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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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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위치
홍콩 위치

남구(중국어: 南区 nán qū)는 중국 홍콩 남부에 위치해 있는 구다. [1][2][3][4]

개요

남구의 면적은 38.8km²이며 인구는 278,655명(2016)이다. 남구를 다룽완(大浪灣), 애버딘(샹강쯔, 힁공싸이, 香港仔), 압리저우(鴨脷洲), 전신 베이(공신완, 鋼綫灣), 폭푸린(薄扶林), 황주강(黃竹坑), 딥워터베이(선수이완, 삼수이완, 深水灣), 전수이완(친수이완, 淺水灣), 첵취(스탠리, 赤柱), 다이탄(大潭), 스아오(石澳) 등을 포함한다. 홍콩해양공원(香港海洋公園)은 황추 강에 위치한다.

남구는 과거 서구와 동구에 각각 속해 있었으며, 현재 남구의 적수와 석오 선거구(D17)는 과거 동구에 속했고, 나머지 지역은 서구에 속해 있었다. 1981년, 대의 정치제도 발전에 따라 정부는 인구 분포를 기준으로 재구획을 실시하여 각 구의 인구를 비슷하게 조정하였다. 이에 따라 서구의 모싱링다오 이남 지역과 동구의 적수 및 석오 지역을 통합해 남구를 형성했고, 나머지 서구는 중구와 합쳐 중서구로 재편되었다. 또한, 치력산과 전만산 사이의 일부 지역도 조정되어 기존 중구와 서구에 속했던 지역이 각각 남구와 중서구로 나뉘었다.

남구 지역에는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하였으며, 현재 황죽갱 암각화 같은 유적이 남아 있다. 명나라 시기에는 남구 일대에 더 많은 사람이 모여 살기 시작했지만, 주로 아버딘과 계롱만에 거주하던 어부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아버딘의 석배만은 향목(香木) 제품의 중계 무역지로 유명했다. 당시 곽패가 편찬한 《월대기(粤大记)》에는 현재 남구에 위치한 여러 지명이 기록되어 있다.

박푸람 저수지가 건설되기 전, 산에서 흐르는 물은 폭포만의 폭포를 통해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 폭포만은 광저우와 외국 간 해상 무역로와 가까워 많은 국내외 선원들이 이곳에서 담수를 보급하곤 했다. 또한, 박푸람촌과 황죽갱 구위는 홍콩 섬에서 원주민들이 세운 몇 안 되는 마을로, 이들은 신계 원주민과 동등한 대우를 요구했으나 정부로부터 거절당했다.

홍콩 개항 당시 적수는 홍콩섬에서 가장 번성한 지역으로, 영국인들은 적수를 개발 거점으로 삼으려 했었다. 그러나 적수의 땅이 협소하고 당시 전염병이 발발하면서, 영국인들은 홍콩섬 북쪽 해안으로 개발 방향을 돌렸고, 적수는 계속해서 중국인들이 거주하는 주요 지역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5][6]

자연환경

남구는 남쪽으로 남중국해에 면해있고 북쪽으로 언덕저수지를 배후에 둔다. 구의 동부는 반 농촌 지역이고 홍콩에서 가장 인기있는 해변의 일부가 있다. 구의 서부는 주택지와 공업지가 혼재되어 있다.

홍콩은 중국 남부의 온대 하우 기후 (쾨펜의 기후 구분 Cwa) 특성을 지니고 있다. 홍콩의 여름은 따뜻한 남서풍과 가끔씩 오는 소나기와 뇌우 등의 영향으로 대체로 덥고 습하다. 태풍은 여름에 가장 자주 발생하며 때때로 홍수와 산사태를 일으킨다. 겨울은 온화하며 초반에는 화창하나 대체로 2월부터 흐려지며, 가끔 발생되는 한랭전선은 북쪽에서 강하고 차가운 바람을 가져온다.

홍콩에서 가장 온화한 계절은 봄과 가을으로, 봄 기간은 날씨가 변덕스러우며, 가을은 일반적으로 맑고 건조하다. 강설은 극히 드물며, 대개 고도가 높은 지역에서 발생한다. 홍콩은 인접한 중국 대륙의 공업 지대에서 계절적인 대기 오염의 영향으로, 겨울에 굉장히 높은 수준의 미세먼지를 기록한다.

최한월인 1월 평균기온은 약 16℃, 평균최고기온 19℃, 평균최저기온 14℃ 정도로 한국 수도권의 10월 초 날씨와 비슷하며, 최난월인 7월 평균기온은 약 29℃, 평균최고기온 32℃, 평균최저기온 27℃ 정도로 일본 오사카와 비슷하다. 연평균 강수량은 약 2,400㎜인데 5월부터 9월까지 집중되는 편이다.

역대 최고기온만 놓고 보자면 북쪽에 있는 중국 대륙(본토)와 한국, 일본의 도시보다 평균 대략 5℃ 가량 더 낮다. 즉 여름철 평균기온 자체는 한국보다 높지만 연중 최고기온이 35℃를 넘는 해는 생각보다 드문 편이었으나 요즘 지구온난화 때문에 많이 더워지는 추세이다. 단 습도가 매우 높아 체감온도는 대구광역시 이상이다. 애초 7월 평균기온 자체가 30℃에 육박한다. 공식 역대 최고기온이 36.6℃다. 일단 해안도시여서 바다가 열 창고 역할을 해주기도 하고, 대외적인 인식과 달리 구름이 많아 흐린 날이 많고 연간 일조량이 적기 때문이다. 이 두 요인이 겹쳐 동절기에도 미미한 일교차가 하절기에는 1°C에도 못 미치는 기염을 토한다고도 하는데 그것보단 크다. 덕분에 이슬점도 밤낮에 따른 변동이 없고, 수증기는 바다에서 꾸준히 공급되므로 습도의 변동 역시 미미하다. 따라서, 5~9월 홍콩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평균 기온이 섭씨 28℃, 습도 80% 이상을 유지한다.

종합해보면 4-11월의 길고 무더운 여름과 12-3월의 짧고 서늘한 겨울의 두 계절로 나눠진다고 볼 수 있다. 5-10월 사이 다섯 달 정도는 태풍이 흔히 내습하며 그 덕에 홍콩의 해안지대는 여기저기 태풍 대피소인 타이푼 셸터(Typhoon Shelter)가 조성되어 있다. 홍콩 국제공항도 지하에 태풍 대피소를 둘 정도로 태풍이 흔하다. 한국에서 부산이나 여수, 제주도 등 남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여름에서 초가을 사이 태풍에 자주 시달리는 것과 똑같다.[33] 10월 태풍은 한국에선 진짜 드물게 남부 지방으로 오지만 홍콩에선 11월 초까진 태풍에 대해 마음을 놓지 못하며 가끔 2017년 하토 및 2018년 망쿳 등 슈퍼태풍이 관통해 피해가 커지기도 한다.

태풍이 자주 내습해서 홍콩의 태풍 경보 시스템은 일본과 함께 아주 잘 되어 있는 편이다. 5단계로 나누어져 1호는 유의, 3호는 경계, 8호는 위험, 9호와 10호는 초위험경보이다. 8호경보가 발령되면 식당 등 상점도 문을 닫으며 직장은 쉬거나 재택근무, 학교는 휴교로 돌린다. 홍콩 버스, 홍콩 트램 등 지상 교통수단이 경보 발령 2시간후에 운영을 종료하는 대신 MTR는 계속 운행한다. 홍콩 국제공항은 항공기 이착륙이 무조건 금지되지 않지만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따라 제한될 수 있다. 대부분 태풍의 위력이 8호경보의 수준에서 그치지만 풍속이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면 9호경보가 발령된다. 이때 MTR지상구간에서 운행하고 있는 열차들도 다음 역에 도착하는 즉시 운행을 중단하고 경우에 따라 발이 묶인 승객들의 휴식공간으로 역대합실이나 열차를 개방한다. 10호경보는 보기 드문 편이었으나 지구온난화로 인해 점점 잦아지고 있다. 홍콩 반환 이후에 총 5번을 발령했는데 각각 1999년 태풍 요크, 2012년 태풍 빈센트, 2017년 태풍 하토, 2018년 태풍 망쿳, 2023년 태풍 사올라이다.

역사

홍콩이 영국에 할양되기 전인 1830년대 처음 홍콩에 온 영국인은 홍콩이 척박한 땅이었다고 했지만, 이미 홍콩에는 중국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 사당, 사원. 밭, 집이 있었고 사업을 하거나 그 외 일상적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이루어 거주하고 있었다. 원나라 시기에 홍콩은 농부, 어부, 해적, 송나라의 귀족 등 다양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었고, 명나라 때는 광동과 푸젠(福建) 사람들이 구룡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1839년 시작된 제1차 중영전쟁이 영국의 승리로 끝나면서 1842년 난징조약으로 인해 청나라는 홍콩섬을 영국에 할양했다. 중영전쟁은 '아편전쟁'이라고도 불리는데, 영국의 아편 밀무역으로 청에 급속히 확산된 아편 중독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청나라는 아편 금지령을 내렸지만, 영국이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아편 밀무역을 시도하면서 은의 대량 유출과 아편 중독 현상이 심각해졌다. 청나라가 아편 밀무역을 제지하면서 이에 반발한 영국이 전쟁을 일으켰다.

이후 1857년 수출 부진을 빌미로 영국이 제2차 중영전쟁을 일으켰다. 난징조약으로 청나라와의 교역을 통해 이익을 얻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성과가 부진하자 다시 무력을 쓴 것이다. 청나라가 또다시 패배하면서 1860년에는 1차 베이징조약에 따라 구룡이 영국에 할양되었다. 1898년에는 영국이 2차 베이징조약을 통해 99년 동안 신계 지역을 조차하였다. 50여 년에 걸쳐 홍콩섬, 구룡, 신계 등 지금의 홍콩을 구성하는 세 지역이 모두 영국의 관할권이 된 것이다. 1941년 일본이 아시아∙태평양 전쟁을 계기로 홍콩을 점령하면서 1945년까지 약 3년 8개월 동안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던 기간을 제외하면 홍콩은 156년 이상 영국의 식민지였다.

영국의 식민지배 아래에서 홍콩은 항구도시로서 경제적으로 번영했고 상업과 금융의 중심지가 되었다. 경제적 번성은 정치적 무관심을 낳기도 했지만, 영국의 식민지배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세기 60년대, 황포 선창이 홍콩 아버딘 건조조를 인수하여 개발하였다. 20세기 50년대부터 홍콩의 산업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황죽갱 일대는 산업 지구로 발전하였다.

남구 지역은 20세기 60년대 이전까지 주로 어부들의 주요 거주지였다. 1961년 홍콩 인구 조사에 따르면, 현재 남구에 해당하는 지역의 어민 수는 28,000명으로, 당시 홍콩의 전체 어민 중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였다. 20세기 6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부는 남구 개발을 시작하였고, 그 일환으로 어광촌, 석배만 촌, 화부촌 등 공공 주택을 건설하여 많은 어민들이 육지에 정착할 수 있도록 했다. 일부 부유한 어민들은 아필조 북안의 아필조 대가에 거주하며 상점을 열기도 했다.[7]

산업

사이버포트가 있어서 홍콩에 있는 수많은 IT 기업들이 즐비하다. 사실 홍콩섬 중에서도 남구에서 민주파가 초강세를 띠는 것도 보수적인 금융가와 달리 진보적인 IT 업체들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교통

MTR 남부섬선이 애드미럴티역에서 출발하여 사우스호라이즌역까지만 들어온다. 서부섬선 계획이 있었는데 날아갔으나,다행히 이후 남부섬선계획의 서부구간으로 재추진되고 있다.그래서 사이버포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교통이 아주 편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도

동영상

각주

  1. 남구 (홍콩)〉, 《위키백과》
  2. 남구(홍콩)〉, 《나무위키》
  3. 홍콩〉, 《위키백과》
  4. 홍콩〉, 《나무위키》
  5. 중국행정구획총람: 난구〉, 《네이버 지식백과》
  6. 南区〉, 《百度百科》
  7. 두산백과: 홍콩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

같이 보기

동아시아 같이 보기

동아시아 국가
동아시아 도시
동아시아 지리
동아시아 바다
동아시아 섬
동아시아 강
동아시아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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