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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는 말소리를 전파나 전류로 바꾸었다가 다시 말소리로 환원시켜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사람이 서로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든 기계이다.
 
'''전화기'''는 말소리를 전파나 전류로 바꾸었다가 다시 말소리로 환원시켜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사람이 서로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든 기계이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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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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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는 [[음성]]을 [[전기신호]]로 바꾸어 먼 곳에 [[전송]]하고, 이 [[신호]]를 다시 음성으로 [[재생]]하여 상호간의 [[통화 (전화)|통화]]를 가능하게 하는 장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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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은 음성과 전기신호를 변환하는 전화기, 전화기에서 오는 전기신호를 전송하는 전화회선, 특정한 상대뿐만 아니라 많은 상대와 통화하기 위해 전화회선을 교환·접속하는 [[전화교환기]]로 되어 있다. 음성을 전기신호로 바꾸는 [[송화기]]에는 값싸고 감도가 좋은 탄소송화기가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음성의 음압변화(音壓變化)에 따라 진동하는 진동판과 그 뒷면에 있는 탄소입자로 되어 있다. 진동에 의해 탄소입자에 걸리는 압력이 변하면 탄소입자의 [[전기저항]]이 변화하고, 이 변화가 [[전류]]의 변화를 일으킨다. [[수화기]]는 [[영구자석]]과 조합된 [[전자석]]과 이것에 의해 구동되는 [[진동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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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전화기는 송화기와 수화기가 분리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일체구조로 송수화기(送受話器)라고 한다. 이 밖에 소음이 많은 역 근처나 길거리 등에서는 소음방지용 전화기가 사용된다. 이것은 송화기에 차동형(差動形) 다이내믹 마이크로폰을 사용하고, 트랜지스터 증폭기와 조합하여 소음의 영향을 적게 한 것이다. 전화가 걸려온 것을 알리는 데는 벨(bell)을 사용하는데, 전화교환기로부터 [[주파수]] 16Hz의 신호전류에 의해 작동한다. 1회선을 여러 개의 전화기로 사용하는 다수공동가입에는 특정한 주파수만 울리도록 한 것도 있다. 또, 소형 스피커를 벨 대신 사용한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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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전화교환의 경우, [[교환기]]에 상대방의 번호를 알리기 위한 것에 회전식 다이얼이 있다. 다이얼의 숫자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걸림쇠가 있는 곳까지 돌렸다가 놓으면, 다이얼이 되돌아오는 사이에 숫자의 수만큼 전기회로의 접점이 열린다. 이로 인해서 교환기와 전화기 사이의 [[전기회로]]의 전류가 단속(斷續)되어 숫자를 교환기에 전달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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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름단추식 [[다이얼]](푸시폰)은 내부에 트랜지스터식 저주파발진기가 들어 있어, 단추를 하나 누르면 2개의 저주파발진기가 작동하여 회전식에서의 전류단속신호 대신 이 저주파신호를 교환기에 보낸다. 이 누름단추식은 상대방에 접속한 후에도 마음대로 숫자를 상대방에게 전송할 수 있으므로 컴퓨터와 연결하여 계산 서비스 등 여러 가지로 사용할 수가 있다. 이 밖에 자석식 전화기에는 손으로 돌리는 자석식 발전기가 부속되어 있어 상대방의 벨을 울릴 때 사용한다. 또한 [[번개]]나 [[전력선]]에 의한 과대전류를 제한하기 위해서 전화회선의 인입구에는 [[안전기]]가 설치되어 있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39953&cid=40942&categoryId=32378 전화기]〉, 《두산백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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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화기의 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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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탁상용 자석식 전화기.png|썸네일|300픽셀|오른쪽|탁상용 자석식 전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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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다이알식 공중전화기.png|썸네일|300픽셀|오른쪽|다이알식 공중전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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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화상전화기.png|썸네일|300픽셀|오른쪽|화상전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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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telephone)는 먼 거리란 텔레(tele)와 목소리를 뜻하는 폰(phone)의 조합어로 1870년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과 몇몇 사람들이 고안하기 시작했고, 1876년 벨이 미국에서 특허를 취득했다. 가까운 거리의 두 사람이 주고받던 시스템으로 시작하여 점차 먼 거리, 여러 사람으로 범위가 넓어졌고, 수동 연결에서 자동 연결 방식으로 발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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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 1847~1922)이 특허를 취득하기 전부터 전화기(telephone)라는 용어는 존재했고, 각기 다른 나라에서 각각의 방법으로 전화기 개발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었다. 1844년경부터 처음으로 '전화기' 아이디어를 제안한 이탈리아의 이노센조 만제티(Inocenzo Manzetti)를 비롯하여 "목소리의 전기적 전송"이란 글을 잡지에 기고한 프랑스의 샤를 부르셀(Charles Boursel), 부르셀의 아이디어를 실현시켜 몇 번에 걸쳐 전화기 작동을 시현했던 독일의 요한 P. 라이스(Johann Philip Reis), 이탈리아 출신 안토니오 무치(Antonio Meucci), 미국의 엘리샤 그레이(Elisha Gray)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 중 무치와 그레이는 상당 부분 진전이 있어 벨보다 먼저 혹은 더 좋은 기술력을 가진 전화기를 선보이지만, 특허권은 벨이 가장 먼저 접수했고, 후에 특허권 분쟁에서도 법원은 벨의 손을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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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종사하는 발음교정과 웅변술을 공부하고 캐나다로 이민 갔다가 1871년 미국 보스턴으로 이주했다. 그는 기술적으로 다른 경쟁자들보다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귀의 특성, 소리의 성질이나 음악 등의 이해가 전화기 발명에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보스턴의 영향력 있는 변호사 가디너 허버드(Gardiner G. Hubbard)의 사위가 되어 그의 소개로 경제적인 후원을 받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발명을 통해 그가 설립한 농아학교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동기도 뚜렷했다. 벨은 전화기를 발명하던 경쟁자나 투자자를 포함한 대다수 사람들이 상업성에 대해 불투명하게 여겼던 것과 달리, 전화기의 미래 가치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이를 이루고자 하는 사업 수완도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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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경 시작된 벨의 전화기에 대한 아이디어는 전신(telegraph)에서 파생되었다. 그 당시 30여 년간 표준으로 자리 잡은 모스 부호는 짧거나 긴 신호음의 조합을 전선을 통해 전송하는 방식이었다. 이때 한 번에 한 메시지만 전달하는 한계점이 있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벨은 각기 다른 음정을 가진 메시지들을 하나의 선으로 전송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의 경쟁자 엘리샤 그레이를 비롯한 몇몇 발명가들이 이미 유사한 연구를 시작했으며, 이 다중전신 전송 방식을 실행한 적이 있었으나 벨의 음악적이고 배음구조(harmonics)에 근거한 방식은 더 좋은 결과를 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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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벨은 보스턴대학교에서 발성·음성생리학 교수로 재직 중이었으며, 농아교육에도 관심이 있었다. 그는 개인 강습을 하던 학생으로 나중에 자신의 아내가 되는 메이블 허버드(Mabel Hubbard)를 만났고, 그의 아버지 가드너 허버드는 다중전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웨스트유니언 전신회사(West Union Telegraph Company)로부터 연구 기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기술 분야를 담당하는 파트너 토머스 왓슨(Thomas Watson)의 도움으로 다중전신을 개발하던 벨은 진동판의 움직임을 전류를 통해 전송하고 그것을 다시 소리로 재생해 내는 방법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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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화기의 미래에 어느 정도 확신이 선 벨은 1876년 2월 14일 특허권을 신청했고, 바로 한 시간 후 엘리샤 그레이는 변호사를 통해 특허절차보류(patent caveat) 신청을 접수했다. 18세기 들어 여러 가지 발명품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그 발명품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게 되었는데, 특허권은 어느 정도 완성품에 대한 설계도 또는 완제품 검증인 반면에 특허절차보류 제도는 아직 완성도는 떨어지는 단계지만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1년 안에 특허권을 신청하면 되는 사전 예약에 해당하는 제도였다. 특허보류가 신청된 후 다른 사람이 동일 항목에 특허권을 신청하면 그 시점으로부터 3개월 안에 특허보류권을 신청한 사람에게 먼저 특허권을 신청할 수 있는 우선권이 주어지지만, 그것이 성공하지 못하면 새로 특허권을 신청하려는 사람이 특허권을 신청할 수 있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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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도는 특허권보다 비용이 저렴하고, 서류도 훨씬 간편했으며, 신청 후 1년간 유효하나 1년이 지나 다시 소정의 수수료를 지불하면 1년 연장도 가능했다. 엘리샤 그레이의 특허보류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벨은 3주 후 3월 14일 "전신의 개선 : 자석식 전화기"로 특허를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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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샤 그레이(1835-1901)는 미국 오하이오주 출신으로 오벌린대학교(Oberlin College)에서 전기를 전공하고 전신 분야를 필두로 70여 개의 특허를 획득했다. 벨과 같이 특허권을 신청한 1876년을 기준으로 볼 때, 벨은 20대 후반의 초년병이었던 데에 비해 그레이는 40대 초반으로 이미 많은 특허권을 확보한 중견 발명가였다. 전화기에 대한 발명도 벨과 유사하게 다중전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시작했고, 벨이 특허권 신청 시 진동판을 가죽으로 개발한 반면 그는 그 이전부터 금속판을 사용해 기술적으로도 앞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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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벨이 미래의 상품 가치를 확신한 데 반해 그는 상품성에 회의적이었고, 그 당시 표준이던 전신의 발전에 더 많은 노력을 투자하여, 적어도 전화기 특허권에서만큼은 벨에게 추월당하고 말았다. 그레이는 현 루센트테크놀로지(Lucent Technology)의 전신인 웨스턴일렉트릭을 설립했고, 1880년 오벌린대학교의 동전기학 교수가 되어서도 전신 방면에서 활발하게 발명품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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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를 벨보다 먼저 만든 것으로 알려진 또 다른 인물로는 안토니오 무치(1808~1889)가 있다. 이탈리아 출신인 그는 1835년 쿠바로 이주했다가 1850년 다시 뉴욕으로 이주했으며, 금속도금 공장을 경영하면서 전기를 이용하여 병든 사람을 치료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1860년경 텔레트로포노(teletrofono)라 명명한 전화를 발명하여 몸이 불편했던 옆방의 아내와 통화하기도 했다. 그리고 여러 곳에서 시연도 했으나, 이를 상품화하기 어려워 더 이상 발전시키지 못했다. 1871년 12월 전화기에 대한 특허보류신청을 제출했고, 그 후 두 번 더 연장신청을 했지만 1874년 더 이상 연기신청을 하지 않아 보류신청은 소멸되었다. 그로부터 약 1년 후 벨이 특허를 신청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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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이민자였던 무치는 영어에 익숙하지 않았고, 경제 형편도 좋지 않았는데, 특허신청을 위탁한 웨스트유니언 전신회사가 설계도와 설명서를 모두 분실하고 말았다. 전화기 시연과 연구 과정에 벨이 함께 있었고, 그의 아이디어를 벨이 도용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 직전 무치가 사망하여 재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2002년 6월, 이탈리아 출신 미국 하원의원인 비토 포셀라에 의해 미국 의회는 최초의 전화기 발명자로 무치를 인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벨은 전화기 특허권을 최초로 획득한 사람으로, 또한 전화기를 대중에게 성공적으로 보급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ref name="음향 기기 역사">〈[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625138&cid=42219&categoryId=42232 전화기]〉, 《음향 기기 역사》</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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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화기의 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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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는 소리를 전기 신호로 바꿔 멀리 있는 곳으로 전송하여 다시 소리로 재생하는 기기다. 이를 위해 여러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사용되었는데, 먼저 전류에 소리를 전달하는 방법은 1837년 미국의 발명가 찰스 그래프턴 페이지(Charles Grafton Page)에 의해 고안되었고, 부르쉘은 전류를 다시 소리로 재생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했다. 초창기 벨과 다른 경쟁자들이 발명한 전화기는 전자석식(electromagnetic)이었다. 전자석에 전류를 보내면 자석의 성질을 갖는 원리를 이용해 목소리가 송화기에 진동판을 움직이면 자기장 안에 유도 전류를 배출하고, 이것이 전선을 타고 상대방에게 전달된 후 다시 수화기의 진동판을 움직여 소리를 생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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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많은 사람이 전화기의 상품성에 회의적이었던 이유는 또렷하지 않은 음질 때문이었다. 여러 종류의 진동판을 시험하던 벨의 전화기도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수화기 소리를 만들기까지는 특허신청 후 며칠이 지나야 했다. 1877년 에디슨은 탄소 전송기로 특허를 신청했고, 이를 전화기에 차용한 후 전화기의 음질은 급격히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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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1로 근거리에만 사용하던 전화기가 점차 원거리로 범위가 넓어지며 동시에 여러 사람에게 통화를 시작하면서, 1878년 헝가리의 발명가 티라다 푸스카스(Tiradar Puskas)는 교환대를 발명하여, 교환수가 수동으로 원하는 곳으로 연결해줄 수 있게 되었다. 1899년 앨먼 스트라우저(Almon Strowger)는 교환수가 필요 없이 직접 연결하는 자동다이얼 시스템을 발명했다. 1960년대 들어 AT&T(America Telephone and Telegraph)는 전화번호를 누를 때 기존 방식인 펄스 다이얼(pulse dial)에서 더 발전된 지금과 같은 톤 다이얼(tone dial)을 선보였다. 기계식인 펄스 다이얼은 옛날 다이얼식 방식으로 누르는 번호 버튼마다 기계적 접점의 단락 횟수로 번호를 인식했다. 반면 전자식인 톤 다이얼은 버튼마다 고유의 주파수가 있어서 그 주파수로 번호를 인식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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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권 분쟁으로 얼룩진 채 시작했던 전화기는 이제 우리 생활에서 뗄 수 없는 존재로 자리 잡았으며, 계속해서 무선전화기, 화상전화기, 휴대폰, 인터넷전화 등으로 진화했다.<ref name="음향 기기 역사"></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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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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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yYwFbILw9m4</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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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nk2Dgf9VKP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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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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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ko.dict.naver.com/#/entry/koko/290bcc34f8e646e28c0bd47135e7eabf 전화기]〉, 《네이버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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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39953&cid=40942&categoryId=32378 전화기]〉,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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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625138&cid=42219&categoryId=42232 전화기]〉, 《음향 기기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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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6701&cid=46631&categoryId=46631 전화기]〉,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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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보기 ==
 
* [[전화]]
 
*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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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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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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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화 (전화)|통화]]
 
* [[휴대폰]]
 
* [[휴대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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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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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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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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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동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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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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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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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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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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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구자석]]
 
* [[스마트폰]]
 
*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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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화교환기]]
  
{{통신|토막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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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제품|검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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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통신}}

2024년 9월 26일 (목) 17:36 판

전화기

전화기는 말소리를 전파나 전류로 바꾸었다가 다시 말소리로 환원시켜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사람이 서로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든 기계이다.

개요

무선전화기

전화기는 음성전기신호로 바꾸어 먼 곳에 전송하고, 이 신호를 다시 음성으로 재생하여 상호간의 통화를 가능하게 하는 장치를 말한다.

구성은 음성과 전기신호를 변환하는 전화기, 전화기에서 오는 전기신호를 전송하는 전화회선, 특정한 상대뿐만 아니라 많은 상대와 통화하기 위해 전화회선을 교환·접속하는 전화교환기로 되어 있다. 음성을 전기신호로 바꾸는 송화기에는 값싸고 감도가 좋은 탄소송화기가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음성의 음압변화(音壓變化)에 따라 진동하는 진동판과 그 뒷면에 있는 탄소입자로 되어 있다. 진동에 의해 탄소입자에 걸리는 압력이 변하면 탄소입자의 전기저항이 변화하고, 이 변화가 전류의 변화를 일으킨다. 수화기영구자석과 조합된 전자석과 이것에 의해 구동되는 진동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옛날 전화기는 송화기와 수화기가 분리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일체구조로 송수화기(送受話器)라고 한다. 이 밖에 소음이 많은 역 근처나 길거리 등에서는 소음방지용 전화기가 사용된다. 이것은 송화기에 차동형(差動形) 다이내믹 마이크로폰을 사용하고, 트랜지스터 증폭기와 조합하여 소음의 영향을 적게 한 것이다. 전화가 걸려온 것을 알리는 데는 벨(bell)을 사용하는데, 전화교환기로부터 주파수 16Hz의 신호전류에 의해 작동한다. 1회선을 여러 개의 전화기로 사용하는 다수공동가입에는 특정한 주파수만 울리도록 한 것도 있다. 또, 소형 스피커를 벨 대신 사용한 것도 있다.

자동전화교환의 경우, 교환기에 상대방의 번호를 알리기 위한 것에 회전식 다이얼이 있다. 다이얼의 숫자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걸림쇠가 있는 곳까지 돌렸다가 놓으면, 다이얼이 되돌아오는 사이에 숫자의 수만큼 전기회로의 접점이 열린다. 이로 인해서 교환기와 전화기 사이의 전기회로의 전류가 단속(斷續)되어 숫자를 교환기에 전달할 수가 있다.

누름단추식 다이얼(푸시폰)은 내부에 트랜지스터식 저주파발진기가 들어 있어, 단추를 하나 누르면 2개의 저주파발진기가 작동하여 회전식에서의 전류단속신호 대신 이 저주파신호를 교환기에 보낸다. 이 누름단추식은 상대방에 접속한 후에도 마음대로 숫자를 상대방에게 전송할 수 있으므로 컴퓨터와 연결하여 계산 서비스 등 여러 가지로 사용할 수가 있다. 이 밖에 자석식 전화기에는 손으로 돌리는 자석식 발전기가 부속되어 있어 상대방의 벨을 울릴 때 사용한다. 또한 번개전력선에 의한 과대전류를 제한하기 위해서 전화회선의 인입구에는 안전기가 설치되어 있다.[1]

전화기의 발명

벨의 전화기
벽걸이 자석식 전화기
탁상용 자석식 전화기
다이알식 공중전화기
화상전화기

전화기(telephone)는 먼 거리란 텔레(tele)와 목소리를 뜻하는 폰(phone)의 조합어로 1870년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과 몇몇 사람들이 고안하기 시작했고, 1876년 벨이 미국에서 특허를 취득했다. 가까운 거리의 두 사람이 주고받던 시스템으로 시작하여 점차 먼 거리, 여러 사람으로 범위가 넓어졌고, 수동 연결에서 자동 연결 방식으로 발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 1847~1922)이 특허를 취득하기 전부터 전화기(telephone)라는 용어는 존재했고, 각기 다른 나라에서 각각의 방법으로 전화기 개발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었다. 1844년경부터 처음으로 '전화기' 아이디어를 제안한 이탈리아의 이노센조 만제티(Inocenzo Manzetti)를 비롯하여 "목소리의 전기적 전송"이란 글을 잡지에 기고한 프랑스의 샤를 부르셀(Charles Boursel), 부르셀의 아이디어를 실현시켜 몇 번에 걸쳐 전화기 작동을 시현했던 독일의 요한 P. 라이스(Johann Philip Reis), 이탈리아 출신 안토니오 무치(Antonio Meucci), 미국의 엘리샤 그레이(Elisha Gray)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 중 무치와 그레이는 상당 부분 진전이 있어 벨보다 먼저 혹은 더 좋은 기술력을 가진 전화기를 선보이지만, 특허권은 벨이 가장 먼저 접수했고, 후에 특허권 분쟁에서도 법원은 벨의 손을 들어주었다.

벨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종사하는 발음교정과 웅변술을 공부하고 캐나다로 이민 갔다가 1871년 미국 보스턴으로 이주했다. 그는 기술적으로 다른 경쟁자들보다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귀의 특성, 소리의 성질이나 음악 등의 이해가 전화기 발명에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보스턴의 영향력 있는 변호사 가디너 허버드(Gardiner G. Hubbard)의 사위가 되어 그의 소개로 경제적인 후원을 받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발명을 통해 그가 설립한 농아학교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동기도 뚜렷했다. 벨은 전화기를 발명하던 경쟁자나 투자자를 포함한 대다수 사람들이 상업성에 대해 불투명하게 여겼던 것과 달리, 전화기의 미래 가치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이를 이루고자 하는 사업 수완도 뛰어났다.

1870년경 시작된 벨의 전화기에 대한 아이디어는 전신(telegraph)에서 파생되었다. 그 당시 30여 년간 표준으로 자리 잡은 모스 부호는 짧거나 긴 신호음의 조합을 전선을 통해 전송하는 방식이었다. 이때 한 번에 한 메시지만 전달하는 한계점이 있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벨은 각기 다른 음정을 가진 메시지들을 하나의 선으로 전송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의 경쟁자 엘리샤 그레이를 비롯한 몇몇 발명가들이 이미 유사한 연구를 시작했으며, 이 다중전신 전송 방식을 실행한 적이 있었으나 벨의 음악적이고 배음구조(harmonics)에 근거한 방식은 더 좋은 결과를 도출했다.

그 당시 벨은 보스턴대학교에서 발성·음성생리학 교수로 재직 중이었으며, 농아교육에도 관심이 있었다. 그는 개인 강습을 하던 학생으로 나중에 자신의 아내가 되는 메이블 허버드(Mabel Hubbard)를 만났고, 그의 아버지 가드너 허버드는 다중전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웨스트유니언 전신회사(West Union Telegraph Company)로부터 연구 기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기술 분야를 담당하는 파트너 토머스 왓슨(Thomas Watson)의 도움으로 다중전신을 개발하던 벨은 진동판의 움직임을 전류를 통해 전송하고 그것을 다시 소리로 재생해 내는 방법을 발견했다.

이 전화기의 미래에 어느 정도 확신이 선 벨은 1876년 2월 14일 특허권을 신청했고, 바로 한 시간 후 엘리샤 그레이는 변호사를 통해 특허절차보류(patent caveat) 신청을 접수했다. 18세기 들어 여러 가지 발명품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그 발명품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게 되었는데, 특허권은 어느 정도 완성품에 대한 설계도 또는 완제품 검증인 반면에 특허절차보류 제도는 아직 완성도는 떨어지는 단계지만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1년 안에 특허권을 신청하면 되는 사전 예약에 해당하는 제도였다. 특허보류가 신청된 후 다른 사람이 동일 항목에 특허권을 신청하면 그 시점으로부터 3개월 안에 특허보류권을 신청한 사람에게 먼저 특허권을 신청할 수 있는 우선권이 주어지지만, 그것이 성공하지 못하면 새로 특허권을 신청하려는 사람이 특허권을 신청할 수 있는 제도다.

이 제도는 특허권보다 비용이 저렴하고, 서류도 훨씬 간편했으며, 신청 후 1년간 유효하나 1년이 지나 다시 소정의 수수료를 지불하면 1년 연장도 가능했다. 엘리샤 그레이의 특허보류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벨은 3주 후 3월 14일 "전신의 개선 : 자석식 전화기"로 특허를 인정받았다.

엘리샤 그레이(1835-1901)는 미국 오하이오주 출신으로 오벌린대학교(Oberlin College)에서 전기를 전공하고 전신 분야를 필두로 70여 개의 특허를 획득했다. 벨과 같이 특허권을 신청한 1876년을 기준으로 볼 때, 벨은 20대 후반의 초년병이었던 데에 비해 그레이는 40대 초반으로 이미 많은 특허권을 확보한 중견 발명가였다. 전화기에 대한 발명도 벨과 유사하게 다중전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시작했고, 벨이 특허권 신청 시 진동판을 가죽으로 개발한 반면 그는 그 이전부터 금속판을 사용해 기술적으로도 앞서 있었다.

하지만 벨이 미래의 상품 가치를 확신한 데 반해 그는 상품성에 회의적이었고, 그 당시 표준이던 전신의 발전에 더 많은 노력을 투자하여, 적어도 전화기 특허권에서만큼은 벨에게 추월당하고 말았다. 그레이는 현 루센트테크놀로지(Lucent Technology)의 전신인 웨스턴일렉트릭을 설립했고, 1880년 오벌린대학교의 동전기학 교수가 되어서도 전신 방면에서 활발하게 발명품을 만들었다.

전화기를 벨보다 먼저 만든 것으로 알려진 또 다른 인물로는 안토니오 무치(1808~1889)가 있다. 이탈리아 출신인 그는 1835년 쿠바로 이주했다가 1850년 다시 뉴욕으로 이주했으며, 금속도금 공장을 경영하면서 전기를 이용하여 병든 사람을 치료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1860년경 텔레트로포노(teletrofono)라 명명한 전화를 발명하여 몸이 불편했던 옆방의 아내와 통화하기도 했다. 그리고 여러 곳에서 시연도 했으나, 이를 상품화하기 어려워 더 이상 발전시키지 못했다. 1871년 12월 전화기에 대한 특허보류신청을 제출했고, 그 후 두 번 더 연장신청을 했지만 1874년 더 이상 연기신청을 하지 않아 보류신청은 소멸되었다. 그로부터 약 1년 후 벨이 특허를 신청하게 됐다.

이탈리아 이민자였던 무치는 영어에 익숙하지 않았고, 경제 형편도 좋지 않았는데, 특허신청을 위탁한 웨스트유니언 전신회사가 설계도와 설명서를 모두 분실하고 말았다. 전화기 시연과 연구 과정에 벨이 함께 있었고, 그의 아이디어를 벨이 도용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 직전 무치가 사망하여 재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2002년 6월, 이탈리아 출신 미국 하원의원인 비토 포셀라에 의해 미국 의회는 최초의 전화기 발명자로 무치를 인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벨은 전화기 특허권을 최초로 획득한 사람으로, 또한 전화기를 대중에게 성공적으로 보급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2]

전화기의 발전

전화기는 소리를 전기 신호로 바꿔 멀리 있는 곳으로 전송하여 다시 소리로 재생하는 기기다. 이를 위해 여러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사용되었는데, 먼저 전류에 소리를 전달하는 방법은 1837년 미국의 발명가 찰스 그래프턴 페이지(Charles Grafton Page)에 의해 고안되었고, 부르쉘은 전류를 다시 소리로 재생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했다. 초창기 벨과 다른 경쟁자들이 발명한 전화기는 전자석식(electromagnetic)이었다. 전자석에 전류를 보내면 자석의 성질을 갖는 원리를 이용해 목소리가 송화기에 진동판을 움직이면 자기장 안에 유도 전류를 배출하고, 이것이 전선을 타고 상대방에게 전달된 후 다시 수화기의 진동판을 움직여 소리를 생성하는 것이다.

당시 많은 사람이 전화기의 상품성에 회의적이었던 이유는 또렷하지 않은 음질 때문이었다. 여러 종류의 진동판을 시험하던 벨의 전화기도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수화기 소리를 만들기까지는 특허신청 후 며칠이 지나야 했다. 1877년 에디슨은 탄소 전송기로 특허를 신청했고, 이를 전화기에 차용한 후 전화기의 음질은 급격히 좋아졌다.

1대1로 근거리에만 사용하던 전화기가 점차 원거리로 범위가 넓어지며 동시에 여러 사람에게 통화를 시작하면서, 1878년 헝가리의 발명가 티라다 푸스카스(Tiradar Puskas)는 교환대를 발명하여, 교환수가 수동으로 원하는 곳으로 연결해줄 수 있게 되었다. 1899년 앨먼 스트라우저(Almon Strowger)는 교환수가 필요 없이 직접 연결하는 자동다이얼 시스템을 발명했다. 1960년대 들어 AT&T(America Telephone and Telegraph)는 전화번호를 누를 때 기존 방식인 펄스 다이얼(pulse dial)에서 더 발전된 지금과 같은 톤 다이얼(tone dial)을 선보였다. 기계식인 펄스 다이얼은 옛날 다이얼식 방식으로 누르는 번호 버튼마다 기계적 접점의 단락 횟수로 번호를 인식했다. 반면 전자식인 톤 다이얼은 버튼마다 고유의 주파수가 있어서 그 주파수로 번호를 인식하는 방식이다.

특허권 분쟁으로 얼룩진 채 시작했던 전화기는 이제 우리 생활에서 뗄 수 없는 존재로 자리 잡았으며, 계속해서 무선전화기, 화상전화기, 휴대폰, 인터넷전화 등으로 진화했다.[2]

동영상

각주

  1. 전화기〉, 《두산백과》
  2. 2.0 2.1 전화기〉, 《음향 기기 역사》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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