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워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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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워키(영어: Milwaukee)는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밀워키 군의 군청 소재지이며, 미시간호의 남서부 기슭에 위치해있다. 인구는 약 58만 명으로 미국에서는 31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밀워키 대도시권의 인구는 약 175만 명이며 미국에서 40번째로 인구가 많은 대도시권이다.[1]
개요[편집]
밀워키는 시카고에서 정북쪽으로 130km 떨어져 있으며, 시카고와 마찬가지로 오대호의 하나인 미시간호 서쪽 연안에 위치해 있다. 밀워키는 미시간호 서쪽에 면한 통관항으로, 밀워키강, 메노모니강, 키닉키닉강 등이 밀워키만으로 유입된다. 명칭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알곤킨 어로 '좋은 땅'이라는 뜻의 단어 밀이와케(mill-e-wah-que)에서 유래했다. 1800년부터 정착이 이루어졌으며 1830년대에 프랑스인이 도시를 건설하였다. 1845년에 워커스포인트와 합치고 1846년 시가 되었으며, 독일인 이민이 대거 정착하면서 본격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주 최대의 상공업도시이자 오대호, 세인트로렌스 수로의 거점 항구도시 가운데 하나로 석탄, 농산물의 적출량이 많다. 남북전쟁을 계기로 산업이 발전하였는데 금속, 자동차, 건설기계, 의류 및 맥주공업 등이 성하고, 특히 전통적인 맥주공업으로 유명하다. 호수 지역에 있는 국립삼림지대의 중심을 이루며, 서쪽으로 10㎞ 떨어진 밀워키군에는 미국에서 가장 큰 동물원의 하나인 밀워키카운티동물원(Milwaukee County Zoo)이 있다. 위스콘신음악학교(1899), 마켓대학교(1864), 위스콘신대학교 분교(1885)가 있고 선사시대 인디언 유물을 보존하는 박물관, 미술관 등이 있다.[2]
지리 및 기후[편집]
밀워키는 미시간호의 해안과 절벽을 따라 메노모니강, 키닉강, 밀워키강의 세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놓여 있다. 루트 강과 링컨 크릭과 같은 더 작은 강들도 도시를 통해 흐른다.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이 도시의 총면적은 250.71km²이며, 이 중 248.95km²는 육지이고 1.76km²는 물이다.
밀워키는 미국 중서부에 위치해있어 날씨가 갑작스럽게 변하는 일이 많은 편이다. 가장 따뜻한 달은 7월이며, 1월이 가장 추운 달이다. 최고 기온 기록은 1995년 7월 17일의 41°C이며, 최저 기온 기록은 1982년 1월 17일, 1996년 2월 4일의 -32°C이다.
역사[편집]
유럽인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폭스, 마스코우텐, 포타와토미 인디언 종족들이 밀워키 지역에 살고 있었다. 1674년 프랑스의 선교사 자크 마르케트가 현재 밀워키 지대에 멈춘 적이 있었고, 후에 다른 선교사들과 모피 교역자들이 이 지역을 방문하기 시작하였다. 모피 교역자 자크 비오가 1795년 거기에 교역지를 열었고, 1818년 그의 처자 솔로몬 주노가 정착하였다. 1833년 주노는 밀우키 강의 동부 지역에 마을을 설립하였다.
1830년대 동안에 미국의 동부에서 정착자들이 들어왔는 데, 그중 코네티컷주의 바이런 킬번은 밀워키 강 서부에 자치적 공동체를 세웠다. 버지니아주에서 건너온 조지 H. 워커는 메노모니강 남부 지역을 번영시켰다. 1830년대 후반에는 정착자들이 밀워키 마을을 합쳤으며, 1846년에는 도시화되었고, 솔로몬 주노가 첫 시장이 되었다. 1847년까지 밀워키의 인구는 약 12,000명이었다.
1840년대 초반에는 많은 유럽인들이 밀워키에 정착하였다. 이 새 정착자들은 독일, 아일랜드, 폴란드 이민들을 포함하였으며, 도시의 문화, 경제, 정치적 발전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850년대와 1860년대 동안에 밀워키는 상업적 중심지로 번창하였다. 미시간호에 자리잡은 항구의 개선과 철도와 도로의 건설은 도시를 제1의 밀과 밀가루 시장이 되는 도움을 주었다.
1870년 후에는 제조업이 도시의 주요 경제적 활동이 되었다. 정육의 가공과 무두질 산업이 번창하면서 밀워키의 인구는 1890년 안에 200,000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산업 발전은 1800년대 후기와 1900년대에 사회주의 운동을 위한 근거지를 제공하였다. 밀워키의 사회주의자들은 산업의 공동 소유권과 사회주의 전통적 목적의 진흥에 약간 힘썼다. 대신, 노동과 정치적 개혁, 더 광대한 사회적 이익들을 위하여 싸웠다.
1910년 밀워키 시민들은 사회주의자 에밀 자이델을 시장으로 선출하였다. 밀워키는 미국에서 사회주의자 시장을 뽑은 첫 도시였다. 다른 사회주의자 시장들 - 대니얼 W. 혼(1916~40)과 프랭크 P. 자이들러(1948~60)가 나오기도 하였다.
1900년대 중반에는 밀워키는 무료 고속도로의 건설과 다운타운과 호안 지역들의 주요 변화를 위한 재개발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1950년대 동안에 도시는 대양선들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항구를 근대화시켰다. 이 발전과 1959년 세인트로렌스 수로의 개방은 밀워키를 중요한 국제적 항구로 만들었다. 1960년에는 밀워키의 인구는 741,324명으로 도달하였다.
1968년 밀워키는 다운타운의 북서쪽에 자리잡은 산업, 휴양, 거주 지역의 재개발을 포함한 도시의 부흥 계획 미드타운을 착수하였다. 이 계획은 1977년에 끝났고, 1980년대 초반에 그랜드 애비뉴 경제적 활성화가 다운타운 지역에 집중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1982년에 완성되었으며, 낡은 건물들의 재건설, 새로운 건물들의 건설, 구내 쇼핑몰의 창조 등을 포함하였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많은 주민들이 도시 외부의 새로운 주택 지역들로 옮겨갔다. 밀워키의 인구는 1990년 628,088명으로 떨어졌으나 도시의 어떤 외부 지역들은 급속한 번영을 경험하였다.
2000년 안에 밀워키의 인구는 596,974명으로 감소하였으나, 도시권 지역 인구는 계속적으로 증가하였다. 2000년대 초반에 도시는 다운타운 지역에 주택 총계를 증가시켰다. 다운타운의 호반 지역과 브루스터 힐 이웃에 새로운 콘도미니엄 건물들이 완공되었다.[3]
경제[편집]
밀워키는 위스콘신의 도시답게 낙농 가공업이 발달했고, 기계공업도 발달한 것이 특징이다. 유명한 모터사이클 회사인 할리 데이비슨의 본사가 있고 관련 박물관도 존재하니 관심 있다면 방문해보자. 또한 독일계 이민자들이 많은 덕에 맥주 도시로도 유명하다. 밀워키에는 밀러사의 본사와 공장이 있다. 전반적인 경제는 1960년대에 최대 활황을 누린 뒤로 침체하는 중이다. 예전부터 밀워키를 먹여 살렸던 철강 산업과 광산업이 세계화와 중국 등 신흥 공업국의 발흥으로 인해 쇠퇴하고, IT 등 첨단산업 회사들은 실리콘 밸리 등 선벨트의 공업지구로 많이 이주한 영향이 크다. 이후로는 약간 상황이 나아졌지만, 시내의 인구는 아직도 꾸준히 감소중이다. 이는 중산층 백인들이 살기 좋은 교외지역으로 이주하고 시내에는 주로 저소득 계층만이 남게 되었다. 그래도 다른 몰락한 공업 도시들과 범죄율과 실업률 등 기초적인 지표를 비교해봤을 때 그래도 밀워키는 기초산업이 무너지지 않은 덕에 비교적 나은 편이기는 하다. 현재는 탈산업화중인 여타 러스트 벨트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서비스업과 헬스케어 등 3차 산업 위주로 산업구조가 빠르게 개편되고 있는 상황이다.
교통[편집]
도시 남서쪽의 밀워키 미첼 국제공항이 도시 광역 교통수단으로서 밀워키와 미국, 캐나다의 중요 도시들을 이어주고 있다. 공항에서부터는 암트랙 열차를 타고 시내로 진입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자가용으로 I-94 고속도로를 타거나 시내의 밀워키 인터모덜 역에서 암트랙 열차와 메가버스를 비롯한 버스 노선들을 이용해 시카고로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솔직히 웬만해선 그냥 시카고에 사는 게 낫지 않을까? 또 미시간의 소도시 머스키건(Muskegon)과 밀워키 사이에 카 페리가 다니는 등 수운교통도 유명무실한 수준이지만 존재한다.
밀워키의 주력 대중교통은 시내버스 시스템이다. 도시철도는커녕 공항철도를 암트랙이 운영하는 등 대중교통 수준이 몇몇 다른 중서부 도시들과 동급으로 막장이지만 그래도 2018년부터 시내에 "The Hop" 이라는 이름의 노면전차 비슷한 것이 다니기 시작했다. 암트랙 역과 시청, Historic Third Ward 등 도심의 주요 관광지를 잇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말 그대로 잇는 수준에 불과하고 노선도 하나밖에 없어 아직 갈 길이 멀다. 밀워키 카운티 교통국이 시내버스 시스템을, 트랑스데브가 시내의 노면전차 노선을 관리하고 있다.[4]
마케트대학교[편집]
마케트대학교(Marquette University)는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에 있는 사립대학교이다. 1881년 로마가톨릭교회의 예수회에 의해 남자 단과대학으로 설립되었다. 교명은 17세기 프랑스의 예수회 선교사이자 탐험가인 자크 마르케트(Jacques Marquette)의 이름에서 따왔다. 1892년 법학대학을 신설했으며, 1907년 현재의 교명으로 바꾸고 의과대학과 약학대학을 신설했다. 1967년 의과대학이 마케트대학에서 분리되어 1970년에 위스콘신의과대학이 되었다. 1909년에 남녀공학으로 전환했다. 문리대학, 경영대학, 커뮤니케이션대학, 공과대학, 전문연구대학, 보건대학, 간호대학, 치과대학, 교육대학, 법과대학, 대학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치과대학은 위스콘신주에서는 유일한 단과대학이다. 학위과정은 학사·석사·박사 및 전문학위로 편성되어 있다. 학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전공과목은 경영학, 공학, 의료전문직, 사회과학·사학이고 물리요법, 의공학, 생물학이 학습강도가 가장 높으며 간호학, 심리학, 회계학에 학생이 가장 많다.
3곳의 도서관에는 약 72만 권의 도서와 약 113만 점의 마이크로폼 자료, 약 7,300점의 시청각 및 CD자료가 소장되어 있으며 약 9,200종의 정기간행물이 구비되어 있다. 대학부설기관으로 미술관, 라디오방송국, TV방송국 등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모내시대학, 오스트리아의 인스브루크대학, 벨기에의 앤트워프대학, 영국의 브룩스대학, 프랑스의 보르도대학과 함께 교환학생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교내에는 문학, 사진, 연극 등 145개의 동아리와 80개의 스포츠클럽이 활동 중이며 교내행사로 동아리축제, 겨울눈보라축제 등이 개최된다. 캠퍼스는 시카고에서 북쪽으로 약 130㎞ 떨어진 밀워키시 번화가에 위치하며 32만 3744㎡의 대지에 기숙사를 포함해 48동의 건물이 있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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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북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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