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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저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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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위치

징저우시(중국어: 荆州市 jīng zhōu shì)는 중국 후베이성 남부에 위치해 있는 지급시이다. [1][2]

개요[편집]

징저우시의 면적은 14,068.68㎢이며 인구는 5,231,180명(2020년)이다. 시의 동쪽은 우한시(武漢市)에, 남동은 셴닝시(咸寧市)에, 북쪽은 징먼시(荊門市), 셴타오시(仙桃市) 및 첸장시(潜江市)에, 서쪽은 장강계곡, 삼협이 있는 이창시(宜昌市)에, 남쪽은 후난성 웨양시(岳陽市)에 각각 접하고 있다.

시 인민 정부는 사스구(沙市区, 사시구) 장진서로(江津西路, 강진서로) 소재하며 행정구획은 사스구(沙市区, 사시구), 징저우구(荆州区, 형주구)의 2개 시할구(市辖区), 스서우시(石首市, 석수시), 훙후시(洪湖市, 홍호시), 쑹쯔시(松滋市, 송자시)의 3개 현급시, 장링현(江陵县, 강릉현), 궁안현(公安县, 공안현), 젠리현(监利县, 감리현)의 3개 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강이 굽어지는 곳의 북안에 시가지가 형성되었으며 운하를 통해 동쪽의 한수이(한강)과 연결되어 있다. 도시명을 한국식으로 읽으면 바로 형주(荊州)인데, 삼국지로 유명한 형주 지방의 중심지였던 강릉이 이곳이며, 여러번 행정구역 변경과 통폐합을 거치다 1996년에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경내에 고등교육기관으로 창강대학(长江大学), 사시대학(沙市大学)이 있다.

고대왕국들이 번성했던 곳이니만큼 곳곳에 관련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기원전 3세기경에 처음 건설되어 여러 차례 보수 및 증축 과정을 거친 성벽이 대표적이다. 현재 성벽은 청나라 때인 17세기 중엽 재건한 것으로 높이가 9m, 전체길이가 9.3km에 이른다. 곳곳에서 발견된 고대 왕국의 유물들이 징저우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3][4]

자연환경[편집]

징저우시(荆州市)는 양쯔 준지대(扬子准地台) 중부에 위치하며, 중국의 지형 3단계 계단의 서쪽 경계에 속하는 장한 평원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시의 지형은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으며, 저산과 구릉에서 평원으로 서서히 이어지는 형태를 보인다. 저산 지역은 120㎢로 시 전체 면적의 0.8%, 구릉 지역은 약 250㎢로 1.8%, 고지대는 2626㎢로 18.6%, 평원 지역은 11096㎢로 78.8%를 차지하며, 평원과 고지대가 주요 지형을 이루고 일부 구릉과 저산이 섞여 있다. 산악 지대는 주로 서부의 쑹즈시(松滋市) 및 징저우구(荆州区)의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최고 지점은 쑹즈시의 다링산(大岭山)으로 해발 815.1미터이다. 저지대는 주로 징저우구의 여러 지역과 푸장현(公安县), 스수시(石首市)에 분포하며, 가장 낮은 지점은 훙후시(洪湖市)의 신탄향(新滩乡)으로 해발 18미터에 불과하다.

징저우시는 북아열대 계절풍 습윤 기후에 속하며, 사계절이 뚜렷하고 일조량이 풍부하며 강수량이 많아 농업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한다. 연평균 기온은 16.216.6℃이며, 무상 기간은 250267일에 이른다. 연평균 강수량은 1100~1300㎜로, 비교적 고른 분포를 보인다.

징저우시는 강과 호수가 많고, 물길이 촘촘하게 얽혀 있어 전국에서 내륙 수역이 가장 넓고 수계 밀도가 높은 지역 중 하나다. 주요 하천으로는 창장(长江) 본류와 그 지류인 쑹즈강(松滋河), 후두강(虎渡河), 오치강(藕池河), 티아오셴강(调弦河) 등이 있다. 또한 1000묘 이상 면적의 호수가 30개 이상 있으며, 이 중에서 가장 큰 호수는 후베이성 제1의 호수인 훙후(洪湖)로 면적이 3.08만 헥타르에 이른다. 그 다음으로 큰 호수는 창후(长湖)이다.

징저우시는 수자원이 매우 풍부하고, 개발 이용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시의 수역 면적은 353.55천 헥타르로 전체 국토 면적의 25.13%를 차지한다. 이 중 양식이 가능한 수면적은 125.22천 헥타르로 수역 면적의 35.42%를 차지한다. 창장 유역을 지나는 수량은 4680억㎥이며, 지역 내 지표 유출량은 풍수년(豐水年)에 91.6억㎥, 가뭄년(枯水年)에 48.5억㎥이다. 수자원의 개발 이용률은 구릉 지역이 12.84%, 평원 지역이 13.22%에 이른다. 물의 질은 전체의 80% 이상이 1급 음용수 기준을 충족하며, 90% 이상이 지표수 2급 기준, 98% 이상이 농업 관개용 3급 기준을 충족한다.

징저우시는 생물 자원이 풍부하여 다양한 종류의 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시에는 약 3300여 종의 생물 자원이 있으며, 이 중 농작물 품종은 1169종, 가축과 가금류 품종은 33종, 수생 생물은 385종(어류 82종), 산림 식물은 620여 종, 약용 생물은 956종, 해충 천적은 233종이 포함된다. 이러한 다양한 생물 자원은 농업 구조 조정과 생태계 최적화에 중요한 기초 자원을 제공하고 있다.

징저우시는 광물 자원도 풍부하여 35종의 광물이 탐사되었으며, 그중 13종은 산업적 매장량을 가지고 있다. 주요 광물로는 에너지 광물인 석유와 석탄, 화학 광물로는 암염, 염수, 망초, 황철광, 중정석, 건축 자재 광물로는 대리석, 화강암, 석회석, 점토, 강사, 자갈 등이 있다. 그 외에도 금, 석금 등의 금속 광물이 있다.[5]

역사[편집]

약 6,000년전 이 곳에는 신석기시대 문화였던 다시 문화(大溪文化)가 일어난 곳으로 추정되며,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수도 영(郢)이 징저우에 위치해 있었다. 진(秦)의 소양왕이 명장 백기를 보내 영을 점령하게 하고 그 자리에 남군을 설치하면서 남군의 치소가 되었다.

후한말 삼국시대에 적벽대전과 형주공방전이 바로 이 징저우시 일대에서 일어났다. 적벽대전 이후 형주가 북형주와 남형주 둘로 갈려 북형주는 위가 남형주는 촉→ 촉오 분할→ 오 순으로 주인이 바뀌었는데 남형주의 중심지가 남군 강릉현 즉 현재의 징저우다. 북형주는 샹양(양양)이 중심지였다.

과거 강릉의 흔적은 현재 '징저우 고성'으로 시내에 남아있다. 길이 9km의 성곽은 관우에 의해 지어졌다고 하며 청대인 17세기 말에 보강되었다. 삼국지를 관광 마케팅으로 미는 도시인데 삼국공원이 있고 유관장 삼형제의 석상이 서 있어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 강릉 일대의 역사를 느끼고 싶다면 고대 미라가 전시되어 있기도 한 징저우 박물관을 추천한다. 징저우 시내에서 동남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장링현 (강릉)이 있는데 과거의 강릉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불분명하다.

이후 남북조 시대 후량의 수도였고 당나라 때에 남도(南都)로 불렸으며 5대 10국 시대 형남의 수도로 번창하기도 하였다.

이후 남송의 요충지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몽송전쟁 시기 강릉은 고달이 지키고 있었는데, 1275년 4월 아릭카야가 이끄는 원나라의 군대가 사마몽구가 지키는 사시진을 도성한 뒤 강릉으로 사절을 보내 항복을 요구하자 고달이 청양몽염, 주사손과 함께 강릉을 바치고 투항한다.

청일 전쟁 패전 후,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사스는 개항지가 되었다. 중일 전쟁에서는 1940년 6월에 사스는 일본군에 점령되어 종전까지 점령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형주 주변은 몇 번이나 행정구분의 변경이 있었고, 1994년에는 사스 시, 장링 현, 징저우 지구가 합병해, 징사 시(荊沙市)가 발족되었다. 1996년에 《징저우 시》로 명칭이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징저우의 관할구인 인구 60만의 샤스(沙市)는 고대 초나라 시기에 수도 영의 내륙 항구로 건설되었는데 시모노세키 조약에 의해 개항되었으며 1994년에 징저우에 시할구로 합병되었다. 비록 흡수되었지만 그 이름은 징저우 시내 동쪽에 있는 사스 공항(沙市机场)에 남아있다.

산업[편집]

농업·어업 외에, 공업에서는 방적업이 중심이다. 또 삼국지연의 등을 테마로 하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관광[편집]

형주에는 초나라 이래 400년 이상 수도였기 때문에 기난성 초나라 도시 유적이 5개소, 유물이 발굴된 장소가 73개소, 그 외 분묘는 800개소 이상(집왕묘가 18개소)이 발견되고 있다. 당시의 시인, 굴원의 땅이기도 하다.

또한 삼국시대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장강 연안의 오림(함녕시의 대안)은 적벽대전의 옛 전장이었으며, 형주의 수비를 맡아 결국 목숨을 잃은 촉한의 관우가 활약했던 곳이기도 하다. 강릉은 삼국 쟁탈의 성이며, 오나라의 손권에게 강릉 공략을 명령받은 주유가 위나라의 조인, 서황을 물리치고 공략했지만, 주유는 이 때 치명상을 입었다.

장강 연안의 항만 도시인 사스 구와 성곽도시의 《형주 고성》이 있는 징저우 구는 인접하고 있다. 형주 고성은 일찍이 《강릉성》으로 불리었고, 최근까지 구 강릉현의 중심이었다. 관우가 최초로 건설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이후 많은 전투로 쟁탈의 대상이 되어 왔지만, 현재 남은 성곽 도시는 1646년에 재건된 것이다. 성벽의 높이 9m, 두께는 10m로, 둘레는 9.3 km에 이른다. 성벽, 성문 등의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형주 고성 내부에는 형주 박물관이 있어, 형주 주변에서 출토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특히 2000년 전 남자의 미라는 보존 상태가 양호하게 발굴되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또 전국시대에 만들어진 견직물이나 칠기의 출토품 등도 전시되고 있다.

그 밖에도 원대에 건립된 장화사(章華寺), 명대에 장강 가에 지어진 만수보탑(萬壽寶塔) 등이 시의 명소이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징저우시〉, 《위키백과》
  2. 징저우시〉, 《나무위키》
  3. 중국행정구획총람: 징저우시〉, 《네이버 지식백과》
  4. 두산백과: 징저우〉, 《네이버 지식백과》
  5. 荆州市〉, 《百度百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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