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타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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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타이시(중국어: 邢臺市 xíng tái shì)는 중국 허베이성 남서부에 위치해 있는 지급시이다. [1][2][3][4]
개요[편집]
싱타이시의 면적은 12,432㎢이며 인구는 7,111,106명(2020년)이다. 북쪽으로 스자좡시, 헝수이시와 남쪽으로 한단시와 맞대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산시성, 동쪽으로는 산둥성과 각각 맞대고 있다.
싱타이시는 정저우, 안양(은허) 등과 함께 화북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데, 과거 상나라의 여러 수도 중 하나였고 주나라의 제후국인 춘추전국시대의 형나라의 도읍이었다. 이후 형나라가 위나라에게 멸망했음에도 계속 그 일대는 형(邢)으로 불렸고 현재의 지명인 싱타이(邢台)도 그에서 유래된 것이다. 석탄/기계 공업이 발전하였으며, 징광고속철도가 싱타이를 지난다.
명승고적으로 개원사(开元寺), 청봉루(清风楼), 달활천(达活泉), 문묘대성전(文庙大成殿) 등이 있다.
중국에서 미세먼지가 가장 심한곳으로 발표되었다. 한국에선 AQI가 200을 넘어도 재난문자가 오고 난리가 나는데 싱타이에선 500~600을 넘어가며 좀 심하다 싶으면 700을 찍을때도 있다. 여기선 AQI가 100이하로 떨어지는 날은 1달에 하루 있을까 말까 하며, 농도가 30이하로 떨어져 맑은 하늘을 볼 날은 1년에 하루 이틀정도의 확률로 볼 수 있다.[5] [6]
자연환경[편집]
허베이성(河北省) 남부, 타이항산맥(太行山脉, 태항산맥) 남단 동쪽 기슭, 화베이 평원(华北平原) 남부 연변에 위치하고 있는 지급시(地级市)로 스좌좡(石家庄)과 한단(邯郸)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지형은 화북충적평원(华北冲积平原) 지역으로 서고동저이며 주요 하천으로 치리하(七里河, 칠리하), 바이마하(白马河, 백마하), 샤오황하(小黄河, 소황하), 사하(沙河), 뉴웨이하(牛尾河, 우미하), 즈류취안(自流泉, 자류천), 다훠취안(达活泉, 달화천), 바이허취안(白河泉, 백하천), 쯔진취안(紫金泉, 자금천) 등이 있다.
기후는 난온대반건조계풍기후에 속하며 연 강수량은 555.6㎜, 연평균 기온은 13℃, 1월 3.1℃, 7월 26.7℃이다.
역사[편집]
고대부터 평야지대를 바탕으로 관중(산시성)-중원(허난성) 등과 더불어 가장 풍요로운 동네였기 때문에 하북을 근거지로 삼았던 원소는 군웅할거 초창기에 최강의 세력을 구축했고 원소를 쓰러뜨린 조조 역시 관중-중원과 더불어 이곳에서 나오는 국력을 바탕으로 촉과 오를 압도할 수 있었다. 게다가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 같은 북방의 수렵, 유목민족이 세운 정복왕조 역시 수도권을 화북지역으로 자리잡으며 정치 중심지가 점차 황하 유역에서 이곳으로 이동하였다.
춘추전국시대부터는 지금의 베이징 지방이 '계'라는 지명으로 불리기 시작해 연나라의 중심지가 되었다는 게 다수설의 견해다. 전한대에는 '유주'라는 행정구역으로 편성되어 그렇게 불렸다. 삼국시대에는 공손찬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 후한 말에 유비, 관우, 장비가 그 유명한 도원결의를 맺은 곳도 지금의 이 지역이다. 조운의 출생지도 허베이성 쪽인 상산 진정이다. 조운이나 장비가 자신을 소개할 때 '연'인 장비, '상산'의 조자룡이라고 하는 것도 자기 고향을 말하는 것이다.
이후 삼국을 통일한 서진이 북방 민족의 침입을 받아 허베이 지역을 빼앗겼는데 이때 이곳에 전연, 후연 등의 나라들이 들어섰다. 수나라, 당나라 시대에는 한족의 문화권에 들어갔지만 변방에 불과한 상황이었다. 북쪽인 점도 있고, 타 민족의 침입이 상당히 잦았다.
5대 10국 시대의 마지막에 이 지역을 연운 16주라는 이름으로 거란에게 뺏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후 통일 왕조인 글로벌호구 북송이 몇 번이고 이 지역을 탈환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송의 떨어지는 군사력으로는 거란(요)을 쓰러뜨릴 수 없었다.요나라가 쓰러지지 않아 그래서 여진족(금)과 연합해 거란을 뭉개고 이 지역을 탈환했으나 곧바로 금에게 뒷통수를 털리고 이번엔 화북 전체를 먹혀 버린다.
그리고 금이 멸망하고 원나라가 들어서자 마침내 이 지역은 제국의 중심지로 거듭난다. 명나라와 청나라 역시 이 지역을 수도로 삼으면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곳으로 떠올라 지금에 이르고 있다.
명나라 때와 청나라 때는 수도 베이징에 직접 예속된다는 의미인 즈리성(直隸省)이라고 불렀고, 중화민국이 된 뒤에도 북양정부의 수도가 북경에 있었기 때문에 계속 직예성으로 불리다가 국민당의 2차 북벌로 북양정부가 무너지고 1928년 6월 국민정부가 베이징까지 점령하면서 베이징은 베이핑으로, 직예성은 하북성으로 개칭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지역의 군벌은 직예군벌로 불렸다. 1914년에 기존 순천부가 경조지방으로 개편되어 즈리성에서 분리되었고, 이때 기존에 순천부 관할이었던 24개 현 중 바오안(保安), 원안(文安), 다청(大城), 닝허(寧河)의 4개 현을 넘겨받았다. 행정구역 개편으로 내몽골 지역에 차하얼 특별행정구와 러허 특별행정구가 설치되면서 이들 특별행정구에 북부 지역을 내주어 면적이 축소되었다. 1928년에는 경조지방이 폐지되어 중심 시가지만 베이핑시로 남으면서 경조지방에 속해 있던 현들을 넘겨받았다.
1933년 열하사변으로 일본군의 침공을 받았고 하북 사건을 구실로 1935년 6월 10일 하매 협정이 체결되면서 일본의 영향력이 확대되었으며 1935년 11월 25일, 기동사변으로 기동방공자치위원회가 수립되었고 1936년 지둥방공자치정부로 거듭나면서 500만에 달하는 인구가 일본의 지배에 들어갔다. 1937년 루거우차오 사건이 발생하면서 중일전쟁이 이곳에서 일어났으며 항전 기간 동안 일본군의 점령지로 8년을 점령당했고 신멸작전이 벌어져 대규모 학살이 벌어진 곳이다. 이 학살로 당시 세를 불리며 거대해지던 팔로군의 기세가 꺾였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수도를 다시 베이징에 두었지만 다시 즈리성으로 이름이 바뀌지는 않았다. 중화민국 말기 허베이성 정부는 베이핑시에 있었으나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직전 바오딩시에 허베이성 인민정부를 설치하면서 바오딩시로 성도가 옮겨졌다. 이후 베이징시 주변 상당 지역이 베이징시에 편입되고 차하얼성과 러허성이 1952년과 1955년에 각각 폐지되면서 그 남부 지역을 다시 편입했으며 1958년에는 톈진시를 재편입하여 톈진시로 성정부를 이전하였다. 톈진시가 1967년에 다시 직할시로 분리되면서 바오딩시를 성도로 삼았으나 당시 문화대혁명의 영향으로 성도 기능을 할 수 없어 이듬해에 스자좡으로 다시 허베이성 성정부를 이전하여 현재까지 스자좡을 성도로 삼고 있다.
싱타이시 인민정부는 차오둥구(桥东区, 교동구)에 소재하며 성회 스자좡시(石家庄市, 석가장시)로부터 106㎞, 베이징으로부터 396㎞ 거리에 있다. 행정구획은 차오둥구(桥东区, 교동구), 차오시구(桥西区, 교서구)의 2개 시할구(市辖区), 난궁시(南宫市, 남궁시), 사허시(沙河市, 사하시)의 2개 현급시와 싱타이현(邢台县, 형태현), 린청현(临城县, 임성현), 네이추현(内丘县, 내구현), 바이샹현(柏乡县, 백향현), 룽야오현(隆尧县, 융요현), 런현(任县, 임현), 난허현(南和县, 남화현), 닝진현(宁晋县, 영진현), 쥐루현(巨鹿县, 거록현), 신허현(新河县, 신하현), 광쭝현(广宗县, 광종현), 핑샹현(平乡县, 평향현), 웨이현(威县, 위현), 칭허현(清河县, 청하현), 린시현(临西县, 임서현)의 15개 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업[편집]
농산물의 집산지로 동쪽 평원의 농업지대에서는 밀·목화, 서쪽 지대에서는 밤·감이 많이 산출되며, 거대한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산지에는 탄전과 철광산이 있고 석탄·기계·방적 공업이 발달하였다.
징광고속철도[편집]
징광고속철도는 수도 베이징(京)과 중국 화남지방의 대표 무역도시 광둥성 광저우시(广)를 잇는, 총 연장 2,291km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길이가 긴 고속철도 전용노선으로 반세기전인 1957년에 개통되어 현재까지 중국대륙을 남북종단하는 간선철도노선인 징광철도의 간선열차 기능을 대체한다.
광저우에서 홍콩을 잇는 연장노선인 광선강 고속철도(广深港高铁)의 경우 CRH 계획이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존재하던 계획을 CRH 계획에 통합한 것이라 징광고속철도의 다른 구간과는 다른 노선 취급을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베이징시역-광저우난역 구간과 광저우난역-홍콩사이까우룽역 구간의 경우 설계적으로 다른부분이 많은데, 예를 들면 베이징-광저우 구간은 최고곡선반경 9,000m, 최대경사 12‰을 기준으로 지어졌지만 광저우난역 - 푸톈역 구간은 최고곡선반경 7,000m, 최대경사 12‰을 기준으로 지어졌으며, 중국본토를 벗어나는 푸톈역-홍콩사이까우룽역 구간은 이보다 더 선형이 나쁘다.
베이징-우한 구간은 설계최고속도가 350km/h이지만 우한-광저우 구간의 영업최고속도는 310km/h이며, 광저우-선전 구간은 300km/h, 선전-홍콩 구간은 200km/h이다.
2000 km가 넘는 초 장거리 구간이기 때문에 베이징-스자좡, 스자좡-우한, 우한-광저우 구간이 제각기 다른 시기에 공사에 들어갔다.
이 중에서 우한역-광저우난역 구간이 가장 먼저 공사에 들어갔고, 나머지 구간도 차차 착공에 들어가 2010년부터 모든 구간에서 공사가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구간은 2~3년 정도의 공사기간을 가지고 공사를 완료했지만 시가지가 많아 지하 및 대심도 터널을 파야 하는 선전베이역-푸톈역 구간이나 푸톈역-싸이까우룽역 구간은 난공사와 지역 민원으로 인해 공사가 지연되었다. 더불어 홍콩 구간은 고속철도가 홍콩 경제의 중국 의존도를 높여 중국으로의 경제 종속을 가속할 것이라는 일부 홍콩인들의 우려로 인해 강한 정치적 반대에 직면하였다.[7]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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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싱타이시〉, 《위키백과》
- 〈싱타이시〉, 《나무위키》
- 〈허베이성〉, 《위키백과》
- 〈허베이성〉, 《나무위키》
- 〈두산백과: 싱타이〉, 《네이버 지식백과》
- 〈중국행정구획총람: 허베이성〉, 《네이버 지식백과》
- 〈징광고속철도〉, 《나무위키》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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