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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마이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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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마이바흐(Mercedes-Maybach)
메르세데스-마이바흐(Mercedes-Maybach)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
다임러(Daimler AG)

메르세데스-마이바흐(Mercedes-Maybach)는 독일 자동차 제조 기업인 메르세데스-벤츠의 모기업인 다임러(Daimler AG)의 최고급 브랜드이며 수공 고급 자동차 브랜드 및 동명의 엔진 제조사이다. 벤츠 마이바흐 또는 간략히 마이바흐(Maybach)라고 한다. 처음엔 한 회사로 시작했지만 엔진 제조 부문은 현재 MTU 프리드리히스하펜(MTU Friedrichshafen)으로 이름을 바꾸고 롤스로이스(Rolls-Royce)의 소유가 되었으며, 자동차 브랜드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서브 브랜드가 되어 메르세데스-AMG와 함께 메르세데스-벤츠의 고급 라인업을 담당하고 있다. 이 회사는 DMG(Daimler Motoren Gesellschaft) 수석엔지니어인 빌헬름 마이바흐(Wilhelm Maybach)와 그의 아들 카를 마이바흐(Karl Maybach)에 의해 여객용 비행선 제작사인 루프트시프바우 제플린(Luftschiffbau Zeppelin GmbH)의 자회사인 루프트시프바우 모터렌바우(Luftfahrzeug-Motorenbau GmbH)라는 회사명으로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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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메르세데스-마이바흐는 2013년 마이바흐의 판매 부진으로 몰락 이후 2014년에 모기업인 다임러가 소유하여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클래스를 생산하면서 시작된 메르세데스-벤츠의 브랜드이다. 이 회사는 DMG(Daimler Motoren Gesellschaft) 수석엔지니어인 빌헬름 마이바흐와 그의 아들 카를 마이바흐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여객용 비행선 제작사인 루프트시프바우 제플린(Luftschiffbau Zeppelin GmbH)의 자회사로 1999년까지 루프트시프바우 모터렌바우(Luftfahrzeug-Motorenbau GmbH)로 알려져 있다. 그 후 마이바흐(Maybach)는 다임러-벤츠에 인수되었으며 이 브랜드명은 2002년 독립형 초호화 자동차 브랜드로 돌아와 메르세데스-벤츠 자동차와 중요한 구성 요소를 공유하고 있다. 판매 부진 이후 마이바흐는 2013년까지 독립형 브랜드가 중단됐고, 다임러 AG가 소유한 메르세데스-벤츠의 하위 브랜드가 됐다. 모기업인 다임러는 현재 메르세데스-마이바흐라는 이름으로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의 초호화 버전을 생산하고 있으며 첫 모델은 2016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600(2016 Mercedes-Maybach S600)과 같은 메르세데스-벤츠 자동차의 최고급 버전이다. 또한 2019년 11월 메르세데스-마이바흐 GLS 600 SUV(Mercedes-Maybach GLS 600 SUV)를 처음 선보였다.[1][2]

주요 인물[편집]

빌헬름 마이바흐(Wilhelm Maybach
카를 마이바흐(Karl Maybach)

빌헬름 마이바흐[편집]

빌헬름 마이바흐(Wilhelm Maybach, 1846년 2월 9일 ~ 1929년 12월 29일)는 빌헬름 마이바흐는 독일의 엔진 디자이너이자 사업가였다. 19세기 후반부터 다임러와 함께 가볍고 속도가 빠른 연소 기관을 발명했다. 또한 1890년대에 그는 "디자이너의 왕"으로 당시 자동차 생산의 세계 중심지였던 프랑스에서 환호를 받았다. 19세기 후반부터 그는 고틀리프 다임러(Gottlieb Daimler)와 함께 토지, 물, 공기 사용에 적합한 경량 고속 내연기관을 개발하였다. 이것들은 세계 최초의 오토바이, 모터보트에 장착되었고, 다임러가 사망한 후 1902년 말 메르세데스 모델인 신형 자동차가 에밀 옐리넥(Emil Jellinek)의 사양에 맞게 제작되었다. 그는 다임러 모토렌 게젤샤프트(DMG)의 기술 감독으로 승진했지만 회장단과 사이가 좋지 않아 1907년 DMG를 떠나 1909년 아들 카를 마이바흐와 함께 마이바흐-모토렌바우(Maybach-Motorenbau)를 설립하고 제펠린 엔진을 제조했다. 1919년 베르사유 조약 체결 후 이 회사는 "메이바흐"라는 마크가 달린 고급 차량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1940년 독일의 전쟁 노력에 동참하면서 타이거 1호와 타이거 2호 중전차를 포함한 탱크 엔진에 유리한 자동차 생산을 중단했다. 빌헬름 마이바흐는 전쟁 후 부활한 메이바흐 모토렌바우를 여객용 비행선 제작사인 루프트시프바우 제플린(Luftschiffbau Zeppelin GmbH)의 자회사로 남겨 디젤엔진을 만들었다.[3]

카를 마이바흐[편집]

카를 마이바흐(Karl Maybach)는 독일의 엔진 디자이너이자 사업가인 빌헬름 마이바흐의 아들인 장남이며 프리드리히스하펜(Friedrichshafen)의 건축가이다. 1904년부터 1906년까지 다임러 모터 협회에서 근무했으며 여기서 얻은 실험공학을 바탕으로 그는 파리 건축 사무소로 옮겼다. 그는 비티그하임-비징은에 있는 루프트시프바우 모터렌바우(Luftfahrzeug-Motorenbau GmbH)의 기술 책임자로 근무하였으며 비행선 제작에 적합한 특수 모터를 만들었다. 주요 고객인 제플린과 협력할 수 있도록 카를 마이바흐는 1912년에 그 회사와 함께 프리드리히스하펜으로 이전하였다. 그는 캐테 르웨렌즈와 1915년 10월에 결혼했으며 부부가 되어 5명의 아이를 낳았다. 또한 그는 1952년에 다임러-벤츠(Daimler-Benz AG)에 연결해서 직원의 미래를 보장한 후 회사를 그만두었다.[4]

역사[편집]

첫 번째 메르세데스 개발의 주역이었던 독일의 유명한 기술자인 빌헬름 마이바흐는 1907년 떠날 때까지 다임러 모토렌 게젤샤프트(DMG)의 기술 감독이었으며 1909년 3월 23일 아들 카를 마이바흐가 이사를 맡아 여객용 비행선 제작사인 루프트시프바우 모터렌바우를 설립하였다. 1912년에 그들은 루프트시프바우 제플린에서 루프트시프바우 모터렌바우로 회사명을 바꾸었으며 이 회사는 제플린스를 위한 디젤과 가솔린 엔진을 개발하고 제조했으며, 그 후 기동차를 개발했다. 또한 마이바흐 Mb.IVa는 제1차 세계대전의 항공기와 비행선에 사용되었다. 이 회사는 1919년 카를 마이바흐가 군수업자에게서 구입한 메르세데스 섀시(Mercedes Chassis)로 최초의 시험용 자동차를 제작했으며 2년 후 베를린 모터쇼에서 생산 모델로 소개되었다. 1921년과 1940년 사이에 이 회사는 현재 고전으로 여겨지는 다양한 고급 차량을 생산했으며 이 회사는 해양과 철도용 디젤 엔진을 계속해서 만들었다.

마이바흐는 영국 자회사인 마이바흐 기어(Maybach Gears Ltd)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 회사는 기어박스를 전문으로 했다. 1938년 헨리 메리트(Henry Merritt) 박사와 함께 그들은 실패한 너필드 A.16E1 크루저 탱크 설계를 위해 기어박스 및 조향 시스템인 '메리트 마이바흐(Merritt-Maybach)'를 생산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마이바흐는 나치 독일의 대부분의 탱크와 반트랙을 위한 엔진을 생산했으며 엔진 공장은 프리드리히스하펜을 겨냥한 여러 산업 중 하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장은 일부 보수공사를 실시했지만 자동차 생산은 결코 재개되지 않았고, 약 20년 후 MTU 프리드리히스하펜으로 개칭되었다. 다임러-벤츠는 1960년에 이 회사를 인수했으며 1960년 이후, 이 회사는 사실상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W108와 W116 모델의 메르세데스 자동차의 특별판을 만드는데 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차들은 메르세데스 배지와 일련번호를 달고 있었다. 프리드리히스하펜에 본사를 둔 롤스로이스 파워 시스템즈(Rolls-Royce Power Systems AG)는 자회사인 MTU 프리드리히스하펜을 통해 브랜드로 상업용 마이바흐 디젤 엔진을 제조하는데 사용되었다.

다임러는 1997년 도쿄 모터쇼에서 럭셔리 콘셉트카를 선보였으며 이를 기반으로 한 생산 모델은 두 가지 사이즈로 마이바흐 57과 마이바흐 62에 도입되었다. 2005년에 57S가 추가되었고, 450kW(603 hp)와 1,000Nm(738 lbfft)의 토크를 생성하는 6.0L V12 바이 터보 엔진에 의해 구동되었으며, 다양한 외관을 특징으로 한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새로운 마이바흐 라인을 홍보하기 위해 메이바흐의 후계자 울리히 슈미트-마이바흐(Ulrich Schmid-Maybach)와 골퍼 닉 팔도(Nick Faldo) 등의 인물을 영입하여 브랜드 홍보대사로 참여시켰다. 다임러-크라이슬러(Daimler-Chrysler)는 처음에 미국에서 50%의 매출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연간 판매량 2,000개를 예측했으며 이러한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다. 2007년에 메르세데스는 29개의 미국 딜러를 매입하여 총 71개에서 42개로 줄였다. 2010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157개의 마이바흐만 판매되었는데, 비슷한 가격대의 롤스로이스는 2,711개에 불과했다. 또한 마이바흐는 2002년 브랜드가 부활한 이후 전 세계적으로 3000개만 팔렸다. 다임러는 2011년 11월 마이바흐가 2013년까지 브랜드를 중단 선언하고 2012년 12월 마지막 마이바흐 차량을 제조했으며 판매 부진이 원인이었다.

생산 중단[편집]

다임러는 판매 부진과 2007년부터 2008년까지 금융위기의 영향이 큰 가운데, 차세대 라곤다와 함께 차세대 마이바흐 모델을 엔지니어링하고 스타일링하기 위해 애스턴 마틴에게 접근하는 마이바흐 사업부의 전면 재검토에 착수했다. 오토모티브 뉴스에 따르면 2011년 10월까지 미국에서 판매된 마이바흐는 44개에 불과했다. 포춘지의 한 기사는 벤틀리와 롤스로이스가 1990년대에 판매될 때 벤틀리를 구입할 기회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마이바흐는 고급 편의시설이 판매량을 견인하기에 충분할 것으로 보고 뒷좌석에 자동차 전문기자들이 타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결코 자가용 차량으로 광고되지 않았다.

모기업 다임러가 메르세데스-벤츠 브랜드와 차별화에 실패했다는 점도 마이바흐의 고군분투에 대한 또 다른 제안이었다. 3대 초호화 마크는 모두 모기업인 다른 럭셔리 브랜드와 플랫폼과 엔진을 공유하고 있지만, 마이바흐는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플래그십 세단과 나란히 제작돼 있고,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는 BMW폭스바겐 그룹의 나머지 생산 공장과는 별개한 영국에서 조립돼 있어 R급이다. 2006년 롤스로이스 팬텀의 내부는 1930년대 자동차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반면 마이바흐 57S의 내부는 마르크의 역사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2011년 11월 다임러의 대표인 디터 제체(Dieter Zetsche)는 마이바흐 브랜드가 2012년에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발표해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의 다른 차종에도 여유가 생겼다. 마이바흐 리무진은 2013년까지 여전히 판매되고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마이바흐'라는 명칭이 사용되지 않는다. 2012년 8월 14일, 모기업 다임러는 57, 57S, 62, 62S, 랜덜렛을 공식적으로 단종하는 가격 시트를 해제하여 마이바흐 자동차의 공식적인 생산 중단을 발표했다. 또한 2012년 12월 17일, 마지막 마이바흐 차량은 독일의 진델핑엔에서 제조되었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편집]

마이바흐는 2014년 라인이 롱휠베이스 S-클래스 풀맨으로 예정된 차세대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모델 W222로 대체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다임러는 2014년 11월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W222)의 서브 브랜드로 메이바흐 명칭의 부활을 발표해 보다 스포티한 메르세데스-AMG 서브 브랜드와 유사한 고급 버전으로 자리매김했다. 2015년 4월 출시를 앞두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자동차 쇼에서 주력 모델인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600이 공개되었고, 2015 제네바 모터쇼에서는 생산 모델이 발표되었다. 페이스리프트 동안 S 500과 S 550을 S 560으로 재설계하고 주력 기종의 이름을 S 650으로 바꾸었다. S클래스에 사용된 같은 진델핑엔 라인에 조립된 이 모델은 벤틀리 뮬산와 롤스로이스 팬텀을 겨냥한 것이다. 또한 인도 푸네에서 2015년 9월 마이바흐 S500 조립이 시작되어 인도가 두 번째로 마이바흐를 생산하게 되었다.

컨셉트카[편집]

첫 번째 메르세데스-마이바흐 컨셉트카는 완전 전동식 드라이브트레인이 탑재된 대형 2도어 쿠페인 비전 메르세데스-마이바흐 6이다. 이 모델은 2016 페블비치 콩쿠르에서 공개되었다.

연도별 상세[편집]

  • 1909년 3월 23일 : 다임러에서 빌헬름 마이바흐는 퇴사 후 자신의 능력을 살려 빌헬름 마이바흐의 아들 카를 마이바흐가 이사를 맡아 여객용 비행선 제작사인 루프트시프바우 모터렌바우를 설립하였다.
  • 1912년 : 루프트시프바우 제플린에서 루프트시프바우 모터렌바우로 회사명을 바꾸었으며 회사는 제플린스를 위한 디젤과 가솔린 엔진을 개발하고 제조했으며, 그 후 기동차를 개발했다.
  • 1918년 :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카를 마이바흐의 아버지 빌헬름 마이바흐가 생을 마감했을 때 카를 마이바흐가 럭셔리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게 된다. 모델 W1이라는 테스트용 차량을 제작하였다.
  • 1919년 : 카를 마이바흐가 군수업자에게서 구입한 메르세데스 섀시(Mercedes Chassis)로 최초의 시험용 자동차를 제작했다.
  • 1920년 : 모델 W1이라는 테스트용 차량을 기반으로 베를린 모터쇼에 완성된 양산차 W3을 발표했다.
  • 1921년 : 최초의 시험용 자동차가 베를린 모터쇼에서 생산 모델로 소개되었다.
  • 1926년 : 마이바흐는 배기량을 높인 7L 직렬 6기통 엔진을 장착한 W5를 선보이면서 50마력 상승한 120마력의 최대출력을 가지게 되었다.
  • 1930년 : 마이바흐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고 세련된 자동차 브랜드 중 하나로 성장했다. 마이바흐에 새로운 라인업 DS 라인업을 만들어 DSH와 DS7 Zeppelin 두 모델 모두 12기통 엔진이 장착되었다.
  • 1931년 : W6은 이전 W5와 동일한 엔진을 장착하였지만 긴 휠베이스를 가지고 등장하였으며
  • 1934년 : W 라인업의 마지막인 W6은 오버드라이브 장치를 장착하여 더 발전된 W6 DSG가 출시하였다.
  • 1935년 : 마이바흐의 1900년대 마지막 시리즈인 SW 시리즈를 출시하였다.
  • 1938년 : 헨리 메리트(Henry Merritt) 박사와 함께 그들은 실패한 너필드 A.16E1 크루저 탱크 설계를 위해 기어박스 및 조향 시스템인 '메리트 마이바흐(Merritt-Maybach)'를 생산했다.
  • 1940년 : 1921년과 1940년 사이에 이 회사는 현재 고전으로 여겨지는 다양한 고급 차량을 생산했으며 이 회사는 해양과 철도용 디젤 엔진을 계속해서 만들었다.
  • 1941년 : 마이바흐는 고작 1,800여 대만 생산되었는데, 그 중 V형 12기통 엔진을 장착한 '마이바흐 DS 8 제펠린은 마이바흐 신화를 구축하는데 결정적인 공로를 한 모델이자 당시 독일에서 가장 긴(5.5m) 최고급 럭셔리카였다.
  • 1960년 : 다임러-벤츠는 마이바흐를 인수했으며 이후,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W108와 W116 모델의 메르세데스 자동차의 특별판을 만드는데 주로 사용되었다.
  • 1990년 : 벤틀리와 롤스로이스가 마이바흐가 판매될 때 벤틀리를 구입할 기회를 놓쳤다.
  • 1997년 : 다임러는 도쿄 모터쇼에서 럭셔리 콘셉트카를 선보였으며 이를 기반으로 한 생산 모델은 두 가지 사이즈로 마이바흐 57과 마이바흐 62에 도입되었다.
  • 2002년 : 휠베이스에 따라 두 가지 마이바흐 57과 마이바흐 62를 출시하였다.
  • 2005년 : 다임러는 50kW(603 hp)와 1,000Nm(738 lbfft)의 토크를 생성하는 6.0L V12 바이 터보 엔진에 의해 구동되었으며, 다양한 외관을 특징으로 하는 57S가 추가 도입되었다. 판매용이 아닌 프로토타입으로 제작된 차량인 마바흐 엑셀레로를 출시하였다.
  • 2007년 : 메르세데스는 29개의 미국 딜러를 매입하여 총 71개에서 42개로 줄였다. 마이바흐는 오픈 에어링을 즐길 수 있는 럭셔리 카로 랜델렛을 출시하였다.
  • 2008년 ; 다임러는 판매 부진과 2007년부터 2008년까지 금융위기의 영향이 큰 가운데, 차세대 라곤다와 함께 차세대 마이바흐 모델을 엔지니어링하고 스타일링하기 위해 애스턴 마틴에게 접근하는 마이바흐 사업부의 전면 재검토에 착수했다.
  • 2010년 : 전 세계적으로 157개의 마이바흐만 판매되었는데, 비슷한 가격대의 롤스로이스는 2,711개에 불과했다.
  • 2011년 10월 : 오토모티브 뉴스에 따르면 미국에서 판매된 마이바흐는 44개에 불과했다.
  • 2011년 11월 : 다임러는 마이바흐가 2013년까지 브랜드를 중단 선언하였다.
  • 2012년 12월 : 판매 부진으로 마지막 마이바흐 차량들을 제조했다.
  • 2013년 : V12 바이터보 엔진과 자동 5단 변속기와 결합한 마이바흐 62S 출시하였다.
  • 2014년 : 마이바흐는 라인이 롱휠베이스 S-클래스 풀맨으로 예정된 차세대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모델 W222로 대체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 2014년 11월 : 다임러는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W222)의 서브 브랜드로 메이바흐 명칭의 부활을 발표해 보다 스포티한 메르세데스-AMG 서브 브랜드와 유사한 고급 버전으로 자리매김했다.
  • 2015년 4월 : 출시를 앞두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자동차 쇼에서 주력 모델인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600이 공개되었고, 2015 제네바 모터쇼에서는 생산 모델이 발표되었다.
  • 2015년 9월 : 인도 푸네에서 마이바흐 S500 조립이 시작되어 인도가 두 번째로 마이바흐를 생산하게 되었다.
  • 2016년 : 첫 번째 메르세데스-마이바흐 컨셉트카는 완전 전동식 드라이브트레인이 탑재된 대형 2도어 쿠페인 비전 메르세데스-마이바흐 6이며 이 모델은 2016 페블비치 콩쿠르에서 공개되었다. 또한 S 클래스 바이바흐 S560과 S650을 출시하였다.
  • 2018년 : V8 엔진에 자동 9단 변속기가 장착되어 최대 출력 469마력을 가지고 있는 2018년형 S 클래스 마이바흐 S550을 출시하였으며 V12기통 엔진에 자동 7단 변속기가 결합하여 630마력의 출력을 보여주는 S 클래스 마이바흐 S650을 출시하였다.[1]

특징[편집]

판매망[편집]

마이바흐는 자사 고유의 판매망, 마이바흐 판매 센터를 통해 판매된다. 고객 한 사람마다 전담 담당자(Personal Liaison Manager)가 배정된다. 마이바흐는 일반인들을 위해 차를 전시하지 않는다. 실제로 러시아, 홍콩, 일본 등지에 있는 아시아 지역 마이바흐 센터는 예약 없이 입장조차 할 수 없다. 국내에서도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의 전문 컨설턴트가 고객을 전담 관리하고 있다.

고객 서비스[편집]

메르세데스-벤츠는 마이바흐 고객들을 대상으로 매년 무상점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마이바흐만을 전문으로 담당하며 '독일어: Maybach-Mechaniker'로 불리는 서비스 전문가(Service Expert)가 독일 본사로부터 직접 세계 각국을 찾아다니며 고객에게 일대일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전 세계에 딱 12명만 존재하는 이 전문가들은 1년 365일 가운데 약 200일 동안 전 세계를 날아다니며, 그로 인해 'Flying Doctor'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지난 2002년, 마이바흐의 부활과 함께 구성된 이 전문가들은 메르세데스-벤츠의 테크니션 분야에서 최소 10년 이상의 교육과 실무경험을 갖춘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이들은 고객 서비스뿐 아니라 자동차 개발 과정에도 참여하기 때문에, 마이바흐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력이 뛰어나다.

대한민국의 마이바흐[편집]

대한민국에서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그리고 한류스타 배용준 등이 타는 차로 잘 알려져 있다. 이건희 전 회장의 경우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삼성전자 소유로 되어있는 '마이바흐 62'를 회사에 반납하였으나 경영복귀로 반환되었다.[5][2]

모델[편집]

1932년 DS8 체펠린
2011년 마이바흐 62 S
2007년 마이바흐 62s 랜덜렛
마이바흐 엑셀레로
2010년 마이바흐 62S 제플린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클래스 S650
메르세데스-마이바흐 GLS600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650 컨버터블
메르세데스-마이바흐 G650 랜덜렛

단종 모델[편집]

모토렌바우

마이바흐는 마이바흐-모토렌바우(Maybach-Motorenbau)와 같은 고성능, 최고급 자동차를 만들기도 하였다, 1919년부터 메르세데스의 차량을 기반으로 최고급 차량을 제작하기 시작한 마이바흐는 특히 1929년에 12기통 엔진을 탑재한 DS8 체펠린(DS 8 Zeppelin)을 내놓아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과 기타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1941년까지 1,800여 대의 차량만을 생산하다가 단종되었다.[2]

매뉴팩처

회사가 다임러-벤츠에 인수되어 이름을 바꾸고 엔진만 생산하는 동안 한동안 역사 속에 묻혔던 마이바흐 브랜드는 초고급형 력셔리카 시장을 공략할 목적이였던 다임러크라이슬러에 의해 2002년에 전격적인 부활이 선언되어 마이바흐-매뉴팩처(Maybach-Manufaktur)이라는 이름으로 60년 만에 새로운 차량을 내놓았다. 부활 후 현대적 기술 & 디자인을 결합한 럭셔리 세단을 생산하여 주목받았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자들이 대부분 소유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차량 길이에 따라 57과 62라는 모델명을 붙였는데, 이는 각각 전장 5.7/6.2미터라는 뜻. 대한민국에서도 마이바흐의 오너가 상당수 존재하는데, 이건희, 김승연등 대기업 회장들을 필두로 한류스타 배용준이 마이바흐의 오너로 유명하다.[2]

마이바흐의 모델인 마이바흐 57, 마이바흐 57 S, 마이바흐 62, 마이바흐 62 S, 마이바흐 62 S Landaulet는 현재 모두 단종된 상태이다. 일반적인 마이바흐 모델은 500마력 V12 5.5리터 SOHC 트윈터보 엔진이 장착되었다. 'special'의 머리글자인 S는 엔진 출력과 고객의 취향 반영 부분을 좀 더 높인 마이바흐의 스페셜/스포츠 버전이고 S클래스의 고성능 모델 중 하나인 S65 AMG에 달린 612마력 V12 6.0리터 트윈터보 엔진이 달린 모델이다. 그리고 Landaulet은 뒷좌석 지붕을 완전히 개방할 수 있는 컨버터블형 모델이다. 마이바흐는 전용 스튜디오인 마이바흐 센터(Centre of Excellence)에서 제작되는데, 하루 최대 생산량 3대, 1대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 약 4주일, 연간 생산 대수가 약 1,000대에 불과하며 주문 후 7개월을 기다려야 비로소 차를 인도받을 수 있다. 돌비 서라운드(Dolbysurround) 음향을 제공하는 BOSE 사운드 시스템과 21개의 600W 스피커가 장착되고, 총 10개의 에어백과 비행기 일등석을 연상시키는 리클라이닝 시트(reclining seat)가 충돌 사고 시 충격 흡수에 최적의 상태를 만들어 탑승객을 안전하게 보호한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편의장비 및 색상, 내장재 등 총 2백만여 가지의 옵션을 고객의 개성과 취향에 따라 직접 선택할 수 있다.[5]

랜덜렛

마이바흐 62s 랜덜렛(Maybach 62s Landaulet)는 뒷자리 지붕이 소프트탑인 사열차 모델로, 뒷자리 지붕만 열린다. 이 모델은 100만 달러가 넘는 기본 가격으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세단이었다. 비록 세계적으로는 실패했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들이 타고 다니는 차로 널리 각인되어 있다. 연예인들 중에서는 양현석, 장동건, 배용준, 이승철 등이 마이바흐의 오너다. 프로듀서 용감한 형제도 마이바흐를 타고 다닌다.[2]

기타 모델[편집]

엑셀레로

마이바흐 엑셀레로(Maybach Exelero)는 2005년 독일 베를린 템포드롬에서 소개된 2인승 고성능 컨셉트 쿠페로, 세계에서 단 한 대만 제작되었다. 이 차는 독일의 타이어 업체인 풀다 타이어가 마이바흐에 제작을 의뢰한 것인데, 그 까닭을 파헤치자면 이야기는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풀다 타이어는 1930년대부터 고속버스, 특별 제작 트럭, 레이싱 카 등을 타이어 테스트에 활용함은 물론 자사의 광고에도 이용하기 시작했다. 당시 풀다 타이어는 자사의 타이어 테스트를 위해 시속 200km를 넘길 수 있는 유선형 자동차의 제작을 마이바흐에 의뢰했고 1939년 7월 마침내 시제품이 완성되었다. '마이바흐 SW 38'의 섀시를 베이스로 한 유선형의 이 3인승 차는 3.6L 6기통 실린더에 140마력 엔진을 탑재하고 공기저항 계수(cd) 0.25를 달성해 당초 요구 속도인 시속 200km를 거뜬히 넘었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과 함께 행방불명으로 영원히 종적을 감추게 되었다. 그로부터 66년 후 새로운 고성능 광폭 타이어인 '엑셀레로' 출시와 함께 마케팅 프로모션을 고민하던 풀다 타이어는 과거의 역사에서 영감을 얻고 때마침 다시 부활한 마이바흐를 찾아갔다. 담당 프로젝트 팀은 과거 1930년대에 제작된 '마이바흐 SW 38'이 전장만 다를 뿐 현재의 마이바흐 57s의 차체와 전폭 그리고 스타일이 유사한 점을 발견하고 이를 기초로 '마이바흐 엑셀레로'의 제작을 의뢰했다. 실질적인 제작은 이탈리아 토리노에 본거지를 둔 카로체리아인 스톨라(Stola)가 맡았고, 디자인은 독일 포르츠하임 공업 대학 학생들의 참여 속에 마이바흐 디자인 부서가 담당하였다. 후에 풀다 타이어는 세계에 단 하나뿐인 이 차를 경매에서 780만 달러에 버드맨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힙합 가수이자 기업인인 브라이언 윌리엄스에게 처분했다.[5]

2009년 제네바 국제 모터쇼를 기점으로 100대 한정 생산된 모델. 이름은 위의 구형 체펠린 모델에서 가져왔으며, 57S와 62S를 베이스로 2가지 종류가 나왔다. 내외장에 특별함이 더해진것은 물론이고 스위스의 향수 제조 업체인 지보단(Givaudan)과 공동으로 개발한 Perfume Atomizer이란 자동 방향 장치(옵션사항)를 세계 최초로 자동차에 적용했다. 차량 가격은 6억 원대였으며, 향수 옵션의 경우 약 600만 원의 고가를 자랑했다.[2]

마이바흐 72

독일의 한 웹사이트에 사진이 올라와 화제가 되었던 차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마이바흐 62 보다도 1m 정도 더 길어서 도어 4개에 승차정원이 6명이다. 그러나 이 차는 마이바흐에서 생산한 것이 아니며 개인의 요구에 따라 이름을 알 수 없는 튜너가 마이바흐 62을 개조하여 제작했다. 그렇지만 개조하는 데 들어간 모든 부품은 마이바흐 순정만을 사용했으며 길이를 제외한 다른 겉모습은 크게 건드리지 않았다. 이미 1,280km를 달린 이 차는 €599,900로 가격을 책정했다.[5]

메르세데스-마이바흐

2014년 4월 다임러 그룹은 마이바흐 브랜드 철수한지 2년 만에 부활 한다고 밝혔고 2014년 8월 뉘르부르크링 주행 테스트 현장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하였다. 신형 마이바흐는 메르세데스 벤츠 모델에 기반하여 제작되며 2014년 11월 광저우 모터쇼와 LA 모터쇼에 정식 공개되었다. 이후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와 메르세데스-벤츠 GLS를 기반으로 한 모델이 출시되었다.[5]

더 고급스러운 벤츠를 원하는 소비자들을 공략하기 위한 벤츠의 서브 브랜드로 활용하기로 결정한 벤츠는 2014년 9세대 S클래스의 전장 확대 모델인 마이바흐 S600을 메르세데스-마이바흐로 브랜드를 런칭하였다. 그릴의 경우 마이바흐의 상징인 세로그릴이 들어간다. 엔진은 W222와 같이 쓴다. S600에 달리는 신형 530마력 V12 6.0리터 SOHC 트윈터보 엔진을 쓰고, 벤츠 특유의 7단 컬럼식 자동변속기가 달린다. 미국에서의 판매가격을 비교해보면, 마이바흐 S650과 벤틀리 플라잉스퍼의 기본가격이 20만달러 정도로 비슷한 편이다. 그리고 롤스로이스는 모든 라인업의 기본가격이 30만달러 이상이라 가격대가 크게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전 마이바흐의 수제 차량이라는 인식과 달리, 이제는 그저 공장에서 찍어 나오는 길다란 S클래스'라는 인식으로 바뀌며 비판받기도 했다. 그와 별개로 판매량은 높지만, 같은 플랫폼이기는 했어도 이래저래 바꾸러 노력한 이전 마이바흐 57/62에 비해 똑같은 S클래스에 길이 좀 늘리고 로고와 문짝만 바꾸어서 내놓다 보니 격이 굉장히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2016년 페블 비치 자동차 전시회(Pebble Beach Concours d'Elegance)에서 길이가 6m에 달하는 컨셉트 카 쿠페를 공개했다. LA모터쇼를 통해 S클래스 카브리올레 기반의 Maybach S650 Cabriolet을 공개했다. 2017년 2월초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를 기반으로 한 오프로드 사열차 마이바흐 G 650 Landaulet을 출시했다.[2]

사건 사고[편집]

한 건설사 사장이 2007년 중고로 5억 3,000만 원에 구입한 마이바흐 57이 2년 후인 2009년 정차 중에 갑자기 워셔액이 뿜어져 나오고 시동이 꺼졌다. 심지어 에어백까지 갑자기 터지는 황당한 사고가 났고 차량은 수리를 하게 된다. 수리기간은 약 1년이었으며 수리 후에도 차주는 새 차를 내 놓으라 요구했으며 이를 거절당했다. 차량 수입사에서는 수리 기간 동안 2억 7,000만 원짜리 벤츠 S600을 렌트해 주겠다고 제안했으나 차주는 이를 거절하고 롤스로이스 팬텀을 요구했다. 물론 수입사는 거절했고, 이는 소송전으로 가게 되었으며 1심에서는 9,300만 원 지급, 항소심에서는 464만 원 지급이라는 판결이 나오게 된다. 수리 기간 동안 렌트 서비스를 해주더라도 별도로 렌트비를 지급하지 않는 것은 수입사 품질보증서에도 있던 내용이었으며 무엇보다 롤스로이스 렌트비는 하루 260만 원, 수리 기간인 1년이면 약 6억 원이었다. 렌트비가 차주의 마이바흐 차 값을 뛰어넘었고, 차주는 패소했다.

그런데 이 판결이 뒤집혔으며 상고심에서 렌트비 5억 원, 감가상각, 수리비 모두 인정해준 것이다. 결국 차주는 6억이 넘는 돈을 배상받았다. 대법원은 수입사의 품질보증서는 아예 무시했고, 마이바흐 대신 그보다 훨씬 낮은 급인 S600을 렌트받는 것은 마이바흐를 완전 대체하지 못 할것을 수입사도 예견하고 있었으며 수리가 미루어진 것은 수입사 때문이었기에 결국 차주가 승소하였다.[2]

전망[편집]

메르세데스-벤츠가 플래그십 세단 S클래스의 7세대 모델 ‘더 뉴 S클래스’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기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모델에 더해 내년 말에는 첫 순수전기차 모델인 ‘EQS'를 출시한다는 청사진도 전했다. 새로운 S클래스는 다양한 영역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이뤘다는 설명이다. 주행의 즐거움을 높이면서 동시에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한 첨단 기술이 대거 적용됐다. 벤츠는 더 뉴 S클래스 세단과 롱 휠베이스 버전 모델이 생산되는 ‘팩토리56’의 개소식도 함께 진행했다. 팩토리56은 자동차 생산의 유연성, 효율성, 디지털화 및 지속 가능성을 전부 아우르는 최첨단 공장을 짓겠다는 포부 하에 완성된 생산기지다. 향후 메르세데스 마이바흐 S클래스와 EQS도 동일 라인에서 생산될 예정이다.[6]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1.0 1.1 "Maybach", Wikipedia
  2. 2.0 2.1 2.2 2.3 2.4 2.5 2.6 2.7 메르세데스-마이바흐〉, 《나무위키》
  3. "Wilhelm Maybach", Wikipedia
  4. "Karl Maybach", Wikipedia
  5. 5.0 5.1 5.2 5.3 5.4 메르세데스-마이바흐〉, 《위키백과》
  6. 김지희 기자, 〈메르세데스 벤츠 '7세대 S클래스' 글로벌 공개…"내년말 EQS도 출시"〉, 《아시아경제》, 2020-09-02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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