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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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와(Ottawa)는 캐나다의 수도이자, 지방자치단체로 온타리오주 내에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도시 인구는 약 101만 명이고 광역 도시권 인구는 149만 명으로 캐나다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이자 4번째로 큰 대도시입니다. 오타와는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뽑은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 4위, 또한 세계적인 인적자원 컨설팅 회사인 머서(Mercer)가 발표한 '삶의 질 평가보고서'에서는 가장 살기좋은 도시 18위에 선정되었다.[1]
개요[편집]
오타와는 온타리오주 동부의 오타와 밸리에 위치하고 오타와강 남쪽 유역에 있으며, 주요 수로는 온타리오와 퀘벡 지방 사이의 지역 경계선을 형성한다. 온타리오주 동쪽 끝에 위치한 오타와는 오타와강(Ottawa River), 가티노강(Gatineau River), 리도강(Rideau River) 세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으며 퀘벡주 가티노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다. 특히, 오타와강은 세인트로렌스강의 주요 지류로서 이 유역은 모피, 목재, 광물과 같은 자원 수송에 유용하게 사용되었고 도시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 오타와강 북쪽 기슭의 이웃한 퀘벡주의 가티노와 여러개의 다리들로 연결되는데, 두 도시와 주변 지역들은 수도권으로 지정되어 있다. 별도의 자치정부에 의해 통치되지만, 이 지역 내에 연방 토지는 국립수도권개발위원회(NCC)가 관할하며 연방 정부의 공기업이 수도권의 기획, 관리 및 공익에 대한 책임을 담당한다. 1826년에 바이타운(Bytown)으로 설립되었고, 1855년에 오타와로 통합되었으며 원래 경계는 수 많은 합병을 통해 확장되었으며 최종적으로 2001년에 현재의 도시 경계를 확정하였다. 오타와라는 도시 이름은 1855년 지어졌는데, 도시를 흐르는 오타와강에서 연유하였다. 오타와라는 단어 자체는 알곤퀸족 언어에서 유래하였으며 이는 교역하다는 의미를 담고있다. 오타와는 캐나다의 정치 중심지이자 연방 정부가 위치한 곳으로 캐나다 의회, 대법원, 총독 관저, 총리 관저, 외국 대사관 등 주요 조직 및 기관이 위치한 곳이다. 오타와는 다른 캐나다 도시 중에서도 거주자의 교육 수준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타와대학교, 칼튼 대학교, 알곤퀸 대학교, 국립예술센터 및 국립미술관 등 많은 대학교, 연구 시설, 문화 기관이 있다. 매년 겨울에는 리도 운하에서 윈터루드(Winterlude) 축제를 벌이며 이는 캐나다 최대의 축제로 매년 1,0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한다.[2]
지리 및 기후[편집]
오타와는 오타와강의 남쪽 제방에 있으며 리도강(Rideau River)의 입구와 리도 운하(Rideau Canal)를 포함한다. 오타와는 퀘벡의 가티노(Gatineau)와 경계하고 있으며 이런 지리적 위치로 오타와-가티노 대도시권(Census Metropolitan Area, CMA) 및 수도권(National Capital Region, NCR)을 형성하고 있다. 현재 오타와시의 경계는 2001년 오타와와 칼튼(Carleton) 지역 내의 10개 다른 지방 자치구가 통합되면서 확정되었다. 오타와강은 오타와시 북부의 경계를 구성하고 있는데 이는 퀘벡의 폰티악(Pontiac) 및 가티노 지역과 경계를 마주하고 있다. 오타와강과 가티노강은 벌목과 제지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리도 운하의 일부로서 군사, 상업 등의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리도강은 오타와강으로 흘러드는 지점의 폭포가 ‘커튼’을 닮았다고 생각한 초기 프랑스 탐험가들로부터 이름 따와 폭포와 강의 이름을 리도(ridau)라고 명명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커튼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이다. 리도 운하는 1832년에 처음 개통되었으며 길이는 202㎞(126마일)이다. 킹스턴의 온타리오호에 있는 세인트로렌스강과 팔러먼트 힐 근처의 오타와강을 연결하고 있다.
오타와의 기후는 사계절이 뚜렷하며 습한 대륙성 여름기후를 보인다. 7월 평균 최고 기온은 26.6℃이고, 1월 평균 최저 기온은 영하14.4℃이다. 오타와의 여름은 따뜻하고 습한 편인데, 여름철 6~8월 세 달 동안 30℃를 초과하는 날은 11일 정도이다. 겨울 동안은 눈이 많이 내리고 얼음이 주로 어는데, 1~3월 세 달동안 거의 매일 평균 5㎝ 이상의 적설량을 보인다. 연평균 기준으로 12일 정도는 5㎝ 이상의 적설량을 기록하며, 이 중 4일은 10㎝ 이상의 적설량을 기록하기도 한다. 연평균 17일 정도는 -20℃ 미만의 온도를 기록하기도 한다. 오타와의 봄과 가을 날씨는 변화무쌍하며 극단적인 온도와 기후로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예를 들면, 격년으로 5월 중 하루는 영하의 기온을 기록하지만, 비슷한 비율로 30도가 넘는 날이 있기도 하다.
연평균 강수량은 약 750㎜로 약간의 변동은 있지만 일년 내내 고른 강수량을 기록하는 편이다. 5월과 11월에 집중적으로 비가 내려 높은 강수량을 기록하거나 주요 강수 사건을 볼 수 있다. 매달 3일 정도는 1㎝ 이상의 강수량을 기록하며, 12월부터 4월까지는 하루에서 이틀 동도 1㎝ 이상의 강수량을 기록한다. 다만, 5월부터 11월까지 월평균 강수량은 8㎝가 넘고 6월과 9월에는 최고 강수량이 약 9㎝ 정도를 기록한다. 2월은 평균 강수량이 5㎝ 정도로 가장 건조한 달이다.[3]
역사[편집]
오타와 지역에서 초기에 살았던 사람은 오타와강 계곡에 정착촌을 마련한 앨곤퀸 원주민(Algonquin First Nation, Native Americans)의 일부였다. 이후 오타와(Outaouais)로 알려진 원주민이 1600년대 중반에 이 지역에 잠시 정착했으나, 이들의 원래 전통적인 영토는 후론(Huron) 호수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들은 지방에서 모피무역에 관여하는 등 상인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오타와라는 이름은 무역을 의미하는 앨곤퀸어의 단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타와 지역의 부지에 대한 최초의 설명은 1613년 뉴프랑스(현 캐나다)를 세운 사무엘 드 샹플랭이 작성했다. 오타와 인근의 강들은 이후 약 두 세기 동안 탐험가들과 모피 무역상의 통로 역할을 했다. 프랑스는 1763년 파리조약에 따라 미시시피강 동쪽의 뉴프랑스 전역을 대영제국에 할양하였다. 이 지역은 이후 대영제국에 자원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특히 나폴레옹 전쟁(1792-1815) 기간 동안 영국에서 선박 건조를 위한 목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자 오타와강 계곡 인근에서 목재를 공급하기도 했다. 필레몬 라이트(Philemon Wright)가 이끄는 메사추세츠의 농부 그룹은 오타와강 북쪽 지역에 처음으로 영구적인 정착 마을인 Wrightville을 건설했다. 이는 이후 1875년에 헐(Hull) 시로 통합되었으며 현재는 가티노(Gatineau)의 일부이다. 라이트는 1806년부터 벌목업을 시작했는데 이러한 벌목업 및 목재 무역은 벌목꾼과 품팔이 노동자(itinerant workers)를 이 지역으로 끌어들였다.
강 남쪽의 영구 정착지는 북쪽에 정착지가 만들어진 후 약 10여 년이 지난 후 만들어지게 된다. 1812년 영국과 미국이 전쟁을 벌이는 도중 몬트리올과 온타리오주 킹스턴 사이의 세인트로렌스강은 군사적, 경제적 목적의 공격에 취약했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군은 기존의 운송 및 이동을 위해 대체할 만한 경로 건설을 위해 리도강(Rideau River)을 운하로 만들 것을 제안했는데, 이는 오타와강에서 샤우디에르 폭포(Chaudiere Falls)로 다시 킹스턴으로 우회하는 길이었다. 당시 이 구간의 길이는 202㎞로 1826년부터 1832년까지 공사를 진행했다. 이 공사 기간동안 강 남쪽 제방 인근에 노동자를 위한 마을을 조성하는데, 이 마을은 나중에 바이타운(Bytown)으로 명명되었고, 1855년에 오타와시로 통합되었다.
리도 운하는 군사적 용도로 사용된 적은 없지만 1800년대까지 지속된 임산물에 대한 미국의 수요 충족을 위해, 목재, 상품과 사람의 수송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것이 자연스레 도시의 발전을 이끌었다. 1837년에 발발한 무장 반란을 포함해 영국령 캐나다 식민지 내 정치적 불안으로 인해 영국은 상부 캐나다와 하부 캐나다로 분리된 식민지를 1841년 캐나다 주(Province of Canada)로 통합하게 된다. 수도를 결정하는 문제에 있어서 퀘백, 토론토, 몬트리올, 킹스턴과 같은 도시들이 경쟁적으로 나섰고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빅토리아 여왕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1857년 빅토리아 여왕은 오타와를 수도로 선택했다. 오타와는 그 지리적 위치, 특히 철도로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므로 강력한 수도 후보지였으나, 오타와의 수도 선정은 도시의 크기 및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목재 가공 및 유통 산업을 고려했을 때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10년 후 캐나다 자치령이 형성되었을 때도 오타와는 여전히 주요 행정중심지로서 역할을 했다.
1900년 헐(Hull)을 황폐화 시킨 화재로 인해 오타와의 대부분이 완전히 파괴되었는데, 1916년에는 또 다른 화재로 인해 국회의사당 건물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이후 재건축이 진행되어 1922년 도시의 중앙부 부분은 완공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과 1930년대의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 등으로 도시의 성장은 더디게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타와는 수도로로 공업용 펄프, 제지 공장 도시로 남아 있었다.
윌리엄 맥켄지 킹(William L. Mackenzie King) 수상은 1937년 프랑스의 건축가 자크 그레버(Jacques Greber)를 데려와 도시 재개발을 시작했다. 이 도시 계획의 목적은 오타와를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도시, 또 수도에서 기대할 수 있는 외관과 편의 시설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도시 개발 계획 속에서도 연방 정부는 무분별한 도시 성장을 통제하기 위해 연방 정부 건물과 그 주변에 넓은 녹지 혹은 공원 공간을 제공하고, 도시 주변을 그린벨트로 설정해 성장을 제한하기도 했다. 또한 도시 중심에 자리 잡은 철로와 공업시설을 없애려고 했다. 하지만 Greber의 도시 계획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1950년까지 중단되었다. 도시 개발 계획의 실행은 1958년 의회 법안에 근거해 국가자본위원회(National Capital Commission, NCC)를 설치하며 재개되었고, 연방정부가 오타와강의 퀘벡, 온타리오 쪽 땅의 약 4,700㎢(1,800 평방마일)의 땅을 국가 수도권 지역으로 지정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연방 행정건물은 강을 두고 양쪽으로 분산 배치되어 있다.[4]
경제[편집]
수도이자 연방 정부의 중심이 위치하는 만큼 오타와의 최대 고용주는 공공서비스 분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하이테크놀러지산업 역시 많은 직장을 제공하고 있는데, 최근 들어서는 의료 및 관광 분야도 오타와의 주요 경제 활동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연방 정부는 수도권에서 116,000명 이상의 인력을 고용하는 가장 큰 고용주로서, 연방 부처의 대부분은 오타와의 센터타운(Centretown) 지역과 헐(Hull)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오타와에는 캐나다 국방부의 사령부가 위치하고 있는데, 여름 기간 동안에는 근위병 교대와 같은 주요 의식을 지휘하기도 한다. 캐나다 수도권의 관광 산업은 오타와를 중심으로 발전해왔으며, 건국 이후 지난 150여 년간 오타와의 경제 활동 중 주요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수도권 지역은 매년 약 2,20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고, 이들은 약 22억 달러를 소비하며 지역에 30만 6천 개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타와에는 여러 기술 및 연구센터가 위치하고 있는데, 2020년 기준으로 약 2,000여 개의 회사에 77,000명의 직원이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 수치는 오타와 근로 인구의 약 11%을 차지하고 있다. 고부가가치 기술 산업을 하는 기업들이 수도권에 집중적으로 유치되어 있어 오타와는 “북부의 실리콘 밸리”라는 명칭을 얻었다. 이들 회사는 대부분 소프트웨어 개발, 환경 관련 기술 분야, 통신 분야에 전문성을 띠고 있는데, 노텔(Nortel), 코렐(Corel), 마이텔(Mitel), 할로겐 소프트웨어(Halogen Software), 쇼피파이(Shopify), JDS 유니페이스(JDS Uniphase)와 같은 대규모 기술 회사들이 설립되어 있고, 노키아(Nokia), 3M, 어도비(Adobe Systems), 벨캐나다(Bell Canada), IBM, 휴렛패커드(Hewlett-Packard)와 같은 다국적 기업의 캐나다 법인이 오타와에 있다.
의료 부문 역시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산업 분야이다. 약 18,00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데, 주요 병원으로는 Queensway Carleton 병원, The Ottawa 병원, Montfort 병원, 그리고 동부 온타리오 아동 병원의 4개 종합 병원이 있다. 아울러 의학 기술과 관련된 여러 연구센터도 있는데 특히, 오타와 대학교 심장 연구소(University of Ottawa Heart Institute) 및 왕립 오타와 정신 건강 센터(Royal Ottawa Mental Health Centre)와 같은 여러 전문 병원 시설도 있다.
오타와의 농업 경제, 즉 1차 산업 규모는 캐나다의 다른 주요 도시에 비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농업 경제는 오타와 GDP에서 10억 달러가 넘는 규모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중 농산물 생산과 직접 관련된 농업 분야에서 약 4억 달러 규모를 차지하고, 판매와 같은 부가 분야에서는 1억 3천만 달러 규모의 경제를 차지하고 있다. 농촌 경제 활동에는 농업, 소매 판매, 건설, 임업 및 광업(집합), 관광, 제조, 개인 및 비즈니스 서비스, 운송 등이 포함된다.
문화[편집]
오타와에는 많은 공립 및 사립대학, 전문대학 및 전문 학교가 있다. 주요 대학으로는 이중 언어 교육 기관으로 1848년에 설립된 오타와대학교와 1942년에 설립되어 전적으로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는 칼턴대학교가 있다. 앨곤퀸 대학(Algonquin College)의 오타와 캠퍼스는 1967년 설립되었으며, 기술 및 응용 과목에서 학위와 수료증을 수여한다. 문화 관련 기관으로는 다제적, 이중 언어 예술 센터를 포함해 오페라 하우스 및 두 개의 극장을 포함한 캐나다 국립미술관이 있다. 캐나다 과학 기술 박물관, 캐나다 전쟁 박물관, 냉전 박물관, 캐나다 항공-우주 박물관 등 국영 박물관 등이 있다. 아울러 캐나다 도서관 및 캐나다 국립 기록 보관소, 국회의사당이 있으며, 캐나다 최초로 야외 보행자 전용 쇼핑 시설로 지정된 역사적 거리인 스파크스 스트리트(Sparks Street)가 있다.
현재 리도 운하는 유람선 운행과 같은 여가를 목적으로 사용되지만 여전히 운하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이 운하는 그 기능, 디자인, 역사적 중요성 모두를 인정받아 200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겨울이 되면 운하는 얼어붙어 세계에서 가장 긴 스케이트장인 리도 운하 스케이트 거리가 된다. 운하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것은 오타와 겨울 행사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1979년부터 매년 겨울인 2월 개최되는 윈터루드(Winterlude) 행사는 겨울 스포츠, 음악, 눈 조각 등을 특징으로 하고, 매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을 오타와로 끌어들인다. 다른 인기 있는 연례 축제로는 캐나다의 날(7월 1일)과 캐나다 튤립 축제(5월)가 있다. 특히, 튤립 축제는 제2차 세계대전 도중 오타와에 피신한 네덜란드 왕실이 100,000개의 튤립 구근을 선물하면서 시작한 축제로, 매년 피는 튤립과 함께 축제를 벌인다.
오타와대학교[편집]
오타와대학교(University of Ottawa)는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에 있는 공립 종합대학교이다. 줄여서 유오타와(uOttawa) U of O, 오타와유(Ottawa U)라고도 부른다. 1848년 로마가톨릭 오타와 교구의 주교 조제프-브뤼노 기그(Joseph-Bruno Guigues:1805~1874)가 '바이타운 로마가톨릭대학(Roman Catholic College of Bytown)'이라는 교명으로 설립하였다. 본래 소년만을 위한 학교였으며 인문 부문만 가르쳤고 오전반에서는 프랑스어, 오후반에서는 영어 수업을 했다. 캠퍼스는 현재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는 오타와의 로어 타운(Lower Town) 지구에 위치했으며 1856년 지금의 팔러먼트 힐(Parliament Hill)로 이전했다. 1861년 오타와대학으로 교명을 바꾸었고 1866년 영국 왕실의 칙허장을 받아 오타와대학교가 되었다. 1872년 학사학위, 1875년 석사학위, 1888년 박사학위를 수여하기 시작하였고 1919년 여학생의 입학을 허용하였다. 1965년 전면적으로 조직을 개편하고 비(非)종파 대학으로 방향을 바꾸었으며 온타리오 주의회의 법령에 따라 온타리오주의 기금을 받기 시작했다. 이때 온타리오대학교에 본래 있던 신학 과정이 떨어져 나가서 오타와에 별도로 세인트폴대학교(Saint Paul University)으로 설립되었고 이후 오타와대학교와 연합관계를 맺고 있다.
영어와 프랑스어 2개 국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대학으로서는 북아메리카에서 규모가 가장 큰 대학이며 모든 수업과 행정업무가 프랑스어와 영어로 진행된다. 2010년 기준 인문학부, 교육학부, 공학부, 보건학부, 법학부, 의학부, 경영스쿨, 과학부, 사회학부의 9개 학부와 대학원·박사후학부(Faculty of Graduate and Postdoctoral Studies)에서 300개 이상의 학부과정, 160개 이상의 대학원과정을 제공한다. 오타와 시내 부근, 약 2,000m 높이의 팔러먼트 힐에 자리 잡은 캠퍼스에는 1901년 지은 아카데믹 홀을 비롯해 옛 건물들이 남아 있다. 부속시설로는 도서관, 학습자료 센터, 라디오 방송국, 시민권·소수집단을 위한 학제연구센터, 환경게놈학 응용연구센터, 촉매연구·혁신센터, 국제정책학센터, 신경역학센터, 환경미생물학연구센터 등이 있다. 캐나다 전 총리 폴 마틴이 졸업했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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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오타와〉, 《위키백과》
- 〈오타와〉, 《나무위키》
- 〈오타와〉, 《요다위키》
- 〈오타와(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오타와대학교(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북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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