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뮌
코뮌(commune)은 프랑스의 최하위 행정 구역이다. 프랑스 낱말 코뮌은 12세기에 "공동 생활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의 작은 모임"을 뜻하는 중세 라틴어 코뮌에 처음 나타났다. 더 거슬러 올라가 라틴어 코뮌은 함께 모인다는 것을 뜻한다.[1][2]
개요
프랑스 본토는 13개의 레지옹(Région)으로 나뉘며, 다시 95개의 데파르트망(Départements), 332개의 아롱디스망(Arrondissements), 2,054개의 캉통(Canton), 36,644개의 코뮌(Commune) 등으로 나뉜다. 이 중 레지옹, 데파르트망, 코뮌은 자치권이 있으나, 아롱디스망, 캉통에는 자치권이 없다.
프랑스의 코뮌은 미국의 자치체, 스위스·독일의 게마인덴과 거의 유사하며, 최하위 행정구역 단위로서는 대체로 대한민국의 읍·면·리의 위치로 볼 수 있으나, 파리가 하나의 거대한 코뮌으로 취급되고 그 밑에 시급 아롱디스망 (대한민국의 구)를 둔다는 예외가 있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한편 이웃 나라 영국과는 어느 행정구역 단위와 딱 맞아 떨어지는 동의어가 없으며 지방 행정구와 비대 도시권 의회 사이의 지위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코뮌은 파리시와 같이 200만의 거주자가 있는 도시일 수 있고, 10,000명이 사는 마을이 될 수 있고 겨우 10명이 사는 촌락일 수 있다. 뫼즈주의 6개 코뮌은 베르됭 전투에서 완전히 파괴된 후 재건되지 않은 채 행정구역을 존치시켰기 때문에 주민이 없다.
프랑스 코뮌에는 이른바 부속 코뮌 (associated communes)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1971년 제정된 코뮌 합병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특정 코뮌이 다른 코뮌에 말하자면 자발적으로 부속되는 것이다.이 경우 기존 코뮌은 사라지지 않고 코뮌의 명칭이나 명목적 지위는 유지되고, 코뮌을 구성하는 직책, 기관들은 명목상으로는 존재한다. 하지만, 실제적 행정은 부속되어 합병한 코뮌이 수행하는 것이다. 부속코뮌은 원하면 다시 독립 코뮌의 원상태로 복귀할 수도 있다. 2009년에는 약 700 여개의 부속코뮌이 있으며, 약 20년간 700여개의 숫자가 유지되고 있다.
부속 코뮌과는 다른 것이 인터코뮌 (Intercommunalités)인데, 인터코뮌이란 코뮌들 간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권한의 전부 또는 일부를 결집하여 협력적 권한 행사를 하기 위해 새로운 기구나 작동체를 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속코뮌이 자신의 실제적 권한과 조직을 전부 포기하여 다른 코뮌에 종속된 것이라면, 코뮌으로서의 자신의 권한과 조직을 좀 더 확대된 형태에서 발휘하는 것이 인터코뮌이라 할 수 있다.
인터 코뮌에서는 기존 독립 코뮌에서처럼 독립적이고 배타적으로 권한과 책임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고 협력적, 합의적 권한 행사다. 이때 인터 코뮌의 대표나 장은 가장 인구가 많은 코뮌 의회나 시장이 주도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인터 코뮌은 프랑스 코뮌의 대부분이 참여하고 있으므로, 일종의 또하나의 프랑스 행정 구역인 셈이고 행정 구역의 성격이나 크기로 보았을 때, 데파르트망과 코뮌의 사이에 위치한 행정구역인 셈이다. 인터 코뮌은 너무 잘게 나눠진 프랑스 코뮌 제도 또는 현실 하에서 통합 행정의 필요성이 커져서 등장한 프랑스 코뮌 제도의 보완적 수단이라 할 수 있으며, 100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가지면서 확대, 발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도시가 성장하면서 도시 코뮌들이 자신의 도시 교외 코뮌들이나 인근 코뮌들과 같은 생활권으로 묶이면서 필연적으로 행정적 협력의 필요성이 대두되게 되는데, 이 때문에 도시 코뮌과 도시 근교 (교외) 코뮌들간에 이뤄지는 인터코뮌의 형태는 다양한 인터코뮌 형태 중에서도 결속력이 강한 형태를 띄게 된다.
코뮌보다는 인터코뮌이 같은 생활권을 더 잘 나타내주는 실체이므로 인터코뮌 단위의 통계가 많이 제시되고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도시 인구 통계에서는, 코뮌의 통계가 제시되기도 하지만, 인터코뮌의 통계가 대표 코뮌 (가장 인구가 많은 코뮌 즉, 중심 도시)의 이름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도시 통계를 참조할 때 혼동이 있을 수 있는데, 제시된 통계가 코뮌 통계인지, 인터코뮌 통계인지 또는 인터코뮌을 넘어서는 도시 생활권 통계인지를 구분해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도시 생활권 통계는 인터코뮌으로 묶이지는 않았지만 즉, 인터코뮌이라는 공적 연합체 (또는 협력체)에 함께 구성되어 있지 않은 코뮌일지라도 같은 생활권이면 해당 인구를 감안하여 대표 도시의 인구 통계에 삽입하는 것이다. 도시생활권 통계의 경우 유럽 통계에서 등장하는데, 각국 간의 다른 행정 제도때문에 비교가 용이하지 않아일정 기준에 의거 도시 생활권의 개념을 규정하고, 그 개념과 기준에 맞추어 유럽연합 내 모든 도시생활권 인구를 파악하는 것임.
2014년 1월 인터코뮌은, 12,159개의 연합체, (EPCI로 불림, 2,145개의 코뮌간 재정 연합체, 10,014개의 코뮌 간 일반 연합체, 재정 연합체는 코뮌 간 통합 조세를 운영하고 인터 코뮌이 고유한 세원 (세제 항목)을 확보하고 있는데 반해, 일반 연합체는 코뮌 간 통합 조세를 운영하지 않고 각 코뮌이 개별 조세한 세액에서 인터코뮌에 분담금을 내는 방식임. 따라서 재정 연합체가 가장 강력한 형태의 인터코뮌 (코뮌간 협력 또는 결합 방식)이다,[3] [4]
역사
고중세 (11세기~12세기)부터 나타난 주민들의 자치 공동체. 11세기부터 이탈리아 북부에서부터 발달하기 시작했으며 12세기부터는 독일 북부, 플랑드르, 프랑스, 이베리아 반도 등에도 도시가 발달하며 속속 들어서기 시작한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이미 당대에도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흔히 '코뮌 운동'으로 불리고는 했다. 코뮌 하 도시는 주민의 자치적 의회(시참사회 또는 시의회)를 조직하고 재판관과 집정관을 선출해서 자치적인 행정을 행했다.
이런 중세 자치도시의 발달은 지역별로 다르게 나타났는데, 북이탈리아는 주교구를 중심으로 하는, 도시 하나가 곧 자치적인 국가로 발달하는 형태를 보였다. 자치성이 강한 이탈리아 북부 도시들은 명목상으로는 신성로마제국의 영토였는데도 황제의 지배에 저항하는 반항적인 신민들이 되었다. 특히 11세기 이래로 시작된 신롬 황제와 교황의 대립은 주교구를 중심으로 하는 북이탈리아 도시들의 특성상 매우 뜨거운 떡밥이 되었고, 각 도시들이 구엘프(교황)와 기벨린(황제)으로 당파가 나뉘어 대립하게 만드는 결과를 만들었다. 신롬 황제도 북이탈리아에서 지배권을 안정시키고 싶어했지만, 황제들이 이탈리아로 원정만 나가면 독일 제후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등 거의 모든 황제들의 노력에 악재가 겹쳐서 14세기 무렵부터는 황제들도 그냥 이탈리아를 방치하게 된다.
반면 독일 내 도시들은 쾰른처럼 주교도시가 많았는데, 이곳 도시민은 유력 영역제후나 교황파 주교후에 맞서 황제를 지지하면서 특허장을 얻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났으며, 주교들과의 대립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것은 다름아닌 주교의 가신인 가인(ministerialis/미니스테리알레)들이었다. 이들은 도시에 주재하면서 사법이나 행정업무를 담당하였으므로 상공인이나 노동자로서 거주하던 일반 도시민과 생활공동체를 공유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근원이 장원의 해방농노 출신이라는 공통점도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기존 도시영주, 특히 교회와 마찰을 빚었으나, 도시 자체가 상업 발전과 제국 동역의 장악이라는 관점에서는 큰 도움이 되었기에, 황제나 제후의 지원 하에 보헤미아 등 슬라브인 지역에 대한 정복과 장악의 일환으로 도시가 적극 조성되었으며, 이주 동기를 마련하고자 여러 특권을 인정하면서 자연스럽게 코뮌과 도시법이 확산되었다.
프랑스는 지방별로 자유도시의 유형이 다르게 나타났는데, 특히 북부에 제일 먼저 코뮌 도시(ville de commune)가 나타났다. 이들 코뮌 도시도 도시영주인 주교들과 대립이나 타협으로써 자치권을 획득해나갔고, 종종 지방 유력 영주나 교회에 맞서 국왕과 제휴하고는 하였다.[1] 특히 플란데런의 도시들은 도시 간 연대에 적극적이어서 지역 백작의 공위 발생 시 후임 백작 임명을 놓고서 국왕이나 유력 제후에 맞서고 주장을 관철할만한 수준으로까지 성장하였다.[2]
스페인에선 레콩키스타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무어인들에게서 정복한 도시 인구와 세수를 늘리고 전쟁터였던 지방을 재개발하기 위해 유민들을 이끌어 모으는 과정에서 스페인어로는 Fuero라 하는 도시 자치권이 제도화되면서 특히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 이후 카스티야, 아라곤 양 왕국이 확장하는 과정에서 자리잡았다. 이쪽의 경우 국체의 기원 자체가 변경지대 종교전쟁이다 보니 정복지 흡수, 재정착, 호구 조사 밑 행정력 확대 과정에서 아예 봉건/성직 귀족 장원의 마을들 제외하곤 작은 시골마을부터 중세 카스티야 최대의 시장터였던 메디나 델 캄포 같은 대도시까지 모두 일괄적으로 카스티야 삼부회 (cortes generales)에서 투표권이 있는 자치 주도 도시들에게 종속되어 있었다. 이러다보니 이탈리아 도시국가들과 비슷하게 도시 자치정부, 인근 봉건/성직 영주, 영주 산하 봉건 농민, 자치도시 산하 마을 농민 같은 각종 이해집단들이 지속적으로 충돌하면서 이를 찍어 누를 힘은 애초에 없으니[3] 강력한 중앙 행정 권력보단 대신 각종 이해집단간 중재자로서 권위를 쌓는 스페인 특유의 정치구조가 발생하게 된다.
레콘키스타가 끝나고 신대륙 발견, 각종 유럽 대륙 패권 경쟁에 끼어드는 거시적 변화가 생기면서 이베리아 도시들의 자치권과 입지도 크게 위협받게 되는데 이런 중세 자치도시들과 성장하는 왕실권력, 그리고 그 사이에 낀 군사적 실세였던 봉건 귀족들간 관계 조율 실패는 결국 1520년 압스부르고 왕조가 들어온지 얼마 안되 스페인 밖에서 신성로마제국 황제 선거를 비롯한 합스부르크 가문의 사적 사업에 카스티야 시민들의 세금 징발 문제가 기폭제가 되면서 코뮤네로 운동이란 초대형 반란으로 이어졌다. 한때는 삼부회 투표도시 18개 중 무려 14이 일시적으로나마 혁명정부에 동참할만큼 크게 불타올랐던 코뮤네로 운동은 단순한 왕실의 실정 시정 요구를 넘어 농민 해방 등 급진적인 요구를 내세우며 처음엔 왕실과 혁명 도시민들 사이 저울질하고 있었던 전통 봉건 군사 귀족들을 상대편에 몰아 넣으며 결국 군사적으로 패배했다. 자치도시들의 대규모 연대 반란을 진압한 이후 합스부르크 왕실은 한창 개신교의 위협에 맞서 대응 카톨릭 개혁을 추진하던 교회를 파트너로 삼아 점차적으로 강력한 왕권을 구축했으나, 여전히 경제적으로나 사회정치적으로나 코뮤네로 운동이 진압된 이후로도 강력한 세력을 자랑했던 자치도시들과는 어느정도 타협을 봤어야했다. 따라서 스페인 제국 시절 강력한 절대 왕정이 성장한것과 별개로 카스티야 왕국, 아라곤 왕국, 바르셀로나 백작령, 세비야 왕국 같은 각종 중세적 정치체들과 더불어 스페인의 도시들도 자치 공화국 코뮌으로 성격을 유지하다가 결국 18세기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란 한바탕 대격변을 한번 더 겪고 또 새로 들어온 보르본 왕조가 전례없는 중앙집권화 드라이브를 걸면서야 해체되었다. 이런 스페인 지방 자치단체들의 역사적 배경을 반영하여 현대 들어와 프랑코 독재정권 이후 스페인이 민주화되면서 지방자치제도를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나라에서 가장 큰 광역 자치 행정구역을'자치 코뮌 (Comunidad Autónoma)'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러한 자치조직 코뮌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 이어왔던 도시 자치 공동체, 공화제가 서유럽 내에서 명목이 끊기지 않고 발전하게 되는 근간이 되었다. 또한, 이렇게 확산되는 도시 단위 자치 전통은 후대 프랑스 행정구역체계의 유래가 되었고, 도시민 전체가 참여하는 공동체라는 측면에서는 혁명기 프랑스의 공화주의나 아래 항목에서 언급되는 사회주의 정치제, 공산주의 등에도 영향을 주었다.[5]
행정구역 단위
프랑스의 행정구역 단위 중 최소 행정단위로 프랑스 혁명 당시 행정구역 개편으로 설치되었다. 코뮌의 장을 메르(maire)라고 하며 한국에서는 편의상 시장이라고 번역한다. 이후로 프랑스의 기본적인 행정구역 단위가 되었는데 근대에 지정된 코뮌 구획이 크게 변하지 않은 덕택에 프랑스 본토에만 3만 6천여개의 코뮌이 존재하며 인구수로 보았을때 보통은 한국의 읍면동 정도에 해당하는 단위이기는 하나 파리나 리옹, 마르세유처럼 인구수가 많은 코뮌이라고 해도, 상위 행정구역으로 승격하는것도 아니기 때문에 한국으로 친다면 어느 행정구역에 놓을지는 애매하다. 그렇지만 사람이 아예 살고있지 않은 코뮌이 아니라면 시장이나 시의원은 뽑을수있고 자치권한도 엄연히 가지고 있다.
대다수 시골 지역의 코뮌의 경우에는 인구수가 수백명 이하인 경우가 많아 사실상 한국의 리나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고, 아예 사람이 살지 않거나 1명만 살고 있는 코뮌도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과도하게 예산이 낭비되고 인구수의 차이가 너무 심해서 적절한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코뮌을 통폐합하는 식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현재까지도 큰 틀에서 개편은 일어나지 않고는 있다.
행정구역상으로 시(Ville)라는 이름을 가진 행정구역은 파리가 유일하지만, 법적인 명칭이 시가 아니더라도 인구가 어느정도 되는 코뮌은 시라고 부른다.
Insee의 정의에 의하면 인구 2,000명이하 코뮌: 시골(village), 2,000명~5,000명 코뮌: 부락(bourg), 5,000명~20,000명 코뮌: 소도시(petite ville), 20,000명~50,000명 코뮌: 중도시(ville moyenne), 50,000명~200,000명 코뮌: 대도시(grande ville)라고 한다.
벨기에, 룩셈부르크, 앙골라, 베냉, 칠레, 스위스의 행정구역이기도 하며 이탈리아와 몰도바, 루마니아에서는 같은 어원을 가진 단어인 코무네(comune)라고 한다. 다만 나라별로 차이가 있어서 스위스, 룩셈부르크, 이탈리아에서는 최하위 자치 행정구역이라는 점과 인구수에 관계없이 코뮌이라는 행정구역으로 묶이는 점은 동일하며 면적 또한 작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코뮌과 동일하다. 하지만 앙골라와 칠레는 코뮌의 규모가 비교적 넓찍한 편이고 베냉은 중간급 행정구역이다. 스페인 또한 카탈루냐, 마드리드, 안달루시아 등 최대 단위의 행정구역을 '자치코뮌 (Comunidad Autónoma)'라고 부른다.
베트남의 행정구역 사나 중국의 인민공사를 코뮌이라고 번역허기도 한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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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 〈프랑스의 코뮌〉, 《위키백과》
- 〈프랑스의 행정구역〉, 《위키백과》
- 〈프랑스/행정구역 〉, 《나무위키》
- 〈코뮌〉, 《나무위키》
- 세만, 〈레지옹/데파르트망/코뮌 3단계의 지방자치단체(지자체) 구조 그리고 행정, 선거구획 목적의 세분 및 결합〉, 《네이버 블로그》, 2015-04-18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