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드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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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드프랑스(프랑스어: Fort-de-France; 마르티니크 크리올: Fodfwans)는 카리브해에 위치한 프랑스의 해외 주인 마르티니크의 주도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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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포르드프랑스는 서인도제도에 있는 마르티니크의 서해안에 자리 잡고 있으며, 프랑스령 앤틸리스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17세기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지만, 1902년만 해도 인구 2천명 수준 작은 도시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마르티니크에서 가장 크고 인구도 많은 생피에르가 중심 도시였다. 1902년 플레 화산의 폭발로 기존의 주도(主都)였던 생피에르가 폐쇄된 이후에 마르티니크의 정치와 상업의 중심지이자 주요 항구로 자리 잡았다. 정착 초기에는 주변이 늪지로 둘러싸여 있어 개발 용지와 용수의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배수 시설의 확충으로 이를 해결하면서 도시 공간이 급격히 확대되었다. 동쪽의 르라망탱(Le Lamentin) 방향으로 도시가 확장되면서 카리브 지역에서는 드물게 도시 스프롤(sprawal) 문제가 나타나고 있으며, 출퇴근 시간의 러시아워에는 교통정체도 발생한다. 포르드프랑스는 마르티니크의 중심 도시로 천연의 양항이며 수출입을 담당한다. 사탕수수, 바나나, 곡류, 파인애플, 카카오, 커피 등의 농산물 재배와 소, 돼지 등의 축산업, 제당, 럼주, 과일 통조림 등의 가공업이 활발하다. 특히 설탕과 바나나가 주산물로 수출의 80∼90%를 차지한다. 그러나 주식인 쌀과 옥수수는 수입에 의존한다. 포르드프랑스가 위치한 포르드프랑스 만(灣)의 남쪽에 있는 트루아일레(Trois-Îlets)는 나폴레옹 1세의 왕비인 조세핀 보나파르트(Joséphine Bonaparte)의 고향으로 유명하며, 포르드프랑스의 중앙 공원인 사반(Savane)에는 조세핀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2]
지리 및 기후[편집]
포르드프랑스는 마담강 하구의 포르드프랑스만(灣) 북쪽, 마르티니크섬의 서쪽 해안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지역은 항구여서 해발은 0~1070m에 이른다. 열대우림 지역으로 연중 내내 덥고 습한 날씨를 유지한다.
마르티니크 북동부는 무역풍의 영향으로 강수량이 많고 특히 허리케인이 잦은 7월부터 11월까지는 매우 습도가 높다. 반면 남서부는 매우 건조한 편이다. 연평균 기온은 29.1°C이며, 평균적으로 9월(30.3°C)이 가장 높고 2월(24.7°C)이 가장 낮다.
역사[편집]
이름 그대로 ‘프랑스의 요새(Fort-de-France)’인 이 도시는 1762년 영국 해군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아 포위되기도 했으며, 1839년 지진으로 부분적으로 파괴되고 1890년에는 대화재가 일어나는 등 수차례 큰 재앙을 겪었다.
1902년에 플레(Pelée)산의 화산 대폭발로 이 섬의 중심 도시인 생피에르가 파괴되면서 포르드프랑스는 마르티니크섬 전체 경제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그러나 1918년까지 물자 공급량이 부족했고, 늪지대가 많아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황열병으로 악명이 높았다. 늪은 도시가 본격 개발되면서 사라졌다.
포르드프랑스를 주도(州都)로 삼고 있는 마르티니크섬은 150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발견했다. 마르티니크(Martinique)라는 이름은 이 섬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이 부르던 ‘꽃의 섬’이라는 뜻을 가진 마디아나(Madiana)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1635년 프랑스의 지배를 받고 있던 생키츠섬에 거주하고 있던 프랑스인들이 마르티니크에 상륙하면서 이 섬은 프랑스의 지배를 받게 됐다. 1658년 마르티니크의 원주민들이 프랑스의 지배에 저항하는 봉기를 일으켰지만 진압됐고 원주민들은 학살당했다.
마르티니크는 1693~1779년 중 여러 차례 영국으로부터 공격을 받거나 점령당했다. 특히 7년 전쟁(1756~1763년), 미국 독립 전쟁에서는 프랑스와 영국 해군이 마르티니크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친나치 비시 정부가 마르티니크를 통치했다. 이에 따라 독일 U보트들은 카리브해 전투 중 마르티니크를 주유 거점으로 이용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46년에 프랑스의 해외 영토가 됐다. 포르드프랑스에 건설된 생루이 요새에는 프랑스 해군 기지가 자리 잡고 있으며 P400급 초계함과 F733 호위함이 배치돼 있다.[3]
경제[편집]
포르투갈 점령지인 브라질에서 추방된 네덜란드 유대인들이 1654년 이 섬에 사탕수수를 들여왔고,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할 많은 노예들이 아프리카에서 건너왔다. 1848년 서인도 제도에서 노예 제도가 폐지되면서 농장주들은 인도와 중국으로부터 농장 노동자들을 받아들였다.
사탕수수 등의 농산물 재배와 축산업, 과일 통조림 등의 가공업이 활발하다. 특히 설탕과 바나나가 주산물이다. 그러나 주식인 쌀과 옥수수는 수입해야 한다. 포르드프랑스 항구는 마르티니크 전체 수출입을 담당한다.
1979~1980년 2년 연속 허리케인이 마르티니크섬을 강타해 농업 생산에 심각한 영향을 미쳐 이 지역 경제를 위축시켰다. 2009년에는 총파업으로 한때 경제가 마비되기도 했다.
포르드프랑스를 비롯한 마르티니크섬의 관광 산업은 외화 수입의 원천으로 농산물 수출보다 더 중요해졌다. 섬 전체 사업체의 16%에 해당하는 약 6,000개 업체가 관광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대부분의 방문자는 프랑스 본토, 캐나다, 미국 등지에서 온다. 마르티니크는 대부분의 카리브해 국가들보다 생활수준이 높다.
경관[편집]
포르 드제(Fort Desaix) 요새는 포르드프랑스에 있는 네 개의 요새 중 하나로 1772년에 건설됐다. 이 요새는 당시 포르루아얄이었던 이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모른 가르니에 언덕에 자리를 잡고 있다. 또 다른 요새로는 프랑스 해군 기지가 위치한 포르 생루이와 포르 타르탕송, 포르 제르보가 있다.
포르드프랑스 생루이 대성당은 19세기 후반 로마네스크 부흥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로마 가톨릭 포르드프랑스 교구 성당 역할을 하고 있어 마르티니크의 ‘종교적 중심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도심에 위치한 이 성당의 건축은 1657년에 시작됐으나 그 후 화재, 지진, 또는 허리케인에 의해 파괴돼 개축을 반복했다. 현재의 대성당 구조물은 1895년 이러한 재난을 견디기 위해 철골로 건설됐는데, 자유의 여신상 구조를 설계하고 파리 에펠탑을 건설한 구스타브 에펠이 설계하고, 건축가 피에르 앙리 피크가 지었다. 또 열대 우림에 둘러싸인 절벽에는 파리 몽마르트르 교회를 재현한 사크레쾨르 드 발라타 교회가 서 있으며, 이 도시 안에 있는 라 사반 정원에는 마르티니크에서 태어난 나폴레옹의 부인 조세핀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교통[편집]
에메 세세르 국제공항이 외부 세계와 연결되는 관문으로 유럽, 카리브해, 베네수엘라, 미국, 캐나다를 오가는 항공편을 제공한다. 포르드프랑스는 과델루프, 도미니카, 성 루시아로 정기 여객선을 운항하며 푸앙트 뒤 부를 연결하는 페리도 여럿 있다. 도로망은 광범위하게 잘 정비돼 있으며, 포르드프랑스 주변 지역에 고속도로가 있다. 생피에르를 오가는 버스가 자주 다닌다.
마르티니크[편집]
마르티니크(프랑스어: Martinique, 앤틸리스 크레올: Matnik 아니면 Matinik)는 소앤틸리스제도의 윈드워드제도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카리브해에 있는 프랑스의 해외 레지옹이며 동시에 데파르트망이기도 하다. 화산과 해변이 있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가지고 있으며 사탕수수, 야자수, 바나나, 파인애플 등의 식물이 풍부하여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로 비유한 적이 있다.
마르티니크는 소앤틸리스 제도의 중앙 지점인 카리브 해와 북대서양 사이 북위 14°상에 위치하며, 도미니카 연방, 세인트루시아,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그레나다와 함께 소앤틸리스 제도의 일부인 윈드워드 제도(Windward Islands)를 이루고 있다. 가장 가까운 섬은 북쪽의 도미니카 연방으로 25㎞ 떨어져 있으며, 남쪽으로는 세인트루시아가 37㎞ 떨어져 있다. 길이 64㎞, 폭 24㎞의 단일한 섬이며, 면적이 제주도의 3분의 2 정도 크기인 1,128㎢로 윈드워드제도 내에서 가장 큰 섬이다.
윈드워드 제도의 다른 섬과 마찬가지로 화산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전형적인 화산섬으로, 지질구조상 과들루프, 도미니카 연방, 세인트루시아 등과 함께 소앤틸리스 화산호(弧)의 일부에 해당한다. 섬의 북부는 해발 1,397m의 최고봉인 플레(Pelée) 산을 중심으로 기복이 심한 산악 지형과 짙은 열대 우림이 발달해 있으며, 해안은 가파른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에 비해, 남부 지역은 상대적으로 평탄한 지형이 나타나며, 해변이 발달해 있다. 일부 건조한 지역에서는 선인장류와 발삼나무(balsam), 로그우드(logwood) 등의 사바나 식생이 발견된다. 지표면의 기복이 심해 길이가 짧고, 유역 면적이 좁은 특징을 가진 복잡한 하계망이 형성되어 있다.
열대 해양성 기후이지만 연간 약 300일간 부는 북동 무역풍의 영향으로 쾌적한 날씨가 이어진다. 연평균 기온은 26℃로 겨울의 최저 기온은 20℃ 정도이며, 여름에는 최고 32℃ 정도까지 올라간다. 12월부터 5월까지가 건기에 해당하며, 6월부터 11월까지가 우기인데, 특히 7월부터 9월 사이에 강우가 집중된다. 강우량은 곳에 따라 편차가 매우 큰 편으로, 해안 지대는 1,000㎜ 정도이며, 고도와 지형에 따라 일부에서는 10,000㎜가 넘기도 한다. 주변 해역은 연중 24℃ 이상의 수온을 유지하기 때문에 각종 해양 스포츠가 활발히 이루어진다.[4]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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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북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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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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