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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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보구(중국어: 大埔区 dà pǔ qū)는 중국 홍콩 동부에 위치해 있는 구다. [1][2] [3][4]
개요[편집]
다이보구의 면적은 148.05km²이며 인구는 303,926명(2016)이다. 홍콩에서 두 번째로 큰 행정 구역이다. 다이보(大埔, Tai Po), 다이보카우(大埔滘, Tai Po Kau), 팅콕(汀角, Ting Kok), 촨완 해(船灣海, Plover Cove/Shuen Wan Hoi) 등의 지구와 토로 해협(赤門海峽, Tolo Channel/Chek Mun)의 양안, 시궁 반도의 북부를 포함한다. 신가이에 위치한다.
윈롱(元朗, Yuen Long)처럼 다이보(大埔, Tai Po) 지역은 전통적인 시장촌이다. 다이보 신마을(大埔新市鎮, Tai Po New Town)은 린춘허(林村河, Lam Tsuen River)와 다이보허(大埔河, Tai Po River) 어귀의 매립지와 다이보 주변 지역을 개발한 것이다.
2주요 거주 지역은 6개의 임대 공공 주택 단지와 분양 주택 단지, 그리고 태화역 근처의 오래된 시장과 대포역 근처의 새로운 시장의 민간 아파트 단지들이다.
2005년, 세계보건기구(WHO)는 대포를 "안전한 커뮤니티"로 인정하였으며, 이는 전 세계 90번째, 홍콩 내에서는 세 번째로 안전한 지역으로 지정 되었다.[5][6]
자연환경[편집]
다이보구는 신계 중부에 위치하며, 남쪽은 대포교에서 시작해 북쪽은 팔선령에 이르고, 서쪽은 대도산을 접하고, 동쪽은 토로항을 가로지른다. 다이보구 내에는 홍콩의 유명한 내항인 토로항이 있다. 이 항구는 대포 신시가지의 동쪽과 샤틴 신시가지의 북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해항은 서남-북동 방향으로 뻗어 있다. 그 출구는 적문 해협이며, 이후 바닷물이 대팽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다이보구의 대위두에 위치한 선완 담수호는 홍콩에서 최초로 해역에서 개발된 대형 저수지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도 인기 있는 장소다. 이 담수호는 원래 큰 해만인 선완 만이었으며, 만 안쪽 해안에는 여러 마을이 있었으나 20세기 60년대 담수호를 건설하면서 철거되었고, 일부 마을의 유적은 담수호 수면 아래에 묻혀 있다.
다이보구에서 가장 유명한 산은 북쪽의 팔선령으로, 이 산은 대포구와 북구의 자연적인 경계선 역할을 한다. 서공반도 북동쪽 끝에는 "홍콩 3대 첨탑" 중 하나인 응사첨(蚺蛇尖)이 있으며, 이 산은 매우 두드러져 있다. 그 외에도 구룡갱산(Cloudy Hill)도 있으며, 이 산 정상에는 여러 개의 송신탑이 설치되어 있다.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암석은 "황죽각즉조"라는 퇴적층으로, 이는 데본기(Devonian) 시대의 퇴적암이다. 이 암석은 주로 적문 해협 양쪽에서 노출되며, 북쪽 해안에서는 백사두섬에서 황죽각즉에 이르는 지역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지질 구조의 변형과 격차 운동으로 인해 노출된 암석층은 거의 수직에 가까운 상태로 나타난다.
홍콩은 중국 남부의 온대 하우 기후 (쾨펜의 기후 구분 Cwa) 특성을 지니고 있다. 홍콩의 여름은 따뜻한 남서풍과 가끔씩 오는 소나기와 뇌우 등의 영향으로 대체로 덥고 습하다. 태풍은 여름에 가장 자주 발생하며 때때로 홍수와 산사태를 일으킨다. 겨울은 온화하며 초반에는 화창하나 대체로 2월부터 흐려지며, 가끔 발생되는 한랭전선은 북쪽에서 강하고 차가운 바람을 가져온다.
홍콩에서 가장 온화한 계절은 봄과 가을으로, 봄 기간은 날씨가 변덕스러우며, 가을은 일반적으로 맑고 건조하다. 강설은 극히 드물며, 대개 고도가 높은 지역에서 발생한다. 홍콩은 인접한 중국 대륙의 공업 지대에서 계절적인 대기 오염의 영향으로, 겨울에 굉장히 높은 수준의 미세먼지를 기록한다.
최한월인 1월 평균기온은 약 16℃, 평균최고기온 19℃, 평균최저기온 14℃ 정도로 한국 수도권의 10월 초 날씨와 비슷하며, 최난월인 7월 평균기온은 약 29℃, 평균최고기온 32℃, 평균최저기온 27℃ 정도로 일본 오사카와 비슷하다. 연평균 강수량은 약 2,400㎜인데 5월부터 9월까지 집중되는 편이다.
역대 최고기온만 놓고 보자면 북쪽에 있는 중국 대륙(본토)와 한국, 일본의 도시보다 평균 대략 5℃ 가량 더 낮다. 즉 여름철 평균기온 자체는 한국보다 높지만 연중 최고기온이 35℃를 넘는 해는 생각보다 드문 편이었으나 요즘 지구온난화 때문에 많이 더워지는 추세이다. 단 습도가 매우 높아 체감온도는 대구광역시 이상이다. 애초 7월 평균기온 자체가 30℃에 육박한다. 공식 역대 최고기온이 36.6℃다. 일단 해안도시여서 바다가 열 창고 역할을 해주기도 하고, 대외적인 인식과 달리 구름이 많아 흐린 날이 많고 연간 일조량이 적기 때문이다. 이 두 요인이 겹쳐 동절기에도 미미한 일교차가 하절기에는 1°C에도 못 미치는 기염을 토한다고도 하는데 그것보단 크다. 덕분에 이슬점도 밤낮에 따른 변동이 없고, 수증기는 바다에서 꾸준히 공급되므로 습도의 변동 역시 미미하다. 따라서, 5~9월 홍콩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평균 기온이 섭씨 28℃, 습도 80% 이상을 유지한다.
종합해보면 4-11월의 길고 무더운 여름과 12-3월의 짧고 서늘한 겨울의 두 계절로 나눠진다고 볼 수 있다. 5-10월 사이 다섯 달 정도는 태풍이 흔히 내습하며 그 덕에 홍콩의 해안지대는 여기저기 태풍 대피소인 타이푼 셸터(Typhoon Shelter)가 조성되어 있다. 홍콩 국제공항도 지하에 태풍 대피소를 둘 정도로 태풍이 흔하다. 한국에서 부산이나 여수, 제주도 등 남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여름에서 초가을 사이 태풍에 자주 시달리는 것과 똑같다.[33] 10월 태풍은 한국에선 진짜 드물게 남부 지방으로 오지만 홍콩에선 11월 초까진 태풍에 대해 마음을 놓지 못하며 가끔 2017년 하토 및 2018년 망쿳 등 슈퍼태풍이 관통해 피해가 커지기도 한다.
태풍이 자주 내습해서 홍콩의 태풍 경보 시스템은 일본과 함께 아주 잘 되어 있는 편이다. 5단계로 나누어져 1호는 유의, 3호는 경계, 8호는 위험, 9호와 10호는 초위험경보이다. 8호경보가 발령되면 식당 등 상점도 문을 닫으며 직장은 쉬거나 재택근무, 학교는 휴교로 돌린다. 홍콩 버스, 홍콩 트램 등 지상 교통수단이 경보 발령 2시간후에 운영을 종료하는 대신 MTR는 계속 운행한다. 홍콩 국제공항은 항공기 이착륙이 무조건 금지되지 않지만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따라 제한될 수 있다. 대부분 태풍의 위력이 8호경보의 수준에서 그치지만 풍속이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면 9호경보가 발령된다. 이때 MTR지상구간에서 운행하고 있는 열차들도 다음 역에 도착하는 즉시 운행을 중단하고 경우에 따라 발이 묶인 승객들의 휴식공간으로 역대합실이나 열차를 개방한다. 10호경보는 보기 드문 편이었으나 지구온난화로 인해 점점 잦아지고 있다. 홍콩 반환 이후에 총 5번을 발령했는데 각각 1999년 태풍 요크, 2012년 태풍 빈센트, 2017년 태풍 하토, 2018년 태풍 망쿳, 2023년 태풍 사올라이다.
역사[편집]
홍콩이 영국에 할양되기 전인 1830년대 처음 홍콩에 온 영국인은 홍콩이 척박한 땅이었다고 했지만, 이미 홍콩에는 중국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 사당, 사원. 밭, 집이 있었고 사업을 하거나 그 외 일상적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이루어 거주하고 있었다. 원나라 시기에 홍콩은 농부, 어부, 해적, 송나라의 귀족 등 다양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었고, 명나라 때는 광동과 푸젠(福建) 사람들이 구룡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1839년 시작된 제1차 중영전쟁이 영국의 승리로 끝나면서 1842년 난징조약으로 인해 청나라는 홍콩섬을 영국에 할양했다. 중영전쟁은 '아편전쟁'이라고도 불리는데, 영국의 아편 밀무역으로 청에 급속히 확산된 아편 중독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청나라는 아편 금지령을 내렸지만, 영국이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아편 밀무역을 시도하면서 은의 대량 유출과 아편 중독 현상이 심각해졌다. 청나라가 아편 밀무역을 제지하면서 이에 반발한 영국이 전쟁을 일으켰다.
이후 1857년 수출 부진을 빌미로 영국이 제2차 중영전쟁을 일으켰다. 난징조약으로 청나라와의 교역을 통해 이익을 얻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성과가 부진하자 다시 무력을 쓴 것이다. 청나라가 또다시 패배하면서 1860년에는 1차 베이징조약에 따라 구룡이 영국에 할양되었다. 1898년에는 영국이 2차 베이징조약을 통해 99년 동안 신계 지역을 조차하였다. 50여 년에 걸쳐 홍콩섬, 구룡, 신계 등 지금의 홍콩을 구성하는 세 지역이 모두 영국의 관할권이 된 것이다. 1941년 일본이 아시아∙태평양 전쟁을 계기로 홍콩을 점령하면서 1945년까지 약 3년 8개월 동안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던 기간을 제외하면 홍콩은 156년 이상 영국의 식민지였다.
영국의 식민지배 아래에서 홍콩은 항구도시로서 경제적으로 번영했고 상업과 금융의 중심지가 되었다. 경제적 번성은 정치적 무관심을 낳기도 했지만, 영국의 식민지배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67년 5월부터 12월까지 발생한 시위, 파업, 암살, 폭파 등을 통칭하는 67폭동은 영국 식민정부에 반대하는 대규모 반정부 폭동이었다. 처음에는 노동쟁의로 시작되었으나 점차 격렬한 양상으로 진행되면서 식민정부 비판까지 나아갔다. 50여 명 이상이 사망한 대규모 폭동은 홍콩의 공산주의자들이 연루되었지만, 대중의 지지를 얻지는 못한 그들만의 폭동이었다. 홍콩의 학생단체는 폭력의 중단을 호소하고, 식민정부에게 지원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동철선이 들어온 지역으로 홍콩 섬과 구룡반도의 인구 포화를 견딜 수 없게된 시점인 1960년대부터 제한적으로 개발이 시작되었다. 1984년 중영공동선언으로 1997년 홍콩 반환이 확정되자 타이포구의 개발도 빨라졌다.[7]
산업[편집]
홍콩 내부에서도 관광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상권은 타이포시장역과 타이워역 인근에만 있다.
교통[편집]
홍콩 지하철 동철선 타이포시장역과 타이워역 2개에 의존하고 있다. 타이포구는 동철선이 없으면 다른 곳으로 나가기 어려운 지역이다.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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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다이보구〉, 《위키백과》
- 〈타이포구〉, 《나무위키》
- 〈홍콩〉, 《위키백과》
- 〈홍콩〉, 《나무위키》
- 〈중국행정구획총람: 다푸구〉,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홍콩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 〈大埔区〉, 《百度百科》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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