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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30일 (일) 10:38 기준 최신판
군사분계선(軍事分界線)이란 전쟁 중인 쌍방의 협정에 따라 설정한 군사 활동의 한계선을 말한다.[1]
개요[편집]
- 군사분계선은 휴전과 함께 대치하고 있는 교전 당사자 간에 전투 등 적대행위를 정지시키고 병력을 분리하기 위해 설정하는 기준선이다. 군사분계선은 대체로 휴전이 성립된 시점에서의 전선을 이어서 성립된다. 우리나라의 군사분계선도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조인 당시의 접촉선이다. 1951년 7월 정전 협상이 시작되고 11월 27일에는 당시 접촉선을 기준으로 군사분계선을 설정한다는데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포로 송환 문제로 교착상태에 빠지자 이 접촉선을 조금이라도 자기편에 유리하게 설정하기 위해 각 전선에서 치열한 전투가 지속되었다. 중부전선의 철원·금화·평강을 연결하는 철의 삼각지역에서 처절한 혈투가 전개된 것이 대표적이다. 결국 휴전과 함께 서쪽은 한강 하구의 교동도로부터 동쪽은 강원도 고성군 명호리까지 248km에 이르는 현재의 휴전선으로 확정되었다. 한강 하구로부터 강화도로 나가는 수역은 어느 쪽의 지배도 허용하지 않는 중립지대가 되었다.
- 군사분계선은 남북한을 가르는 분단의 상징이다. 그러나 군사분계선 상에는 철책선을 설치하거나 담을 쌓아 놓지는 않았다. 일정한 거리마다 군사분계선임을 표시하는 표지판이 있을 뿐이다. 정전협정 제1조 7항에는 군사정전위원회의 특정한 허가 없이는 어떠한 군인이나 민간인도 군사분계선을 통과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는데 이는 쌍방의 충돌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그동안 남북 간 회담을 진행하거나 특사를 파견하는 등의 특별한 경우에만 한정된 인원이 판문점을 통해 군사분계선을 넘나들었다. 그러나 2000년 이후에는 남북 간에 인적 교류가 이루어지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운영 등 경협 사업이 활성화 되면서 많은 인원이 동서 통로를 통해서 군사분계선을 통과하는 일이 잦아졌다. 2007년 10월 2일에는 분단 사상 최초로 우리 측 최고 당국자가 육로로 방북하면서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어갔다.[2]
비무장 지대[편집]
- 휴전선을 기준으로 남북 각 2km씩, 총 4km 폭의 비무장지대를 설정했다. 실제로는 휴전선 이남으로 민간인 출입통제선을 더 그었기 때문에 민간인은 쉽게 접근할 수 없다. 지리적으로 생각해 볼 때 한국의 속초시는 북한의 개성 및 해주보다 더 북쪽이며, 남한 최북단인 고성군 통일전망대 일대는 평양 바로 아래 있는 남포시나 송림시보다 약간 남쪽이다. 게다가 남한의 입장에서는 서울이 삼팔선 때보다 오히려 북한에 좀 더 가까워졌다. 실제로 한국전쟁 전까지는 삼팔선 이남인 황해도 옹진반도와 경기도 개성시도 대한민국 관할이었다. 반대로 삼팔선 이북인 경기도 포천시 북부(영중면·창수면·영북면 전체와 이동면 대부분, 일동면 일부), 연천군(전곡읍·백학면·청산면 각 일부 제외)·강원도 인제군(남면·신남면·기린면 각 일부 제외)·양양군(서면·현남면 각 일부 제외)의 대부분과 강원도 속초시·철원군·양구군·화천군·고성군 등, 설악산도 포함한 부분이 북한 관할이었다.
- 휴전선이 이와 같이 설정된 이유는 휴전협정을 하던 당시 유엔 측과 공산군 측이 각각 점령한 지역대로 경계를 나누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굳이 저렇게 나누자고 협약을 한 게 아니다. 그래서 장단군, 연천군, 철원군 등 일부 지역은 휴전선에 의해 남북으로 나뉘었다. 대한민국에서 발행하는 지도에는 그냥 아무 설명 없이 많이 점선으로 그려넣으며, 아예 그려넣지 않은 때도 있다. 참고로 정식 국경선 기호는 휴전선 기호와 다르다. 당장 집에 있는 지도책을 펴보고 확인해 보자. 대한민국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며, 휴전선 이북도 엄연한 대한민국의 영토(미수복 영토)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북 5도 항목 참조. 대한민국 헌법 제3조 대한민국은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가 이를 뒷받침한다. 강원도 양구나 경기도 연천의 '국토 정중앙' 슬로건도 당연히 이를 근거로 한 것이다. 최근에 나온 지도는 북한의 행정구역을 반영하여 황해북도와 경기도의 경계선, 북한 측 강원도와 남한 측 강원도를 따로 취급하여 도(道) 경계선을 그려넣어 사실상 휴전선을 표시한 일도 많다.
- 북한 입장에서도 실질적인 남방 국경선인데, 북한에서 발행한 지도에서는 국경 표시는 없지만 도(道) 경계로 사실상 찾을 수 있다. 서쪽은 황해북도와 경기도의 경계선으로, 동쪽은 양쪽 강원도를 따로 표기해서이다.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하여, 북쪽으로 2km 떨어진 비무장지대의 경계선을 "북방한계선"(NLL)이라 하고, 남쪽으로 2km 떨어진 비무장지대의 경계선을 "남방한계선"(SLL)이라고 한다. 북방한계선과 남방한계선에는 철책이 쳐져 있으며, 남북의 군대가 대치하고 있다. 1963년부터 북측이 요새와 진지, 철책을 구축하면서 한반도의 비무장지대(非武裝地帶)는 비무장 지대(非武裝地帶)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남북 양측의 무장 군인들이 상시 주둔하는 전방 감시 초소(GP)가 곳곳에 있으며, 일부 GP와 GP 사이에는 '추진 철책'이라는 이름의 철책이 설치되어 있다. 북측은 '민경대'(民警隊), 남측은 '민정 경찰'(DMZ Police)이라고 자처하지만, 실질은 양쪽 모두 무장한 군인들이다. 비무장 지대 내의 민간인 거주 마을로는 남측의 대성동, 북측의 기정동이 있다.[3][4]
한반도의 분할[편집]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 19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이 패망하자, 미국은 이미 한반도 북부에 진입한 소련군의 남진에 대응해 미소 양측의 군사적 충돌 없이 서울과 인천을 포함한 한반도 남반부를 점령하기 위하여 소련에 북위 38도선을 군사분계선으로 하는 안을 제안하였다. 소련이 별 이의 없이 북위 38도선 분할 점령안을 받아들임으로써 1945년 9월 2일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 38선 이남 : 서울, 경기도(연천군 대부분, 개풍군·장단군·포천군의 각 북반부 제외), 강원도 남부(춘천- 강릉 이남), 황해도 옹진·연백, 충청남도, 충청북도, 전라남도(제주도 포함), 전라북도, 경상남도, 경상북도
- 38선 이북 : 평양, 평안남도, 평안북도, 함경남도, 함경북도, 황해도(옹진·연백 제외), 강원도 북부(화천군 - 양양군 이북), 경기도 연천군 대부분, 개풍군·장단군·포천군의 각 북반부.[3]
정전 협정에 따른 군사분계선[편집]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은 3년 1개월 만인 1953년 7월 27일 정전이 이루어졌다. 한국 전쟁의 정전 협정에 따라 설정된 군사분계선은 위도상 북위 38도 부근에 위치하고 있지만, 38선과 비교해 서쪽 경계가 남하하였고 동쪽 경계가 북상하였다.
- 수복지구 : 수복지구(收復地區)는 북위 38도 이북 중 한국전쟁의 정전협정에 따라 대한민국에 편입된 군사분계선 이남 지역을 말한다. 38선 동북쪽의 강원도 철원군·김화군 일부(1963년 철원군에 편입)·화천군·양구군·인제군·양양군·고성군, 속초시와 경기도 연천군, 포천시가 이에 해당한다. 휴전 이듬해인 1954년 수복지구의 행정권이 UN 군에서 대한민국 정부로 이양되어 이들 군을 정식으로 재설치하였다.
- 신해방지구 : 신해방지구(新解放地區)는 북위 38도 이남 중 한국전쟁의 정전협정에 따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편입된 군사분계선 이북 지역을 말한다. 서해 5도를 제외한 38선 이남의 황해도 옹진군·연백군과 경기도 개성시·개풍군 및 장단 군의 거의 대부분이 군사분계선 이북 지역이 되었다.
- 해상경계선 : 정전협정 당시 육상의 군사분계선은 합의되었으나, 해상 경계선에 관하여는 연안 수역의 범위를 둘러싸고 3해리를 주장한 유엔군 사령부와 12해리를 주장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입장 차이 때문에 명확한 합의 없이 "연해의 섬 및 해면에 관한 통제권은 1950년 6월 24일 이전을 기준으로 하되, 서해 5도(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는 UN군 사령관 관할 아래 둔다."는 단서규정만을 두었다.[3]
민간인출입통제구역[편집]
민간인 출입통제구역(民間人出入統制區域, 영어: Civilian Control Zone, CCZ)은 군사분계선 인근의 군사 작전 및 군사시설 보호와 보안유지 등의 목적으로 민간인의 출입을 일부 제한하는 구역이다. 비무장지대(DMZ)의 남방한계선 남쪽 5~10km에 걸쳐 있는 민간인의 출입이 일부 제한된 지역으로, 이 지역의 경계선은 민통선(민간인 출입통제선, 영어: Civilian Control Line, CCL)이라고 부른다. 민통선은 1954년 2월 미8군이 군사시설 보안 등을 목적으로 민간인의 경작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설정한 귀농선(歸農線)에서 시작되었다. 민간인출입통제구역 내에서는 군사 작전 및 보안 유지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민간인의 영농을 위한 토지 이용이 허용되지만, 경작권을 제외한 토지소유권의 행사, 지역 내의 출입과 행동 등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이 국가안보상의 필요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3]
관련 기사[편집]
강원도 접경 지역은 저미는 분단의 아픔이 여전한 현장이고 유례가 드문 군사 밀집 지역이다. 당연히 갖은 규제가 중첩되면서 낙후와 희생의 멍에를 운명으로 감당한 애잔한 땅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수십년 민간인 출입이 제한되면서 세계적인 청정 생태지역으로 남게 되는 역설 아닌 역설도 만들어졌다. 혹자는 냉전이 만든 설치 예술이라고까지 한다. 접경 지역은 지난 70여 년간 국가 안보를 지키는 중추적인 역할을 해 왔으며, 군사분계선과 인접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불편과 고충을 감내하면서도 자부심을 갖고 이 땅을 지켜왔다. 그러나 국가 안보에 대한 부담은 접경 지역에 집중되며 다른 지역보다 개발이 제한돼 왔다. 즉,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 등 강력한 규제를 중복적으로 적용받고 있어 지역개발이 어려운 실정이다. 이로 인해 낙후된 인프라는 주민의 불편함을 가중시켜 왔으며, 지역의 최대 위기인 인구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접경 지역의 문제는 이처럼 과거의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한편, 새롭게 펼쳐질 남북교류의 중심지역으로서 미래 비전을 밝히는 것이어야 한다.[5]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군사분계선〉, 《네이버 국어사전》
- 〈한반도 군사분계선〉, 《위키백과》
- 〈군사분계선〉, 《나무위키》
- 〈군사분계선〉, 《북한정보포털》
- 〈경지역 활성화, 특례 법안 관철에 달렸다〉, 《강원일보》, 2022-11-30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