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루치스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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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루치스탄주(우르두어: گلگت - بلبلوچستان/صوبہ بلوچستان, Balochistan Province)는 파키스탄 남서부에 있는 주이다.[1][2]
개요[편집]
발루치스탄주의 면적은 347,190㎢이며 인구는 1,234만명(2022년)이다. 주도는 퀘타이다. 남아시아 이란 고원은 파키스탄과 이란,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의 고지대인데, 이란 고원의 동쪽으로 파키스탄 영토에 속하는 지역으로 서쪽으로는 이란 시스탄오발루체스탄주, 북서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과 각각 이웃해 있다.
발루치스탄은 발루치인이 사는 땅이라는 뜻이다. 스탄은 산스크리트어나 고대 페르시아어로 땅을 의미한다. 영어의 Stand와 같은 어원이다. 오늘날 발루치스탄은 파키스탄령 발루치스탄과 아프가니스탄령 발루치스탄과 이란 시스탄-발루체스탄 주로 나뉜다.
행정 구역 상으로는 이란의 시스탄에발루체스탄주, 파키스탄의 발루치스탄주, 아프가니스탄의 님루즈주, 헬맨주, 칸다하르주에 걸쳐져 있다. 파키스탄에 약 820만 명, 이란에 약 150만 명, 아프가니스탄에 약 67만 명이 살고 있다. 발루치스탄 밖에 사는 발루치족은 아랍에미리트에 약 47만 명, 오만에 약 43만 명, 투르크메니스탄에 약 10만 명, 사우디아라비아에 약 1만 6천 명으로 추산된다. 발루치스탄에는 발루치족 외 다른 소수민족으로 드라비다어족 계열 브라후이족, 아프가니스탄에서 발루치스탄 퀘타로 이주 정착한 하자라족들도 거주한다.
주로 건조한 사막 지대이며 바다와 접해있지만 역사적으로 항만 배후지가 잘 발달하지 못한 관계로 이웃 신드, 구자라트, 오만, 호르무즈 해협 지역이 해상 무역이 활발한 것과 다르게 해상 무역이 빈약한 편이다.
아프가니스탄 접경 지역보다 여행하기에 위험한 지역이다. 실제로 한동안은 현재의 출국권고~여행금지에 준하는 특별여행경보가 발령되어 있었다. 흔히 위험한 지역으로 알려져있는 카이베르파크툰크와 등 북서부 지역은 훈자 계곡 등 관광 수요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치안이 유지되고 있으며, 외교부에서도 출국권고(여행금지보다 한 단계 아래)지역으로 지정하고 있다. 하지만 발루치스탄은 이슬람 근본주의, 분리주의, 탈레반 등이 모두 모여있는 지역이다.
2017년 7월 외교부에서 특별여행경보를 발령하였다. 무장 독립운동이 벌어지는 곳이라 2017년 5월 24일에 중국인 교사가 납치되고 고속도로를 공사하던 도중에 인부들이 무장괴한의 총격에 의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되는 등 치안이 매우 불안하기 때문이다.
자연환경[편집]
광대한 산악의 고원지대를 차지하며, 지형적으로는 이란 고원의 남동부를 차지하며, 전체적으로는 산지가 많으나, 특히 북동쪽은 높고 험준한 토바카카르산맥 및 술라이만 산맥이 뻗어 있고 최고점은 3,000m에 이른다. 북서쪽은 고원상의 건조분지가 자리잡고 있으며, 남부의 아라비아해(海)에 면한 지방에 얼마 안 되는 충적평야와 해안평야가 전개된다.
기후는 일반적으로 대륙성기후를 이루나, 고온 건조하여 토지의 대부분은 불모지를 이루고 있으며, 서부에는 카란사막이 전개되어 있다. 곳곳에서 오아시스를 볼 수 있으며, 약간의 비옥한 골짜기도 볼 수 있다.[3]
역사[편집]
고대에는 인더스 문명의 영향권이었으며 하라파의 영향을 받았다. 이후 인더스 강의 지류가 바뀌면서 사막화가 더 심해졌다. 기원전 450년경 헤로도토스는 이 지역의 데이오케스라는 추장이 다스리는 파라이타케노이(Paraitakenoi) 부족이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에 종속되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헬레니즘 시대 이후 이 지역에는 기원전 2~1세기 무렵 토하라인에게 밀려나 중앙아시아에서 남하해온 인도-스키타이족이 정착하였으며, 사카스탄 혹은 시스탄이라고 불렸다.
서기 9세기 무렵 이 지역은 이슬람화하고 이란계, 타지크계, 튀르크계, 파슈툰계 여러 왕조들이 이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했다. 근대에는 아프가니스탄의 두라니 왕조의 영토였다. 근데 영국이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듀랜드 라인을 만들면서 이 땅을 인도 제국 소유로 넘겨버렸다. 19세기 후반 영국영토가 되어, 인도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 파키스탄의 독립과 함께 다시 그 일부로 편입되었다.
발루치스탄을 두고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은 지금도 역사적인 갈등이 있다.
산업[편집]
농산물로는 보리·밀·목화·과실 등을 생산하며, 그 밖에 융단·금속공예 등의 전통적인 수공업이 성하다. 광물도 크롬광을 비롯하여 석탄·석회암·석고·유황 등이 풍부하나 거의 미개발상태로 놓여 있다. 1952년 발견된 천연가스 자원은 매년 100만t의 석탄에 상당하는 열량을 60년 동안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란고원에 있는지라 높고 험준한 불모지이지만, 구리, 천연가스 등 천연자원이 매우 풍부하다. 파키스탄에서 제일 큰 파이프라인인 Sui 파이프라인이 이곳을 통과한다.
파키스탄의 인권 침해[편집]
국제적으로 묻혀졌지만 발루치인들에 대한 파키스탄 측의 묻지마 인권 침해가 장난 아니다. 그저 길을 지나가는데 다짜고짜 민간인을 잡아다가 구타와 고문을 벌인다. 한국에 난민 신청을 한 발루치인 무함마드라는 사람은 KBS 다큐멘터리에 나와 독립운동 참가한 적도, 지원도 안했는데 그저 삼촌을 만나러 가던 자기와 주변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끌고가 구타와 고문을 했다고 하소연했다.
무고함이 드러나서 석방되었지만 사죄도 보상금도 그 어느 것도 없었고 구타와 고문 여파로 무함마드는 팔과 머리 수술도 받았으며 당시 끌려간 몇몇 사람은 죽어서 끌려가던 걸 보고 도저히 파키스탄에 살 수 없었다고 해외로 나간 것. 한국으로 온 식구를 데리고와 난민신청을 했고 난민으로 인정받아 한국에서 모두 살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발루치인들에 대한 인권 침해에 대한 소식을 찾아보기 어려운 걸 아쉽고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라서 안타깝다고 인터뷰했다.
발루치족이 파키스탄과 이란 양쪽에서 독립하여 민족국가를 세운다며 한마음으로 무장 독립운동을 펼치고 있다. 위 민족분포를 보면 알겠지만, 국경선이 민족 분포와는 다르게 멋대로 그어져 있기 때문에 파슈툰과 마찬가지로 인구가 파키스탄 남부와 이란 동남부에 갈라져있고 각 국가에서 큰 소수집단이라 분리주의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꼭 그 문제가 아니라도 풍부한 지하 자원에 대비하여 파키스탄 정부로부터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테러를 저지르고 있는 조직들도 있다. 탈레반 주요 거점과 가까운 이슬라마바드는 비교적 안전한 편인데, 괜히 멀리 떨어져있는 카라치 치안이 안 좋은 것은 이로 인한 영향도 크다. 오히려 이로 인해 신드, 펀자브, 무하지르 등 파키스탄의 중심세력 어느쪽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점이 어필해 중국의 일대일로 요충지로 선택되어 카라치 대신 가다르항을 중국이 집중투자하고 있다. 이것이 오히려 지역의 발루치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그래서 친중 성향이 강한 파키스탄에서 중국인 대상 테러가 종종 일어나는데 발루치스탄 무장독립운동 세력이 벌인 경우가 많다. 파키스탄 반중의 핵심세력이 이들로 파키스탄 발루치인들은 파키스탄 정부와 우호적인 중국을 싫어하며 중국이 투자하고 있는 일대일로 계획의 일환인 CPEC(China Pakistan Economic Corridor)의 핵심 프로젝트인 과다르(Gwadar) 항구가 이란과의 국경 부근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일대일로를 반대한다.
발루치인[편집]
발루치(Baluch 혹은 Baloch)는 서남아시아 [[발루치스탄]에 사는 이란계 소수민족이다. 전 세계적으로 약 1000만명이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파키스탄 서남부의 발루치스탄 주에 약 820만 명, 이란 동남부의 시스탄에발루체스탄 주에 약 150만 명, 오만과 아프가니스탄에 각각 3~40만 명 정도가 거주하며 투르크메니스탄에도 소수가 거주하고 있다. 언어는 페르시아어군 중 북서페르시아계 언어인 발루치어를 사용한다. 종교는 대개 이슬람 수니파이지만 이란에는 시아파를 믿는 발루치족도 있으며, 그 외에 수피즘이나 아흐마디야를 신봉하는 발루치족도 소수나마 존재하며 힌두교와 시크교도 있다고 한다. 다만 처음부터 이슬람교 신자였던 것은 아니며, 서기 7세기 인도를 방문한 중국 당나라의 승려인 현장법사가 남긴 기록에 의하면 발루치스탄 지역에는 수백 개의 불교 사찰들이 세워져 있었다는 내용으로 보아 원래는 불교 신자였다가 이슬람교를 내세운 이슬람 제국이 인도를 침략하던 서기 8세기 이후부터 점차 불교를 버리고 이슬람교로 개종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주로 사는 발루치스탄에는 마리, 부즈티, 잔드, 라이사이, 둠바키, 카시, 란주 등 17개의 대형 부족들이 존재하며 각자 사르다르(Sardar)라는 부족장들이 다스리고 있다. 이외에도 400개의 소규모 부족들이 있으며 역시 각각 부족장이 존재한다. 주로 농업과 목축에 종사하는데 도시에 나가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 파키스탄의 발루치인들은 영국의 지배를 받던 시절 영국군에도 복무했었다.[4]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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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발루치스탄주〉, 《위키백과》
- 〈발루치스탄〉, 《나무위키》
- 〈두산백과 : 발루치스탄주〉, 《네이버 지식백과》
- 〈발루치인〉, 《위키백과》
같이 보기[편집]
남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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