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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다 파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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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다 파밀리아 2016년
사그라다 파밀리아 2021년

사그라다 파밀리아(카탈루냐어: Temple Expiatori de la Sagrada Família, 스페인어: Templo Expiatorio de la Sagrada Familia)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짓고 있는 로마 가톨릭 성당이다. 또한 '사그라다'는 스페인어로 성스러운이라는 뜻을 가졌으며, 파밀리아는 가족을 뜻하기 때문에 성가족성당이라고도 불린다. 카탈루냐 출신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하고 직접 건축을 책임졌다. 이 건물을 포함한 가우디의 작품들은 현재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되었으며, 2010년 11월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성당에서 준 대성당으로 승격을 선포했다.

1882년 성당의 건축은 Francisco de Paula del Villar에 의해 시작되었다.1883년 비야르가 사임하자 가우디가 수석 건축가로 취임하여 고딕 건축 양식과 아르누보 양식을 결합한 건축 및 엔지니어링 스타일로 프로젝트를 변형시켰다.

가우디는 그의 남은 생애를 프로젝트에 투입했으며, 1926년 73세의 나이로 고인이 되었을 때 프로젝트의 1/4, 즉 25%가 완료되었다. 가우디는 이 성당의 일부인 동부 성만 완성하고 서거하였다.

성당 건축은 개인적인 기부금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천천히 진행되었다가 1950년대에 스페인 남북 전쟁에 의해 중단되었다. 건설이 시작된 이래로 컴퓨터 지원 설계 및 CNC(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와 같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2010년 중반에 건설이 가속화되며 공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10개의 첨탑을 추가로 건설하는 등 프로젝트의 가장 큰 과제 중 일부들이 현재 남아 있다. 각각은 신약 성경에서 중요한 성경적 인물을 상징하며, 가우디 서거 100주년인 2026년에 완공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로써는 미지수다.

또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까탈루냐 모더니즘으로 지어진 최고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가우디는 이 성당을 지으면서 건축과 장식의 구성요소, 조형미와 아름다움, 기능과 형태, 외부와 내부 사이의 완벽한 조화를 추구했다.

지하 예배당과 성당의 내부 뒤에 부분은 네오고딕 양식으로 만들었고 그 이후, 성당의 나머지 부분은 자연의 형태를 모방하여 만들었다. 성당의 내부는 나무처럼 기울어지고 나선형의 기둥으로 인해 숲을 닮아서 간단하고 튼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가우디는 이런 특이한 형태의 건축기법을 그가 지은 구엘공원이나 구엘 성지에서 검증한 후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지을 때 사용하여 조형미와 외형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구조적으로 완벽한 건축물을 만들었다.

2023년 현재 141년째 공사가 진행 중이며, 비용은 관광객하고 신자들 헌금, 기부금 따위로 충당하고 있다.

역사[편집]

가우디가 사망했던 1926년의 성당 모습

배경[편집]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건축주는 교회나 정부가 아닌, 일개 종교 서적 출판사의 사장이었던 조셉 마리아 보카 벨라(Josep Maria Bocabella)의 영감을 받아 설립되었다. 그는 신앙이 부족한 도시인 바르셀로나에 '속죄하는 의미'로 신자들의 힘을 모아 성당을 건축할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건설 초반에는 신자들이 보낸 기부금으로만 지었다. 당시 카탈루냐의 시대적인 측면에서 보자.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카탈루냐 지방은 산업혁명의 여파로 굉장히 변화가 많았고, 독실한 종교인의 시각으로는 눈 뜨고 못 볼 꼴들이 많이 벌어지던 시대였다. 특히 사회주의적인 사상도 팽배했고 종교시설 다수가 파괴되는 사건들도 종종 일어났다.

1872년 바티칸을 방문한 후 보카 벨라는 이탈리아에서 돌아와 로레토(Loreto) 성당에서 영감을 얻어 교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교회의 교정이 필요한 부분은 기부금으로 충당되었으며, 1882년 3월 19일 세인트 요셉 축제에서 고딕 양식의 부흥을 통해 교회를 계획한 건축가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델 빌라르(Francisco de Paula del Villar)가 디자인에 착수했다. 그가 설계한 것은 전통적인 고딕 성당의 양식을 본딴 네오 고딕 양식이었다. 그래서 빌라르가 시작하고 가우디가 마무리한 이 성당의 지하는 네오 고딕 양식이라, 이 성당의 전체 양식과 맞지 않는다. 1882년에 착공했지만 1883년 빌라르가 기술고문과 불화하던 끝에 사임하자, 감독으로 참여하던 가우디가 성당의 수석건축가가 되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가우디는 성당을 설계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기쁘고 빠르게 잡았다.

구성[편집]

가우디는 설계변경을 몇 차례 하던 끝에 지금의 안을 내놓았다. 가우디는 공중부벽(flying buttress) 등으로 지탱되던 기존의 고딕 양식 건물을 '목발'에 의지하는 딱한 인체로 여겨서 고딕 양식을 보완, 재구성하여 자신만의 양식으로 성당을 설계하였다.

가우디는 카탈루냐 지방이 하느님께 죄를 지었다는 생각에 성당 공사에 몰입했고, 친구나 가족들마저 사라진 이후에 자신의 집을 버리고 성당 지하의 작은 방에서 거주하며 설계를 이어갔다. 가우디 사후에도 건축을 진행할 성당 건축위원회의 요구에 따라 가우디는 세밀한 성당 모형을 만들어야 했다.

극도로 긴 건설 기간에 대해 가우디는 "내 의뢰인은 서두르지 않고있다"고 말했다. 1926년에 사고로 노면전차에 치여 가우디가 사망하였는데, 공회당은 약 15%와 25% 사이에서 완료되었다. 가우디가 사망한 후 1936년 스페인 내전 중단될 때까지 Domènec Sugrañes i Gras의 지시하에 계속 작업이 진행되었다.

미완성 공회당의 일부와 가우디의 모델과 워크샵은 카탈로니아의 무정부주의자들에 의해 전쟁 중 파괴되었다. 현재의 디자인은 현대적인 적응 뿐만 아니라 화재로 불태워진 계획의 재구성된 버전을 기반으로 한다. 1940년 이래로 건축가인 Francesc Quintana, Isidre Puig Boada, Lluís Bonet i Gari 및 Francesc Cardoner가 이 작업을 수행했으며, 조명은 Carles Buïgas에 의해 설계되었다.

Lluís Bonet의 현 감독이자 아들인 Jordi Bonet i Armengol은 1980년대 이후 컴퓨터를 설계 및 시공 과정에 도입해 왔다.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Jordi Fauli가 2012년 사그라다 파밀리아 건설의 수석 건축가로 취임했다.

중앙 본당 둥근 천장 작업은 2000년에 완료되었으며 이후 주요 작업은 천장 높이 및 선미의 건설이었다. 2018년, 중앙 본당의 남쪽 인클로저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메인 타워에 대한 교차 및지지 구조에 집중하고 있다.

교회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박물관 건물 (원래 건축가의 아이들을 위해 1909년에 가우디가 디자인 한 학교)과 사이트를 공유한다. 2002년 동부 구석에서 남쪽 구석으로 이주한 이 건물에는 현재 전시가 있다.

건설 현황[편집]

수석 건축가인 조르디 파울리는 2015년 10월에 공사가 70% 완료되었으며 6개의 거대한 건물을 세우는 마지막 단계에 들어서게 되었다고 발표했다. 타워와 대부분의 교회 건축물은 가우디의 사망 100주년인 2026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장식 요소는 2030년 또는 2032년까지 완료될 예정이라고 한다. 15-20 유로의 방문자 입장료는 연간 건설 예산 2,500만 유로를 충당한다.

컴퓨터 보조 설계 기술은 건물 건설을 가속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현재의 기술은 돌을 CNC 밀링 머신에 의해 빠르게 조각할 수 있는 반면, 20세기에는 돌을 손으로 조각했다.

2008년 일부 카탈로니아 건축가들은 가우디의 독창적인 디자인을 존중하기 위해 건설 중단을 옹호했다. 원래 디자인은 철저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파괴되었지만 최근 몇 년간 재건되었다.

현재도 이 건축물의 공사를 이어가는 건축가들은 카탈루냐 지방 사람으로만 구성하는데, 그들의 모습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지하에서 유리벽을 통하여 볼 수 있다.

2019년에는 뒤에 위치한 첨탑들도 제법 많이 올라간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1년에는 코로나로 인해 공사 진척이 빨리되지는 못했지만 세부적인 요소들이 많이 완성되어 완성된 모습을 점차 찾아가기 시작했으며, 성모 마리아(Virgin Mary)첨탑이 완공된 모습을 볼 수 있다.

2022년에 '성 루카 복음사가 탑'과 '성 마르코 복음사가 탑'이 완공되었다.

AVE 고속철도 터널[편집]

2013년 이래 AVE 고속 열차는 바르셀로나 중심부에서 지하 터널을 통과하여 성당 근처를 통과했다.

2010년 3월 26일에 시작된 터널 공사는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스페인 공공 사업부는 이 프로젝트가 교회에 아무런 위험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건축 엔지니어와 건축가는 터널이 건물의 안정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고 말하면서 의견을 달리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이사회와 AVE pelle Litoral은 AVE를 위한 이 갈등 때문에 AVE에 대한 캠페인을 성공으로 이끌지 못했다.

2010년 10월, 터널 보링 머신은 건물의 주요 외관 위치 아래 지하 교회에 도착했다. 터널을 통한 서비스는 2013년 1월 8일에 개통되었다. 터널의 트랙은 Edilon Sedra의 시스템을 사용하여 레일을 탄성 소재에 매립하여 진동을 줄인다. 다행히도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대한 손상은 현재까지 보고된 바 없다.

미사 집전[편집]

메인 본당은 덮여 있었고 기관은 2010년 중반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아직 완성되지 않은 건물이 종교적 서비스로 사용되고 있다. 교회는 6,500명의 회중 앞에서 2010년 11월 7일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봉헌되었다. 추가로 50,000명의 사람들이 바실리카 외곽에서 봉헌 미사를 쫓았다. 그곳에서 100명 이상의 주교와 300명의 성직자가 손을 잡고 성만찬을 제안했다. 2017년 7월 9일부터 매주 일요일과 성례 날 오전 9시에 대성당에서 기념하는 국제 미사가 대중에게 공개된다 (교회가 가득 찰 때까지). 때때로 미사는 다른 시간에 경축되며, 출석에는 초대가 필요하다. 미사가 예정되어있을 때, 초대장을 얻기 위한 지시 사항은 바실리카의 웹 사이트에 게시된다. 또한 방문객들은 거룩한 성체와 참회의 예배당에서 기도 할 수 있다.

가치[편집]

건물의 디자인 자체가 극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가우디의 동료 건축가들의 평가는 일반적으로 긍정적이었다. 루이 설리반(Louis Sullivan)은 사그라 다 파밀리아를 "지난 25년 동안 가장 위대한 창조적 건축물"로 묘사했다. 그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돌로 상징화 된 영적인 건물 입니다!"라고 말했다. Walter Gropius는 성당을 칭찬하면서 건물의 벽을 "경이로운 기술이 만든 완성형 물체"라고 불렀다. 타임지(Time Magazine)는 성당을 "관능적이고 영적이며 변덕스럽고 풍성한 건물"이라고 불렀다. 또한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세계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건물 중 하나"라고 불렀고, James A. Michener는 "가장 이상하며 심각한 세계의 건축물"이라고 불렀으며, 영국의 역사학자 제럴드 브레난(Gerald Brenan)은 "유럽의 건축물조차도 이 성당 앞에서는 저속하거나 허식이 아닌 것을 찾을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건물의 독특한 실루엣은 바르셀로나의 상징이 되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매년 약 200~300여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문화재 지정 사유[편집]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현재 바르셀로나에 소재한 여섯 개의 다른 가우디 건물들과 함께 1969년 7월 24일 스페인의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선정되었으며, 그 까닭은 "건축 및 건축 기술 개발에 대한 가우디의 독창적 인 공헌", "카탈로니아의 엘 모더니즘을 대표 " 및 "예상된 20세기 현대 건설의 발전과 관련된 형태와 기술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침." 등이 있다.

건축[편집]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편집]

내부전경과 대성당 지하에 있는 가우디 무덤

사실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이유로 "동시대에 비견될 다른 건물 이상으로 복잡해서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일단 가우디가 1926년 사망한 이후 공사는 계속되었지만, 1936년 시작된 스페인 내전 기간 동안 건축이 중단되어 1950년대에 와서야 건축을 다시 진행했다. 또한 건축가가 사망한 상태에서 남은 불완전한 설계도를 해석하여 건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성당 건축의 완성도를 위해 꼼꼼한 과정을 거치는 것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적은 인원으로 공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충분히 자본과 인력을 조달받는다면 현대의 기술로 성당 건축이 이렇게 오래 걸릴 이유는 없다. 그러나 바로 이 점이 역설적으로 관광 세일즈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성당 건축비는 상당부분 관람비에 의존하기 때문에 관광객의 유치는 건축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다만 스페인 정부에서는 가우디 100주기가 되는 2026년까지는 완공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발표하고, 장비와 인원을 늘려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완공까지 22세기는커녕 200년이 더 걸린다는 말이 나오는 시점에서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에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도 많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 치밀한 완성도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소수 인원과 작은 부분을 조각하는 것에 있어서도 충분히 검토한 후에 진행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자금과 건설 인력은 충분하지만, 상대적으로 시간과 디자인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세세한 부분까지 손대지 못하고 계속 공사를 진행한다는 우려가 있다.

원통형 첨탑 12개는 마치 거대한 옥수수들이 하늘로 치솟은 듯 보인다. 주변에 높은 건물들이 없어서 원래 높이보다도 더 높게 보인다. 이 옥수수 같은 구조는 사실 안에서 밖으로 뚫린 구멍들로, 완성된 첨탑 내부에 종이 설치되었을 때를 예상해서 종소리가 온 바르셀로나에 퍼지도록 꼭대기의 종에서 땅바닥을 향하는 각도로 뚫렸다. 스피커의 전면에 송송 뚫린 구멍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형태와 배치[편집]

완공 상상도

바르셀로나의 도로 구획이 사선이기 때문에, 이 성당의 정면 방향은 전통적인 서쪽이 아닌 남동쪽을 바라본다. 가우디가 직접 만든 부분은 북동을 보는 부분이고, 성당의 정면이 아니다.

이 성당을 구성하는 외벽 선은 거의 모두가 곡선 형태다. 이는 그 당시의 서구 건축역사에서 보기 드문 개념이었다. 그러나 가우디가 미적인 감수성에만 의존하여 성당의 형태를 곡선으로 설계한 것은 아니다. 고딕 양식 특유의 공중 부벽(flying buttress)을 "보기 딱한 목발"이라고 불렀던 가우디는 부벽을 덧붙이지 않으면서도 건물의 안전성을 높이고자 곡선 형상에 적합한 구조 역학까지 배려해 건축을 진행했다. 그는 성당의 구조를 결정하기 위해 실을 천장에 매달고 모래주머니 또는 납추를 중간에 매달아 휘어지는 형태를 측정했는데, 이러한 현수선(catenary)은 구조적으로 안정되어 이를 설계에 반영했다.

완성된 도면에 따르면 높이 100 m 남짓한 탑이 12개가 들어서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12사도를 상징한다. 이외에 중앙에 세워지는 170 m짜리 가장 큰 탑은 예수를, 탑과 탑을 이어주는 돔은 성모 마리아를 상징한다. 또 별도의 돔 4개는 복음사가 4명(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성가정'을 보여준다.

가우디가 남긴 북동쪽의 '나시미엔토/나샤멘트(예수의 탄생)'라는 건축 주제는 완성된 상태이고, 남서쪽의 '파시온(예수의 수난)'도 대략적으로 완성된 상태다. 가장 중요한 남동쪽 정면의 '글로리아(영광)'는 2002년부터 건축을 시작했는데, 이 성당 건축의 정점을 장식하는 170 m 높이 예수 그리스도 탑은 그 뒤에 지을 예정이다.

동쪽 나시미엔토 면의 조각들은 가우디 시절에 조각했는데, 여기 인물상들은 모두 가우디가 살던 동네 사람들을 일일이 석고로 본을 뜬 후 그걸 보고 크게 돌로 조각했다. 조각 중 아기의 석상도 있는데, 조산원에 가서 일찍 죽은 아기의 시체에 석고 본을 떠서 조각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가우디의 나시미엔토 부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았다. 반대쪽에는 가우디가 죽고 30년 후 조셉 마리아 수비라치라는 모더니즘 조각가가 맡았다. 그래서 가우디가 설계한 파트와는 조금 느낌이 다르다. (수비라치의 인물상들은 가우디와 완전 반대 성향으로 각진 정형화 및 일부 추상화가 가미되며 얼굴 부분이 음각되어 있어서 어떤 방향에서 바라봐도 감상자를 쳐다보는 듯한 착시를 안긴다.) 가우디가 실제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본떠 묘사했다면 수비라치는 간결하고 직선을 주로 사용하여 묘사했다. 이 때문에 널리 알려진 면의 반대쪽을 보고 실망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수비라치는 시대에 맞는 예술적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던 모양이다.

스테인드글라스에 빛이 비춘 모습. 태양의 위치에 따라 색이 다르다.

성당 내부는 가우디가 숲속을 걷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설계하여 상당히 이색적이다. 나무와 꽃을 닮은 기둥과 천장의 형태가 인상적이다. 각 기둥에는 가톨릭 성인의 상징 문양 등이 있다. 내부의 색은 흰색인데, 이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햇빛에 비치면 그 색을 그대로 벽면에 새겨지도록 설계한 것이다. 동쪽에서 동이 트면 파랑과 연두, 초록 등의 색상으로 구성된 스테인드글라스에 빛이 비추어 탄생을 비유하고, 서쪽으로 해가 지면 빨강, 주홍, 노랑으로 사망을 나타낸다. 특이하게도 스테인드글라스에 그림이나 인물 모양 없이 검은색으로 인명만을 적었는데 모두 성인들의 이름이다. 여타 성당에 비해 스테인드글라스의 색이 선명해 태양의 위치에 따라 다른 색이 성당 안을 가득 메운다.

설계상 높이가 170 m, 현재 높이 120 m(동쪽 첨탑 기준)의 이 거대한 건물은 바르셀로나의 '스카이라인(산이나 건물이 하늘에 그리는 윤곽)'을 바꿨다는 평을 받는다. 가우디 건축의 특징은 '건축물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기능은 반드시 유지하되 그 외형과 내부공간을 어떻게 구성하여 인간의 상상력을 최대한 자극시킬까.'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흔히 건축물이라고 하면 고정되고 딱딱하고 위치가 바뀌지 않을 듯한 느낌을 주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마치 금방이라도 어디론가 움직일 듯한 모양새다.

탄생의 파사드[편집]

탄생의 파사드 (Nativity Façade/Façana del Naixement)

탄생의 파사드 (Nativity Façade/Façana del Naixement)는 성당의 북동쪽면이며, 가우디가 살아있는 동안 완성되었다. 가장 먼저 지어진 파사드이기 때문에 현재 주 출입구로 사용되지만, 성당이 최종완성되면 메인 출입구는 영광의 파사드로 옮겨질 예정이다. 예수의 탄생 관련 내용으로 구성되는데, 가장 부조가 많고 화려하며 곡선 위주라 따뜻한 느낌이 든다.

출입문이 세 곳 있다. 왼쪽은 요셉에게 헌정된 희망의 문, 오른쪽은 성모 마리아에게 바쳐진 신앙의 문, 가운데는 예수에게 헌정된 사랑의 문이다. 종탑 4곳은 바르나바, 마티아, 타대오, 시몬을 상징한다. 종탑은 공중에서 계단으로 연결되었는데, 입장료를 내고 올라가서 가우디의 작품을 가까이서 볼 수 있으며, 바르셀로나 시내 전경 또한 한 눈에 들어온다.

수난의 파사드[편집]

수난의 파사드(Passion Façade/Façana de la Passió)

수난의 파사드(Passion Façade/Façana de la Passió)는 성당의 남서쪽면이며, 가우디 사망 후 가우디가 남긴 도면과 지침에 따라 1954년부터 '조셉 마리아 수비라치'에 의해 설계되고 건설되었다. 가우디가 남긴 도면이 완벽하게 디테일하지는 않기 때문에 수비라치의 해석이 많이 반영되어, 반대쪽 탄생의 파사드와는 느낌이 전혀 다른 추상적이고 정형화된 직선 위주 형상이라 전혀 다른 건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가우디는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표현한 이 파사드가 관람객에게 경외심과 고통, 공포를 상기시키길 바랬고, "단단하고 벌거벗었으며 마치 뼈로 만든 것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수난의 파사드는 남서쪽 방향이기 때문에 해질녘의 잠깐을 제외하고 항상 그늘지기 때문에 더욱 어둡고 무거운 느낌을 주는데, 이는 가우디가 모두 의도한 사항이다. 이에 따라 탄생의 파사드는 인물들도 사실적으로 부드럽게 묘사된 반면 수난의 파사드는 인물들이 추상적이고 각진 딱딱한 양상이다. 또한 탄생의 파사드는 빈 공간이 없이 덩굴잎사귀 조각이 빼곡하게 들어차 따뜻한 숲속같은 느낌이지만, 수난의 파사드는 최소한의 부조만 있어 황량하고 쓸쓸한 느낌을 주는데, 그마저도 뼈 모양 기둥들이 감싸 그 느낌이 더욱 배가된다. 종탑 4개는 야고보, 바르톨로메오, 토마스, 필립보를 상징한다.

영광의 파사드[편집]

영광의 파사드(Glory Façade/Façana de la Glòria)
영광의 파사드(Glory Façade/Façana de la Glòria) 주출입문에 50가지 언어로 새겨진 기도문

영광의 파사드(Glory Façade/Façana de la Glòria)는 성당의 남동쪽 면으로 2002년부터 건설이 시작되었는데, 완공되면 메인 출입구가 될 예정이다. 영광의 파사드는 예수의 영광을 드러내는 부분으로 지옥과 최후의 심판, 영생을 주제로 한다. 큰 기둥 21개가 주요 건축물이 될 예정이다. 기둥 21개는 성령칠은, 칠죄종, 칠극(七剋)을 의미한다. 기둥에는 구름모양의 조각이 감싸며 구름에는 사도신경의 첫 구절 "Credo in unum Deum Patrem Omnipotentem, creatorem coeli et terrae."(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를 새길 예정이다. 또한 출입문의 양옆에서 한쪽에는 물을 뿜는 분수가, 다른 편에는 불을 뿜는 버너가 설치할 것이다. 탑 4개는 각각 안드레아, 베드로, 바오로, 야고보를 상징한다.

영광의 파사드 주 출입문은 이미 완성되었는데 50가지 언어로 주님의 기도를 새겼다. 양쪽 아래에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한국어 글귀도 있다.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과 꼭대기의 별

영광의 파사드는 완공될 때까지 극복해야 할 큰 장애물이 있으니, 바로 출입구 진입로이다. 가우디가 살아있던 시절 성당의 남동쪽 방면은 공터였고 여기가 주 출입구였다. 그래서 원래의 가우디 설계에 따르면 성당 앞 마요르카 도로 위로 지나가는 공중계단을 건설하여 차량은 그 아래로 다니고 사람은 맞은편 공터에서부터 계단으로 출입해야 한다. 그러나 백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맞은편 공터에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차버렸다. 원래 설계를 실현하려면 그 건물들을 모조리 구매해서 철거해야 하는데, 거주민들의 반발도 반발이지만 바르셀로나의 집값을 생각하면 한 블럭을 통째로 구매하는 것이 가능할지 불투명하다.

성모 마리아 탑[편집]

성모 마리아 탑((The tower of the Virgin Mary/La torre de la Mare de Déu))은 성당의 북서쪽면으로, 2021년 완공되었다. 성당의 다른 3면을 차지하고 있는 3개의 파사드에는 예수의 12제자를 상징하는 12개의 탑이 있는데, 북서쪽면은 성모 마리아 탑 한개만 있으며, 다른 탑보다 훨씬 굵고 높다. 물론 가장 높은 탑은 마지막에 완성될 중앙의 예수 그리스도 탑이 되겠지만, 그 다음으로 큰 탑이다. 꼭대기에는 지름 7.5미터, 무게 5.5톤의 12각을 가진 별이 올라가 있으며,[31] 낮에는 햇빛이 반사되고 밤에는 조명이 켜져서 빛이 난다.

복음사가의 탑[편집]

복음사가의 탑.png

복음사가의 탑(The towers of the Evangelists)은 중앙의 예수 그리스도 첨탑을 둘러싸는 4개의 탑으로, 신약성경의 4개의 복음서를 집필한 마태오, 마르코, 루가, 사도 요한을 상징한다. 높이는 성모 마리아 탑과 같으나, 굵기는 파사드의 12사도 탑과 비슷한 정도로 가늘다. 꼭대기에는 전통적으로 복음사가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장식되어 있는데, 각각 천사(마태오), 사자(마르코), 황소(루가), 독수리(요한) 이다. 이 상징물은 성전 내부의 네 기둥의 메인램프에도 장식되어 있다. 상징물 아래에는 20면체가 있는데 여기서 조명이 나와 추후 완공될 중앙의 예수 그리스도 탑을 비출 계획이다. 또한 루가/마르코 탑에는 엘리베이터가, 마태오/요한 탑에는 계단이 설치될 예정이다.

루가 탑과 마르코 탑.png

2022년 12월 28일 루가 탑과 마르코 탑이 완공되었다.

특징[편집]

특히 해가 질 무렵 붉은 노을을 받았을 때 성당의 모습은 황홀경 그 자체다. 가우디는 40년 동안 이 성당 건축에 혼신의 힘을 다했으며 1926년 전차에 치여 사망할 당시에도 성당 앞에서 상념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사후 그가 안장된 곳 역시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지하. 유네스코는 가우디의 또 다른 작품인 구엘 공원과 카사밀라 등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하면서 "인간의 창조적 천재성이 과연 어디까지 뻗칠 수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며 극찬했다.

반면 1984, 동물농장 등으로 유명한 언론인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전 때 바르셀로나에서 의용군으로 복무하면서 공화군 민병대들이 "다른 건물은 잘만 폭파하는데도 흉측하게 커다란 성당은 또 예술 작품이라면서 내버려뒀다."라면서 수기집인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깠다. 오웰의 사회주의적인 이념 성향을 생각해 보면 당시 프랑코의 쿠데타 세력과 결탁한 가톨릭 교회에 대해 적개심을 표출하는 게 당연하지만, 당시 카탈루냐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던 전국 노동 연맹 소속의 아나키스트 민병대원들은 다른 성당들은 모조리 철거했으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경우 특유한 매력에 감화되어 이 성당만큼은 철거를 하지 않기로 카탈루냐 자치 정부인 제네랄리타트와 서로 협의하여 보존하는 방향이 된 것이다.

또한 역설적인 건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가치관을 가졌던 가우디가 이 건물을 계획한 이유 자체가 상술한 아나키즘 같은 급진 좌파 세력들을 보고 "쯧쯧, 바르셀로나가 이런 빨갱이 천지가 되면 하느님한테 밉보이겠다. 멋진 성당을 새로 지어 도시 전체 스케일로 참회해야지."라는 발상, 즉 아나키스트 본인들 입장에서는 자기들을 죄인 취급했던 별로 달갑지 않았을 법한 동기에서 착수했다는 것이다.

가우디의 건축은 사실 카탈루냐 지방의 건축적 전통을 충실히 계승했다. 많은 작품에서 카탈루냐 지방에서 볼 수 있는 타일 공예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점이 유명하며, 시공도 지역 장인들에게 의존했다. 이 성당의 몬세라트의 검은 성녀를 포함한 많은 외부 장식, 구조적 요소도 카탈루냐 전통적인 고딕 건축 양식에서 따온 것이다. 바르셀로나 구 시가지에 있는 바다의 성모 마리아 성당 (Santa María del Mar), 바르셀로나 대성당 등에 가보면 격자형 기둥 장식 등을 비롯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에서도 보이는 많은 전통적 건축 요소를 볼 수 있다.

가우디는 같이 일하는 노동자들을 많이 배려했다. 성당 북서쪽 근처에는 작은 집이 있는데, 바로 노동자들의 자녀들이 다닐 수 있는 학교다. 노동자들이 성당을 짓는 데 신경을 쓰느라 아이들에게 소홀해질 수 있는 부분을 세심하게 잡아낸 부분이다.

흔히 성당이라고 하면 당연히 석조라고 생각하겠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완전한 석조 성당이 아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정석대로 돌로 짓기 시작했지만, 1950년 경에 근처 채석장의 돌이 바닥난 뒤로는 철거된 석조 건축물의 자재를 재이용하다가 그것마저도 바닥난 지금은 이란이나 영국 등지에서 채취한 돌을 가공해서 이를 근처에서 한데 합친 다음 그 사이에다가 철근 콘크리트를 집어넣은 '패널'을 만들고 그걸 현장에 있는 또 다른 철골구조물과 연결하는 방식으로 만든다.[34] 누군가는 순수한 석조 건물이 아니라고 실망할 수 있겠지만, 가우디는 이 성당의 재료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지정한 적이 없으며, 콘크리트를 사용한다고 해서 건축물의 격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20세기의 걸작 건축물들은 거의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성당 지하에는 현대식 박물관이나 화장실이 있고, 첨탑 내부에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등 현대 건축물로서의 요소도 있다. 북동쪽의 첨탑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가 계단으로 내려올 수도 있다. 단, 원형 계단에 난간이 없으니 심약자는 주의. 지하의 박물관에는 가우디의 스케치, 모형, 사진 등이 있다. 성당은 지금도 공사 중이기 때문에 내부에는 시멘트 포대와 공구가 여전히 흩어져 있다.

가우디는 이 성당의 건설기간을 200년으로 잡았다. 한마디로 예상 완공년도를 2082년으로 잡은 것. 그런데 유럽의 건축물들을 보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처럼 건설기간이 170년 남짓 되는 건축물부터 밀라노 대성당처럼 건설기간이 400년을 훌쩍 넘어가는 건축물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말해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공사기간은 다른 성당들보다 비교적 짧다는 것. 아무래도 수백 년씩 걸려 짓는 근대 이전의 건축 방식을 21세기인 현재까지 지속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건물이라는 점이 눈여겨 볼 부분인 듯하다. 가우디가 사고로 사망한 후 다른 건축가들이 일을 이어받아 대신 건설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바르셀로나 내에서도 2026년에 완공시키겠다는 스페인 정부의 입장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2026년에 완공을 안 시킬 거 같다는 예측도 많다. 이 성당은 100년이 넘게 건축 중이라는 것이 가장 큰 메리트고, 완공되면 그냥 유럽에 흔히 있는 성당의 하나처럼 여겨질 것 같다는 이유 때문. 거기다가 2026년에 완공한다고 했으나 치밀하고 꼼꼼히 짓는 건축 특성상 지금 속도로는 절대 불가능하고 최소 2050년대에 들어서야 겨우 완공을 기대할 수 있다. 가뜩이나 좋지 않은 스페인 중앙 정부와 카탈루냐의 지역 감정도 한몫하고 있고, 2020년대에 들어서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2026년 완공이라는 목표는 사실상 물건너간 상태였지만 이후 스페인 정부가 2026년 완공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상술한 이유들로 인해 2026년 완공도 어려울것으로 보인다.

고딕 양식이 대개 그렇긴 하지만, 이 성당은 워낙 높이나 경사, 모양, 색조 때문에 밤에 조명이 거의 꺼진 상태로 보면 은근히 공포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세계문화유산이며 현재 공사 중인 관계로 홈페이지에서 예매를 받아 하루 입장 인원수를 제한한다(가우디 투어는 예외). 성수기에 방문한다면 방문 최소 일주일 전에는 미리 홈페이지에서 예약하자. 만약 예약을 놓쳤다면 가우디 투어에 합류하거나 홈페이지에서 취소표를 기다려보자. 취소표가 10분에 하나씩은 난다.

관람안내[편집]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일 년 내내 열려있지만, 예배나 특별한 종교 행사로 인해 가끔 문을 닫기도 한다. 따라서 방문 전에 꼭 웹사이트에서 성당 개장여부를 미리 확인해야 한다. 또한 성당 내부까지 관람하려면 원하는 방문시간에 해당하는 입장권을 구매해야 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외부만을 둘러 볼 예정이라면 도보로 약 15분~30분정도 소요되며, 외부 관람은 무료이므로 따로 입장권이 필요없다. 하지만 성당 안을 방문할 예정(내부 꼭 보세요!)이라면 입장권을 구매해야 하고, 선택한 방문 시간대에 따라 1~2시간 정도 소요된다.

만약 바실리카의 밑에 있는 박물관을 방문하거나 성당의 타워 꼭대기까지 올라갈 예정이면 시간을 좀 더 넉넉하게 잡아야 한다.

  • 10세 이하는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 현장에서 티켓 구매 시, 학생(국제학생증 지참)은 할인 요금(€13)이 적용된다.
  • 현장에서 티켓 구매 시, 65세 이상은 할인 요금(€11)이 적용된다.

교통안내[편집]

  • 메트로 : 2호선 / 5호선 Sagrada Familia 역 하차
  • 버 스 : 19 33 34 43 44 50 51 B20 B24 Sagrada Familia 역 하차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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