으로 보호를 받고 있다.

창핑구는 수많은 경치좋은 장소와 관광 시설로 유명하다. 천연자원이 풍부하여, 광산품과 농산품이 많이 생산된다.

창핑구는 베이징시신도시이자 과학교육 신구로서, 수도 서북부의 생태 보호막이자 6000년의 문명사, 2000년의 건치사(建置史, 행정관할의 역사)를 보유한 창성과 평안의 땅이다. 명 십삼릉(明十三陵), 쥐융관(居庸关)의 양대 세계 문화 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문화관광 명소이면서도 전국 과학기술 혁신 중심의 주요 플랫폼 건설과 수도 고품질 발전을 지원하는 혁신과 활력의 지역이다.

창핑(昌平)은 베이징시의 신도시이자 과학교육 신구로서, 수도 서북부의 생태 보호막이자 6000년의 문명사, 2000년의 건치사(建置史, 행정관할의 역사)를 보유한 창성과 평안의 땅이다. 명 십삼릉(明十三陵), 쥐융관(居庸关)의 양대 세계 문화 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문화관광 명소이면서도 전국 과학기술 혁신 중심의 주요 플랫폼 건설과 수도 고품질 발전을 지원하는 혁신과 활력의 지역이다.[5][6]

자연환경

타이항 산맥과 옌 산맥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다. 북서쪽으로 산악지역이 펼쳐지며 전체 면적의 59%를 차지한다. 베이징 도심에서 34km 거리에 있다. 내몽골 고비 사막이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황사의 피해가 심한 편이다. 기후는 추운 스텝 기후(Bsk)에 해당하여 일단 여름에는 엄청 덥고 비가 약간 내리며 겨울에는 춥고 건조하며 바람도 강하다. 냉대기후와 건조기후 중간에 있다고 봐도 된다.

사막 바로 아래 있어서 극단적으로 건조하며 연교차도 매우 크다. 전 세계를 통틀어 인구 천만에 준하거나 그 이상급의 메갈로폴리스 중 서울과 함께 연교차가 가장 큰 도시이다. 대륙 동안 기후와 사막 기후가 섞인 형태이기 때문인데 5월부터 최고기온 40도를 찍는 경우가 흔하다. 반대로 겨울은 서울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춥다. 여름에도 비가 잘 오지 않을 정도인데다 겨울에는 아예 사막 수준으로 매우 건조해서 실제 최고-최저기온은 서울을 능가할 정도로 연교차가 크지만, 체감 연교차는 서울에 못 미친다. 또한 여름에 열사병 위험이 있으며, 겨울에는 꽤 추운 날씨임에도 대구광역시나 부산광역시에 비견될 정도로 눈이 오지 않는다.

1981년-2010년 기준 최한월 1월의 평균 기온은 -3.1℃이다. 최난월 7월 평균 기온은 26.7℃이며, 연 평균 기온은 13.2℃로 숫자만으로는 한국의 남부 내륙지역과 비슷하다. 21세기 들어 가장 심한 한파는 2021년 1월 7일의 -19.7℃이고, 그 다음에는 2016년 1월 23일, 영하 17.4℃였으며 최고기온은 -11.0℃에 불과했다.

폭염은 더 심한데 5월부터 폭염 수준 더위가 찾아오기 시작하고 한여름엔 40도 이상 올라가기도 한다. 2017년 7월 14일 아프리카에서 온 관광객이 베이징의 더위에 탈진한 일도 있었는데, 당시 온도계는 무려 42.5도를 나타냈다. 다만 습기가 별로 없다 보니 견딜 만한 편이다. 1951년 이후 기록된 역대 최저기온은 -27.4도 이며 역대 최고기온은 41.9도 이다.물론 이는 베이징 시내 중심부의 기온이며 외곽 지역인 화이러우구 등은 겨울철 영하 30도까지도 떨어지는 등 기온편차가 심하다. 이는 도심 열섬현상이 원인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체감 온도는 비슷하거나 덜하지만 건조기후의 영향으로 단순 최고-최저 기온 수치로는 서울을 능가하는 연교차를 자랑한다.

연간 강우량은 500~560㎜이다. 생장기의 농업용수 수요치는 200~300㎜가 부족하다. 재해성기후로 남부는 가뭄과 황사 등이 많이 발생하는 편이고, 서북쪽 산간지역은 여름에 흙·모래·돌이 섞인 물사태가 쉽게 발생한다. 겨울에 춥지만 워낙 건조하다보니 눈이 아예 안 오며 차량 통행도 많은 데다 베이징 외곽에 잔뜩 자리한 공장들로 인한 대기오염이 심각하다. 황사와 대기오염 때문에 공기가 매우 안 좋다.

2013년 1월에 들어 사상 최악의 스모그가 발생해 베이징을 뒤덮었다. 스모그가 뒤덮었다지만 사진만 보면 안개로 뒤덮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미묘하다. 이 대기오염 등이 문제로 지적되자 2008 베이징 올림픽 때에는 아예 올림픽 기간 동안 베이징 근교 공장 올 스톱이라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어쩌겠는가, 정부에서 닫으라고 했다. 덕분에 공장 노동자들은 8월 내내 유급휴가를 받았다. 현재는 정상회담/엑스포 등 국가 중요 행사가 열리면 닫아라 공장을 시전한다. 그리고 이렇게 중국의 국가 주요행사가 베이징에서 개최되면 이후로 3일에서 1주일간은 서울 공기도 덩달아 깨끗해지는 경향이 있다.

역사

기원전 1000년 경 춘추전국시대의 나라 중 하나인 연(燕)의 수도인 계(薊)가 오늘날 베이징(北京)이 있는 곳에 건립되었다. 이후 기원전 221년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 한 후 계성은 주(州)가 되었고 삼국 시대에는 공손찬과 원소가 보유하다가 조조의 위나라에게 함락되었다 936년 현재 베이징을 포함한 북부의 넓은 영토를 거란의 요(遼)에게 대부분 정복되었다. 938년에 요는 지금의 베이징을 정복하여 한족들을 유린한 다음 두 번째 수도를 건립했고 그것을 남쪽의 수도라는 뜻인 남경(南京)으로 불렀다. 1125년 여진의 금(金)왕조는 요를 합병하고 1153년 동북의 회령에서 이곳으로 천도하여 중앙수도라는 뜻의 중도(中都)라고 개칭했다.

1215년에 몽골이 1267년에 북쪽에서 상도(上都)를 건설했다. 중국의 전 지역을 정복하기 위한 준비로 원(元)왕조의 시조 쿠빌라이 칸은 베이징보다 북쪽에 칸발리크 (汗八里, Khanbaliq)(위대한 칸의 거주지라는 뜻) 혹은 대도(大都)를 건설하여 수도를 삼았고 이 위치는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 속에 'Cambuluc'로써 잘 나타나 있다.

1368년 원의 멸망 후 도시는 명(明)조에 의해 다시 재건되었고 순천(順天)지사 관저가 도시의 주위 지역에서 설립되었다. 1403년 이 곳이 수도인 난징(南京)보다 북쪽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베이징(北京)으로 개명한 뒤 남경에서 북경으로 천도를 단행하였다. 북경은 또한 경사(京師)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는 단순히 수도라는 뜻이다. 명나라 시기 동안 전통적인 베이징의 구획이 확립되었다. 자금성과 천단 등의 건축물이 1406년에서 1420년대 사이에 건설되었다. (현재의 천안문(중국어 정체자: 天安門)은 1651년에 마지막으로 재건된 것이다.) 1644년, 만주족의 청나라가 베이징을 점령한 뒤 베이징을 유린하였고 베이징은 청의 통치 기간 동안 중국의 수도로 남게 되었다.

1911년, 신해혁명을 일으킨 혁명 정부는 베이징은 만주족의 수도라는 주장으로 난징을 수도로 정하고자 하였다. 의 치열한 대화 끝에 베이징은 난징과 같이 수도로서의 역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1916년 중국은 지방 군벌들의 내전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으며, 각자 베이징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벌였다. 1928년, 국민당 정부는 북부의 군벌을 소탕하고, 난징을 공식적인 중화민국의 수도로 정한 뒤, 베이징을 북부의 평화 또는 북부의 평화를 회복시켰다는 뜻의 베이핑(北平)으로 개칭하여 베이징의 상징적인 의미를 떨어뜨렸다. 이후 일본제국이 베이징을 정복하였다.

제2차 중일전쟁 당시인 1937년 7월 29일, 베이징(베이핑)이 일본 제국에게 정복된 기간 동안 도시는 그 이전의 이름인 베이징으로 개명되었고, 일본 제국에 의해 많은 한족들이 강간되었다. 이 곳에 일본에게 점령된 화북의 일부 한인들이 설립한 괴뢰정부인 중화민국임시정부(中華民國臨時政府)가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미국에 패전하게 되고, 한편으로 소련이 만주 지역을 점령하는 등과 같은 영향에 따라 베이징의 이름은 다시 베이핑으로 바뀌었다.

1949년 1월 31일, 공산당 세력은 베이핑으로 무혈입성 하였고, 같은 해 10월 1일, 베이징에서의 중화인민공화국 설립을 발표하였다.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중국어 정체자: 中國人民政治協商會議)에서 베이핑은 공산 정권의 수도로 확정되었고, 이름도 다시 베이징으로 개명되었다.)

1958년에 창핑구(昌平区)라는 명칭으로 베이징시에 편입되었으나 1960년에 창핑현(昌平县)으로 격하되었고, 1997년에 다시 창핑구로 명칭이 환원된다

산업

개혁개방 40년간 과학기술과 교육을 통한 구역 부흥 전략, 혁신 주도 발전 전략의 실행을 견지하면서, 종합 경제 실력, 도시·농촌 발전 수준, 사회 민생 복지가 대폭 향상되어 각종 사업이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특히 2014년과 2017년 시진핑(习近平) 총서기의 두 차례에 걸친 베이징 시찰 이후 징진지(京津冀, 베이징·톈진·허베이) 협동 발전과 수도 '4개의 중심(四个中心, 정치 중심, 문화 중심, 국제교류 중심, 과학기술 혁신 중심)' 기능 건설이라는 역사적 기회를 굳게 잡아, 감량 발전을 기초로 하고 혁신 발전을 동력으로 하여, 경제사회 발전에 중대한 변혁이 발생하고 있다.

과거의 '경사지침(京師之枕, 창핑의 지리적 중요한 역할을 말함)', 신시대의 문화 매력의 도시. 경내에는 베이징 지역에서 최초로 발견된 신석기 시대 문화 유적인 '설산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진나라 시대에 쥔두현(军都县)이 설치되고 서한 시대에는 창핑현이 설치되었으니, 이 이름으로 불린지 2000년이 넘었다. 명나라 시대에는 창핑주(州)로 격상되어 융안성(永安城)과 궁화성(巩华城)이 세워지면서 '경사지침','고굉중지(股肱重地, 수도 방어의 요지)'로 불렸다. 현재는 2곳의 세계문화유산과 인산타린(银山塔林), 바이푸취안(白浮泉) 유적 등 6곳의 국가급 문물 보호지를 보유하고 있다. 쥐융관의 푸르른 삼림은 과거 옌징 8경(燕京八景) 중 하나로 꼽혔다. 중국공산당 난커우(南口) 특별지부는 베이징 최초의 노동자 당 지부 중 하나이다. 최근 들어, 문화로 사람과 구역 발전을 견지하면서 창핑 역사 문맥 정리 공정을 실시함으로써, 일련의 역사 문화 자원을 발굴 및 정리하여 보호 조치를 취하고 있다. 베이징은 현재 대운하, 장성, 시산융딩허(西山永定河)의 3대 문화벨트를 조성하고 있는데, 창핑은 3대 문화벨트에 모두 포함되어 있는 유일한 구이다. 현재 창핑 역사 문화 랜드마크 공정을 실시하고, 대운하의 발원지인 바이푸취안 유적공원을 건설하고 있으며, 문화 유산 및 각종 문물에 대한 전반적인 보호를 강화하고 있다. 또한 명 십삼릉 통합 서비스 구역, 신청동구(新城东区) 특색 문화창의 구역을 조성하여, 역사 인문과 현대 과학기술이 어우러져 빛나는 문화 매력의 도시를 건설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도

동영상

각주

  1. 창핑구〉, 《위키백과》
  2. 창핑구〉, 《나무위키》
  3. 베이징시〉, 《위키백과》
  4. 베이징시〉, 《나무위키》
  5. 창핑구 소개〉, 《베이징시 인민정부》
  6. 두산백과: 창핑〉,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

같이 보기

동아시아 같이 보기

동아시아 국가
동아시아 도시
동아시아 지리
동아시아 바다
동아시아 섬
동아시아 강
동아시아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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