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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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텀(The Bottom)은 카리브해의 소앤틸리스 제도에 있는 네덜란드의 특별 지자체 사바섬 최대 도시이자 행정 중심지이다. 인구는 약 500명이다.[1]
개요[편집]
보텀은 카리브해 동북부, 네덜란드령의 네덜란드령 안틸레스(Netherlands Antilles)에 속하는 가장 작은 화산섬인 사바섬에 위치한다. 사바의 전체 면적은 13㎢로, 네덜란드령 앤틸리스 제도에서 가장 작은 섬이며 섬에서 가장 높은 지점은 해발 888m 높이의 휴화산 마운틴시너리(Mt. Scenery)다. 최초의 유럽인 정착지는 1640년경에 시작되었으며 정착지가 파괴된 후, 이 정착민들은 보텀에 마을을 세웠다. 1909년에 항해 학교가 보텀에서 문을 열었고 1922년까지 운영되었다. 1923년에 퀸 윌헤미나(Queen Wilhemina) 도서관이 보텀에 문을 열었고 이 도서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사바의 해안은 전체가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서남 해안에 작은 항구가 자리하고 있다. 하천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식수는 빗물을 모으거나 소규모 해수 담수화 시설을 이용하는데, 물 부족 문제가 심각하여 관광객도 목욕을 오래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보텀에는 관공서, 병원, 양로원, 경기장, 세 개의 교회, 도서관, 퀸즈 호텔 리조트 및 다양한 상점, 레스토랑 및 바가 있으며 교육기관으로 사바대학 의과대학이 있다. 매년 7월 말 보텀에는 사바 카니발 축제가 열리는데 라이브 음악, 음식, 춤, 게임, 그리고 퍼레이드를 포함하는 일주일간의 축제이다. 보텀에서 열리는 또 다른 행사는 사바 데이이다. 이날은 모든 사무실, 학교, 기업체가 문을 닫는 섬의 기념 국경일이다. 섬 주민들은 다양한 활동, 공연, 퍼레이드를 통해 그들의 다양성과 문화를 연출한다.[2]
역사[편집]
최초의 유럽인 정착지는 1640년경에 질랜드(Zeeland) 출신의 식민지 주민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산사태로 원래 정착지가 파괴된 후, 이 정착민들은 더 바텀(The Bottom)에 마을을 세웠다. 마을의 원래 이름은 다양한 산으로 둘러싸인 계곡에 있는 지리적 위치를 가리키는 네덜란드어 De Botte였다. 더 보텀(The Bottom)은 이 이름의 영어 변형이다. 네덜란드 정착민 이후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들과 함께 아일랜드, 영국, 스코틀랜드 정착민들이 뒤따랐고 섬의 마을들의 주요 언어는 영어가 되었다.
1860년대까지 보텀은 세인트존스, 윈드워드사이드, 부비 힐, 메리 포인트(팔메토 포인트), 헬스 게이트, 미들 아일랜드 등 7개의 주요 지역 중 하나였다. 보텀 지역구에는 다른 지역구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선출된 수장이 있었다. 1865년 보텀의 인구는 616명이었다. 1877년에 성심 가톨릭교회가 더 보텀에서 건설되기 시작했다. 1909년과 1934년에 다시 건물이 교체되었지만 그 교회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18세기, 19세기 그리고 20세기 초에 걸쳐, 보텀의 대부분의 남자들은 농업이나 어업에 종사했다. 보텀의 남자들은 또한 19세기에 사바의 산업 중 하나였던 조선업에 종사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가정에서 가사 일을 하고 있으며 모자 만들기와 사바 레이스로 알려진 현지에서 실을 뽑는 일에 종사했다.
1900년까지 보텀은 세인트존스, 윈드워드사이드, 헬스 게이트와 함께 사바의 네 개의 주요 마을 중 하나였다. 1909년에 항해 학교가 보텀에서 문을 열었고 1922년까지 운영되었다. 1919년 웨슬리안 성결교회에 건축이 시작되었고 그 교회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1923년에 퀸 윌헤미나(Queen Wilhemina) 도서관이 보텀에 문을 열었고 이 도서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사바의 첫 번째 영화관은 1953년에 개장했고, 두 번째 영화관은 1964년에 문을 열었다.
20세기 초부터 중반까지 사바에서 대규모 이주가 이루어졌고 보텀의 인구는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1972년까지 보텀의 인구는 341명으로 줄었다. 20세기 중반부터 후반까지 사바(Saba), 특히 보텀과 윈드워드사이드에서 경제적인 발전이 있었다. 첫 슈퍼마켓은 1964년 보텀에서 문을 열었다. 1992년, 사바 대학 의과대학이 보텀에 문을 열었다. 2001년, 윈드워드사이드의 인구는 462명이었다.[3]
사바섬[편집]
사바섬(Saba Island)은 카리브해에 위치한 네덜란드의 섬으로 수도는 보텀이다. 사바섬은 네덜란드령의 네덜란드엔틸레스(Netherlands Antilles)에 속하는 가장 작은 화산섬이다. 면적은 13km², 인구는 2020년 1월 기준으로 1,933명이다. 사바섬과 신트외스타티위스섬 및 신트마르턴을 합쳐서 SSS제도라고 부른다.
사바섬은 카리브해 소앤틸리스제도에 있는 화산섬이다. 주도는 보텀(The Bottom)이고 그 외에 윈드워드사이드(Windwardside), 헬스게이트(Hell's Gate), 세인트 존스(St. Jhon's) 등 마을이 있다. 사바섬에 있는 최고봉은 해발 888m 높이의 휴화산 세네리산(Mt. Scenery)이다. 해외 영토를 포함한 네덜란드의 최고봉이기도 하다. 공식 언어는 네덜란드어지만 영어를 함께 사용하며 1986년 이후 학교에서도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사바섬은 1943년 콜럼버스(Columbus)에 의해서 발견되었고 1640년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에 의해서 식민지가 되었다. 17~18세기에는 설탕과 럼(rum)의 주요 생산지였으며 현재는 어업과 관광업이 주요 산업이다. 섬 전체가 가파른 경사지로 이루어져 있어 대규모의 농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어업과 소규모 농작물 재배에 의존하는 자족적인 경제 구조를 유지해 왔으며, 최근에는 생태 관광을 중심으로 관광업이 성장하고 있다. 섬의 동북쪽에 있는 후안초 이라우스퀸 공항은 전 세계에서 활주로 길이가 가장 짧은 공항으로 유명하다. 특히 섬의 남쪽 해안의 바다 속에 있는 산호섬 사바 뱅크(Saba Bank)의 주변에는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어 다이빙과 낚시를 위한 장소로 유명하다. 특히 바다가재를 잡는 중요한 장소이다. 또한 산림이 우거진 엘핀 숲(The Elfin Forest)은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다양한 나무와 야생동물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고 관광객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4]
사바섬은 기원전 1100년대에 시보니족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서기 800년경 남아메리카의 아라와크 사람들이 섬에 정착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1493년 11월 13일 이 섬을 목격했다고 전해지지만 섬의 위험한 바위로 이루어진 해안가에 밀려 상륙하지 못했다. 1632년, 난파된 영국인들이 사바에 상륙했다. 1640년대 인근 섬인 신트유스타티우스의 네덜란드 총독은 네덜란드 서인도 회사를 위해 섬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몇몇 네덜란드인을 보냈다. 1664년, 영국 왕실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이 초기 네덜란드 정착민들은 세인트루이스로 쫓겨났다. 네덜란드는 결국 1816년에 섬을 완전히 지배하게 되었다. 17세기와 18세기에 사바의 주요 산업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사는 네덜란드인이 소유한 농장에서 생산되는 설탕, 인디고, 럼이었다. 유스타티우스, 그리고 나중에는 낚시, 특히 바닷가재 낚시이다. 농장을 운영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수입했다. 17세기에 사바는 자메이카 해적들에게 좋은 은신처로 여겨졌다. 영국은 또한 그들의 "바람직하지 않은" 사람들을 카리브해 식민지로 추방했고 그들 중 일부는 해적이 되었고 일부는 사바로 피난처를 옮겼다. 섬의 해안이 험하고 가파르기 때문에 섬은 밀수업자와 해적 가족들의 사적인 피난처가 되었다. 유명한 사반 해적은 섬의 네덜란드 평의원의 아들인 히람 비크스였다. 나중에 합법적인 항해와 무역이 중요해졌고 섬의 많은 선원들이 바다로 떠났다. 그 기간 동안, 베네수엘라에서 온 수녀가 도입한 스페인식 바느질인 사바 레이스는 이 섬의 여성들에 의해 만들어진 중요한 상품이 되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섬의 주요 수입원은 이 여성들에 의해 생산된 레이스 세공에서 나왔다. 이 기간 동안 대부분의 남자들이 바다로 나가면서 이 섬은 "여성의 섬"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943년, 독학 기술자인 조셉 람비 하셀은 사바에 도로를 건설하기 시작했고, 그 전에는 도보나 노새로만 이루어졌던 이 섬의 교통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1963년에는 공항이, 1972년에는 관광선을 위한 더 큰 부두가 생겼다. 그 결과 관광이 증가하여 점차 사반 경제의 주요 부분이 되었다. 2004년 11월 5일 사바에서 주민투표가 실시됐다. 인구 86.05%가 네덜란드와의 긴밀한 연계에 찬성했다. 이것은 2010년 10월 네덜란드령 앤틸리스가 해체되고 사바가 네덜란드의 특별 자치시가 되면서 달성되었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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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북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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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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