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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실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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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실명제(金融實名制, Real-Name Financial System)는 국민이 자기 이름으로만 금융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해 음성적인 금융거래를 차단함으로써 과세 기반을 확충하고, 경제정의를 실현하며,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할 목적으로 도입한 제도이다.[1]

개요

1993년 8월 12일에 김영삼 대한민국 대통령이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동하여 같은 내용을 법률로 확정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이 1997년 12월 31일 공포될 때까지 약 3년 5개월간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 체제로 금융실명제를 실시했다.

발표 다음 날인 1993년 8월 13일부터 30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대한민국에서는 이 제도로 인해 주민등록증, 여권, 운전면허증 등의 신분증이 없으면 계좌를 개설할 수가 없고 계좌이체도 할 수 없다. 워낙 전격적으로 행해 철저히 수행할 수 있었으며, 세금이 발생하는 거래도 전부 실명이 있어야 가능하므로 생각도 못 했던 세금 환수율 상승 효과까지 거두었다.

특히 이는 민주화 쟁취 이후 유일무이한 긴급명령이라는 중요한 역사적 의미도 있다. 이전의 긴급명령은 6.25 전쟁 당시 내지 직후 상황(14호까지)이거나 군사정권 시대의 것(15호)이었지만 이 16호만큼은 민주화 시대 최초의 긴급명령으로 의미가 크다.[2]

김영삼 대통령의 긴급명령 담화문 전문

저는 이 순간 엄숙한 마음으로 헌법 제76조 1항의 규정에 의거하여,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표합니다. 아울러, 헌법 제47조 3항의 규정에 따라,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을 심의·승인하기 위한 임시국회 소집을 요청하고자 합니다. 금융실명제에 대한 우리 국민의 합의와 개혁에 대한 강렬한 열망에 비추어 국회의원 여러분이 압도적인 지지로 승인해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드디어 우리는 금융실명제를 실시합니다. 이 시간 이후 모든 금융거래는 실명으로만 이루어집니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되지 않고는 이 땅에 부정부패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가 없습니다. 정치와 경제의 검은 유착을 근원적으로 단절할 수가 없습니다. 금융 실명거래의 정착이 없이는 이 땅에 진정한 분배 정의를 구현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사회의 도덕성을 합리화 할 수가 없습니다. 금융실명제 없이는 건강한 민주주의도, 활력이 넘치는 자본주의도 꽃 피울 수가 없습니다. 정치와 경제의 선진화를 이룩할 수가 없습니다. 금융실명제는 신한국의 건설을 위해서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제도 개혁입니다. 금융실명제는 개혁 중의 개혁이요, 우리 시대 개혁의 중추이자 핵심입니다.

국민 여러분! 제 이름 석자로 예금하는 이 제도가 실시되기까지 우리는 참으로 긴 세월 동안 방황하였습니다. 역대 정권에서는 금융실명제를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법을 제정하고서도 이를 실시하지 못했습니다. 여소야대 시절에도 금융실명제를 이루어내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금융실명제의 실시는 그만큼 어려워졌습니다.

저는 이미 오래전부터 금융실명제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왔습니다. 작년 대통령 선거 때는 가장 우선적인 공약으로 국민 앞에 약속한 바 있습니다. 대통령 취임 후 새 정부에서는 기필코 조속히 실시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관계 장관으로 하여금 조심스럽게 준비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시기와 방법을 놓고 검토를 거듭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저는 금융실명제에 관한 법률은 그 내용에 있어서 금융실명제의 참다운 의미와 그 실효성을 반감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렇다고 국회에서 공개적인 논의를 통해 법률을 개정하자면 예상되는 부작용이 너무나 큽니다. 과거 금융실명제의 실시 문제가 논의될 때마다 금융 시장이 동요하고 경제 안정이 위협받는 것을 우리는 보아왔습니다.

고심한 끝에 저는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으로 국회에서의 법 개정 절차를 대신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긴급재정경제명령은 명실상부한 금융실명제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 이렇게 대통령 긴급재정명령으로 실시할 수밖에 없었던 저의 충정은 국민과 국회의원 여러분께서 깊이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국민 여러분, 금융실명제는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국민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습니다. 자신의 명의로 정상적인 금융 거래를 해온 절대 다수의 국민에게도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실명에 의하지 않는 금융거래는 소정의 기한 내에 실명으로 명의를 전환하면 됩니다. 금년 소득에 대한 종합소득세국세청의 전산망이 완성되는대로 실시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는 주식시장 여건을 감안하여 저의 재임 기간 중에는 실시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철저한 비밀보장을 위한 절차 요건을 강화할 것입니다. 금융실명제로 인한 사생활의 침해나 자유로운 경제활동에 위축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실명으로 전환되는 금융자산에 대해서는 자금출처 조사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그 목적은 비리 수사한 아닌 조세 징수에 한정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급 재정경제명령의 실시에는 금융거래 동요 등 다수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신경제 5개년 계획의 실천과 경제 활력을 위해서 정부는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한 만반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투기와 해외로의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한 대응 체제를 가동시킬 것입니다. 중소기업의 자금 사정 악화에는 특별 긴급 지원으로 대처할 것입니다. 금융시장 안정화를 위해 한국은행에 비상대책반을 운영할 것이며 그리고 각종 분야별 대책반을 총괄하는 기구로 중앙대책위원회를 설치·운영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금융실명제 실시를 위한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은 깨끗한 사회로 가기 위해 필수적인 제도 개혁입니다. 지하경제가 사라질 것입니다. 검은 돈이 없어질 것입니다. 금융실명제가 정착된다면 정치인, 기업인, 공무원 등 모든 국민이 자신들의 부에 대하여 떳떳하고 정당해질 것입니다. 이제 깨끗한 부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 모두가 땀 흘려 일하면 일한만큼 보상 받는 사회를 실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금융실명제는 신한국으로 가는데 반드시 넘어야 할 고비길입니다. 제도 개혁에는 아픔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인내와 애국적인 열정으로 아픔을 극복해야 합니다. 지금부터 저는 국민 여러분과 더불어 그리고 국회의원 여러분과 함께 금융실명제라는 우리 시대의 과제를 슬기롭게 추진해 나가고자 합니다. 국민과 국회의원 여러분께서는 역사적인 제도개혁으로 나라를 구한다는 각오로 적극 협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개혁의 주체가 됩시다. 그럴 때 우리의 개혁은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대통령인 저는 헌법 제47조 3항에 의거하여 국회 임시회의 집회를 1993년 8월 16일부터 20일까지 5일간 열 것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국민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2]

실시 원인

1960년대부터 대한민국에서는 예금주의 익명, 차명 계좌로도 금융 거래를 할 수 있었다. 아무튼 예금을 늘리고 보려는 정책이었지만 이러다 보니 검은 돈이 적지 않게 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금융실명제 실시 이전부터 익명, 차명, 가명 등으로 거래를 해 왔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굳이 실명을 안 써도 된다는 말을 해 준 사람들도 당연히 없었으니 이런 사실을 몰랐던 일반인들은 성명 란에 아무 의문 없이 실명을 썼다.

누군가가 만약 토지, 주택, 건축물, 항공기, 선박 등을 합쳐서 10억 원 가량의 재산이 있다면 이 재산에 대해 재산세를 반드시 내야만 한다. 그런데 모든 것이 실명으로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으면 그 돈을 주식을 사든, 부동산에 투자하든, 금융기관에 저금하든 조회 한 번에 모든 재산 내역을 열람하는 것이 가능하며 세금 또한 피할 수 없게 된다. 유일하게 회피하는 방법은 그 정도의 현금이나 그에 준하는 실물로 바꾸어 집에 가지고 있는 것 뿐이지만 만약 그렇게 한다면 위에서 언급한 투자를 못 하게 되므로 기회비용이 발생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투자를 통해 이자나 수익이 발생하는데, 묵혀 두기만 하면 이것을 못 얻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가는 돈이 잘 순환할 수 있도록 재산으로 발생하는 세금보다는 그에 따른 수익이 더 크도록 해 준다. 만약 세금, 즉 재산으로 인한 비용이 더 크다면 너도 나도 집에 돈다발만 쟁여둘 테니 경제가 얼어붙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익명, 차명, 가명 계좌가 가능하면 해당 계좌 혹은 계좌에 들어있는 자금의 실소유주가 자백을 하거나 해당 계좌를 대신 관리해 주던 이가 변심해서 수사기관이나 세무당국에게 계좌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이상은 이러한 세금을 정확히 추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떤 사람이 정확히 얼마를 가지고 있는지 파악할 수가 없다는 점 때문이며 이러한 이유로 재산 때문에 드는 비용은 크게 줄어들게 된다. 당연하겠지만 투자를 통한 수익은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커지므로 돈이 많은 사람은 최소의 비용으로 엄청난 돈놀이를 할 수 있으며 부익부 빈익빈 현상 또한 가속화된다.

이러한 격차를 조금이나마 메꾸어 주는 것이 재산에 발생하는 세금인데 금융실명제가 없으면 사실상 재산세가 유명무실해 애초부터 실명제를 실시하기 전부터 실명으로 거래해 온 사람들만 바보가 된다. 실제로 이런 검은 돈과 극에 달한 조세포탈 행위 때문에 실질적인 세금 회수율이 11%밖에 되지 않았던 그리스가 디폴트를 하는 지경이 된 사례가 있다. 이러한 까닭으로 지속적으로 금융실명제 논의가 이루어졌으나 그러면 차명계좌에 쌓아둔 검은 돈이 캐내지는 것이 불리한 사람들이 많다 보니 차일피일 미루어지면서 뭉기적거리기만 했다.

검은 돈은 필연적으로 권력과 가깝다. 금융실명제가 없는 상황이라면 돈이 많은 사람은 차명계좌를 중심으로 금융이나 부동산 트릭을 살짝 섞으면 권력자에게 비자금 한 뭉텅이 주는 것 정도는 그야말로 자기 비서조차 모르게 전달할 수 있다. 꾸준한 건의에도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서 꾸준히 금융실명제가 좌절된 이유로 이것을 드는 의견도 있다. 사실 전두환과 노태우 본인들부터가 이미 거액을 상납받아서 비자금을 조성했던 사람들이니 실명제 실시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기는 했던 것. 금융실명제 이후 비자금 전달 통로가 애초에 마땅치 않고 금전 흐름을 밝히기 쉬워진 까닭에 권력자가 먹은 돈을 쓸 때 탈이 안나려면 현금이 최고라는 상황까지 더해지다 보니 발생한 사건이 이른바 '차떼기'로 유명한 2002년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 전달사건. 그 많은 돈을 실물로 싣는 과정에서 말이 새나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금융실명제가 얼마나 위력적인 조치인지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하겠다.

전두환 정권 때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이 터지고 나서 김재익 경제수석비서관이 제2의 장영자, 이철희 사건을 막고 조세 부담의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금융실명제 실시가 필요하다고 건의하였고 《금융실명거래에관한법률》까지 제정했으나 사실상 실행되지 못하고 무산되었기도 했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걸쳐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게 되자 부동산 열풍을 진정하려는 목적에서 다시 검토된 적이 있었지만 역시 무산되었다.

금융실명제 이전의 차명계좌는 납치, 유괴 범죄에도 상당히 자주 악용되었다. 처음부터 실명으로 개설했거나 차명이어도 실명으로 전환을 해 놓은 계좌거나 해당 계좌의 실소유주가 누구인지를 거래하는 이가 금융기관 측에다가 미리 통보하지 않은 이상 계좌추적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나마 이 당시에는 인터넷뱅킹이 발달하지 않아 돈을 손에 넣으려면 창구든 ATM이든 일단 은행이나 우체국에 찾아가야만 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몸값을 요구한 범인이 직접 자금을 인출하러 금융기관을 방문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다행인 점이다. 그때를 노려 형사들이 범죄자가 출몰할 것으로 예상되는 금융기관 영업점에 미리 잠복하거나 금융기관 측의 신고를 받아야만 출동 가능했고 범인을 현장에서 놓치는 일도 빈번했다. 대표적인 사건이 1990년 발생했던 곽재은 유괴 살인 사건과 이듬해에 발생한 이형호 유괴 살인 사건.[2]

실시 준비

일단 금융실명제 자체는 김영삼의 대선 공약이었다. 부작용과 실행의 어려움 때문에 실제로 시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 사람은 극히 드물었으나, 김영삼은 취임과 동시에 하나회도 날려 버린 경력이 있었다. 그리고 이 금융실명제 역시 하나회 숙청과 유사한 형태로 진행했다.

강경식 경제부총리나 영식 김현철이 언급한 것처럼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려면 집권 1년차에 긴급명령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처리를 확정지은 것이 집권 후 4개월 만인 1993년 6월 말이었다. 이후 김영삼은 이경식 경제부총리와 홍재형 재무부장관을 불러서 금융실명제를 극비리에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보안이 새면 당장 2명의 목부터 날리겠다.'는 것이 조건이었다.

이후 2명은 그날로 특별팀을 조직해서 보안 유지 전쟁에 들어갔다. 총괄을 담당한 이경식 부총리는 강남 대치동에서 KDI와 함께 초안을 잡았고 홍재형 장관은 차관급 이상을 완전히 배제한 채로 김용민 세제실장이나 김진표 세제 심의관을 포함한 실국장급만 모아서 새로 마련한 과천시 사무실에 틀어박혔다. 이 특별 팀은 1개월 동안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면서도 꼬리가 잡히면 안 되기 때문에 해외출장을 한다면서 일본으로 출국했다가 극비리에 귀국하는 방법을 선택해야 했다. 트렁크 끌고 공항으로 갔다가 그 자리에서 사무실로 유턴하는 것은 양반이었다. 해외에서 거는 척하고 안부전화도 걸었다고 하니 보안유지 하나는 '전쟁'이라고 표현할 만했다.

김진표 역시 장인어른이 여전히 차명계좌를 보유 중이었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알리지 않아 장인이 불평했다고 하니 정말 철통 보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만일 정확하게는 아니더라도 말 한마디와 각각의 행동 하나하나가 평소와는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을 보이는 사위가 수상하다고 눈치챘다면 장인어른이 자신처럼 똑같이 차명계좌를 보유 중이던 지인들한테 자신의 사위가 갑자기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것이 수상하게 보이니 지금까지 나라에서 그렇게 실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책을 기어코 실행하게 될 지도 모를 것 같다고 알려줘 버릴 게 분명했다. 이렇게 당장에 맡은 업무가 무엇인지에 대해 유추가 될 만한 비밀의 실타래를 하나둘 씩 흘리다보면 결국에는 실명제를 시행하기 위한 계획이 도로아미타불이 될 것이 뻔하니 어떻게든 숨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8월이 되자 대략적인 윤곽이 잡혔다. 하지만 하나회 숙청 때와 마찬가지로 정보는 거의 흘러나오지 않았다. 국무총리였던 황인성도 금융실명제를 추진한다는 정도로만 알았지 세부내용은 몰랐고 박재윤 당시 경제수석은 금융실명제에 부정적인 입장이라고 해서 애초에 알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다만, 아예 실시하지 말자는 쪽은 아니었고 경제가 어느 정도 성숙할 때 시행해야 부작용이 없으리라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남은 것은 D-Day 설정. 원래 계획하기로는 토요일 저녁이나 일요일에 발표할 예정이었다. 은행에 준비할 여유를 주고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목적이었는데 웬걸, 하필이면 일요일이 8월 15일 광복절이었다. 그렇다고 1주일을 더 미루면 보안이 약해질 위험이 있었다는 이유로 앞당겨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사실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금융실명제 실시 바로 전날이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 마지막 날이었다. 김영삼은 자신과 자신의 일가족이 보유 중이던 재산 목록들을 비롯한 고위공직자 재산공개를 매우 철저하게 진행할 생각이었고 금융실명제는 이와 정확하게 맞물려 돌아갔다고 봐야 할 것이다. 김현철이 증언한 김영삼의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에 대한 입장은 꽤나 강경하였다.

잘 들어봐래이. 중국에서 대만으로 쫓겨 간 장개석 총통이 부패를 바로 잡을라고 본보기로 잡은 게 며느리였다카이. 정치권에 며느리가 사치스럽다는 소문이 퍼지니까 장개석이가 집을 급습해가 수색을 한기라. 수색을 해보니까 진짜로 보석이 엄청 나왔다는 거 아이가. 그 날 이후로 장개석이가 며느리를 불러가 '이게 마지막 식사'라며 상자 하나를 건넸는데 그 속에 뭐가 들어 있었는지 아나. 권총인기라 권총.[2]

발동

그리고 1993년 8월 12일 목요일 저녁 19시 45분, 김영삼 대통령은 대통령 긴급명령권을 발동해 긴급재정경제명령 제16호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경제명》을 전격 실시하였다. 발표 직후에 급하게 은행 인출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은행이 모두 문을 닫은 시각인 20시에 발동하였다.

긴급명령권은 헌법상 인정되는 대통령의 비상대권(권한)으로 법률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 비록 입법부의 사후승인을 받아야 정식 법률로 정착한다고 해도 입법부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나 다름없고 남용하면 독재의 지름길이 되므로 멀쩡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함부로 쓰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매우 크다. 그럼에도 이것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국회에 입법하는 정규 노선을 밟으면 입법하는 동안 언론이나 비공식 경로를 통해 세상에 알려져 검은 돈이 다 빠져나갈 게 분명했던 까닭이다.

다음날인 8월 13일 아침부터 금융기관마다 난리가 났다. 그리고 주식시장에도 헬게이트가 열려 가격제한폭까지 떨어진 주식들이 넘쳐났다. 기사

사실 어마어마한 혼란이 생김은 당연했다. 아무런 예고도 이유도 없이 전국의 모든 금융기관들의 문이 늦게 열리게 된 것은 물론이고 이 뉴스를 늦게 알아서 금융기관 영업점 창구로 갔는데 갑자기 '주민등록증을 달라'(혹은 여권, 운전면허증 등의 신분증)고 해서 당황했다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도 지하경제를 크게 파낼 수 있었고 정경유착 등 각종 부정부패를 막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다만 당시에도 재벌과 일부 부유층, 그리고 소위 높으신 분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서 나름 정보를 얻었던 듯하다. 재벌 총수들은 어떻게든 잘 빠져나갔다는 말도 있다. 대우는 금융실명제에 묵시적인 찬성 입장이었고 현대는 정주영 회장이 14대 대선 과정에서 찍혀서 정권 눈치보느라 바빴다. 그 외 대기업은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정보를 입수했는지 총수 자금만큼은 해결을 봤다고 한다. 극비리에 진행된 금융실명제 실무작업에 참여했던 경제관료들 중 일부가 정보를 사전에 유출했다는 의혹들이 많이 돌아다니는데 거론되는 인물은 툭하면 삼성장학생이라고 까이는 김진표. 하지만 재산공개와 엮여돌아갔던 고위공직자들과 언론사 등 고위층은 어느 정도 타격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이 정책이 가져다 준 파장은 실로 어마어마해서 13일 당일에 전국의 모든 금융기관은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부정부패 척결에도 큰 효과가 있었다. 이에 그 당시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인 인기투표'에서 아이돌 가수도, 당대 최고의 탤런트도 아닌 김영삼 대통령이 떡하니 1위에 올라가는 일까지 있었고 '1993년 대한민국 100대 스타'를 뽑는데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을 제치고 당당히 1위를 거머쥐기도 했다. 관련 게시물 지금도 김영삼 대통령의 업적을 거론할 때 하나회 숙청과 함께 꼭 거론되는 정책 중 하나. 그러다가 김영삼 대통령은 IMF 사태와 측근이었던 아들 김현철의 비리가 터지면서 인기를 잃게 되었는데 이 비리가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역설적이게도 금융실명제 덕분이었다.

금융실명제가 얼마나 부유층에게 위협적이었는지는 그 당시 신문기사들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사소한 문제만 생기면 금융실명제 때문에 경제위기라고 기사가 났다.

8월 19일에는 긴급재정경제명령 제16호가 정식으로 국회의 승인을 받았다. 긴급명령 자체가 무효라는 김동길 의원이 행사한 반대표를 제외하고 모두가 찬성했다. 김동길은 금융실명제는 찬성하지만 긴급명령이라는 형식에 대한 반대라고 설명했다.[2]

긴급재정경제명령 제16호

제5공화국노태우 정부가 막을 내리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1993년 8월 12일, 대통령 김영삼은 대통령긴급명령인 긴급재정경제명령 제16호를 발동하여 당일 오후 8시를 기해 《금융실명제 및 비밀보장을 위한 법률》을 전격적으로 실시하였다. 이는 혼란을 피하고 부작용을 단시일 내에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한다.

이 명령은 대한민국 헌법 76조에 제1항에 의거하여 내릴 수 있는 대통령의 긴급명령권으로 내려졌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명령은 전시였던 1950년에 많이 이루어졌으며 그 외에는 이 제16호 명령과 같은 경제에 대한 특별한 경우로서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다. 이 명령 전의 마지막 명령은 1972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한 《경제의 안정과 성장에 관한 대통령 긴급명령》이었다.

1993년 8월 19일 국회는 본회의를 개최하여 대통령이 승인을 요청한 긴급재정경제명령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앞서 국회 재무위원회는 8월 18일에 회의를 개최하고 긴급명령을 심의하였는데 만장일치로 승인하였었다.

이 조치로 시행된 법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비실명계좌의 실명확인 없는 인출을 금지.
  • 순인출 3천만 원 이상의 경우 국세청에 통보하며, 자금 출처를 조사할 수 있음.
  • 8월 12일 오후 8시를 기해 위 사항을 실시하고, 13일은 오후 2시부터 금융 기관의 업무를 시작.[3]

실시 효과

실시 작용

  • 비실명제의 경제활동은 각종 범죄의 온상이 되는 지하경제를 부추기고 투기성 자금, 부정 부패자금등의 활동 통로가되어 실물경제의 발달을 저해한다. 금융실명제는 이러한 자금의 흐름을 막고, 추적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 금융자산소득의 흐름을 투명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어 종합소득세제의 실시를 가능하게 하였다. 이로 인해 세수가 늘어나 국가 재정 확보가 쉬워진다.
  • 궁극적으로는 과세의 불공평성을 없애 빈부의 격차를 줄인다.
  • 건전한 경제 활동을 보장하여 사회적 안정을 이룰 수 있다.

실시 부작용

  • 생산성 저하
  • 주가 폭락
  • 자본의 해외 유출
  • 부동산 가격 급등
  • 사금융 시장 위축
  • 중소기업의 부도 증가[3]

외국

이 제도 덕에 일부에서는 외국에서는 은행일 보기가 쉬운데 한국만 이렇게 복잡하다는 주장이 가끔씩 나오곤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외국에서도 금융실명제하고 꼭 같진 않지만 자금세탁 방지제도에 고객 확인 절차(Know Your Customer)가 포함되어 있어 금융기관의 직원이 계좌주의 신원과 거주지를 확인하는 절차가 의무화되어 있다. 이것 때문에 외국에서도 은행계좌를 열거나 일정 금액 이상을 인출할 때 등 은행 업무를 볼 때 신분증을 요구하는 일이 많고 신분증이 없으면 아예 안 받아준다.

외국에는 한국처럼 주민등록번호 제도가 있는 국가가 거의 없다 보니 보통 거래를 시작할 때에는 신분 증명과 주소 증명을 할 만한 서류 각각 한 두 개를 요구한다. 영어권이라면 ID proof나 Address proof라고 하면 대개 알아듣는다. 가령 여권이나 운전면허증 같은 것들이다. 미국은 주민등록증이 없는 대신 운전면허증이 이를 대신한다. 운전면허를 따지 못한 사람들은 임시 운전면허증{Learner's Permit} 혹은 비운전자 신분증{Non-Driver Identification} 등을 발급받는다. 외국인이면 외국인등록증도 해당된다. 한국에서는 모기업의 고객 확인 절차를 그대로 가지고 온 HSBC 한국 지점에서 개인고객 한정으로 이걸 체험할 수 있었다. HSBC는 신분증을 제시하더라도 신분증 상의 거주지와 실제 거주지가 다른 경우 공공기관에서 보낸 우편물이나 집 계약서 같은 서류를 제출해야 계좌를 열 수 있다. 인도 같은 경우에는 그것도 모자란 듯이 은행원이 고객의 집까지 직접 와서 주소를 확인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은 애국자법(PATRIOT Act) 시행 이후 테러집단 자금으로 쓰이는 것과 탈세행위를 막기 위해 실명 거래가 의무화되었다. 모든 금융거래는 IRS국토안보부가 모니터링한다.
캐나다에서는 신원확인이 없으면 계좌개설과 취업 등 모든 금융 보험 거래가 불가능하다. 주민등록제도는 없지만 70년대 이후 사회민주주의 제도가 자리잡으면서 이러한 혜택을 받는 대상 그리고 혜택의 대가를 지불하는 대상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모든 거주민(시민+영주권+임시방문자)의 세금상의 주민등록번호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모든 금융기관에서는 성명, 생년월일, 성별, 주소, 전화번호는 기본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외국인은 원칙상 재류카드 제출이 필수다. 그러므로 3개월짜리 단기체재로는 계좌개설을 못 한다. 그리고 주민등록번호와도 같은 존재인 마이넘버는 외국환거래 혹은 외국계 은행에서만 필요로 한다.
중국에서는 2000년 4월 1일부터 예금주와 대출 차주들이 반드시 자신의 실명과 생년월일, 성별, 거주지, 거주확인이 되어야 금융거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알리페이간편결제에서는 실명인증이 한동안 없었는데 2016년 7월 1일부터 전면 간편결제에서도 가입 시 실명 인증제를 시행하고 있다. 중국 국내의 주소지가 입증되지 않으면 간편결제도 이용이 안 된다.
  • 대만
대만은 금융실명제를 시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대만은 좀 다른 방법으로 제한을 건다. 대만 금융기관에서 본인확인을 마친 계좌는 출금/송금 한도에 제한이 없는데 그렇지 아니한 계좌는 출금/송금 한도를 한국 돈 월 50 ~ 100만원 수준으로 제한을 걸어 사실상 실명제를 유도하고 있다.

동영상

각주

  1.  〈금융실명제〉, 《매일경제》 
  2. 2.0 2.1 2.2 2.3 2.4  〈금융실명제〉, 《나무위키》 
  3. 3.0 3.1  〈금융실명제〉, 《위키백과》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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