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페츠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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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페츠크주(러시아어: Ли́пецкая о́бласть)는 러시아 중앙연방관구에 속해있는 주이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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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리페츠크주의 면적은 24,047㎢이며 인구는 1,128,181 (2021)명이다. 주도는 리페츠크(Липецк, Lipetsk)이다. 러시아 연방을 구성하는 주이며,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373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러시아의 중앙연방관구(Центральный федеральный округ)에 포함되며, 러시아 연방의 12개 경제 지구 중 하나인 중앙흑토경제지구(Центрально-Чернозёмный экономический район)에 속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랴잔주, 탐보프주, 보로네시주, 쿠르스크주, 오룔주, 툴라주와 접해 있다. 돈강의 지류인 보로네시강 유역에 접해 있다.
지역의 교육 기관으로는 1949년 개교한 리페츠크 교육대학교(Липец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педагогический университет)와 1956년 개교한 리페츠키 공학대학교(Липецк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технический университет)가 있다. 휴양지로 인기가 좋으며, 18세기 러시아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는 다수의 건축물과 역사적 기념물들이 남아있다[3][4][5]
자연환경[편집]
온대 대륙성 기후로 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다. 대초원 지대에 위치한 리페츠크주는 산림이 지역 영토의 7.6%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모두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영토의 85% 이상이 유기물이 풍부한 체르노좀으로 이루어져 있어 매우 비옥하다. 주요 광물 자원은 석회암, 백운암, 모래, 점토 등이다. 1871년에 발견된 리페츠크 광천수(Липецкие минеральные источники, Lipetsk mineral water)도 유명하다. 구릉 지대에 갈리치야산(Галичья гора) 국립공원이 위치하며, 리페츠크주와 인접 지역의 생태 및 환경 관련 연구를 수행하는 역할을 한다.
역사[편집]
고고학자들과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현대 리페츠크 주의 영토는 고대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 몽골-타타르 군대가 도착하기 전부터 이 지역에는 엘렉의 도브린스카야(현재의 굿 마을) 오클렛(현재의 오크스 마을), 구 요새(보고로드스코예 단코프스키 군) 보르골(파괴된 보즈데스토네)이 있었다.
13세기에 건설된 리페츠크 지역은 1284년 몽골의 침략으로 대부분 파괴되었다. 이후 몽골군이 세운 킵차크 한국이 멸망하고 돈강 유역 유목민들의 영향력이 점차 약해지면서 다시 지역의 경제가 부흥하기 시작했다.
그 영토의 부활은 유목민들의 추방 이후 시작되었다.비교적 짧은 기간(16세기 말과 17세기 초)에 요새화된 도시가 건설되었습니다.던컨 탈리츠키 감옥 엘레츠카야 요새 레베디안입니다1635년, 건설은 강력한 요새선인 벨고로드 방어선에 시작되었고, 현대 요새 내의 리페츠크 지역에서 눈에 띄었다: 굿, 소콜스크, 유스만. 공장 근처에는 노동자의 인구가 많아졌다. 이러한 정착지들 중 하나는 리페츠크시를 탄생시킨 리페츠크 정착지였다.
이 시기에 해군과 정규군의 창설로 아마, 삼베, 양모의 필요성이 증가하였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농업을 발전시키기 시작한다. 1703년 제정 러시아의 표트르 1세(Пётр Ⅰ, 1672~1725)가 이곳에 제철소와 병기고 조립공장 등을 건설하면서 철강 산업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의 정착촌이 형성되었고, 이들 중 하나가 도시로 발달했다.
18세기에는 대규모 토지 소유지의 지속적인 성장이 있었다. 검은 땅이 풍부한 리페츠크 지역은 러시아 국가의 생계 수단이었다. 그 후, 이곳은 약수 때문에 휴양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2월 혁명, 1917년 10월 혁명과 러시아 내전, 많은 문화적 가치, 개인 예술과 문학의 수집품, 그러나 교회에 대한 탄압과 "부르주아적 과거"로 인해 귀족, 수도원, 추르츠 사유지의 건축 앙상블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그 사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54년, 소비에트 최고 상임위원회의 법령에 따라 현재의 리페츠크주의 설립이 승인되었다.
산업[편집]
리페츠크주 지역 경제의 핵심은 제철업이다. 주재료인 철광석은 인접 지역인 쿠르스크주의 산지에서 조달 받는다. 이와 더불어 기계 제조업의 발달도 상당하여 러시아 시장에 다량의 가전제품과 건설 자재를 공급한다. 광활하게 펼쳐진 체르노좀을 기반으로 하여 감자, 곡물, 과일 등을 대량으로 재배한다.
리페츠크는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이곳에 있는 진흙 목욕탕과 온천 휴양지는 1805년에 개장하였으며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 휴양지의 하나로 꼽힌다. 미네랄이 풍부한 진흙과 철분을 함유한 중탄산염 칼슘 온천이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산염과 염화나트륨이 많이 함유된 온천수는 치료용 목욕뿐만 아니라 미네랄 음료로도 인기다.
교통[편집]
주도 리페츠크에서 북서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리페츠크 국제공항(Международный аэропорт Липецк)이 있으며, 주 내에는 3개 노선의 철도가 운행된다.
주요도시[편집]
리페츠크[편집]
리페츠크는 러시아 서부 리페츠크주의 주도로 돈강의 지류인 보로네시강의 양안에 걸쳐 형성되었다. 리페츠크가 근대 도시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초로 철광석을 비롯한 풍부한 천연자원이 든든한 뒷받침이 되었다. 1805년에 개장한 리페츠크의 온천 휴양지는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 휴양지의 하나로 황산염과 염화나트륨이 많이 함유된 온천수로 인기가 높다. 리페츠크는 13세기 연대기에 처음 언급되었다. 리페츠크는 '보리수(linden)의 도시'라는 뜻이며 주민은 라이프치히나 리패하(Liepāja)와 동족이었다. 리페츠크는 1284년 몽골족에 의해 파괴되었고 16세기 말부터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근대 도시 건설은 17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표트르 1세는 철과 포탄을 만들기 위해 철광석 매장지에서 가까운 리페츠크에 주철공장을 건설하라고 명령하였다.
리페츠크는 1779년 도시로 승격하였고 탐보프주(Tambov Governorate)의 주요 도시로 부상하였다. 당시 리페츠크의 인구는 5,971명이었다. 리페츠크는 1879년 '토지와 자유' 회원총회를 개최하였다. 사회 혁명을 추구하는 청년 11명이 러시아 사회혁명당 집행위원회를 창설하고 1881년 알렉산드르 2세 암살을 결행한 비밀조직 '인민의 의지파' 핵심 세력이 되었다.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은 군사력을 엄격하게 제한한 베르사유조약(1919년)의 금지 규정들을 우회하려고 1922년 소련과 우호 관계를 설정한 라팔로조약을 체결하면서 소련 당국과 이면 약정을 맺고 리페츠크 근처에 비밀 공군기지와 실험실들을 건설한 후 1933년까지 운영하였다. 이 기지는 제1차 세계대전 패배로 전후 유럽의 세력 판도에서 고립된 두 강대국의 기술 제휴를 가능하게 하였다. 소련 내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활동은 승전국들의 경계심 어린 눈길을 벗어날 수 있었다.
옐레츠[편집]
옐레츠는 러시아 중앙연방관구 리페츠크주(Lipetsk Oblast)의 옐레츠키지구에 있는 도시다. 옐레츠키구의 행정중심지로 지구와 동등한 행정상의 지위를 지니고 있다. 돈강의 지류인 비스트라야 소스나강을 끼고 있다.
옐레츠는 러시아 중앙흑토경제지구의 가운데에 있다. 중앙흑토경제지구는 러시아 중앙연방관구에 속하며 농업에 적합한 비옥한 검은 토양으로 이루어진 흑토지대를 말한다. 러시아의 연방경제지구는 자연환경과 경제여건 등을 고려해 중앙흑토경제지구를 포함하여 모두 12개가 지정되어 있다.
옐레츠는 옛 주거지를 포함해 모두 7개의 구역으로 구분된다. 도시 일대는 지하 5~10m 아래에 두터운 석회암층이 깔려있고 침식으로 생긴 석회암 동굴이 여러 곳 있다. 옐레츠가 리아잔(Ryazan)의 왕자들에게 귀속되었던 1146~1147년 무렵의 역사를 기록한 문서에 도시의 이름이 처음 언급되었다.
당시 옐레츠는 러시아 영토의 남부에 있어 지리적으로 주변에 포진한 외세의 침략에 취약했다. 1239년 몽골인이 쳐들어와 옐레츠를 불살랐고, 1316년 우즈벡 칸(Uzbeg Khan), 1395년 티무르족(Timur), 1414년 타타르족(Tatars)이 차례로 쳐들어와 약탈과 파괴를 자행했다.
옐레츠는 황폐화되어 주민들이 마을을 탈출한 이후 15~16세기 버려진 도시가 되었다. 1591년 요새가 건설되고 버려졌던 마을이 복원되었다. 1618년 요새는 폴란드와 연합한 코사크인들이 점령한 뒤 상당 부분 해체되었다.
옐레츠는 1719년 옐레츠키 지방의 중심지로 자리 잡은 뒤 1778년 옐레츠키구의 행정중심지가 되었다. 1800년대 들어 옐레츠는 여러 지역과 인접한 특성을 살려 무역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이때부터 손으로 짠 레이스가 도시의 유명한 특산품이 되었다.
곡물제분업과 기계제조업도 발달했다. 옐레츠는 철도로 모스크바와 리페츠(Lipetsk), 오리올(Oryol), 로스토프(Rostov) 등지와 연결된다. 1894년 건설되었던 철도역은 새로운 옐레츠-토바르(Tobar)선과 연결을 위해 역 구내에 측선 등이 새로 깔렸다. 모스크바로 이어지는 M4고속도로가 도시를 지나가고 지방도시를 연결하는 R119도로가 있다.
러시아 최초의 엘리베이터가 1888년 엘레츠에 설치되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1년 독일군이 도시를 일시 점령해 러시아군과 전투 과정에서 도시가 파괴되기도 했다. 오늘날 도시의 주요산업으로 엘레츠레이스 생산을 비롯한 섬유와 의류, 석회석채석, 엔지니어링, 식품가공, 담배, 보드카 생산 등이 꼽힌다.
교육기관으로 2000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한 옐레츠주립대학, 철도의과대학 등 여러 곳의 고등교육기관과 8개의 중등학교가 있다. 극장과 영화관, 스포츠구역 등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체육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시 당국은 도시의 가치를 개별 기념물에 의존하기보다는 도시 자체의 개성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시가지의 도로마다 역사적인 이름을 부여했다. 옐레츠에는 도로문화협회, 일하는 문화협회 등을 포함해 20여 개의 문화예술 활동 지원 단체가 있다. 도시의 대표적인 건축물은 1845~1889년 지어진 거대한 예수승천대성당이다.[6]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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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리페츠크주〉, 《위키백과》
- 〈리페츠크〉, 《나무위키》
- 〈유럽지명사전 : 러시아 리페츠크〉, 《네이버 지식백과》
- 〈리페츠크주〉, 《네이버 지식백과》
- 〈리페츠크 주〉, 《요다위키》
- 〈옐레츠〉,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러시아유럽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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