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요청.png검수요청.png

코번타운

위키원
이동: 둘러보기, 검색
코번타운
코번타운 위치

코번타운(Cockburn Town)은 영국터크스 케이커스 제도(Turks and Caicos Islands)의 수도이며 상업 중심지이다. 콕번타운 또는 코크번타운이라고도 부른다. 코번타운의 인구는 약 4000명이고 지명은 바하마의 전 주지사였던 프란시스 콕번(Francis Cockburn)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1]

개요[편집]

코번타운은 카리브해 북쪽의 대서양에 있는 영국의 해외 영토인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의 그랜드터크섬(Grand Turk Island)에 위치하고 있다. 길이 10㎞인 그랜드터크섬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쪽의 바다와 동쪽의 레드 살리나(Red Salina)로 불리는 염호 사이에서 2개의 좁은 가로를 따라 도시가 선형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다. 17세기부터 시작된 제염업이 발달하였으며, 1766년에 수도로 지정되었다. 현재도 시내에 제염업과 식민 시대 당시의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크루즈선의 기항지로, 정박지 주변에 쇼핑 및 여가 시설이 결합된 크루즈 센터라는 복합 시설이 구축되어 있다. 마을은 길고 좁은 거리와 오래된 가로등으로 유명하다. 도시의 듀크 스트리트(Duke Street)와 프론트 스트리트(Front Street)에는 역사적인 18세기와 19세기 버뮤다 건축물이 늘어서 있다. 코번타운에는 프론트 스트리트(Front Street)의 식민지 시대 기넵 하우스(Guinep House)에 자리잡은 터크스 케이커스 국립박물관(Turks & Caicos National Museum)이 있다. 건물은 18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며 건물의 주요 지지대 중 하나인 배의 돛대를 포함하여 구조 자재의 대부분은 현지 난파선에서 나온 것이며 1990년에 박물관에 기증되었다. 국립박물관의 소장품 중에는 아메리카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유럽 난파선인 1505년의 당밀 암초 난파선(Molasses Reef Wreck)을 포함한 난파선 전시물이 있다. 폰드 스트리트(Pond Street)에 있는 여왕 폐하의 감옥(Her Majesty's Prison)은 1830년대에 지어졌으며 1994년까지 운영되었다. 주요 감방 블록과 교도소 관리 사무실 외에도 종탑과 자체 박물관이 있다.[2]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편집]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Turks and Caicos Islands, 문화어: 턱스카이코스제도)는 서인도 제도에 있는 영국의 해외 영토로, 수도는 그랜드터크에 있는 콕번타운이다. 인구는 약 4만5천 명이다. 서인도제도의 북쪽, 바하마 제도 남쪽 끝에 있는 터크스 제도와 케이커스 제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프로비덴시알레스, 그랜드터크 등 8개의 주요 섬에 주민들이 거주한다. 터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서쪽에는 케이커스퇴(堆)를 둘러싼 케이커스 제도가 있고, 동쪽에는 터크스 제도가 있다. 천일염(天日鹽)이 가장 큰 산업이었는데 현재는 솔트케이섬에서만 생산된다. 1783년 영국의 식민지로 편입된 이후 바하마와 자메이카의 관할 아래에 있었으며, 1973년 바하마가 독립함에 따라 영국의 해외 영토 지위를 얻었다. 교통과 관광 기반 시설은 프로비덴시알레스섬을 중심으로 발달되어 있다. 소금, 고둥, 소라, 새, 사이잘삼(大麻) 등을 수출하며 식량은 수입에 의존한다.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는 마이애미로부터 남동쪽으로 920㎞, 바하마의 마야과나(Mayaguana)섬으로부터 남동쪽으로 50㎞ 떨어진 지점에 있으며, 바하마 군도의 남동쪽 끝 부분을 형성하는 40여 개의 섬과 암초로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카리브 지역으로 분류하지만, 정확히는 카리브해가 아닌 대서양 상에 위치하고 있다. 40여 개의 섬 중 주민이 거주하는 유인도는 8개로, 북서쪽은 6개의 주요 섬을 중심으로 케이커스 제도(Caicos Islands)를 이루고 있으며, 남동쪽은 나머지 2개 섬이 터크스 제도(Turks Islands)를 이룬다. 두 제도의 사이에는 폭 35㎞, 수심 2,100m의 터크스아일랜드 통로(Turks Island Passage)가 있어 둘을 구분한다. 면적의 대부분은 케이커스 제도가 차지하고 있으며, 총면적은 조수 간만에 따라 달라지는데, 간조 때를 기준으로 948㎢이며 만조 때에는 616㎢이다. 해안선의 총연장은 389㎞이다.

지질학적으로 바하마 제도의 일부에 해당하며, 얕은 해저 지반 위에 솟아 있는 산호섬이다. 섬의 최고봉은 프로비덴시알레스의 블루힐(Blue Hill)로, 높이가 해발 고도 50m밖에 되지 않는다. 토양이 부족하고 척박한 데다가 하천도 발달하지 못해 섬 대부분은 작은 관목들로 덮여 있으며, 농경이 활발하지 못하다. 해안 지역은 맹그로브 습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랜드터크 등 일부 섬에는 해수와 담수가 섞여있는 기수호(汽水湖, brackish lake)가 여러 개 있어 한때 제염업이 발달하였다. 주변 해역은 수온이 연중 23~29℃를 유지하기 때문에 수영을 비롯한 해양 스포츠에 적합하다. 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르면 건기와 우기가 뚜렷한 열대 사바나(Aw) 기후에 해당한다. 평균 기온은 겨울철 27~29℃에서 여름철 29~32℃ 정도로 계절에 따른 편차가 크지 않다. 여름에는 남동쪽에서 무역풍이 불고, 겨울에는 북동 무역풍의 영향윽로 연간 쾌적한 날씨가 이어진다. 비는 5월부터 10월까지 짧고 강하게 내리며, 연간 350일 정도는 맑은 날씨를 유지한다. 연평균 강수량은 그랜드터크와 사우스케이커스가 530㎜ 정도이고 서쪽으로 갈수록 증가해 케이커스 제도에서는 1,000㎜ 정도가 된다. 6월부터 11월 사이에 허리케인이 부는데, 2008년에는 허리케인 한나(Hanna)와 아이크(Ike)로 인해 큰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3]

역사[편집]

식민 시대 이전[편집]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에 처음으로 주민이 정착한 것은 A.D. 750년경부터이다. 대앤틸리스 제도 일대에 거주하면서 아라와크 언어를 사용하던 타이노족(Taino)인 루카얀(Lucayan) 인디언들의 이주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들은 미들케이커스와 그랜드터크를 중심으로 어업과 제염업에 주로 종사하였으며, 약 50가지의 작물을 재배하였다. 하지만 1492년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의 항해를 통해 유럽 세력과 접촉하면서 루카얀 인디언들은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질병과 에스파냐에 의한 노예화로 전멸하게 되었고, 섬은 1512년에 에스파냐의 탐험가인 폰세 데레온(Ponce de Leon)이 발견할 때까지 무인도로 남게 되었다.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가 유럽에 알려진 계기는 1492년 콜럼버스가 그랜드터크섬의 과나하니(Guanahani) 해변에 상륙한 것이라는 설명이 일반적인 정설이다. 하지만 콜럼버스의 항해 기록이 분실되고 일부만 복원되면서 진위 여부는 명확하지 않으며, 일부에서는 1512년에 폰세 데레온이 최초로 발견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식민 시대[편집]

콜럼버스의 발견 이후에도 유럽인들이 섬으로 이주하려는 시도는 없었으며, 이 기간 동안 터크스 케이커스는 주변 해역을 주름잡던 해적들의 은신처로 이용되었다. 해적들은 쿠바, 도미니카 공화국, 중앙아메리카 등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항로 상에서 활동하면서 주로 에스파냐 함선을 공격하였다.

터크스 케이커스에서 주민들의 거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668년 버뮤다의 소금상들이 소금을 생산하기 위해 그랜드터크에 모여들면서부터였다. 이들에게 그랜드터크를 둘러싼 얕은 바다와 내륙의 기수호는 소금을 생산하는 데 이상적인 장소였지만, 곳곳에 있는 산호와 암초는 항해에 장애가 되어 1,000척 이상의 선박이 난파하기도 하였다.

1706년에 프랑스에스파냐가 버뮤다로부터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를 빼앗았지만, 1710년에 영국이 버뮤다를 대신해 다시 섬을 차지하였다. 한 차례 프랑스가 다시 점유하였으나, 1783년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영국의 식민지로 확정되었다. 18세기 후반에는 미국 독립 혁명 과정에서 밀려난 왕정주의자들이 프로비덴시알레스와 미들케이커스 등을 중심으로 정착하면서 흑인 노예들을 바탕으로 면화 플랜테이션을 확립하였다. 영국은 1799년에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를 바하마 정부가 관리하도록 편입시켰다.

근대부터 현대까지[편집]

1848년에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는 바하마에서 분리되어 1874년까지 지역 대표와 자치 위원회를 수립하였으며, 이후 자메이카의 속령이 되었다. 그 이유는, 영국과 자메이카를 왕래하는 선박들이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를 지나가므로 바하마보다 자메이카가 교신이 쉬웠기 때문이었다. 터크스 케이커스는 1959년까지 공식적으로 자메이카의 속령으로 남아 있었으며, 1962년에 자메이카가 독립할 때까지 자메이카의 총독이 섬을 대표하였다. 자메이카 독립 후에는 별도로 영국의 속령이 되었지만, 1965년부터 1973년까지는 다시 바하마의 총독이 관리하였다.

1973년 바하마의 독립에 따라 비로소 별도의 총독이 임명되었고, 1976년에는 헌법을 제정하였다. 1982년에 영국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추진하였지만, 영국의 식민지로 남기를 선호하는 세력이 정권을 차지하면서 그간의 결정을 뒤엎고 영국의 해외 영토로 계속 남게 되었다. 2002년까지는 영국의 속령(Dependent Territory 또는 Dependency)으로 불렸으나, 의회법이 개정되면서 해외 영토(British Overseas Territory)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주민들에게는 영국 시민권이 주어졌다.

터크스 케이커스는 20세기 후반부터 정치 비리로 큰 어려움을 여러 차례 겪었다. 1985년에는 총리와 상업개발부 장관, 입법위원회 의원이 남아메리카의 마약을 미국으로 운반하다가 마이애미에서 미국 마약국(Drug Enforcement Administration, DEA)에 체포되는 대형 마약 스캔들이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이듬해인 1986년부터 1988년까지 영국이 자치 정부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직접 관리를 시행하였다. 2009년에도 다시 조직적인 공무원 비리와 무능한 행정 처리들이 드러나면서 총리였던 마이클 마이시크(Michael Misick)가 사임하였고, 영국은 다시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헌법의 일시적 유예를 선언하고 총독에 의한 직접 통치를 시행하였다. 총독과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및 영국의 참모들로 이루어진 팀이 꾸려져 과도기적 행정 체계로 정부 개혁을 실시한 후, 2011년 새 헌법을 제정하고 자치 정부를 구성하였다.[4]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코번타운〉, 《위키백과》
  2. 콕번 타운〉, 《요다위키》
  3.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네이버 지식백과》
  4.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의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북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북아메리카 국가
카리브제도 국가
북아메리카 도시 1
북아메리카 도시 2
북아메리카 지리
북아메리카 주변 지역

카리브해 같이 보기[편집]

카리브해
중앙아메리카
대앤틸리스제도
소앤틸리스제도
루케이언제도


  검수요청.png검수요청.png 이 코번타운 문서는 북아메리카 도시에 관한 글로서 검토가 필요합니다. 위키 문서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습니다. [편집]을 눌러 문서 내용을 검토·수정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