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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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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트리스
캐스트리스 위치

캐스트리스(Castries, 문화어: 캐스트레스)는 카리브해 동부 윈드워드제도에 있는 세인트루시아(영어: Saint Lucia)의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이다. 인구는 약 2만 명이고 세인트루시아 전체 인구의 약 40%가 집중되어 있으며 세인트루시아의 주요 관광 지역 중 한 곳으로 특히 크루즈선의 기항지이다.[1]

개요[편집]

캐스트리스는 중앙아메리카 카리브해 소앤틸리스 제도에 있는 섬나라 세인트루시아의 북서 해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세인트루시아의 수도이자 상업 중심지이다. 캐스트리스에는 정부 소재지와 많은 외국 및 현지 기업의 본사가 자리해 있으며 그리드 패턴으로 배치되어 있다. 캐스트리스는 1650년 프랑스가 세운 도시로 여러 번의 화재 이후 재건되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다. 캐스트리스는 세인트루시아의 수도일 뿐 아니라 동카리브국가기구의 사무국이 위치해 있다. 정치는 캐스트리스 시의회가 담당하며, 시장은 2021년 9월 취임한 제랄딘 렌도르-가브리엘(Geraldine Lendor-Gabriel)이다. 세인트루시아의 주요 관광 지역 중 한 곳으로 특히 크루즈선의 기항지이다. 크루즈선은 주로 항구 북쪽의 포인트 세라핀(Pointe Seraphine)에 정박한다. 캐스트리스에는 조지 찰스 공항(George F. L. Charles Airport)이 있다. 도시에는 포인트 세라핀, 라 플레이스 카레나지 등 면세 쇼핑 시설이 있다. 랜드마크로는 무염시태 대성당, 데릭 월콧 광장, 시립 도서관, 정부 청사, 캐스트리스 마켓 및 꼭대기에 있는 포트 샬럿이 있다.[2][3]

역사[편집]

세인트루시아의 수도 캐스트리스는 1650년 프랑스가 세운 도시이다. 1650년 캐흐나쥐(Carenage)로 불리다가, 1756년 캐스트리스로 지명이 변경되었다. 1769년 주지사였던 바홍 드 미쿠(Baron de Micoud)에 의해 항구의 남쪽으로 위치를 이전하였다.

1835년경 영국은 석탄 무역을 촉진하기 위해 서부 부두를 건설했고, 1841년 최초의 증기선이 부두에 도착했다. 한편, 1942년 3월 9일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캐스트리스 항구로 항해하여 두 척의 연합군 선박을 침몰시켰다. 이후 세인트루시아는 2차 대전에 직접 참전했으며, 미국은 세인트루시아의 그로스 아일렛(Gros Islet)에 공군기지를 세워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세인트루시아를 군사 허브로 사용하기도 했다. 캐스트리스는 1805년, 1813년, 1948년 등 여러 번의 화재 이후 재건되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다.[4]

구조[편집]

캐스트리스는 세인트루시아의 주요 관광지역 중 한 곳으로 특히 크루즈선의 기항지이다. 크루즈선은 주로 항구 북쪽의 포인트 세라핀(Pointe Seraphine)에 정박한다. 주요 랜드마크로는 대성당, 데렉 월콧 광장, 캐스트리스 마켓, 몽 포춘(Morne Fortune) 꼭대기에 위치한 포트 샬럿(Fort Charlotte)이 있다. 해변으로는 비기 해변(Vigie Beach), 마라바르 해변(Malabar Beach), 촉 해변(Choc Beach), 라 톡 해변(La Toc Beach) 등이 있다.

도시에는 동카리브국가기구의 사무국이 위치해 있다. 많은 국제 대사관과 영사관이 수도인 캐스트리스에 위치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영국 고등 판무관, 멕시코 대사관, 대만 대사관, 도미니카 공화국 대사관, 자메이카 영사관, 네덜란드 영사관, 노르웨이 영사관, 브라질 대사관 및 베네수엘라 대사관 등이 있다.

교통[편집]

캐스트리스에는 조지 찰스 공항(George F. L. Charles Airport)이 위치하고 있으며 국제공항은 뷰포트(Vieux-Fort) 지역에 있다. 국제공항과 캐스트리스 간의 이동 거리는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캐스트리스와 마르티니크의 포르드프랑스(Fort-de-France) 사이에 요트가 운행된다. 요트는 캐스트리스에 정박할 수 있지만 세관을 통과해야 한다. 이후 캐스트리스 타운(Castries Town)이나 비기 크릭(Vigie Creek) 앞에 정박할 수 있다.

표준 버스 노선은 캐스트리스에서 세인트루시아의 모든 외곽지역으로 운행된다.

세인트루시아[편집]

세인트루시아(영어: Saint Lucia)는 중앙아메리카 트리니다드토바고 북쪽 카리브해대서양 사이에 있는 섬나라이다. 18세기 중엽부터 영국프랑스의 영유권 분쟁이 계속되다가 1814년 파리조약으로 영국령이 결정되어 영국의 통치가 시작되었고 1967년 내정자치권을 획득한 뒤 1978년 영국의회로부터 독립을 승인받고 1979년 영국연방으로 독립하였다. 주민의 90% 정도가 아프리카계이고,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면서 파트와로 불리는 프랑스 방언도 일상어로 사용한다. 비옥한 화산 토양에서 거둔 수확물들로 음식 문화가 발달하였고, 노벨상을 받은 아더 루이스(Sir W. Arthur Lewis:1979년 노벨경제학상)와 데렉 월컷(Derek Walcott:1992년 노벨문학상)의 출생지이자, 이들이 교육을 받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캐스트리스는 천연 심해항으로, 섬의 북서 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남서부 해안에 있는 트윈피통스는 국가의 상징이자 카리브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자연 경관으로, 유네스코 세계 자연 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다.

세인트루시아는 카리브해와 북대서양 사이의 서경 60°58’, 북위 13°53‘에 위치하며, 도미니카 연방(Commonwealth of Dominica), 마르티니크(Martinique),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Saint Vincent and the Grenadines), 그레나다(Grenada)와 함께 소앤틸리스 제도(Lesser Antilles Islands)의 일부인 윈드워드 제도(Windward Islands)를 이루고 있다. 북쪽으로는 마르티니크, 남쪽으로는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이 위치하고, 바베이도스는 남동쪽으로 175㎞ 떨어져 있다. 전체 면적은 616㎢로 제주도의 3분의 1 정도 크기이며, 윈드워드 제도 내에서 마르티니크, 도미니카 연방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섬이다. 남북으로 43㎞, 동서로 22㎞인 타원형의 단일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해안선의 총연장은 158㎞이다. 윈드워드 제도의 다른 섬과 같이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전형적인 화산섬이다. 중앙에는 북에서 남으로 섬을 이등분하는 산악 지형이 형성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높은 봉우리와 열대 우림이 존재한다. 섬의 최고봉은 기미 산(Mount Gimie)으로 해발 959m이다. 기복이 심해 섬 중앙에서 카리브해로 흘러나가는 여러 소규모 하천이 발달하였으며, 하천 주변의 넓고 비옥한 계곡에서는 바나나 중심의 농업이 이루어진다.[5]

역사[편집]

식민지 이전[편집]

세인트루시아에 최초로 정착한 것은 평화적인 아라와크족으로, A.D. 200년경 남아메리카의 오리노코강 유역에서 이주해 왔다. 그러나 800년경에 세인트루시아로 건너온 호전적인 카리브 인디언들은 섬에서 아라와크족을 몰아내고 16세기 초엽에 에스파냐가 이 섬을 발견할 때까지 거주하였다.

유럽 세력이 처음으로 세인트루시아를 알게 된 것이 언제인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1502년 세인트루시아 인근에서 난파당한 프랑스 선원들이 처음으로 상륙하게 되었다는 것이 통설이지만, 같은 해인 1502년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발견했다는 설과 에스파냐의 탐험가인 후안 데라코사(Juan de la Cosa)가 발견했다는 설도 있다. 섬을 발견한 것과는 별도로 세인트루시아에 처음으로 정착한 유럽인은 해적인 프랑수아 르클레르(François le Clerc)였다. 르클레르는 북부의 피전(Pigeon) 섬에 자신의 기지를 만들고, 이곳을 지나가는 에스파냐 선박을 습격하였다. 1605년과 1638년에는 영국 세력이 이곳으로의 진출을 시도했지만 원주민의 저항으로 실패하였다. 세인트루시아는 17세기 중엽까지 유럽의 식민지로 편입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었으며, 1651년 마르티니크에서 건너간 프랑스인들이 원주민과 휴전에 합의하고 난 뒤에야 섬에 정착할 수 있었다.

프랑스와 영국 식민 시대[편집]

유럽의 진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세인트루시아의 평화는 유지되지 못했다. 18~19세기 초에 네덜란드, 영국, 에스파냐, 프랑스는 세인트루시아를 손에 넣기 위해 무력 충돌을 계속했으며, 그중 영국과 프랑스가 가장 심하게 대립하였다. 이 기간 동안 세인트루시아는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지배 국가가 14번이나 바뀌었다. 유럽 세력이 세인트루시아를 차지하려고 한 배경에는 전략적인 목적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했다. 세인트루시아는 섬이 지닌 천연적인 심해항이 함대를 보호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카리브해에서 적군의 움직임을 관찰하기에 이상적인 입지였기 때문이다.

1763년 이후로 세인트빈센트와 그레나다에서 이주해 온 프랑스인들은 세인트루시아에도 면화와 사탕수수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장을 만들었다. 플랜테이션 농장에 필요한 노동력은 아프리카에서 수입한 노예로 채워졌는데, 1834년 노예 해방이 선언될 때 세인트루시아에 백인은 2,300명밖에 안 되었지만 흑인 노예는 13,000명 이상이, 신분이 자유로운 흑인은 2,600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었다.

프랑스 혁명을 전후한 시기는 세인트루시아 역사에서 가장 폭력적인 기간이었다. 1770년대 후반 프랑스가 미국 독립 혁명을 지지함에 따라 영국은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하였다. 세인트루시아를 사이에 둔 영국과 프랑스의 전투는 프랑스 혁명 기간에도 간헐적으로 이어졌는데, 이는 카리브해 식민지의 설탕 생산 기지에서 창출되는 수익이 전쟁을 지속하는 데 꼭 필요한 자금원이었기 때문이다. 세인트루시아는 영국과 프랑스가 점유를 반복하다가, 1814년 파리조약에 따라 영국에 영구적으로 양도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시기 동안 끼친 프랑스의 영향은 높은 가톨릭 신자의 비율과 프랑스어 방언인 파투아어(patois)를 사용하는 것 등에 잘 남아 있다.

근대부터 현대까지[편집]

세인트루시아는 1838년부터 1885년까지 영국의 직할 식민지로 통치를 받았다. 행정권은 영국 여왕이 가지고 있었고, 바베이도스에 주재하는 영국 총독이 다른 윈드워드제도의 국가들과 함께 세인트루시아를 관할하였다. 세인트루시아 내에는 행정 및 입법 위원회가 지역 문제를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0세기 접어들어 세인트루시아는 영국으로부터 점진적으로 자치권을 넘겨받았으며, 1924년에는 의회가 만들어졌다. 1958년에는 새로 만들어진 서인도 연방(West Indies Federation)에 속하게 되었으나, 1962년 서인도 연방이 해체됨에 따라 영국에는 국방과 외교만 의존하고 완전한 자치권을 지닌 준국가 형태의 연합주(associate state)가 되었다.

1975년부터 서인도 내의 연합주들이 독립을 추진하였고, 세인트루시아 역시 3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1979년 2월 22일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였다. 독립 후 처음 치러진 선거에서 좌파 성향의 세인트루시아 노동당(St. Lucia Labour Party, SLP)이 정권을 차지하여 사회주의 성향의 정책을 추진하고, 쿠바와의 외교 관계를 확립하였다.

1980년 허리케인 앨런(Allen)이 주력 수출 상품인 바나나 산업에 큰 피해를 입히면서 노동당 정권이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이는 정치적 불안정과 관광객 급감으로 연결되었다. 1982년 보수 성향의 연합노동자당(United Worker's Party, UWP)이 집권하면서 외국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농업 생산력이 회복되면서 관광객이 다시 유입되었고, 국가 경제는 되살아났다. 이후 세인트루시아노동당과 연합노동자당이 번갈아 집권하고 있다.[6]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캐스트리스〉, 《위키백과》
  2. 캐스트리스(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캐스트리스〉, 《요다위키》
  4. 캐스트리스의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5. 세인트루시아(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6. 세인트루시아의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북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북아메리카 국가
카리브제도 국가
북아메리카 도시 1
북아메리카 도시 2
북아메리카 지리
북아메리카 주변 지역

소앤틸리스제도 같이 보기[편집]

소앤틸리스제도
리워드제도 1
리워드제도 2
윈드워드제도
리워드 앤틸리스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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