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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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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판교(板橋)는 대한민국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백현동, 삼평동, 운중동, 하산운동 일대에 조성된 신도시이다.[1]

개요

판교 신도시대한민국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2기 신도시이다. 부지는 분당구 백현동 일부, 삼평동, 판교동, 운중동 일부에 해당된다. 판교신도시를 설계할 때 경부고속도로를 중심으로 동-서로 나누어 개발했고, 경부고속도로 동쪽 지역인 백현동, 삼평동을 동판교, 서쪽 지역인 판교동, 운중동을 서판교라고 명명했다. 면적은 8,924,631m², 수용인구는 2만9천여 세대, 8만7천명 가량, 인구밀도는 ha당 98명 수준이다. 1기 신도시분당 신도시와 바로 맞붙어 있으며 생활권을 서로 공유한다. 판교신도시는 2003년 말부터 성남시의 지역발전과 도시중심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도시공간구조를 마련하기 위하여 처음부터 친환경적인 도시환경을 조성하려는 계획하에 시작되었다. 현재 판교신도시는 경기도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광주산맥의 검단산(542m)과 청계산(618m)으로 둘러싸인 분지지형 지역에 위치해 있다. 도시가 확장되면서 개발이 되기까지 이곳은 농업에 기초한 전통문화를 간직한 곳이었다. 그동안 분당(분당신도시)이나 용인(용인신도시) 등지가 신도시로 변모하면서 도시의 팽창으로 규제로 묶여 있는 면적에 관심이 모아졌다. 특히 일정기간에 상대적으로 주변 지역보다 도시화가 늦어지면서 상당 부분이 소외된 지역으로 남아 있었던 곳이다.

판교 신도시는 신도시 중 가장 성공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초대형 업무지구에 대기업들을 유치한 경제적 자립도시이며 동시에 서울의 중산층 수요를 흡수할만한 우수한 주거환경을 두루 갖춘 신도시이기도 하다. 이 두가지의 도시 모델을 동시에 한꺼번에 성공시킨 신도시는 판교가 유일하기 때문에, 1, 2기 신도시들 중에서 가장 성공한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일례로 언론에서도 서울을 포함한 전국의 대규모 개발사업을 보도할 때 "제 2의 판교"라는 문구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 웅장한 도심의 모습과 자연친화적인 모습을 함께 가지고 있다. 대게 판교 하면 테크노밸리의 도시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주거지역의 녹지 비율이 38%대로 매우 높은 편이다. 동판교에는 화랑공원, 낙생대공원, 서판교에는 판교공원 등의 대형공원이 있고, 판교 전역을 운중천이 가로지르며 흐르고 있다. 또한 중소형 공원, 산책로가 동네 곳곳에 분포되어있어서 주민들의 삶의 질이 높다. 아파트단지들도 지상에는 주차장을 거의 만들지 않고 녹지 및 조경, 산책로를 조성했고, 특히 고가의 주택 및 타운하우스가 대거 위치한 서판교 일부 지역은 전원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1기, 2기 신도시들 중에서 집값이 가장 비싸며 입주민 소득수준도 가장 높다. 주거지역의 밀집도, 인구밀도가 높지 않고 녹지가 많아서 쾌적하며 교통, 인프라, 직주근접, 상권, 학군 등을 모두 갖추고 있다보니 중산층 이상의 주거지역 수요가 매우 높은데도, 그에 비해 아파트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신도시들 중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편이다.[2]

역사

명칭유래

판교는 운중동 청계산에서 발원하여 탄천에 합류하는 운중천이 범람하여 길이 막히자 마을 주민들이 널빤지를 깔아 임시 가교로 이용하였는데, 이를 ‘널다리’로 부르던 것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순 우리말로는 ‘너더리’라고 하였고, 널다리를 한자화하면서 판교(板橋)라고 부르게 되었다.[3]

시대별

청동기시대 경부터는 이곳에 일정한 군집을 이루어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고 이후 철기문화 시대는 마한 50여개 국 중의 하나로서 백제의 관할 지역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에는 한성백제가 한강유역에 도읍을 정하면서부터 조선시대까지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다. 1530년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 광주목 역원군에 판교원(板橋院) 대해서 남쪽 45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판교라는 지명의 사용은 조선초기까지로 추측할 수 있다. 조선후기 들어 상품화폐경제의 발달에 따라 한양(서울)으로 들어 오는 삼남지방의 길목 중의 하나인 판교지역을 포함한 경기도 광주지역 일대는 장시의 확대와 역 원 참 등의 도로 교통편의 시설이 들어서고 봉화로가 지나가는 요충지로서 점차 부각되었다.

현재 판교지역 일대는 과거에는 흔히 낙생으로 불렸다. 낙생면(樂生面)의 낙생은 백현동앞에 낙성시장이 낙성(落城)으로 다시 낙생(樂生)으로 변했다는 이야기와 병자호란 때에 충주병사 정세규(鄭世規)가 남한산성을 지키기 위하여 북진하여 오다 판교에서 패전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왕이 항복하였기 때문에 낙성(落城)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 광주목(廣州牧)을 보면 고려 충정왕(忠定王) 때의 이곡(李穀, 1298~1351)의 기문(記文)에 1349년 4월 고향가는 길에 낙생역에 이르러 광주목사 백화부(白和父)가 살기에 즐거운 곳, 낙생(樂生)이라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낙생이란 지명은 고려 때부터 존재해온 것으로 보고 있다.

1914년 이후에도 현재의 판교지역은 광주군의 대왕면, 돌마면, 낙생면 등 3개면에 걸쳐있었다. 현대의 판교지역의 행정구역은 1971년 9월 13일 도 주례에 의거 경기도 성남파출소 관할이 되었다가 1973년 7월 1일 성남시 관내의 판교동, 백현동이 되었다. 1975년 3월 17일 시조례에 의거 낙생파출소 관할이 되었고, 1989년 5월 1일 중원구에 편제되었다. 히 판교는 경부고속도로 개통 이후 널리 알려진 곳이 되었고,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중 판교 ~ 구리간이 개통되어 동쪽과 북쪽에 2 ~ 3중의 고속도로망이 형성되었다. 또, 1989년부터는 인접지역에 분당신도시도 건설되어서 1991년 7월 1일 성남시 분당출장소가 설치되고, 이어 1991년 9월 17일 분당출장소가 분당구로 승격되면서 분당구에 딸린 삼평동, 백현동, 판교동이 되었으나 관할 행정동은 판교동였다.[1]

특징

지역

판교 나들목 부근을 중심으로 신도시가 형성되었으며, 성남 시가지안양, 의왕으로 향하는 국가지원지방도 제57호선으로 하오고개 (학현) 사이의 위치했다. 차량을 이용하면 서울간의 접근편이 비교적 좋은편이다. 경부고속도로가 판교신도시 한가운데 남북으로 관통하며, 신도시 가운데에 판교 나들목등이 있어 교통접근성이 좋다. 또한 그 인근에 신분당선의 판교역이 있으며, 수도권 전철 경강선의 환승역이 되었다. 또한 삼성~수서 GTX 역사도 예정되어 있다. 이 지역이 주목받기 시작된 것은 한 때 부동산 투기 및 주택청약 열풍으로 언론에서 이슈가 된 지역이였으며, 성남시가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지급유예 모라토리엄 선언의 배경이 된 지역이기도 하다.

경부고속도로를 기준으로 동쪽은 동판교, 서쪽은 서판교로 지역을 구분하기도 한다. 주거시설 주로 아파트 등 공동주택단지와 근린시설 및 단독주택지역의 주거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동판교 지역은 삼평동 백현동 판교동 일부가 포함된 지역으로, 분당 야탑, 이매 주거단지와 접하는 분당수서도시고속화도로와 탄천 기준으로 서쪽 지역으로 붓들마을과 백현마을 등의 주거지역이 조성되었고, 분당내곡도시고속화도로와 경부고속도로 사이에 지역에는 판교역을 중심으로 상업지구(알파돔) 및 공공의청사용지와 지원시설용지 판교테크노밸리등이 조성되었다.

서판교지역은 판교동 운중동 지역으로 판교원마을과 산운마을 등의 주거지역이 조성되었고 분당판교 청소년 수련관 및 분당판교도서관이 있다. 길게 동서로 운중천이 가운데 흐르고 있으며, 주거지역과 상업지역이 조성된 형태이다. 판교원마을 경우 신도시 조성 전에는 판교읍내 및 판교동사무소, 낙생초등학교 등이 있었으며 기존 원주민들이 거주율이 조금 높은편이다, 또한, 운중동 한국학중앙연구원 인근 산운마을 월든힐스 1, 2, 3 단지 경우에는 300여 세대가 조성되었는데. 기존과는 차별화된 공동주택단지로 국제 현상 공모를 통해 핀란드의 페카 헬린,일본의 야마모토 리켄,미국의 마크 맥,등의 건축가들이 설계에 참여했다.

이 지역은 용인서울고속도로가 남북으로 관통하며 안양판교로와 동서로 교차하는 서판교 나들목 통해 용인서울고속도로의 진입출이 가능하다. 또한 서판교 나들목 가까운 지역에 월곶-판교선의 서판교역이 계획되어 있다. 판교신도시는 "선진형 저밀도 전원도시"를 표방한다. 과거 단기간의 신도시 건설에 따라 각종 부작용 및 지역 난개발 등의 문제점이 지적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저밀도의 친환경 시가지가 조성됐고, ‘선교통-후입주’ 원칙이 세워졌다. 실제로 당시 건설교통부는 25층을 초과하는 공동주택을 지을 수 없게 했다.

지리 및 지형

판교신도시는 광주산맥에서 뻗어 내린 검단산(542m), 문형산(490m), 청계산(618m) 등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지역에 자리한다. 동쪽으로 개활지가 형성되어 있고, 서북쪽의 청계산에서 서남쪽의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시가지를 휘감고 있다.수계로는 동서 방향으로 운중천이 흐르고, 북쪽에서 흘러내려오는 금토천이 판교테크노파크공원 근처에서 운중천에 합류한다. 운중천은 동쪽으로 흘러 방아교에서 탄천으로 유입한다. 판교신도시의 동쪽은 분당-수서간 고속화도로를 경계로 분당신도시와 마주하며, 대체로 평탄한 지형이다.[3]

교통

1기, 2기 신도시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교통망을 가지고 있다.

철도

판교신도시 주민들이 택지 분양가에 포함된 약 5천억원의 광역교통시설부담금을 부담하여 신분당선 판교역이 건설되었다. 판교역에서는 2016년 9월 24일부터 수도권 전철 경강선으로 환승이 가능하고 2023년대 말부터 8호선과의 환승도 예정되어 있다. 또한 2026년 개통할 경강선의 역으로 서판교역과 성남역(가칭)도 확보되어 있다. 2023년 개통 예정인 GTX성남역은 GTX 노선 중에 가장 황금노선이라는 평가를 받는 GTX A 노선이며, 여기에 SRT 노선과의 환승도 추진 중이다. 이외에도 경강선 판교역에 송도~강릉 간 KTX 이음 정차가 예정되어 있고, 중부내륙선 KTX 이음의 판교역 연장 또한 확정되었다. 또한 판교테크노밸리의 교통난을 해소하기 위하여 판교트램이 추진중이며, 수서차량기지 경기 남부 지역 이전을 전제로 한 3호선 연장 사업에 동참하여 판교신도시 내에 추가로 역을 확보하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도로

  • 고속도로 :
  • 고속화도로 : 분당수서간도시고속화도로, 분당내곡간도시고속화도로
  • 주요 일반 도로 : 대왕판교로, 판교로, 서현로, 운중로[1]

학군

판교신도시도 분당신도시만큼 교육열이 높으며 그 중심에는 혁신학교인 보평초등학교와 보평중을 일컫는 보평학군이 있다. 보평학군의 경우 2009년 9월에 혁신학교로 지정되어 판교신도시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으며, 보평학군 배정 여부에 따라 주변 아파트 가격과 1억 원 이상 가격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또한 신백현 학군(신백현초~신백현중)도 좋은 학군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그외 학군은 평범한 수준으로 아파트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서판교지역의 경우 2013년 3월에 운중중학교와 판교중학교가 혁신학교로 지정되었으나 초등학교에 비해 파급력이 약하고, 2014년 9월에는 산운초등학교와 운중초등학교가 혁신학교로 새롭게 지정되었지만 혁신학교의 위상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판교신도시는 분당신도시와 생활권이 동일해 자녀들의 사교육도 분당신도시의 학원가를 계속 이용하는 현상이 발생했으며, 동판교는 이매동과 서현동 학원가, 서판교는 수내동학원가를 주로 이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판교신도시에는 제대로 된 학원가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이다.[4]

동영상

각주

  1. 1.0 1.1 1.2 판교신도시〉, 《위키백과》
  2. 판교신도시〉, 《나무위키》
  3. 3.0 3.1 판교신도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4. by 다올혜윰, 〈제2의 강남을 꿈꾸는 판교신도시〉, 《티스토리》,2021-04-03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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