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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이현(일본어: 福井県)은 일본 주부지방에 있는 동해와 와카사 만에 면한 현이다.[1][2]
개요[편집]
후쿠이현의 면적은 4,190.49㎢이며 인구는 743,386(2024)명이다. 현청 소재지는 후쿠이시이다. 남으로는 교토부와 시가현, 남동쪽은 기후현, 동쪽은 이시카와현, 북쪽으로는 동해에 면한다.
유일하게 민간 공항이 없는 현이다. 간사이 지역으로 나가는 게 꽤 편하기도 하고 이시카와현의 고마쓰 공항이 가깝기 때문이다. 2024년 3월부터 호쿠리쿠 신칸센이 카나자와역에서 연결될 예정이다. 산간 지역이다 보니 대중교통편이 불편한데, 버스도 40~50분에 1대, 지역 전철도 자주 오지는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가용이나 오토바이를 소지하고 있다.
주부지방에 속하기는 하나 시가현 교토부와 가깝고 후쿠이현의 역사, 지형, 문화, 언어 등을 사유로 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간사이지방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후쿠이 사투리도 있지만 간사이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후쿠이현은 쓰루가시를 기점으로 그 이북은 레이호쿠(嶺北), 쓰루가시를 포함하여 이남은 레이난(嶺南)으로 구별하기도 하는데 레이난 지역 사람들은 본인들을 호쿠리쿠 지방 사람이라고 인식하기보다는 간사이 지방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로 쓰루가에서 교토까지는 일반열차로도 1시간 반, 특급열차로는 약 1시간 미만으로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이다. 언어학적으로도 레이난 지역 방언은 간사이 계통의 방언에 속해 이쪽에서는 긴키 방언 지역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여담이지만 레이난은 한국식 독음으로 '영남'이다. 즉 지리적으로 후쿠이현 북쪽과 이격되어 있는 데다 호쿠리쿠 지방에서는 남쪽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호쿠리쿠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 약한 것이다.
레이난은 일본 제일의 원자력 발전소 밀집 지역으로 유명하다. 타카하마, 오이, 미하마, 츠루가 4개의 원자력 단지에 폐로작업 중인 몬주, 후겐이 위치하고 있다. 7기가 폐로작업 중이고 8기가 가동중이다.
일본에서 유일하게 개인전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나오지 않은 현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유일하게 이온몰이 없는 현이기도 하다. 옛날 JUSCO 시절에는 있었지만 폐업했다.
자연환경[편집]
지형상 레이호쿠·레이난의 두 지역으로 나뉘는데, 기노메 고개가 그 경계가 된다. 레이호쿠는 료하쿠 산지 지역으로, 저지를 구즈류강과 그 지류 히노강·아스와강이 흐른다. 레이난 산지는 복잡한 단층구조를 가진 고원 성 산지로 와카사만의 함몰에 의해 리아스식 해안을 형성한다. 만 안쪽에 쓰루가·미카타·오하마 등 소 평야가 단속적으로 분포한다.
겨울에는 강설이 많은 동해 연안 기후의 특색을 보인다. 레이난은 레이호쿠에 비해 강설량이 약간 적고, 연평균기온도 1∼2℃ 높다. 후쿠이시(市)의 연평균기온은 13.8℃, 연평균강수량은 2,472mm이다. 전 지역이 동해측 기후로 폭설 지대(일부 지역은 특별 폭설 지대)이다. 특별 폭설 지대에 속하는 오노시·가쓰야마시·이케다정·미나미에치젠정의 구 이마조 정은 전국 유수의 적설량을 기록하고 있다. 다만 최근에는 온난화 경향으로 강수량이 예전에 비해 감소하고 있다.
한편으로 특별 폭설 지대 이외의 지역은 쓰시마 난류의 영향에 의해 겨울에도 비교적 온난해 눈보다는 비가 내리는 날이 많다. 이 때문에「도시락은 잊더라도 우산은 잊지 말아라」(弁当忘れても傘忘れるな)라는 날씨에 관한 격언이 존재한다.[3]
역사[편집]
1만 5천년 전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사카이시 미쿠니초(三国町)나 에이헤지초(永平寺町)에서 구석기가 발견됐다. 조몬 시대와 야요이 시대의 유적도 발굴되었다고 한다. 직선 거리로 가까운 기후현 북부나 서남쪽 교토 등과 같이 수혈식주거(竪穴式住居, 움집) 유적이 있다.
일본이 천황제와 율령제를 정비하는 등 고대 국가로 발돋움할 때 와카사(若狭)로 명명됐다가 얼마 후인 7세기 말 에치젠(越前)[4]으로 개칭됐다. 제염 산업을 일궈 수도인 교토에 소금을 댔다고 한다. 풍부한 어획량의 동해를 두고 우리와 마주보고 있으며, 후쿠이 평야가 넓고 비옥해 당시부터 일본 황실의 각종 물품을 대는 공납 기지였다고. 8~9세기에 발해 사신이 오가는 등 한반도와 교류가 깊었다고 한다.
남북조 시대나 전국 시대 등 몇 백년에 걸쳐 일본 황실이 권위를 잃으면서 후쿠이현도 쇠퇴를 겪었다. 예를 들어 역모에 실패하고 낙향한 전 에미다이진 후지와라노 나카마로가 숨어 지내는 등 주로 이런 저런 이유로 교토에서 쫓겨난 자들이 유배를 오거나 숨어 사는 지역이 됐다. 후일 무로마치 막부 마지막 쇼군에 오르는 아시카가 요시아키와 혼노사의 그 사람, 아케치 미츠히데가 미요시 집안에 쫓겨 에치젠에 몸을 의탁하기도 했다. 전국 시대 너머 에도 막부 전반기까지도 일본 주류 역사에서는 비켜나 있는 지역이었다.
13세기인 가마쿠라 시대에는 시마즈 씨, 고토 씨 등이 후쿠이현 서부인 에치젠의 수호직(도지사)을 맡았고 오다 노부나가의 조상들도 저 시대까진 후쿠이 현에 있었다고. 14세기에는 무로마치 막부가 후쿠이현 동부인 와카사에 다케다 씨[5]를 수호직으로 앉히면서, 물론 우연이겠지만 훗날 센고쿠 시대 내로라하는 가문들의 조상이 모두 여기를 거쳐간다. 일본 황실은 전국에서 조운(바닷길)을 통해 공납을 받으면서 후쿠이현의 사카이 항구를 기지로 삼는다. 이후 각지 공물들이 거쳐가는 중간 기지로서 조선 산업이 발달하는 등 산업적으로 번성했다.
15세기 오닌의 난으로 일본이 생지옥이 될 즈음, 무로마치 막부가 보낸 지방관인 시바 가문과 시바 가문의 대리로서 에치젠을 통치한 가이 가문과 아사쿠라 가문이 서로 극한의 국지전을 벌이며 에치젠의 패권을 다투었고, 결국 아사쿠라 다카카게가 오닌의 난 도중 주군의 적과 손잡고 하극상을 하면서 시바, 가이 가문을 모두 쳐내고 에치젠의 패자가 된다. 잇코잇키 등 신앙심을 빙자해 민란이 끊이지 않았긴 했지만, 아사쿠라 집안은 중부 일본을 집어삼킬 기세였던 오다 노부나가를 상당 시간 발목잡을 정도로 그 세력을 자랑하던 집안이었다.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에는 오다 가문의 필두 가로 시바타 가츠이에가 기타노쇼에 새 성을 짓고 북일본을 노렸다가 시바타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떨려난 이후에는 에치젠이 니와 나가히데에게 넘어갔다. 이후 히데요시의 사촌인 아오키 가즈노리에게 넘어가기도 하는 등 당시에도 후쿠이 지방은 최측근에게만 내려주는 땅으로서 그 생산력을 짐작할 수 있는 곳이었다. 1598년 도요토미의 토지 정리에 따르면 와카사 에치젠 모두 합해 무려 77만 석 크기의 대형 번이었다.
이후 도쿠가와 마쓰다이라 집안의 에도 막부가 개창하면서, 초대 쇼군의 서장자인 유키 히데야스가 들어온다. 장남은 노부나가 손에 이미 죽었기 때문에 서자였던 유키 히데야스가 사실상 장남이었다. 이에야스의 장손주이자 히데야스의 큰아들 마쓰다이라 다다나오가 상속하지만 세키가하라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역모를 하려다 규슈로 유배되고 동생 다다마사가 다시 대를 잇는다. 에도 막부는 이후 에치젠을 후쿠이 번, 오바마 번, 오노 번, 마루오카 번, 스루가 번, 사바에 번 등 작은 번으로 쪼개 정치적 역량을 축소시키려고 했다. 그 중 그나마 가장 세력이 컸던 번이 기타노쇼가 있던 후쿠이 번으로, 현재 현의 이름은 이것을 딴 것이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중세 일본의 물류 거점으로, 특히 기타마에부네(北前船)란 이름의 해운 조직이 활동했다고. 홋카이도와 규슈를 잇는 해운 물류 회사로서 동해뿐만 아니라 내륙 호수인 비와호의 수운까지 담당하는 조직이었다고 한다.
메이지 유신 즈음 후쿠이 번주 마츠다이라 슌가쿠 대에 이르러 후쿠이 번은 그 세력을 떨쳤다. 근대 산업을 일으키고 서양식 포대를 해안에 설치하는 등 번정 개혁에 성공했다. 슌가쿠는 당시 일본 4대 명 정치가[6]로서 이름을 올릴 정도였다고. 1863년에는 후쿠이번의 사무라이 군대를 이끌고 상경할 계획까지도 있었으나 무산되었다. 슌가쿠는 보신전쟁 당시에는 도쿠가와 요시노부 세력과 신정부군 사이의 중재역을 자청했으며, 메이지 신정부에서도 직책을 맡았으나 곧 삿쵸 번벌에 대한 항의로 사임했다.
1871년 폐번치현 당시 7개 현으로 쪼개졌던 것이 곧 쓰루가현으로 통합됐고 1876년 동부는 이시카와현으로 서부는 시가현으로 분할편입됐다가 1881년 다시 후쿠이현으로 독립했다.
산업[편집]
현의 주산업은 농업과 공업이다. 농지의 90%가 논이어서 쌀농사가 성하나 그루갈이는 거의 하지 않는다. 산리하마사구의 염교, 가에쓰 산지의 수박, 와카사의 양배추, 에치젠 해안의 수선(水仙) 등은 특산물로 되어 있다.
수산업이 비교적 성하여 고등어·명태·방어·전갱이·가자미 등의 어획이 많다. 겨울철의 에치젠게, 여름철의 성게는 특산물로 유명하고, 와카사만에서는 진주조개·복어 양식업이 행해진다. 메이지 초부터 섬유공업이 일어나서 오늘날 견직물·인견·합성섬유 직물 등을 다양하게 산출, 직물왕국으로 일컬어진다.
그밖에 쓰루가에 나일론사(絲)·황산·시멘트·합판, 오하마에서 기계, 다케후에서 화학비료·비닐, 사바에에서 안경테, 가나즈에서 기계·펄프 등 공업이 성하고, 재래공업으로는 다케후의 칼붙이, 이마다테의 일본종이, 사바에의 에치젠 칠기, 오하마의 와카사 칠기 등이 유명하다.
쓰루가시의 와카사 만을 따라 몇 개의 원자력 발전소가 위치해 게이한신 도시권에 전기를 공급한다. 사바에시는 일본에서 만들어지는 안경의 90%를 생산한다.
관광[편집]
해안 일대는 거의 전역이 국립·국정 공원으로 지정된 관광지이고, 아와라 온천, 에이헤이지정의 에이헤이사 등도 주요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후쿠이시[편집]
후쿠이시(일본어: 福井市)는 후쿠이현 북부에 위치하는 시이자 현청 소재지이며 중핵시로 지정되어있다. 2000년 11월 1일까지 특례시였다. 서쪽에서 동해, 뉴 산지, 후쿠이 평야, 료하쿠 산지가 늘어서 있다. 해안부는 다카노스 항 부근을 경계로 북쪽이 산리하마 모래 사장, 남쪽은 암석 해변이 계속되고 그 해안으로부터 약 100m 끝에 그 형태에서 이름이 붙은 가메지마 섬이 떠있다. 총 면적의 약 반을 산림이 차지하고 시 서쪽의 뉴 산지에는 구니미다케(656m), 그 중턱에 고다이시 폭포가 있다. 해안부를 제외한 전역이 쿠즈류 강 수계 유역에 있어 본류를 포함한 세 하천이 합류하는 지점 동쪽의 남북으로 평야가 펼쳐져 있지만 그 중 예외로서 시 중심부의 바로 남쪽으로 아스와 산(117m), 오사고에 산(89m), 하치만 산(139m)의 아스와 3산이 늘어서 있다. 남동부에는 이치조다니 등, 아스와 강 및 그 지류를 따라 있는 골짜기의 소분지가 점재하고 동단 부근에는 시 최고 지점인 이후리 산(884m)이 우뚝 솟아있다.[4]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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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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