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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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린현(중국어: 雲林縣)은 대만 남서부에 위치해 있는 현이다. [1][2]
개요
윈린현의 면적은 1,290.8326㎢이며 인구는 685,354명(2015년)이다. 동쪽으로는 난터우현, 남쪽으로는 자이현, 북쪽으로는 장화현과 각각 경계를 이루고, 서쪽으로는 대만해협에 면해 있다. 현청 소재지는 더우류이다.
현의 베이강향에는 장대한 규모의 마쭈(馬祖) 사원이 있는데, 바다의 여신 마쭈를 모시는 신전으로 정교하게 공들여 장식한 지붕이 유명하다. 마쭈 여신의 탄생일인 음력 3월 23일을 기해 여신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축제와 순례 행사가 매년 이곳에서 벌어진다. 또한 베이강향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우시장에서는 중국 농촌의 전통 풍습을 볼 수 있다.
고등교육기관으로 국립윈린과학기술대학교가 있다. 현을 상징하는 꽃은 호접란꽃이고, 현을 상징하는 나무는 녹나무(Camphor Tree)이다. 현의 남부 베이강(北港)에는 큰 규모의 사원인 베이강 차오톈궁(北港朝天宮)이 있다.
타이시(台西)란 마을이 있는 곳이다. 타이베이(台北), 타이난(台南), 타이중(台中)은 직할시, 타이둥(台東)은 좀 마이너하지만 그래도 현 이름이라 잘 알려져 있는데 타이시는 작은 마을이라 잘 안 알려져 있다.
둥스(東勢)라는 작은 농촌이 현지 사창가를 합법화하여 대만에서의 첫 번째 성 특구가 되었다. 대만에서 경제적으로 제일 낙후된 지역에 속한다.
대만 여가수 덩리쥔의 출생지이기도 하다.[3]
역사
원래 윈린현은 청나라 시절 현재의 윈린현과 난터우현 남부 지역을 포괄해 1887년에 만들어진 행정구역으로, 난터우현 주산진(竹山鎮) 윈린(雲林)에 현 중심지를 두어 윈린현이라 했으나, 1893년에 중심지를 더우류로 이전하면서 맞지 않게 된 것이다. 이후 일치시기와 중화민국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진짜 윈린은 난터우현에 속하게 되었다. 1945년 대만 반환 당시 윈린현은 타이난현의 북부를 이루고 있었으며, 1950년에 대규모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현을 분할하는 과정에서 타이난현 북부를 분리해 윈린현을 다시 만들었다.
행정구역
- 더우류시(斗六市) - 더우류시는 윈린현의 동단, 자난 평원 북단과 중양산맥 서쪽 기슭의 구릉 지대의 접점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은 난터우현 주산진과 남쪽은 구컹향과 서쪽은 후웨이진, 더우난진과 북쪽은 츠퉁향, 린네이향과 접하고 있다. 동서 약 15km, 남북 16km이다.
- 베이강진(北港鎮) - 베이강진은 윈린현의 남서쪽에 위치하고 동남쪽은 베이강시(北港渓)를 사이에 두고 자이 현 신강 향 및 류자오 향과 북서쪽은 수이린 향 및 위안창 향과 접하고 있다. 베이강 진의 옛 이름은 분항(笨港)이다. 1683년(강희 22년)부터 복건 연해로부터 이민자가 이주했고 공관을 마련해 조세를 징수하게 되었다. 1731년(옹정 9년)에는 분항진승을 설치해 항구로 들어오는 선박을 관리하였다. 건륭 초년에는 이금국(釐金局)이 설치되면서 이 지역에 가(街)구가 설치되었다. 1893년(광서 23년)에 대중현 북항변무가 설치되는 등, 청대를 지나면서 번영한 지역이 되었다. 일본 통치 시대는 여러 차례의 행정개혁이 더해진 결과, 다이난 주 홋코 군 홋코 가가 되었지만, 2차 대전 후인 1946년 1월 19일에 폐지되어 대신해 타이난 현 베이강 구 베이강 진이 설치되었다. 1950년 10월의 지방 행정구 개혁과 함께 구가 폐지되면서 윈린 현에 속하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더우난진(斗南鎮) - 더우난진은 윈린현의 동남쪽, 더우류 대지와 윈자 충적평원의 접점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은 더우류시 및 구컹향과 서쪽은 다후커우시(大湖口渓)를 사이에 두고 다피향과 남쪽은 화싱시(華興渓)를 사이에 두고 자이현 다린진과 북쪽은 후웨이진과 접하고 있다.
- 후웨이진(虎尾鎮) - 태평양 전쟁 이후의 1946년, 타이난현 정부가 성립하면서 가장(街庄)은 향진(郷鎮)으로 고쳐져 타이난 현재의 후웨이진으로 개칭되었다. 1950년 10월 1일의 지방 행정구 개혁에 의해 윈린현 및 자이현이 설치되면서 후웨이진은 윈린현에 귀속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투쿠진(土庫鎮) - 대만 윈린현의 진이다.
- 시뤄진(西螺鎮) - 대만 윈린현의 진이다. 원래 원주민인 홍아족(洪雅族) 평포사(平埔社)의 거주지였던 시뤄진이지만 1723년에 복건으로부터의 입식자에 의해 농업 개발이 시작되었다. 1887년에 운림현이 성립하면서 두육청에 귀속했고 일본의 통치 시대에는 1901년에 도로쿠청(斗六廳)의 관할이 되었지만 이후 1903년에 도로쿠청의 폐지와 함께 가기청(嘉義廳) 관할로 개편되었다. 1918년부터 1920년에 걸친 줘수이시(濁水渓)의 하도 개수와 함께 행정구 개편이 행해져 다이난주의 관할이 되었고 시뤄가(西螺街)가 설치되었다. 1945년, 2차 대전 후에 시뤄가는 시뤄진으로 개칭되어 타이난현에 속하게 되었다. 1950년 10월의 지방 행정구 개혁으로 윈린현에 귀속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바오중향(褒忠鄉) - 윈린현 바오중향은 예전에는 포강륜장(埔姜崙莊)으로 불렸고 청대에는 포서보(布嶼堡)에 속해 창화현의 관할하에 놓여져 있었다. 1786년(건륭 51년), 임상문의 반란이 발생하면서 반란군측의 장대전이 가의를 공격해 각 보는 혼란에 빠졌다. 이에 대항해 장원근과 장명의 형제가 민중을 모아 관군을 지원해 반란군을 격퇴하였다. 이것에 의해 포충(褒忠)이라는 이름을 청 황제에게 하사받았고 원근통판에 임명되었다. 이것이 바오중의 유래이다. 1888년(광서 14년)에 운림현에 귀속되었다. 일본 통치 시대의 1909년, 도코 지청하에 포강륜구가 설치되었다. 1920년에는 도코 장에 합병되어 행정 기관명으로서는 바오중이라는 명칭이 소멸했다. 전후에 타이난 현 관할의 투쿠 진으로 고쳐졌지만 바오중 지구는 여전히 투쿠 진의 일부로서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주민들의 분리를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져 1946년 1월 23일, 투쿠 진에서 분할되어 바오중 향이 성립되었고 1950년에 윈린 현의 관할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츠퉁향(莿桐鄉) - 대만 윈린현의 향이다. 2차 대전 후인 1946년, 타이난현 츠퉁향으로 고쳐졌고 1950년 10월의 지방 행정구 개혁으로 윈린현 츠퉁향으로 개편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다피향(大埤鄉) - 윈린현의 남단에 위치하고 북쪽으로 더우난 진, 서쪽으로 후웨이 진, 투쿠 진, 위안창 향, 남쪽으로 자이 현 다린 향, 시커우 향과 접한다.
- 둥스향(東勢鄉) - 대만 윈린현의 향이다. 1945년에 타이완이 종전을 맞이하면서 타이난 현 후웨이 구 하이커우 향으로 개칭되었고 1946년 9월 22일에 하이커우 향에서 둥스춰 지구가 분할되어 둥스 향이 탄생했으며 나아가 1950년 10월 25일에 윈린 현 관할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얼룬향(二崙鄉) - 윈린현의 북단에 위치하고 북쪽으로 줘수이시(濁水溪)를 사이에 두고 장화 현과 접한다.
- 구컹향(古坑鄉) - 윈린현 동남단에 위치하고 윈린현의 향진 중에서 최대의 면적을 가진다.
- 커우후향(口湖鄉) - 윈린현의 서남부 연해에 위치하고 서쪽은 대만해협이다.
- 린네이향(林內鄉) - 윈린현 북동부에 위치하고 동쪽으로 난터우현 주산진, 북쪽으로 장화 현 얼수이 향, 서쪽으로 츠퉁 향, 남쪽으로 더우류 시와 접한다.
- 룬베이향(崙背鄉) - 룬베이향은 윈린현의 북서단에 위치하고 동쪽은 얼룬향과 남쪽은 투쿠진 및 바오중향과 서쪽은 마이랴오향과 북쪽은 줘수이시(濁水渓)를 사이에 두고 장화현 다청향과 접하고 있다. 1960년대는 '소(小)상하이'로 불리며 마이랴오의 채석 사업으로 번창하였다.
- 마이랴오향(麥寮鄉) - 마이랴오향은 윈린현의 북서부에 위치하고 북쪽은 줘수이시(濁水渓)를 사이에 두고 장화 현 다청 향과 남쪽은 신후웨이시(新虎尾溪)를 사이에 두고 타이시 향, 둥스 향 및 바오중 향과 동쪽은 룬베이 향과 접하고 서쪽은 타이완 해협에 접하고 있다. 연안부는 대륙붕이 펼쳐져 해양 자원이 풍부하고 어업 발전에 유리한 환경이다.
- 수이린향(水林鄉) - 수이린향은 자난 평원의 서북부, 윈린현의 남서단에 위치하고 있다. 지세는 전역이 평탄하고, 동쪽은 베이강 진과 북쪽은 쓰후 향과 서쪽은 커우후 향과 남쪽은 베이강시(北港溪)를 사이에 두고 자이 현 류자오 향, 둥스 향과 접하고 있다.
- 쓰후향(四湖鄉) - 윈린현의 서부 연해에 위치하고 서쪽은 대만해협이다.
- 타이시향(臺西鄉) - 줘수이시(濁水溪) 충적평원의 서부에 위치한다. 북쪽으로 마이랴오 향, 남쪽으로 쓰후 향, 동쪽으로 둥스 향과 접하고 서쪽은 타이완 해협에 면한다.
- 위안창향(元長鄉) - 대만 윈린현의 향이다.
출신 인물
덩리쥔 (鄧麗君)
덩리쥔은 1970~1990년대에 타이완·일본·홍콩 등지에서 활동하며 큰 인기를 누렸던 타이완 출신 여가수로, '첨밀밀', '예라이샹'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타이완의 윈린현 바오중향에서 장제스(장개석) 군대를 따라 타이완으로 이주한 허베이 출신의 아버지와 산둥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4남 1녀 중 외동딸로 태어났다. 본명은 덩리쥔(鄧麗筠), 영문명은 테레사 텡(Teresa Teng)이다.
1964년 11세에 중화덴타이 라디오 방송국이 주최한'황메이(黃梅) 노래경연대회'에서 우승한 후 다음 해에 어머니가 지어준 덩리쥔(鄧麗君)이라는 예명으로 데뷔하여 밤무대를 전전하며 노래를 불러 가난한 집안을 보살폈다. 16세에 가수로 정식 데뷔하여 주로 드라마·영화의 주제가를 부르며 매력적인 미성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하였다.
화교들이 많은 홍콩과 동남아 지역으로 활동무대를 넓히다가 1973년 일본에 데뷔하여 엔카인 '설화장(雪化粧)', '공항(空港)' 등의 곡을 발표하며 인기를 얻었고, 1974년 일본 신인가수상을 수상하였다. 1979년 위조여권 사건으로 일본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약 2년간 체류하였는데 이 무렵 중국에서 그녀가 부른 ‘언제 님이 다시 오시나(何日君再來)’가 붐을 일으키며 폭발적 인기를 얻게 된다.
1980년대 초 중국이 개방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을 때 '중국의 낮은 늙은 덩 씨(덩샤오핑)가 지배하고, 밤은 젊은 덩 씨(덩리쥔)가 지배한다.'는 말이 유행하고, '덩샤오핑 대신 덩리쥔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중국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과시하였다. 중국 당국으로부터 오염된 자본주의 문화의 상징으로 낙인찍혀 여러 차례 앨범 발매가 금지되었으나 앨범을 복사한 테이프가 중국 전역에 유통되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1983년 데뷔 15주년 기념 동남아 순회 콘서트의 일환으로 열린 홍콩 콘서트는 사상 최대의 흥행을 기록하였고, 일본에서는 '세월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時の流れに身をまかせ)' 앨범이 200만 매 이상 팔려나갔다. 1989년 톈안먼사건(천안문사건)이 발발하자 천안문 민주화지원 콘서트에 참가하였고, 1992년 톈안먼사건 3주년 기념집회에 참석하였으며 그 후 프랑스 파리로 거주지를 옮겼다.
평생 그녀를 괴롭혔던 기관지천식이 악화되자 휴양지를 옮겨 다니며 요양하다 1995년 5월 타이 치앙마이의 한 호텔에서 천식에 의한 호흡곤란으로 추정되는 사인(死因)으로 숨을 거뒀다. 죽음을 둘러싸고 자살설과 중국 비밀기관에 의한 암살설 등 갖가지 소문이 돌기도 하였다. 장례식은 국장급으로 치러졌다. 타이완·중국·홍콩의 많은 가수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으며, 사후 후배가수들에 의하여 그녀의 노래들이 끊임없이 리메이크되어 불리고 있다. [4]
지도
동영상
각주
- ↑ 〈윈린현〉, 《위키백과》
- ↑ 〈윈린현〉, 《나무위키》
- ↑ 〈두산백과 : 윈린현〉, 《네이버 지식백과》
- ↑ 〈두산백과 : 덩리쥔〉,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
- 〈윈린현〉, 《위키백과》
- 〈윈린현〉, 《나무위키》
- 〈두산백과 : 윈린현〉,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 덩리쥔〉,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
동아시아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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