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리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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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리마주(스페인어: Colima)는 멕시코 서부에 위치한 주이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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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콜리마주의 면적은 5,627km²이며 인구는 731,391명(2020년)이며 주도는 콜리마다. 멕시코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주이며 북쪽으로는 할리스코주, 남쪽으로는 미초아칸주, 서쪽으로는 태평양과 접한다.
수도인 콜리마(Colima) 외에 주요 도시로는 만사니요(Manzanillo)와 테코만(Tecomán)이 있다. 멕시코에서 생활 수준이 가장 높고 실업률이 가장 낮은 주 중 하나다. 이 주는 또한 항구가 카르텔 경쟁 지역이기 때문에 1인당 살인율과 범죄율이 가장 높은 곳 중 하나다.
1994년에 콜리마 화산(해발고도 3,850m)이 폭발한 바 있다.[3][4]
자연환경[편집]
해안에서 800㎞ 떨어진 곳에 있는 레비야히헤도제도도 이 주에 포함된다. 대체로 시에라마드레 산맥의 산악 지대에 속해 기후가 서늘한 편이다.
역사[편집]
스페인은 아즈텍과 퓨레페카스를 정복한 후 콜리마를 침공했다. 콜리마 지역의 첫 번째 침공은 1522년 후안 로드리게스 데 비야페르테의 지휘하에 이루어졌으나 테코만 계곡 원주민들에게 패배했다.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는 파소 데 아리마(Paso de Arima)와 팔렝케 데 테코만에서 테코스를 물리 치기 위해 곤잘로 데 산도발을 보냈다. 그 후 산도발은 1523년 콜리마 계곡에 카시틀란이라는 최초의 스페인 정착촌을 설립하여 멕시코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시 정부이자 서부 뉴 스페인에서 두 번째 자치단체가 되었다. 1527년 프란시스코 코르테스 데 산 부에나벤투라(Francisco Cortés de San Buenaventura)는 스페인 정착지를 현재 위치로 옮기고 이름을 산 세바스티안 데 콜리마(San Sebastian de Colima)로 변경했다. 레빌라기도제도는 1533년 에르난도 데 그리잘바에 의해 발견되었다. 차라후아에 있는 주의 첫 번째 항구는 거의 300년 동안의 스페인 식민 통치 기간 동안 중요한 방어선이자 상업 중심지였다. 정복 이후 원주민 인구는 크게 감소했다. 일부 추정에 따르면 인구는 1523년 15만 명에서 1554년 15,000명으로 감소했다가 17세기에 약간 회복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인구 감소로 인해 인근 지역에서 아프리카 노예와 원주민이 유입되었다. 복음화는 1554년에 샌프란시스코 데 콜리만 수도원을 설립하고 나중에 알모로얀 수도원을 설립한 프란체스코회에 의해 수행되었다. 원래는 바야돌리드 교구(모렐리아)의 일부였다. 당시 산티아고 데 부에나 히스 에스페란자(Santiago de Buena his Esperanza)라고 불렸던 만사니요(Manzanillo) 항구는 에르난 히스 코르테스(Hernán his Cortés)가 명령한 북부 탐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는 나중에 라스 히스 캘리포니아(Las His Californias) 발견으로 이어졌다. 바하칼리포르니아 반도와 알타캘리포니아. 코르테스 데 산 부에나벤투라는 북쪽으로 정복을 시작하여 주의 나머지 지역과 현재 시날로아의 남부 지역을 덮었다. 마닐라 갤리온선이 스페인 동인도 제도에서 보급품을 하역하는 데 사용함에 따라 이 항구는 해적의 표적이 되었다. 이 해적에는 프란시스 드레이크와 토마스 캐번디시가 포함되었다. 만사니요에서 해적과의 마지막 주요 전투는 1615년에 일어났다. 당시 세바스티안 비스카이노(Sebastian Vizcaino) 선장은 네덜란드 해적 요리스 반 스필베르겐(Joris van Spielbergen)으로부터 항구를 방어했다. 1531년 누에바 갈리시아가 설립되었을 때 치와틀란 또는 말라바스코 강 북쪽과 차팔라 호수 남쪽 지역을 잃었다. 1550년에 콜리마는 오트란(Otran)과 암라(Amla) 지방을 잃었다. 16세기 말에는 모티네스 지역(현재 미초아칸의 일부)을 잃었고, 19세기에는 할리스코의 실로틀란 지역을 잃었다. 초기 식민지 시대부터 콜리마는 멕시코시티와 동등한 주였다. 1789년에 콜리마 교구는 과달라하라 교구에 통합되었다. 1856년 12월 9일에 신설되었으며 10개 지방 자치체를 관할한다.
산업[편집]
좁은 해안 평야는 토양이 비옥하여 사탕수수·바나나·열대과일 등 다양한 작물을 경작하며, 최상품의 커피를 생산한다. 또한 철·납·구리 등의 광물 등의 천연자원이 나며, 그 중 철의 생산량은 멕시코에서 가장 많다. 해안의 쿠유틀란에서는 소금을 생산하며, 태평양 연안에는 만사니요 항구를 비롯한 휴양지가 있다.
교육[편집]
콜리마대학교[편집]
콜리마대학교는 멕시코 남서부 태평양에 면한 콜리마주에 위치한 공립 종합대학교이다. 1940년 대통령 라자로 카르데나스에 의해 콜리마 인민대학교(People's University of Colima)로 설립되었다. 1962년에 국가교육시스템에서 분리되어 자치권을 획득했다.
콜리마대학교는 28개 학술조직에서 58개의 학사학위와 22개 석사학위, 9개 박사학위 과정을 제공한다. 대학평가기관 QS의 2023년 세계대학순위에서 라틴아메리카 대학 가운데 191-200위권에 포함되었다. 2023년 타임스고등교육의 세계대학평가에서는 라틴아메리카 대학 중 126-150위권에 드는 것으로 평가됐다.[5]
교통[편집]
플라야 데 오로 국제공항[편집]
멕시코 중서부 콜리마주(州) 만사니요 도심에서 북서쪽으로 약 40km 거리에 위치하며, 남쪽으로 북태평양 연안과 면한다. 공항 코드는 ZLO(IATA), MMZO(ICAO)이다. 콜리마주의 주요한 관문이며, 만사니요의 해변 휴양지를 방문하는 캐나다와 미국의 국제선 이용객이 많다. 공항 명칭인 플라야 데 오로(Playa de Oro)는 만사니요 해안가의 이름으로 '금빛 해변'이란 뜻이다. 만사니요 국제공항(Aeropuerto Internacional de Manzanillo)으로도 불린다.
여객 터미널은 한 동이며, 활주로는 2,200mx45m 크기로 총 1개소를 운영한다. 취항 항공사로는 아에로마르(Aeromar)·에어트랜셋(Air Transat)·알래스카항공·볼라리스(Volaris)·US항공 등 10개사가 있다. 국제선은 캐나다의 새스커툰(Saskatoon)·에드먼턴(Edmonton)·토론토(Toronto)·캘거리(Calgary)·밴쿠버(Vancouver)의 5개 도시와 미국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피닉스(Phoenix)·휴스턴(Houston)·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의 4개 도시로의 직항 노선이 있다. 국내선은 멕시코시티(Mexico City)로의 1개 노선을 운항한다. 교통편으로는 만사니요 도심을 연결하는 200번 주립도로가 인접한다.[6]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편집]
마리아치, 현악과 노래 그리고 트럼펫 연주는 멕시코 고유한 음악의 표현이자 기악 합주단의 총칭으로,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멕시코 민속 음악이자 악단과 노래를 포괄하는 총체적인 개념인 마리아치는 18세기 할리스코주, 나야리트주, 콜리마주, 시날로아주 등 멕시코 서부에서 시작되어 전역으로 퍼졌다. 농촌 지역에서 북과 피리 등을 연주하며 노동의 힘겨움과 즐거움을 노래한 것이 기원이며, 에스파냐 식민 시대 이후 유럽의 현악기가 도입되어 본격적인 전통 마리아치 악단이 편성되었다.
악기 편성은 에스파냐 식민 시대에 전해진 바이올린, 만돌린, 비우엘라 등과 멕시코에서 발전한 현악기인 기타라 데 골페(Guitarra de Golpe), 그리고 베이스 기타인 기따론 멕시카노가 포함되며, 연주자는 지역의 전통 의상을 착용한 2명 이상으로 구성된다. 멕시코 민속 음계인 손 멕시카노(Son Mexicano), 에스파냐의 춤곡인 볼레로, 라틴 민속 음악인 란체라와 쿰비아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활용된다. 지역별 특성에 따른 차로 복장에 신발은 우아라체(Huarache), 멕시코 모자인 솜브레로를 쓰고 공연한다.
전통과 현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악기 편성에 있다. 현대 마리아치는 현악기 그룹 이외에 20세기 도입된 트럼펫이 추가되어 4명 이상의 연주가로 구성된다. 20세기 초 멕시코 혁명 당시 멕시코의 다양한 민족의 민중들을 규합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멕시코 정부가 국가 차원의 결속력을 목적으로 정책적으로 지원하면서 1930년대 이후 수도인 멕시코시티를 중심으로 대중적으로 발전했다.
농촌 풍경, 관습, 일상 생활을 다룬 노랫말에서부터, 전쟁 영웅, 그들의 업적, 종교 내용, 그리고 사랑 이야기까지 다채롭게 담아 낸다. 멕시코 전통 민요인 하라베(Jarabe)와 유럽 영향의 춤곡인 미뉴에트, 왈츠, 폴카 등을 구사한다. <미초아칸의 길 Caminos de Michoacán>, <시날로아의 노래 El sinaloense>, <나는 멕시코인 Yo soy mexicano> 등이 대표곡이다.
19세기 에스파냐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민중의 음악으로 자리매김하였고, 20세기 멕시코 혁명 기간에 군악대로 활용되어 여러 문화가 공존했던 멕시코 대륙에서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고향, 고국, 종교, 자연 등의 메세지를 통해 멕시코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표현물로,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7]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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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콜리마주〉, 《위키백과》
- 〈콜리마〉, 《나무위키》
- 〈콜리마주〉, 《네이버 지식백과》
- 〈콜리마대학교〉, 《네이버 지식백과》
- 〈플라야 데 오로 국제공항〉, 《네이버 지식백과》
- 〈마리아치, 현악과 노래 그리고 트럼펫 연주〉, 《네이버 지식백과》
- 〈콜리마〉, Academic Accelerator
같이 보기[편집]
북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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