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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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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성(山东省 , shān dōng shěng)은 중국 동부에 있는 성이며 성 소재지는 지난(济南,jì nán)이고 경제중심은 칭다오이다. 산둥반도에 자리 잡고 있으며 황하 하류, 황해, 발해와 접하고 있으며 허베이성, 허난성, 안후이성, 장쑤성과 접하여 있다.

산둥성 이름은 고대 중국에서는 타이항 산맥의 서쪽을 산서(山西)라 칭하였으며 동쪽을 산동(山东)이라 불렀다. 현재의 산둥 성 이름은 고대로부터 전해 오는 것이며 또한 춘추전국 시대(기원전 770년~기원전 221년) 때에는 제나라와 노나라가 위치한 곳이어서 산둥성을 제노대지라고도 한다.

개요[편집]

  • 행정 단위: 성(省)
  • 성정부소재지: 지난시 리싸이구 성푸챈가 1 (济南市历下区省府前街1号)
  • 면적: 15만 7900 km²
  • 인구: 100,702,100 명(2019년)
  • 성장: 리간제이(李干杰, lǐ gàn jié, 대리 성장)
  • 정부 공식 홈페이지: http://www.shandong.gov.cn/

지리[편집]

산둥성은 대체로 평원 지형이다. 성의 북서, 서, 남서부는 화북평원의 일부이다. 산둥성은 지형적으로 다음 3부분으로 나뉜다.

  • 구릉: 산둥성 중부는 산지 구릉이고 동부 산둥반도 대부분은 낮은 저산 구릉이다.
  • 평원: 황하 이북의 화베이 평원의 일부를 이루는 황하 하류부의 평원이다.
  • 산지: 타이 산·루 산(魯山)·이 산(沂山) 등 해발고도 400미터 전후의 산지이다. 동쪽의 산둥 구릉은 황해의 섬이었으나, 충적 작용으로 대륙과 연결되었다.

산둥 반도는 서북쪽의 발해(渤海)과 남쪽과 동쪽의 황해를 나눈다. 산둥성의 가장 높은 곳은 타이산(泰山)으로 높이는 1545m이다.

황하(黃河)가 산둥성의 서남에서 북쪽으로 가로 지나는데 산둥성에서 황하는 주위보다 하상이 높은 천정천이기 때문에 황하를 경계로 유역이 나뉜다. 장쑤성과의 경계에 위치한 웨이산호(微山湖)는 산둥성에서 가장 큰 호수이다. 산둥성의 해안선은 3000킬로미터이고, 해안을 따라 절벽이 발달해 있다.

서북쪽의 라이저우만(莱州湾)의 해안선은 단순하지만, 다른 지역에서의 해안선은 복잡하며 다수의 만을 형성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산둥성의 북쪽에 있는 라이저우만으로 둥잉(东营)과 펑라이(蓬莱) 사이의 바다이다. 라이저우만은 발해의 3개의 큰 만 중 하나이다. 산둥성의 남쪽에 있는 자오저우만(胶州湾)은 크기가 훨씬 작다. 칭다오는 자오저우만에 접해 있다. 산둥반도의 북쪽으로는 먀오다오군도(庙岛群岛)가 발해 해협을 따라 랴오둥반도(辽东半岛) 방향으로 연장되어 있다.

농경지가 전체의 60%를 차지하고 노동력도 풍부하여 농업이 발달되어 있다. 밀·옥수수를 비롯하여 목화·땅콩·잎담배 등의 경제작물도 풍성하게 재배되고 있다. 어업은 먀오다오군도·황하연안에서 활발하며, 칭다오 등의 어항도 많다.

산둥성은 온대 기후대에 속하며 동반부가 바다에 둘러싸여 있어 해양성 기후를 나타낸다. 여름은 습하고 온화하여 칭다오 등은 피서지로 이용되며, 겨울철에는 건조하고 한류의 영향도 있어서 내륙 하천은 동결될 때가 많다. 1월 평균 기온은 -5~1 °C, 7월 평균 기온은 24~28 °C이며, 연 강수량은 550~950mm 사이이다.

역사[편집]

공자(孔子)

산둥성은 중국 고대 문화 발양지 중의 한 곳이다. 원시 공동사회 시기엔 이곳에서 다원커우 문화(大汶口文化)와 룽산 문화(龙山文化)가 창조되었다. 유물로 붉은 질그릇, 새까맣게 빛나는 흑도(黑陶)와 원시 방직품이 출토되었다. 상나라(商 기원전 약 17세기초~기원전 11세기) 시기에 이르러서는 청동기 문화가 창조되었다. 그리하여 춘추전국시대, 이곳은 이미 철제 농구를 사용하고 있었다. 진한시대(秦漢 기원전 221년~220년) 이후, 제염과 제철, 방직업이 모두 전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으며, 당나라(唐 618년~907년)에 와서는 산둥 성의 방직업이 가장 흥성하기도 했다. 북송(北宋 960년~1127년) 시대에는 수리사업을 진행하고, 황하를 다스려 전국 인구 조밀도가 가장 높은 곳 중의 한 곳이 되었다. 그러나 금나라, 원나라(金,元 1115년~1368년) 시기에 이르러서는 인구가 유출되면서 경제가 쇠락하기 시작했다. 훗날 명나라 초기(明初) 주민이 다시 이입되고,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청나라(淸 1644년~1911년)때 와선 경제가 더욱 발전했다.

산둥성은 화북 평원의 동쪽 끝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중화 문명의 영향을 아주 초기부터 받고 있었다. 초기의 중국 왕조였던 상(商)이나 (周) 왕조는 산둥성 서부에 다양한 형태의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반면 동부 지역에는 라이이(来夷)라고 불렸던 이민족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라이이는 완전히 중국화된다.

춘추전국시대 동안 화북과 장강 유역에는 여러 나라들이 난립했다. 이 시대에 산둥 지역에는 두 나라가 있었는데, 하나는 린즈(临淄)를 근거지로 하는 제나라이고, 다른 하나는 취푸(曲阜)를 근거지로한 노나라였다. 제나라는 춘추전국시대 동안 계속하여 강국의 위치를 지켰다. 반면에 노나라는 공자(孔子)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나 상대적으로 작았기 때문에 결국에는 남쪽의 초나라에게 병합되고 만다.

기원전 221년에 진나라가 제나라를 꺾으면서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다. 단명한 진의 뒤를 이은 한나라는 전국을 여러 주(州)로 나누어 통치했는데, 산둥성의 북부는 청주(靑州)가, 남부는 서주(徐州)가 관할했다. 삼국시기에는 북중국을 지배했었던 위나라(魏의 통치하에 있었다.

삼국시대 이후에 잠시 서진에 의한 통일 시기가 있었지만, 곧 북방 유목 민족의 침입이 시작된다. 산둥 지역은 오호십육국 시대 동안 후조(後趙), 전연(前燕), 전진(前秦), 후연(後燕), 남연(南燕), 송 등의 나라들에 차례차례 점령당하다가 마지막으로 남북조 시대의 첫 북방 왕조인 북위에 점령당한다. 남북조 시대 동안 산둥은 계속 북조가 지배한다. 412년 불교 승려 법현이 칭다오 교외의 라오산(老山)에 상륙한다. 이후 칭저우(淸州)로 옮겨가서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번역했다.

수나라가 589년에 세워졌다가 곧 망하고, 당나라가 다시 중국사의 황금시대를 연다. 당나라 초기에 산둥은 하남도(河南道)에 속해 있었다. 당나라가 망하자 오대십국의 혼란기가 찾아왔고, 이때 산둥성은 하북에 위치한 오대의 판도에 속했다. 송나라가 다시 중국을 통일했다. 1996년에 칭저우에서 발견된 송나라 시대의 불상 200여 점은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으로 손꼽힌다. 도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했던 송나라 송휘종 때에 묻힌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1142년 송나라는 화북을 여진족금나라에게 넘기게 된다. 금나라는 산둥 지방을 산동동도(山东东道)와 산동서도(山东西道)로 나누어 통치하는데, 이때 ‘산동’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행정 구역에 사용된 것이다. 현대의 산둥성은 명나라때에 생겼다. 명나라때에 만주의 여진족이 힘을 길러서 1644년에는 다시 중국을 정복하게 된다.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 시기에 산둥성의 현재의 경계가 거의 정해졌다.

19세기 동안 중국은 점차 거세져 오는 서구 열강의 도전을 받게 되었고, 특히 산둥성을 비룻한 해안 지방에서 그 영향이 두드러졌다. 칭다오(青岛)가 1897년에 독일에 할양되었고, 이듬해에는 산둥 반도 끝의 웨이하이(威海)가 영국에 할양되었다. 산둥성의 나머지 지역은 독일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것으로 인정되었다. 더불어 19세기 들어 청정부가 만주를 한족에게 개방하면서 만주로 이주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산둥성 출신이었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중화민국이 성립한 이후 칭다오가 1922년에 중국으로 돌아왔고, 1930년에는 웨이하이를 돌려 받았다. 1937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면서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산둥성 대부분은 일본이 점령하게 되지만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저항운동이 1945년 종전까지 계속되었다.

이해 말에 이미 공산당이 산둥성의 일부를 접수하기 시작했다. 이후 4년에 걸친 내전 기간 동안 공산당은 계속 범위를 넓혀 1949년 6월에는 국민당을 산둥성에서 추출하기에 이른다. 그해 10월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다.

행정구역[편집]

산둥성 행정구역

산둥성은 16개의 지급시[1]로 구성되었다.

  • 지난시(济南市)
  • 칭다오시(青岛市)
  • 즈버시(淄博市)
  • 조아좡시(枣庄市)
  • 둥잉시(东营市)
  • 옌타이시(烟台市)
  • 웨이팡시(潍坊市)
  • 지닝시(济宁市)
  • 타이안시(泰安市)
  • 웨이하이시(威海市)
  • 르쪼시(日照市)
  • 빈저우시(滨州市)
  • 더저우시(德州市)
  • 랴오청시(聊城市)
  • 린이시(临沂市)
  • 허저시(菏泽市)

인구[편집]

2019년까지 산둥성 인구는 100,702,100명이다. 2010년까지 소수민족 인구는 725,900명이고 후이족이 535,700명이고 조선족, 만주족, 몽골족, 묘족, 이족, 좡족, 투쟈족, 와족의 인구가 5000명 이상이다. 조선족 대부분은 칭다오, 웨이하이, 옌타이에 거주하고 있다.

지도[편집]

각주[편집]

  1. 지급시〉,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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