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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램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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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램턴 시청
브램턴 위치

브램턴 또는 브램프턴(Brampton)은 캐나다 온타리오주도시이다. 토론토 광역권의 일부이며, 토론토의 서북쪽이자 미시소가의 북쪽에 있다. 인구는 약 65만 명이며 캐나다에서 9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며, 토론토와 미시소가 다음으로 토론토 도시권에서 3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1]

개요[편집]

브램턴은 캐나다 중남부, 온타리오주 남동부에 위치하고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광역토론토(Greater Toronto Area: GTA)의 북서부에 위치한 필 지구(Peel Region)에 속해 있다. 도시면적은 총 266.71km²이다. 브램턴은 동쪽으로 본(Vaughan)이, 서쪽으로는 할톤 힐(Halton hill)이, 남쪽으로는 캘리던(Caledon), 남쪽으로는 미시소거(Mississauga)가 있다. 미시소가와 함께 필 지방자치구(Peel Regional Municipality)의 일부다. 19세기 영국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 애니쉬나비(Anishinabee) 부족으로부터 미시소거 일대의 땅을 매입할 때 현재 브램턴의 영토도 포함되어 있었다. 농지였던 브램턴을 발전시킨 계기는 1863년 한 영국 이주민이 지은 화훼 종묘장이었다. 종묘장이 성공하며 아예 회사를 하나 차려버린 그는 브램턴 전역에 온실을 지으며 사업을 확장했고, 자연스레 마을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1867년 브램턴은 미시소거를 비롯한 이웃 마을들과 함께 토론토가 속한 요크 카운티(York County)에서 분리되었고, 새로 생겨난 필 카운티(Peel County)의 일부가 되었다. 브램턴은 1960년대 부동산 기업인 브래멀리(Bramlea Limited)가 주도한 대규모 개발 사업과 함께 가파르게 팽창한다. 브래멀리는 브램턴과 지금의 피어슨 국제공항 주변의 멀톤(Malton)을 따 지은 이름으로, 당시 캐나다 최대의 부동산 개발 기업이었다. 브래멀리의 개발과 함께 규모를 키워 가던 브램턴은 1974년 행정구역 개편과 함께 주변 지역을 흡수하였으며, 종주 도시 토론토의 팽창과 함께 베드타운이자 산업 보조 기지로 성장하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되었다. 1년 평균기온은 8.2°C이며, 여름(6월~8월) 최저기온은 18.6°C, 최고기온은 21.5°C, 겨울(12월~2월) 최저기온은 -5.5°C, 최고기온은 –2.2°C이다. 발전상 자체가 토론토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만큼, 토론토의 강력한 영향 아래에 놓여 있다. 전형적인 스프롤 현상을 보여주는 도시로 일단 명확한 다운타운이 없으며, 도시 전체가 저밀도 주거지역과 공업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또 토론토로부터 거리가 좀 있다 보니, 군데군데 미개발 지역도 많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토론토로 출퇴근한다. 캐나다의 꽃동네(The flower Town of Canada)로 알려져 있고, 주요경제산업은 제조업과 소매업, 운송업, 정보통신기술인프라, 식음료, 생명과학관련 산업이다.[2]

지리 및 기후[편집]

브램턴의 총면적은 265km²이다. 브램턴 시는 동쪽으로 50번 고속도로, 서쪽으로 윈스턴 처칠 대로, 북쪽으로 메이필드 로드와 접해 있다. 남쪽으로 멀리 동쪽으로 미시소가와 접해 있다.

브램턴은 대륙성 기후(쾨펜 기후 구분 Dfb)를 특징으로 하며, 이는 그레이터 토론토 지역의 나머지 지역에서 전형적인 현상이다.

역사[편집]

브램턴은 영국 정착민들이 도착하기 전, 크레디트 퍼스트 네이션(Credit First Nation)의 미시소거(Mississaugas) 족은 호수의 머리 부분 북쪽에 있는 648,000에이커(262,000ha)의 땅을 보유하고 있었고 휴론 호수와 심코 호수의 치페와 영토까지 확장되어 있었다. 유럽의 정착민들은 1600년대에 그 지역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1818년 10월, 크레디트 퍼스트 네이션의 미시소거 족장은 조약 19에 서명했고 이 지역을 영국 왕실에 넘겨줬다.

1830년대 이전까지 칭가쿠시 타운쉽(Chinguacousy Township)의 대부분의 영업은 마틴 솔즈베리의 선술집에서 이루어졌다. 휴론타리오 거리와 5번째 사이드로드의 모퉁이에서 1마일 떨어진 곳에 윌리엄 버피의 선술집이 유일하게 중요한 건물이었다. 그 당시에 그 교차로는 "버피의 모퉁이"로 불렸다. 1834년까지 존 엘리엇(John Elliott)은 이 지역을 "브램턴"이라고 부르며 분양하였고, 곧 다른 사람들에 의해 채택되었다.

1853년에 새로 시작된 필 카운티의 카운티 농업 협회에 의해 소규모 농업 박람회가 메인 스트리트와 퀸 스트리트 모퉁이에서 열렸다. 곡물, 농산물, 뿌리 및 유제품이 판매되었다. 말과 소, 그리고 다른 작은 가축들도 시장에서 팔렸다. 이 농업 박람회는 결국 현대 브램턴 가을 박람회가 되었다. 1853년 브램턴은 마을로 편입되었다. 1866년 군청 소재지가 되었고 1865년부터 1966년까지 지어진 필 카운티 법원의 소재지가 되었다. 1867년에 3층짜리 카운티 교도소가 뒤쪽에 추가되었다.

영국 도킹(Dorking) 출신의 이민자인 에드워드 데일(Edward Dale)은 1863년 도착한 직후 브램턴(Brampton)에 꽃 양묘장을 설립했다. 데일의 온실은 그 마을의 가장 크고 가장 유명한 고용주가 되었고, 꽃 등급제를 개발했고 그것의 상품들을 위한 세계적인 수출 시장을 설립했다. 회사 굴뚝은 1977년 브램턴 시의회가 철거를 허락하기 전까지 도시의 랜드마크였다. 그 회사 전성기에는 140개의 온실을 보유하고 있었고 2천만 송이의 꽃을 생산하고 수많은 장미와 난초 품종과 종들을 시장에 선보인 북미 최대의 절화 사업이었다.

1867년 1월 필 카운티는 1851년부터 존재했던 연합인 요크 카운티에서 분리되었다. 1869년까지 브램턴의 인구는 1,800명이었다. 1873년에 도시로 통합되었다. 1887년에 최초의 공공 도서관을 설립할 수 있었던 것은 연방 정부의 보조금 덕분이었다. 이 도서관에는 기계공 연구소(1858년 설립)의 360권의 도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1907년에, 도서관은 미국의 철강 거물이자 자선가인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에 의해 설립된 카네기 재단(Carnegie Foundation)으로부터 새롭고 확장된 도서관을 짓기 위한 보조금을 받았다. 브램턴 도서관을 특징으로 하는 여러 가지 목적으로 사용된다.

브램턴의 한 지역 농부들은 도시에 기반을 둔 회사들로부터 보험을 얻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클레어빌 홀에서 몇 번의 회의 끝에, 그들은 필 파머스 상호 화재 보험 회사(Peel Farmers Mutual Fire Insurance Company)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1955년 회사가 세 번째이자 현재 위치인 퀸 스트리트 웨스트 103번지로 이전하면서 필 뮤추얼 인슈어런스 컴퍼니(Peel Mutual Insurance Company)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현대 브램턴에서 가장 오래 운영된 회사로 군림하고 있다. 함스워스 장식 센터(Harmsworth Decorating Center)는 1890년에 함스워스(Harmsworth)와 손(Son)이 퀸 스트리트 웨스트에 있는 가족의 집에서 운영하면서 설립되었다. 현재의 위치는 1904년 9월 1일 화재로 원래의 가게가 소실된 후에 구입되었다.

1974년, 칭가쿠시와 토론토 고어의 두 타운쉽은 브램턴에 통합되었다. 이 합병 후 외곽 지역사회가 이 도시에 통합되었다. 1963년, 그 마을은 미국 오레곤주 포틀랜드의 장미 축제를 기반으로 하는 브램턴의 꽃 축제를 설립했다. 도시는 캐나다의 플라워 타운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내놓기 시작했다.

2002년 6월 24일, 시의회는 꽃 재배 유산과의 연계를 촉진하기 위해 "꽃 도시 전략"을 수립했다. 그 의도는 도시를 아름답게 하고, 지속 가능한 환경적 접근법을 채택하고, 자연과 문화 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디자인 프로젝트와 공동체 조경에 영감을 주는 것이었다. 장미극장은 이러한 비전에 따라 이름이 지어졌으며 도시의 문화 기관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다.[3]

온타리오주[편집]

온타리오주(영어: Province of Ontario)는 캐나다의 정치, 경제의 핵심을 이루는 주이다. 주도는 토론토이다. 캐나다의 수도인 오타와도 온타리오주의 동부에 위치해 있다. 남쪽으로 온타리오호, 이리호, 휴런호, 슈피리어호의 4개 호수를 통해 미국뉴욕주, 펜실베이니아주, 오하이오주, 미시간주, 미네소타주의 5개 주와, 동쪽으로 퀘벡주, 서쪽으로 매니토바주와 경계를 접한다. 온타리오주에는 호수가 많은데 5대호를 포함한 호수·하천 등의 담수역(淡水域)은 17만 9300㎢나 되며, 그 대부분은 빙하호이다. 높은 산은 없으며, 평야나 대지성(臺地性) 토지가 이어진다. 남단부 이외는 캐나다 순상지에 속하며, 대침엽 수림지대가 펼쳐져 있다. 18세기 후반 미국의 독립전쟁 후, 영국에 충성을 맹세하는 왕당파의 사람들이 주의 남부로 이주해온 다음부터 퀘벡과 분리하여 ‘어퍼 캐나다’라고 명명하였다. 그 후 영국 본국에서뿐만 아니라 미국으로부터도 많은 이민이 이주해 왔으며, 1867년의 캐나다 연방 성립과 함께 현재의 온타리오주가 탄생하였다. 연방 성립 후, 유럽에 의존하고 있던 대서양 연안의 경제적 우위성은 점차로 연방의 중심이 된 세인트로렌스강(江) 유역과 온타리오호(湖) 북안으로 이동하였으며, 양 지역의 중간에 위치한 오타와에 수도를 건설하였다.[4]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브램턴〉, 《위키백과》
  2. 브램턴(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브램턴〉, 《요다위키》
  4. 온타리오주〉,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북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북아메리카 국가
북아메리카 지역
카리브제도 국가
북아메리카 도시 1
북아메리카 도시 2
북아메리카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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