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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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카타(영어: Qeqqata)는 그린란드 남서부에 위치해 있는 주이다. [1][2]
목차
개요[편집]
케카타의 면적은 115,500㎢이며 인구는 9,378명(2020)이다. 주도는 시시미우트이다. 명칭인 케카타(Qeqqata)는 단순히 '중앙'이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그린란드 중부에 위치하고 있다. 문장은 산 위로 보이는 빙산과 큰 오각성 두 개, 그리고 작은 오각성 여섯 개를 묘사하고 있는데, 여기서 큰 별은 두 개의 도시를, 작은 별들은 정착촌들을 상징한다.
자연환경[편집]
기후는 대부분의 지역이 빙설기후이고, 얼음에 덮이지 않은 연안부에서 툰드라 기후를 보인다. 툰드라 지역에서는 전반적으로 여름철에 선태류·지의류·고산식물 등이 자라고, 가장 기후가 온화한 남서부 해안에서는 침엽수림을 볼 수 있다. 동물은 북극곰·북극토끼·북극여우·북극이리·순록·사향우(麝香牛) 등 육지동물과 물개·바다표범 등 바다동물 및 대구·청어 등 한류어가 많다.[3]
역사[편집]
그린란드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500년 무렵으로, 이누이트가 정착해 살기 시작했다. 이후 서기 986년에는 노르드족인 에이리크 라우디에게서 발견되었는데, 그는 자신이 발견한 땅에 많은 사람들이 이주하기를 바랐고 이에 따라 자신이 발견한 섬의 이름을 '초록의 땅'이라는 뜻의 '그린란드'라 이름 지었다. 이 때부터 그린란드에 노르드족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은 원주민인 이누이트족과 충돌이 잦았고 수천 년간 살아오면서 그린란드의 빙설 기후에 완벽히 적응한 이누이트족과 달리 기후에 적응하지 못했고 척박한 환경으로 목재, 철 등 자신들의 문화를 보존할 자원의 부족으로 인구 증가에 큰 어려움을 겪어 수와 군사에서 이누이트족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대표되는 예로 1379년 이누이트족의 습격을 받아 노르드족 남성 18명이 사망했는데, 당시 노르드족의 인구는 4,000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본토와의 교류를 통해 15세기까지 노르드 족은 그린란드에 거주하였으나 소빙기로 해안에 유빙이 생겨나면서 본토와의 교류에 문제가 생긴 데다 유럽에서 흑사병이 유행하면서 교류가 완전히 중단되었고 결국 그린란드의 노르드족 거주지는 소멸되었다. 이후 1721년에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루터교 선교사이자 탐험가인 한스 에게데 일행이 그린란드를 탐험했고 덴마크 군대가 그린란드 남서부 연안에 고트호프 요새를 건설하면서 덴마크령의 거주지가 되었다.
냉전 시기에 미국은 그린란드 지역에 지정학적 관심을 보여왔으며 1946년 트루먼 대통령은 덴마크에게서 그린란드를 1억달러에 구입하겠다고 제안하지만 덴마크는 거절했다. 하지만 1950년 덴마크는 미국의 툴레 공군 기지 건립 제안을 받아들여 1951년 건설을 시작한다. 1953년 완성된 이 기지는 나토의 방어전략의 일환이 된다.
1950년 그린란드에 있던 덴마크의 식민지인 남그린란드, 북그린란드가 통합되면서 덴마크의 단일 식민지인 그린란드 식민지가 수립되었다. 1953년 그린란드 식민지는 덴마크의 한 주로 승격되어 그린란드 주가 되었으며, 그린란드인들은 이 시기 덴마크 시민권을 취득하였다.
그린란드는 1979년 5월 1일부터 덴마크 의회에 의해 자치권을 획득했지만 국가 원수는 덴마크의 국왕이었으며 외교권과 국방도 덴마크가 맡아왔다. 1973년 덴마크가 유럽 경제 공동체(EEC, 현재의 유럽 연합(EU)의 전신)에 가입하면서 그린란드도 유럽 경제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린란드는 유럽 경제 공동체의 상업성 어업 규제와 물개 가죽 제품의 금지 조치에 반발하면서 1982년에 실시된 자체 주민 투표를 통해 유럽 경제 공동체에서 이탈하기로 결의했고 1985년을 기해 유럽 경제 공동체에서 완전히 탈퇴하게 된다.
최근에는 지구 온난화와 맞물려 그린란드의 독립에 새로운 가능성이 생겨나기도 하였다.[2] 그린란드는 2008년 11월 25일에 자치권 확대를 위한 투표를 치렀다. 그리고 이 투표에서 75%가 자치권 확대에 찬성하면서 독립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마침내 2009년 6월 21일에 누크에서 자치권 확대 발효 기념식을 열고 사실상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다만 자치권이 발효되어도 여전히 덴마크가 국방이나 외교 사안에는 결정권을 가진다. 이 조치로 덴마크로부터 지원받던 연간 보조금 32억 덴마크 크로네(덴마크의 통화)가 중단되기는 하지만 지구 온난화로 개발 가능성이 생긴 지하자원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와 사법 및 경찰권을 가지게 되며, 입법권도 가지게 되었다.
케카타는 그린란드 행정구역의 대규모 개편이 있었던 2009년 1월 1일부로 설치되었다. 2009년 당시 그린란드의 행정구역 개편은 종래의 18개 자치구로 구성된 행정 체계를 4개의 지자체로 통합하는 데 주안점이 있었다. 종래의 자치구들은 이후 각 주의 지구(地區)로 남았다.
여기서 케카타주는 기존의 마니초크 자치구와 시시미우트 자치구를 통합하여 만들어졌다.[4]
교통[편집]
캉에를루수아크 공항[편집]
그린란드 남서부 케카타(Qeqqata)주의 캉에를루수아크에 있다. 그린란드에서 가장 큰 공항으로, 그린란드 전역으로 통하는 관문이다. 나르사수아크 공항(Narsarsuaq Airport)과 함께 그린란드에서 대형항공기가 이착륙 가능한 공항이다. 손드레스트롬피오르드 공항(Søndre Strømfjord Airport)으로도 불린다. 1941년 10월 미 육군항공대의 블루 웨스트-8 비행장(Bluie West-8 Airfield)으로 설립되었으며, 1951년 이후 손드레스트롬피오르드 공군기지(Sondrestromfjord Air Base), 손드레스트롬 공군기지(Sondrestrom Air Base)로 불렸다. 1992년 9월 이후 그린란드 소유가 되어 민간공항이 되었다. 공항 코드는 SFJ(IATA), BGSF(ICAO)이다.
여객 터미널은 한 동이며, 활주로는 2,810m×60m 크기로 총 1개소를 운영한다. 취항 항공사는 1사로, 그린란드항공(Air Greenland Inc.)의 허브 공항이다. 국제선은 정기편으로 캐나다 배핀섬의 이칼루이트(Iqaluit)를, 계절편으로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Reykjavík)를 연결한다. 국내선은 코펜하겐(Copenhagen)과 그린란드 지역의 아시아트(Aasiaat)·마니트소크(Maniitsoq)·일룰리사트(Ilulissat)·누크(Nuuk)·시시미우트(Sisimiut)·나르사수아크(Narsarsuaq)·제임슨 랜드(Jameson Land)의 8개 목적지로의 직항 노선을 운항한다. 주 4~6회 덴마크 본토를 잇는 정기 노선이 운항한다.[5]
하위 행정구역[편집]
마니초크 지역(Maniitsoq area)[편집]
- 마니초크
- 아탐미크(Atammik)
- 캉아미우트(Kangaamiat)
- 나파소크(Napasoq)
시시미우트 지역(Sisimiut area)[편집]
- 시시미우트
- 이티흘레크(Itilleq)
- 캉에흘루수아크(Kangerlussuaq)
- 사르팡우이트(Sarfannguit)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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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켁카타〉, 《위키백과》
- 〈케카타〉, 《나무위키》
- 〈두산배과: 그린란드〉, 《네이버 지식백과》
- 〈그린란드〉, 《위키백과》
- 〈두산백과: 캉에를루수아크 공항〉, 《위키백과》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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