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파푸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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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파푸아주(인도네시아어: Provinsi Papua Barat)는 인도네시아 뉴기니섬 서부에 위치해 있는 주이다. [1][2][3]
개요
서파푸아주의 면적은 140,375.62㎢이며 인구는 963,600명 (2019년)이며 주도는 마노콰리이다. 2003년 2월 파푸아주로부터 분리될 당시의 이름은 서이리안자야주(Irian Jaya Barat)였는데, 2007년에 서파푸아주(Papua Barat)로 이름을 바꾸었다.
54%가 개신교 신자이며 38% 이상이 무슬림이고 나머지는 그 이외의 종교를 믿는다.
성폭행 우발지역이기도 하다. 뉴기니 지역같은 경우는 남성의 48%가 강간을 저지른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어 충격을 주었다. 그럼으로 여성 관광객의 경우 파푸아주를 여행할 때 수상한 남성들에게는 접근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인도네시아령 파푸아에 거주하는 다니족의 일족인 다비마벨족은 지금도 돌도끼를 만들어 사용하는 석기 문명의 원형을 가진 부족이다.[4]
자연환경
뉴기니섬 기후는 고도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저지대는 주로 열대우림이 덮여있는 반면 산악 지대는 비교적 서늘해 사람살기에 괜찮은지라 인구밀도가 비교적 높다.
연 평균기온 20.5℃, 연강수량 2,638mm로 일조량이 심하게 적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살기에 괜찮은지라 이 지역의 인구밀도가 비교적 높다. 강수량은 지역에 따라 격차가 심한 편으로, 라에의 경우 연강수량 4,636mm라는 엄청난 강수량을 보여주지만 포트모르즈비는 1,012mm에 불과하다.
역사
뉴기니섬에서는 약 4~50,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이 멜라네시아인 원주민들은 독자적으로 농경을 발명하고 오랜 기간 원시 부족 사회들을 이루고 살았다. 이후 인도네시아 지역의 여러 왕국이 서부 지역에 영향력을 미치기도 했으나 대체로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티도레섬의 술탄 누쿠(Nuku)는 네덜란드의 식민화에 저항하면서 스스로를 "티도레와 파푸아의 술탄"으로 칭하기도 했다.
1526년 포르투갈의 탐험가 메네세스(Jorge de Meneses)가 뉴기니섬의 서단부를 발견하고 이를 말레이어에서 유래한 파푸아(ilhas dos Papuas)라고 명명하였다. 이후 1545년 스페인의 탐험가 레테즈(Yñigo Ortiz de Retez)는 섬의 북쪽 해안을 따라 항해하고 6월 20일 처음 상륙하여 뉴기니(Nueva Guinea)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당시 주변 지역에 큰 영향을 미치던 네덜란드는 19세기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성립시키며 뉴기니섬의 서부의 지배권을 주장하였다. 이후 19세기 말 영국과 독일이 동부를 분할하여 동남부는 영국령 퀸즐랜드에, 동북부는 독일령 뉴기니에 각각 편입되었다. 영국은 1905년 영국령 뉴기니섬의 관할을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전하였고,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령 지역도 오스트레일리아 관할로 편입되어 1942년까지 '파푸아 뉴기니 영토'(The Territories of Papua and New Guinea)로 불리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2년 일본 제국이 뉴기니섬을 침공하여 파푸아 뉴기니 지역을 점령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의 연합군이 맞서 승리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양측 총 20만 명 가량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뉴기니인들은 연합군에 참전, 수송 등의 편의를 제공하기도 했다.
2차 대전 종료 후 독립을 주장한 인도네시아와 이를 인정하지 않은 네덜란드 사이에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이 발생하여 4년 간 지속되었으며, 헤이그 회의에서 인도네시아의 독립이 인정되는 한편 뉴기니 서부는 네덜란드 관할로 남게 되었다. 1960년대 네덜란드 정부는 서뉴기니를 완전히 독립시키기 위한 준비의 일환으로 총선거를 실시하였다. 곧 서파푸아 공화국의 독립을 위한 과정이 진행되자 1962년 인도네시아 측은 이를 인정할 수 없다며 군을 진공시키는 등 분쟁이 발생하였다. 인도네시아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한 미국은 양국을 중재하여 뉴욕 협정이 체결되었고, 1969년까지 파푸아 인들이 독립 여부를 선택할 조건(자유선택행동)으로 인도네시아에 인도되었다. 1969년 인도네시아 주도로 선출된 뉴기니 원로 회의가 인도네시아 잔류를 결정하면서 서뉴기니는 인도네시아 영토로 편입되었다. 현재까지도 이에 반대하는 분리주의 측과 인도네시아 정부 측 간에 계속적인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5]
관광
라자 암팟
라자암팟 제도, 혹은 사천황 제도는 인도네시아의 서파푸아주의 라자 암팟현에 잇는 1500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제도이다. 정확히는 서파푸아의 새머리 반도 북서쪽에 위치해 있다.
이 지방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7개의 알을 찾는 여성으로 부터 나온다고 한다. 그중 4개는 부화해 라자 암팟이 되고 나머지 3개는 귀신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티도레 술탄국이 여기를 점령해 나온 이야기라고 한다. 하지만 네덜란드령 동인도 출범 이후 여기는 네덜란드령 뉴기니 소속이 된다.
서양 쪽 관광객들한테는 스쿠버 다이빙 및 자연 관광으로 매우 유명한 지역이다. 실제로 동양인 관광객은 여기에 거의 없지만 서양인 관광객은 매우 많다.
여기를 가는 비용과 시간이 적지 않다. 과거에는 우선 자카르타로 향하여 여기서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술라웨시 섬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인 마카사르(우중판당)를 거쳐 소롱에 도착하는, 총 3개의 항공편을 타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고, 자카르타 발 소롱 행 직항이 생긴지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지금도 인천-자카르타-소롱의 비행시간 합계만 대략 12시간이 소요된다(환승시간 제외). 심지어 소롱에 도착하는 것이 끝이 아니다. 소롱에서 배로 수어 시간을 더 나아가야 라자암팟 지역으로 향할 수 있다.[6]
마노콰리
인도네시아 이리안자야바라트(Irian Jaya Barat)주의 주도. 이리안자야바라트주는 뉴기니(New Guinea)섬 서쪽 끝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파푸아(Papua)주와 경계를 이룬다.
네덜란드의 식민지배 시절인 1898년에 뉴기니섬을 통치하기 위한 행정조직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이 도시는 원래 뉴기니섬 서반부 전체를 차지하던 파푸아 주에 속하였으나, 2003년 2월 파푸아 주가 분할되어 서쪽 끝의 도베라이 반도(Doberai Peninsula) 지역이 파푸아바랏(Papua Barat) 주로 독립하면서 주도로 편입되었다. 파푸아바랏 주 북동부 끝에 위치하며 북태평양에 면해 있는 항구도시이다.[7]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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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 〈서파푸아주〉, 《위키백과》
- 〈서파푸아주〉, 《나무위키》
- 〈인도네시아의 주〉, 《위키백과》
- 〈뉴기니〉, 《나무위키》
- 〈뉴기니섬〉, 《위키백과》
- 〈라자 암팟〉, 《나무위키》
- 〈두산백과: 마노콰리〉,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
동남아시아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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