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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테현(일본어: 岩手県)은 일본 도호쿠지방 태평양 연안에 위치해 있는 현이다.[1][2]
개요[편집]
이와테현의 면적은 15,275.01km²이며 인구는 1,159,245(2024)명이다. 현청 소재지는 모리오카시(盛岡市)이다. 일본에서 가장 넓은 현이자 도도부현 중 홋카이도에 이어서 면적 2위를 자랑한다. 면적 1만 5,278㎢로 가장 작은 카가와현보다 약 8배 더 넓다. 다만 대부분이 넓은 산지 인지라 인구는 많지 않다. 이와테현은 동쪽으로 태평양, 북쪽으로 아오모리현, 서쪽으로 아키타현, 남쪽으로 미야기현과 접한다. 현의 서쪽, 북쪽, 동쪽은 산지이고 현도를 포함한 현 중앙으로 기타카미강 계곡이 남북으로 뻗어있다. 산지와 바다 사이에 좁은 바위투성이 해안이 있다.
이와테현 하치만타이시에 현재는 폐광인 마츠오 광산이 존재하는데 이곳은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들이 강제동원된 기록이 있으며 이곳에 강제동원된 피해자의 유족들은 이와테현을 대상으로 매년 사죄와 배상을 요구중이다.
대한민국에서 에어소프트건 수집이나 서바이벌 게임이 취미인 사람들이라면 한번 이상 들어봤을 'KTW'라는 제조업체가 바로 이와테현의 하나마키시에 위치한다. 대한민국의 에어소프트건 제조업체라 할 수 있는 동산모형과는 98년 이후부터 제품개발 및 설계, 제작 등 기술제휴를 시작하여 현재까지 지속하고 있으며 일본 내에서 한정수량 초 고가 에어소프트건 제작 업체로 이름나 있는 업체이기도 하다. 이와테현의 산림자원을 활용하여 자사 제품의 우드 파츠를 제작하는데, 우드 질감이나 퀄리티는 최상급이다. 이 덕분에 하나마키시 내 연간 순 매출액 3위 내 업체 중 하나이기도 하며, 한 때 하나마키시 관광 특산품 판매점에 KTW에서 제작한 스펜서 카빈 에어소프트건이 전시되었을 정도다.
이와테현에서는 특이하게도 횡단보도를 건널 때 차에다 인사를 한다고 한다. 이와테현에서만 있는 문화로, 이 덕에 이와테현의 교통사고 순위는 최하위에 머물러 교통사고 안전지역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자연환경[편집]
서쪽 경계부를 화산대를 수반하는 오우산맥이 남북으로 달려 하치만타이산·이와테산 등 화산을 일으키고, 각지에 온천이 산재한다. 그 동쪽은 기타카미강의 충적저지인 기타카미분지로 현의 중추지역이다. 그 동부, 즉 현의 중부·동부의 거의 전역에 걸쳐 기타카미 산지가 펼쳐지며, 산지가 태평양으로 함몰하는 해안은 남부에서 산리쿠 해안으로 불리는 리아스식 해안을 이루고, 북부에서는 해안단구를 형성한다. 이와테현은 미개척지 비율이 홋카이도 다음으로 많다. 대부분 연안에 있는데, 혼슈 최동단으로 알려진 토도가사키(魹ヶ崎) 역시 미개척지에 있어 육로로 접근이 힘들다. 자연환경 보호 때문에 육로는 개방하는 시기가 매우 짧고, 대부분 배에 타고 멀리 떨어져서 토도가사키를 관람한다.
태평양 연안에서는 기후의 지역차가 커서, 북부에서는 봄·여름에 안개를 수반하는 북동풍이 냉해를 일으키는 일이 있고, 기타카미 분지는 대체로 강수량이 적으며, 오우산지의 일대에는 겨울에 적설이 많다. 모리오카시의 연평균기온 9.7℃, 연평균강수량 1,279mm이다.[3]
역사[편집]
도호쿠의 동북부에 위치한 지역이라 일본 문화권 편입이 다소 늦었는데, 헤이안 시대 초기인 8세기 말 혹은 9세기 초에 가서야 이와테 남부가 중앙조정의 영향권에 들어왔고 이와테 중북부는 아키타 북부, 아오모리 전역과 함께 헤이안 시대 후기인 11세기 중후반에 완전히 일본 조정에 편입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에미시의 영역으로, 아테루이가 활동했던 지역이다. 야마토 편입 이후에는 지금의 후쿠시마현, 미야기현, 아오모리현과 더불어 무츠노쿠니(陸奥国)로 불렸다.
11세기 말부터 12세기 후반까지는 오슈 후지와라씨(奥州藤原氏)가 히라이즈미에 거점을 잡고 조정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성장하여 한 세기 가까이 번영을 누렸으나, 결국 가마쿠라 막부의 초대 쇼군이 되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에 의해 멸망했고 고도(古都) 히라이즈미는 초토화되었다. 이후 가마쿠라 시대에는 북쪽에는 난부씨(南部氏), 시바씨, 아소누마씨(阿曽沼氏), 남쪽에는 카사이씨(葛西氏), 루스씨(留守氏) 등이 곳곳에서 독립 파벌로 성장했으나 서서히 후쿠시마에서 북상한 다테씨(伊達氏)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전국시대에 들어서는 카사이씨와 루스씨는 다테씨에 종속되었다.
에도 시대를 전후하여 남부는 다테씨의 센다이번(仙台藩)[8], 다무라씨(田村氏)의 이치노세키번(一関藩), 루스씨(留守氏)의 미즈사와(水沢)로 나뉘었으며, 북부는 난부씨의 모리오카번(盛岡藩)[9]이 설치되었다. 보신 전쟁 중인 1868년에는 오우에쓰열번동맹(奥羽越列藩同盟)이 다테번과 난부번을 중심으로 결성되었으나 넉 달 만에 신정부군에 항복했다.
모리오카번은 결국 재정난으로 폐번치현이 이루어지기 전인 1870년에 폐번을 신청하고, 이후 모리오카현(盛岡県)이 설치되었다. 1년 후에는 이와테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876년에는 현의회가 개회했다. 1889년에는 시제(市制)가 시행되어 모리오카시, 1937년에는 카마이시시, 1941년에는 미야코시가 설치되었다.
2차 세계 대전 말, 1945년 7월 14일에는 이 지역의 카마이시 제철소가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사우스다코타에 의해 포격을 받았는데 이는 미국 전함으로서는 최초의 일본 본토 포격으로 기록되었다.
패전 이후에는 교통편도 나쁘고 소득도 낮으며 산업 진흥도 미진해서 자조적으로 '일본의 티베트'로 부르던 적도 있었다. 이는 1964년에 하나마키 공항이 문을 열고 1982년에 도호쿠 신칸센이 개통되면서 개선되었다.
2008년에는 이와테 미야기 내륙 지진으로 약 450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냈으며, 2011년에는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이 발생하여 현의 모든 해안에 쓰나미가 밀려와 막대한 인명 및 재산피해를 냈다. 아직도 피해는 복구중이며, 현 차원에서 산리쿠(三陸) 지역 부흥 프로젝트와 홍보를 추진한다. 2012년 1월 28일 야마나시현에서 7시 43분에 리히터 규모 5.6의 지진이 발생하였고 4분 후 또 다시 리히터 규모 5.5의 지진이 발생하였다. 이와테 현도 9시 22분에 지진 해일이 발생하였으나 특별한 피해는 없었다고 한다. 진원의 깊이는 40km로 밝혀졌다.
2020년 7월 29일까지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는 시점에서도 일본 내에서 유일하게 확진자가 없는 지역으로 주목 받았으나 코로나 검사 회피 따위 의혹을 받던 중 7월 29일 부로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청정 지역 타이틀은 결국 깨졌다.
지명유래[편집]
지명 이와테의 유래는 다양하지만 제일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모리오카시의 토켄지(東顕寺)에는 시메나와가 묶인 바위 3개가 있다. 옛날 이와테산이 분화할 적에 날아온 화산탄인데, 지역 주민들이 '미츠이시사마(三ツ石様)'라 부르며 신성시하였다. 그 당시 라세츠키(羅刹鬼)라 불리는 오니가 그 지역 마을 주민과 여행객들을 괴롭히며 못살게 굴자 마을 주민들이 미츠이시사마에게 가서 마을사람들을 괴롭히는 오니를 벌해달라 부탁하였고, 그 후 라세츠키는 그 죄가로 미츠이시사마 바위에 묶여버리게 되었다.
결국 묶여버린 라세츠키는 잘못을 뉘우치며 다시는 마을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미츠이시사마에게 빌었다. 미츠이시사마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표시를 남겨라' 명령을 하여 미츠이시사마 바위(岩)에 손(手)자국을 찍고 서쪽인 난쇼산(南昌山)쪽으로 도망을 갔다 하여 이와테(岩手)가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현재도 손자국이 찍힌 바위가 모리오카시의 미츠이시 신사에 남아있다. 여담으로 오니가 떠나자 마을 사람들이 기쁨에 밤낮 가리지 않고 춤을 췄다는데 그 춤이 바로 모리오카 산사 오도리(さんさ踊り)의 기원이다. 지금도 8월쯤에 모리오카 시가지에서 대규모로 개최되는 오도리 마츠리이다.
산업[편집]
기후가 나빠 개발이 늦어졌지만 현재는 농업을 주로 하는 현으로 발전하고 있다. 주 산업은 농목업이다. 경지면적의 60%가 논인데, 냉해 극복 등 재배기술의 개선으로 쌀 공급현이 되었다. 종래 잡곡을 재배하던 전작지를 사료재배지로 전환시켜 젖·고기소의 사육이 활발해졌으며, 전통의 남부 말 사육 등이 활발하여 축산현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낙농과 관광목장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사과·양배추·감자·홉·잎담배 등의 생산이 많고, 특히 사과생산은 전국적이다. 산림면적이 넓은 임산림이나, 잡목림이 많아 주로 침목(枕木)·갱목(坑木)·신탄용재가 벌채되는데, 근래 펄프·칩·호모보드 등의 공장이 세워졌다. 산리쿠 해안 앞바다는 좋은 어장을 이루어 미야코·가마이시를 비롯한 여러 어항의 어획량이 많고, 근래 연안 어촌에서는 미역·곤포·김·굴·전복 등의 천해(淺海) 양식업이 활발하다. 광업은 가마이시 광산의 철광석생산이 전국 제1위이고, 구리도 전국 제1위의 생산을 올린다. 기타카미강의 여러 다목적댐 건설에 의해 15만kw의 전력 및 농지확장의 효과를 얻고 있다. 근대공업은 가마이시의 제철 및 미야코의 비료, 오후나토·히가시야마의 시멘트, 하나마키·기타카미의 정밀기계·펄프·화학 등의 공업이 대표적이다. 전통공업이 다양한데, 특히 남부철기(南部鐵器)의 쇠주전자가 유명하고, 그 밖에 히데히라 공기·오동나무장롱 등이 알려져 있다.
교통[편집]
공항은 하나마키 공항이 유일하다. 위상은 국제공항이지만, 국제선 노선은 타오위안에서 오는 하계편 딱 하나뿐이다. 한국에서도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에어부산에서 부정기편으로 운항한 적은 있지만, 탑승객이 비행기의 절반도 못 채울 정도로 적었다.
철도 노선으로는 도호쿠 신칸센이 현 중심을 관통하고 아키타 신칸센이 현 서쪽으로 뻗어 아키타현으로 넘어간다. 신칸센 역이 제일 많은 도도부현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도호쿠 신칸센에만 이치노세키역, 미즈사와에사시역, 키타카미역, 신하나마키역, 모리오카역, 이와테누마쿠나이역, 니노헤역으로 7개, 그리고 아키타 신칸센의 시즈쿠이시역까지 총 8개다. JR 재래선으로는 타자와코선, 키타카미선, 하치노헤선, 하나와선, 카마이시선, 야마다선, 오후나토선이 있다. 사철 노선으로는 IGR 이와테 은하철도 이와테 은하철도선과 산리쿠 철도 리아스선이 있다.
지역 버스 사업자는 이와테현북버스, 이와테현교통, 히가시니혼교통, 호쿠토교통, 다노하타교통 등이 있다. 대부분의 지역이 낙후된 지방이라 많은 수가 상황이 좋지 않으며, 차량도 대부준 20세기에 만들어진 중고차이다.
관광[편집]
서부의 칼데라호인 도와다호와 여러 화산 및 산리쿠 해안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고, 그 밖에 계곡 경승지와 온천 및 사찰 등 고적이 각지에 산재해 있다. 2011년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오슈 후지와라의 거점 히라이즈미가 있다.
모리오카시[편집]
모리오카시(일본어: 盛岡市)는 이와테현 내륙 지역의 중앙부에 위치하는 시이자 이와테현의 현청 소재지이다. 에도 시대에는 현재의 이와테현 북부와 아오모리현 동부를 통치한 난부 번(南部藩)의 성시였고, 메이지 시대 이후에는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 등 수많은 문학자와 정치가, 군인 등을 배출했다. 1982년에 도호쿠 신칸센이 개통된 이후에는 도호쿠 지방 북부의 교통 거점으로서의 성격이 강해지고 2000년에는 특례시로 지정되었다. 더욱 2006년 1월 10일에는 인접한 다마야마 촌(玉山村)을 편입함으로써 인구가 30만명을 넘었으며 2008년에 중핵시로 지정되었다.
모리오카 시는 면류의 고장으로서도 유명하다. 완코소바, 한국식 냉면이 변화된 모리오카 냉면, 중국식 자장면인 자자멘이 "3대 면류"로서 인기가 있다.[4]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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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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