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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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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위치

청더시(중국어: 承德市 chéng dé shì)는 중국 허베이성 동북부에 위치해 있는 지급시이다. [1][2][3][4]

개요[편집]

청더시의 면적은 39,519㎢이며 인구는 3,354,444명(2020년)이다. 베이징시에서 동북쪽으로 250km, 장자커우시에서 동쪽으로 400km가량 떨어져 있다. 서남은 베이징시, 서쪽은 허베이성 장자커우시, 북쪽은 내몽골 자치구, 동쪽은 내몽골 자치구 츠펑시, 남쪽은 허베이성 친황다오시탕산시과 접한다. 시 지역은 루안 강 수계에 속한다.

만리장성의 북쪽의 러허강에 접했는데, 18세기에는 강의 이름을 따 열하(熱河)로 불리며 청나라 황실의 여름 별궁 피서산장으로 쓰였다. 특히 건륭제가 즐겨 찾았다고. 당시 이궁과 티베트 불교(라마교) 사원은 현재까지 지나 북쪽 외곽에 웅장한 규모로 남아 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한국에서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등장하여 유명한 도시이다.

세계유산에 등록된 청대의 별궁인 피서산장이나 외팔묘가 있는 국가역사문화명성이다. 피서산장 외에도 시가지 서부 솽롼구 (双滦区)의 솽타산 (双塔山, 쌍탑산), 동부 솽차오구 (双桥区)의 칭추이펑 (磬锤峰, 경추봉) 등 자연 관광지도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중국 내에서는 베이징 근교의 산악 리조트 단지로, 현재까지도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다.

징청철도로 베이징과 연락되고 진청철도로 진저우와 연결된다. 부근은 농목업이 활발하여 모피·곡물·차·펠트 등의 거래가 활발하다.[5] [6]

자연환경[편집]

옌산산맥의 시원한 고원지대에 있다. 지리적으로는 서북이 높고 동남이 낮으며 경내의 20여 개 하천은 70% 이상이 롼하(滦河, 란하) 수계에 속한다. 기후는 온대대륙성계풍기후에 속하며 연 강수량은 542㎜, 연평균 기온은 8.8℃, 1월 9.3℃, 7월 24.3℃이다.

역사[편집]

고대부터 평야 지대를 바탕으로 관중(산시성)-중원(허난성) 등과 더불어 가장 풍요로운 동네였기 때문에 하북을 근거지로 삼았던 원소는 군웅할거 초창기에 최강의 세력을 구축했고 원소를 쓰러뜨린 조조 역시 관중-중원과 더불어 이곳에서 나오는 국력을 바탕으로 촉과 오를 압도할 수 있었다. 게다가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 같은 북방의 수렵, 유목민족이 세운 정복왕조 역시 수도권을 화북지역으로 자리잡으며 정치 중심지가 점차 황하 유역에서 이곳으로 이동하였다.

춘추전국시대부터는 지금의 베이징 지방이 '계'라는 지명으로 불리기 시작해 연나라의 중심지가 되었다는 게 다수설의 견해다. 전한대에는 '유주'라는 행정구역으로 편성되어 그렇게 불렸다. 삼국시대에는 공손찬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 후한 말에 유비, 관우, 장비가 그 유명한 도원결의를 맺은 곳도 지금의 이 지역이다. 조운의 출생지도 허베이성 쪽인 상산 진정이다. 조운이나 장비가 자신을 소개할 때 '연'인 장비, '상산'의 조자룡이라고 하는 것도 자기 고향을 말하는 것이다.

이후 삼국을 통일한 서진이 북방 민족의 침입을 받아 허베이 지역을 빼앗겼는데 이때 이곳에 전연, 후연 등의 나라들이 들어섰다. 수나라, 당나라 시대에는 한족의 문화권에 들어갔지만 변방에 불과한 상황이었다. 북쪽인 점도 있고, 타 민족의 침입이 상당히 잦았다.

5대 10국 시대의 마지막에 이 지역을 연운 16주라는 이름으로 거란에게 뺏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후 통일 왕조인 글로벌호구 북송이 몇 번이고 이 지역을 탈환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송의 떨어지는 군사력으로는 거란(요)을 쓰러뜨릴 수 없었다.요나라가 쓰러지지 않아 그래서 여진족(금)과 연합해 거란을 뭉개고 이 지역을 탈환했으나 곧바로 금에게 뒷통수를 털리고 이번엔 화북 전체를 먹혀 버린다.

그리고 금이 멸망하고 원나라가 들어서자 마침내 이 지역은 제국의 중심지로 거듭난다. 명나라와 청나라 역시 이 지역을 수도로 삼으면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곳으로 떠올라 지금에 이르고 있다.

명나라 때와 청나라 때는 수도 베이징에 직접 예속된다는 의미인 즈리성(直隸省)이라고 불렀고, 중화민국이 된 뒤에도 북양정부의 수도가 북경에 있었기 때문에 계속 직예성으로 불리다가 국민당의 2차 북벌로 북양정부가 무너지고 1928년 6월 국민정부가 베이징까지 점령하면서 베이징은 베이핑으로, 직예성은 하북성으로 개칭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지역의 군벌은 직예군벌로 불렸다. 1914년에 기존 순천부가 경조지방으로 개편되어 즈리성에서 분리되었고, 이때 기존에 순천부 관할이었던 24개 현 중 바오안(保安), 원안(文安), 다청(大城), 닝허(寧河)의 4개 현을 넘겨받았다. 행정구역 개편으로 내몽골 지역에 차하얼 특별행정구와 러허 특별행정구가 설치되면서 이들 특별행정구에 북부 지역을 내주어 면적이 축소되었다. 1928년에는 경조지방이 폐지되어 중심 시가지만 베이핑시로 남으면서 경조지방에 속해 있던 현들을 넘겨받았다.

1933년 열하사변으로 일본군의 침공을 받았고 하북 사건을 구실로 1935년 6월 10일 하매 협정이 체결되면서 일본의 영향력이 확대되었으며 1935년 11월 25일, 기동사변으로 기동방공자치위원회가 수립되었고 1936년 지둥방공자치정부로 거듭나면서 500만에 달하는 인구가 일본의 지배에 들어갔다. 1937년 루거우차오 사건이 발생하면서 중일전쟁이 이곳에서 일어났으며 항전 기간 동안 일본군의 점령지로 8년을 점령당했고 신멸작전이 벌어져 대규모 학살이 벌어진 곳이다. 이 학살로 당시 세를 불리며 거대해지던 팔로군의 기세가 꺾였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수도를 다시 베이징에 두었지만 다시 즈리성으로 이름이 바뀌지는 않았다. 중화민국 말기 허베이성 정부는 베이핑시에 있었으나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직전 바오딩시에 허베이성 인민정부를 설치하면서 바오딩시로 성도가 옮겨졌다. 이후 베이징시 주변 상당 지역이 베이징시에 편입되고 차하얼성과 러허성이 1952년과 1955년에 각각 폐지되면서 그 남부 지역을 다시 편입했으며 1958년에는 톈진시를 재편입하여 톈진시로 성정부를 이전하였다. 톈진시가 1967년에 다시 직할시로 분리되면서 바오딩시를 성도로 삼았으나 당시 문화대혁명의 영향으로 성도 기능을 할 수 없어 이듬해에 스자좡으로 다시 허베이성 성정부를 이전하여 현재까지 스자좡을 성도로 삼고 있다.

1928년 중화민국 초기에 러허성이 세워지면서 청더 시도 여기에 속했다가 1955년 중화인민공화국 때 러허성을 폐지하였고 청더시는 허베이성에 속하게 되었다.

청더시인민정부는 솽차오구(双桥区, 쌍교구)에 소재하며 행정구획은 솽차오구(双桥区, 쌍교구), 솽롼구(双滦区, 쌍란구), 잉슈잉지쾅구(鹰手营子矿区, 응수영자광구)의 3개 시할구(市辖区)와 청더현(承德县, 승덕현), 싱룽현(兴隆县, 흥륭현), 핑취안현(平泉县, 평천현), 롼핑현(滦平县, 란평현), 룽화현(隆化县, 융화현)의 5개 현, 펑닝만족자치현(丰宁满族自治县, 풍녕만족자치현), 콴청만족자치현(宽城满族自治县, 관성만족자치현), 웨이창만족몽고족 자치현(围场满族蒙古族自治县, 위장만족몽고족자치현)의 3개 자치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관광[편집]

시 중심부에는 현존 중국의 최대 황가 정원으로 청 황제의 여름 궁전이었으며, 열하행궁(热河行宫) 또는 청더이궁(承德离宫, 승덕이궁)으로 불리며 1994년 UNESCO에 의해 세계문화유산(世界文化遗产)으로 등재된 피서산장(避暑山庄)과 외팔묘(外八庙)가 있다. 또한 세계 최대의 목제 불상 천수천안관세음(千手千眼观世音), 만리장성의 일부로 웅장한 진산링장성(金山岭长城, 금산령장성)과 더불어 천하제일기송(天下第一奇松)이라고 칭해지는 구룡송(九龙松) 등이 있다.

경내에는 피서산장(避暑山庄)과 외팔묘 중 보녕사(普宁寺), 수상사(殊像寺), 보타종승지묘(普陀宗乘之庙), 안원묘(安远庙), 수미복수지묘(须弥福寿之庙) 및 청더성황묘(承德城隍庙), 부인사(溥仁寺), 보악사(普乐寺), 진산령장성(金山岭长城), 회주성(会州城)이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다.

표준중국어와의 관계[편집]

청더시 관할 현(县)인 롼핑현(滦平县)은 공식적으로 표준중국어의 근원지로 인정받고 있다. 명나라 시절 영락제는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김과 동시에 수도의 군사적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현재 롼핑현에 해당하는 지역을 포함한 만리장성 부근 지역을 모조리 군사적 금지구역으로 지정하여 모든 주민들이 쫒겨났고 한동안 황무지로 남게 된다. 청나라의 대륙 정복 이후 강희제가 이곳에 피서산장을 지으며 황무지였던 곳이 개발되기 시작했고, 비슷한 시기 마침 청나라 황실에서는 베이징 관화 사용 정책을 추진했다. 이렇게 청나라 황실 구성원들과 고위 관료들이 쓰는 관화가 이곳 주민들에게도 동화되어 점점 롼핑 방언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되고, 주로 후퉁(胡同)에서 사용되는 베이징의 민간 방언은 소위 얼화인(儿化音)이라고 하는 권설음화와, 여러 글자를 연결하거나 아예 생략하는 연음(連音) 현상이 강한데 반해, 롼핑현의 방언은 관화의 또렷하고 깨끗한 발음과 적당한 발음속도가 잘 보존된 덕에 표준중국어의 제정 과정에서 이곳 주민들의 발음을 상당수 참고했다고 한다. 현재 롼핑현에 가보면 보통화 추진 교육 관련 시설이나 표어들이 많이 보이고, 노년층을 비롯한 대부분 주민들이 아나운서급 표준적인 중국어 발음을 구사한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롼핑 방언이 곧 표준중국어라는 의미는 절대 아니며 둘 사이에는 아주 근소한 차이가 존재한다. 보통화의 공식 정의에도 베이징 음성을 표준음으로 하고, 북방어를 기초 방언으로 하며 롼핑현에 대한 언급은 없다. 범국가적인 표준중국어 교육 추진을 위해 마침 과거 중국어 발음 조사지 중 하나였던 이곳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표준중국어의 근원지로 지정한 것일 수도 있다. 대한민국 표준어가 '서울 방언을 기반으로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말'이라고 정의한다고 서울 방언이 표준어가 아니듯이 말이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청더시〉, 《위키백과》
  2. 청더시〉, 《나무위키》
  3. 허베이성〉, 《위키백과》
  4. 허베이성〉, 《나무위키》
  5. 두산백과: 청더〉, 《네이버 지식백과》
  6. 중국행정구획총람: 청더시〉,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국가
동아시아 도시
동아시아 지리
동아시아 바다
동아시아 섬
동아시아 강
동아시아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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