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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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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스 광장에서 바라본 에펠탑(Tour Eiffel, Eiffel Tower, EiffelLa tour Eiffel)
구스타프 에펠 (1832-1923)
2022년 1월 1달 간은 프랑스가 이달부터 6월까지 유럽연합의 의장국을 맡는 것을 기념하여 파란색 조명이 비춰졌다. 또한 유럽기의 상징인 12개의 금빛 별도 걸렸다. 2023년 1월, 프랑스 파리 에펠탑에는 "여성·생명·자유" "이란 내 처형 중단하라"라는 문구에 불이 들어왔다. 이란 반(反)정부 시위에서 쓰이는 구호다.

에펠탑(Tour Eiffel, Eiffel Tower, EiffelLa tour Eiffel)은 1889년 3월 31일 준공. 프랑스의 건축가 알렉상드르 귀스타브 에펠(Alexandre Gustave Eiffel, 1832~1923)이 만든 거대한 철탑이다.

에펠탑은 프랑스파리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이며 근대 건축의 혁신점으로, 1889년에 300m가 넘는 경이로운 높이를 달성하여, 미국의 크라이슬러 빌딩이 완공되기 전인 1930년 이전까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이었다. 에펠탑의 건축 높이는 300m이며, 훗날 안테나 30m가 추가 설치되었지만, 이를 건축물 자체의 높이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개요[편집]

에펠탑은 프랑스 파리의 상징적 건축물로, 1889년에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맞이하여 파리 만국박람회를 개최하였는데 이 박람회를 상징할만한 기념물로 에펠탑을 건축하였다. 박람회가 열린 마르스 광장에 출입 관문에 위치해 있다. 특히 영국이 자랑하는 최신 건물이었던 수정궁세인트 판크라스역을 의식하여 기둥간의 거리를 115m로 늘린 기계관(판크라스 역은 73m)과 300m 높이의 에펠탑을 선보였으며, 일종의 기술을 과시하는 용도였기 때문에 원래는 20년간 설치했다가 해체할 예정이었다. 사실 건축적인 의의는 기계관이 더 크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대중이 느끼는 시각적인 충격은 에펠탑이 더 뛰어났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오늘날엔 에펠탑만이 살아남았다. 프랑스의 대표 건축물인 이 탑은 격자 구조로 이루어져 파리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며, 매년 수백만 명이 방문할 정도로 파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명소이다. 이 탑은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프랑스 공학자 귀스타브 에펠의 작품으로 이를 디자인한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

마천루가 즐비한 오늘날에는 잘 느끼기 어렵지만, 약 169m의 구조물인 워싱턴 기념탑, 161m의 건축물인 울름 대성당이 가장 높던 시절에 등장한 300m의 타워란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인류 역사상 이토록 인간의 구조물의 고도가 '갑자기' 올라간 적이 없었다. 특히 철을 가지고도 고전적 건물을 모방하기 바뻤던 시대에 철골을 당당하게 드러낸 에펠탑의 위용은 마치 새로운 신 건축의 시대를 선언하는 듯 하였으며, 이는 에펠 같이 토목 분야에서 활동하던 구조 공학자들이 일반적인 건축가보다 산업시대의 새로운 재료들을 더 빠르게 활용했기에 가능했던 진보다.

에펠탑은 건설비가 굉장히 많이 들었는데, 그 대부분을 구스타프 에펠이 냈고 대신 20년간 독점권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욕먹는 걸 참아가며 만든 보람이 있어서, 에펠의 예상대로 3년 만에 투자비를 다 뽑아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원래는 20년 후에 철거될 예정이었지만, 그냥 철거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던 에펠의 설득과 송신탑으로 활용할 가치가 있어 한 프랑스 육군 고위층의 결정으로 살아남게 되었고, 그렇게 쭉 있다 보니 결국엔 어느덧 파리시는 물론 프랑스 전체의 상징이 되었다.

이후 프랑스 육군의 결정대로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통신 중계탑으로 잠시 쓰이다가, 1925년 첫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고, 이후 TV 방송용으로도 쓰여왔다. 21세기에도 계속 방송 중계탑으로 역할을 했는데, 점차 케이블 선을 이용한 디지털 방송이 확대됨에 따라 기념탑으로만 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군용 송신탑으로는 계속 쓰일 것이다.

훗날 여러 영화에서 배경으로 자주 사용하면서 파리 하면 많은 사람들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상징물이 되었으며, 현재에는 파리의 대표적인 명물로 사랑을 받고 있다. 1985년 야간 조명시설이 설치된 이후 파리의 아름다운 야경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는데, 밤이 되면 매 시각 정각부터 약 10분간 에펠탑이 반짝 거리는 쇼를 볼 수 있다.

관광객을 위해 3개 층이 개방되어 있다. 첫 번째 층과 두 번째 층 까지는 표를 구입하여 계단하고 엘리베이터를 통해 올라갈 수 있다. 첫 번째 층까지의 높이와 첫 번째 층부터 두 번째 층까지의 높이는 각각 300 계단이 넘는다. 가장 높은 세 번째 층은 엘리베이터로만 올라갈 수 있다. 첫 번째 층과 두 번째 층에는 음식점이 있다. 하지만 최근 바람과 비로 인해 부식이 진행 되고 있는 상황이다.

역사[편집]

타워 건축[편집]

에펠탑 공사 모습. 첫 번째 층의 대들보.

프랑스 제3공화국 정부는 프랑스 혁명의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파리 만국 박람회를 1889년에 개최하기로 했다. 주최측은 박람회 기념물을 겸하여 당대 새로이 도래한 철(鐵)의 시대를 상징하는 볼거리를 관람객들에게 제공하고자 여러 아이디어를 공모했다. 700여 편의 응모작중에 100여 편이 심사에 올랐다. 그 결과 구스타프 에펠의 제안한 철탑 건축안이 채택되었다. 에펠은 이미 수 많은 철교를 건설한 교량전문가였으며 하늘을 향해 솟은 수직구조의 철탑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해주려고 응모했었다. 아울러 그는 1885년에 미국 뉴욕에 '자유의 여신상'을 세우기 위한 철골구조를 제작하는 등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건축은 1887년 1월 28일부터 시작되어 26개월만인 1889년 3월 30일에 기본 구조가 완성되었다. 1889년 3월 31일 준공식을 하였고, 같은 해 5월 6일 일반에 공개되었다. 건설될 당시의 높이는 984피트(약 300m)로 당대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으며 현재에는 꼭대기에 첨탑, 안테나가 덧붙여져 320m 이상이 되었다.

설치 작업[편집]

미식축구장 크기 만한 기단 바닥에 4개의 철제 기둥을 세운 다음 콘크리트로 봉하고는 그 위에 철탑의 본체를 얹는 방식으로 공사가 진행되었다. 철탑의 재료로는 프랑스에서 제조된 7,300여톤의 연철(지멘스 마르탕 평로강)이 사용되었다. 모리스 쾨슐랭의 구조 설계를 바탕으로, 300명의 작업자가 정련된 부품(단단히 제련된 건축용 철제) 18,038 조각을 250여 만 개의 리벳을 이용해 조립하였다.

이 작업에 공동으로 참여한 건축가는 에밀 누기에와 모리스 쾨슐랭, 그리고 스테펭 소베스트르였다. 에펠탑은 현대의 마천루들과는 다르게, 두 개의 층 외에는 아무런 외벽이 없는 열린 형태이기 때문에 사고의 위험이 매우 컸다. 하지만, 에펠이 가드레일가림판 등의 안전 조치를 해놓은 덕에 단 한 명만 떨어져 사망했다.

엘리베이터[편집]

높이가 높고 튼튼한 구조물을 쌓아 올리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제철산업의 발달과 엘리베이터의 발명에 있었다. 기존보다 우수한 철강재석재보다 가벼우면서도 강도, 연성, 편리성 측면에서 훨씬 뛰어났다. 또한 1853년에 미국의 엘리샤 오티스가 발명한 수압식 엘리베이터 등 여러 회사들이 만든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빠른 시간 내에 작업이 진행될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높은 곳까지 인부와 자재를 쉽게 옮길 수 있게 해주었으며 관광객들이 전망대까지 쉽게 올라가 아름다운 파리 시가지 전경을 감상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반대와 비판[편집]

에펠탑 건립 계획이 알려지자 파리 시민들은 '무모한 짓'이라고 비난하며 반대했다. 에펠탑 주변 샹 마르스 지역 주민들은 주거환경을 해칠 것이라고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완공후 예술가와 지식인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로부터 예술의 도시 파리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비판이 쏟아졌다. 당시 파리 시내 건축물들은 중후한 석조건축으로 되어 있었는데, 철골 노출 구조물이 가지는 이질성 때문에 에펠탑에 대한 반감이 강했고, 미학적인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전문가들로부터도 강한 비난이 이어졌다. '예술적 취향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추악한 철 덩어리' '천박한 이미지의 철골 구조물' '공장의 굴뚝같은 형태의 공업기술을 예술의 도시 파리에 끌어들인 졸작'이라는 혹평들이 있었다.

에펠탑을 무척 싫어했던 소설가 모파상은 에펠탑이 보이지 않도록 집의 창문을 반대 쪽으로 내었고, 거의 매일 점심을 의도적으로 에펠탑 1층 안에 있는 식당에서 먹었다고 한다. 에펠탑을 싫어하면서 이곳에서 식사를 하는 이유를 묻자, 파리에서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유일한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재치있는 농담이기는 하지만 당시에는 그 정도로 에펠탑의 반대론이 강했다.

착공 당시부터 에펠의 설계 구상은 흉물스럽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학적, 건축적 측면에서 많은 반대가 있었다. 여태까지 한 번도 지어진 적이 없는 모양에다, 너무 높고 검은 철 구조물이 세워진다는 데 많은 반감을 가졌다. 당시의 신문은 파리 예술 협회가 실은 비난조의 글들로 채워졌다. 가장 널리 인용되는 문장은 1892년 미국 정부 출판 부서에서 윌리엄 왓슨이 발간한, <<파리 만국 박람회: 토목공학, 공공 토목 공사와 건축>>에서 쓰인 "향후 20년간 우리가 도시 전체에서 보게 될 이것은 수 세기에 걸쳐 내려온 도시 미관을 위협하고 있고, 우리는 철판으로 엮인 역겨운 기둥의 검게 얼룩진 역겨운 그림자를 보게 될 것이다."라는 문구이다. 이 문서의 공표에는 장 루이 에른스트 메소니에, 샤를 구노, 샤를 가르니에, 장레옹 제롬, 윌리암 아돌프 부그로, 그리고 알렉상드르 뒤마가 참여하였다.

해체 위기[편집]

에펠은 처음에 탑을 20년 간 세울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따라서 1909년에 소유권이 파리 시에 넘겨진 뒤 철거되었어야 했다. 시에서는 애초부터 탑을 해체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디자인 공모의 조건에 탑이 임의로 철거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철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이미 파리의 명물로 자리 잡은 에펠탑을 해체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들끓자 파리시는 해체 계획을 접었다. 1918년 라디오 방송을 위한 장치가 탑에 설치되어 송신탑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1957년에는 55피트의 텔레비전 송신 안테나가 추가로 설치되며 통신용 무선 안테나를 설치하여 활용하는 것이 여러면에서 이익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철거 여론은 완전히 수그러들었다. 프랑스군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 벌어진 제1차 마른 전투에서 파리 시내의 택시들을 최전선에 투입할 때 이 탑을 이용하기도 했다. 현재에는 기상관측 장비와 항공운항 장비까지 갖추고 있다.

긍정적 효과[편집]

초창기 여러 비판과는 달리 현재에는 역학적 구조가 그대로 건축미에 도입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철로 짜놓은 듯한 우아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평을 받고 있을뿐 에펠탑을 파리의 흉물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영화의 배경 화면으로 자주 사용되면서부터 파리의 대표적인 명물이자 랜드마크로 사랑을 받고 있다.

콘크리트, 유리를 활용한 근대적 건축물의 흐름을 선도적으로 예측한 사례로 인정받으면서 에펠탑의 철골 노출 구조는 이후 건설된 철도역사, 교량 등의 구조물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광고, 항공 등대, 라디오 및 텔레비전의 송신, 무선통신용 안테나를 설치하여 많이 활용되고 있다.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공 구조물로서 '공간정복'의 상징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지난 보불전쟁에서 참패하며 손상된 프랑스의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었다. 또한 프랑스는 최첨단 기술을 보유한 국가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고 건축역사도 다시 쓰게 되었다. 파리 시민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박람회 기간동안 많은 사람들이 에펠탑을 보기 위해 방문했고 그 덕분에 박람회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이로 인해 프랑스는 지난 1789년이후 잦은 혁명으로 정국이 불안한 국가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말끔히 씻어버릴수 있게 되었다.

디자인[편집]

자재[편집]

에펠탑의 금속 구조 전체의 무게는 총 7,300 톤이며, 비금속 자재를 포함하면 대략 10,000 톤이 된다. 이 7,300 톤의 금속 구조물을 녹일 경우, 금속이 세제곱미터 당 7.8 톤의 밀도로 채워진다고 할 때 125 x 125 미터의 네모난 틀에 고작 6 cm 밖에 채워지지 않게 된다. 가장 낮은 온도에서 탑의 높이는 위로부터 18 cm가량 줄어들게 되는데 이는 금속의 열적 팽창(수축)에 따른 것이다.

구조[편집]

에펠탑의 구조

총 3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2층까지 가는 엘리베이터는 옛날의 유압식 엘리베이터. 따라서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옆을 보면 거대한 통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3층으로 가는 것은 현대식이다. 특이하게도 엘리베이터가 2층으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다.

철골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이유가 있는데, 300m 수준의 높은 구조물은 풍압의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에 바람을 통과시키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이러한 면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지만, 토목쪽에서 경험이 많은 구스타프 에펠은 경험적으로 이를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이 심한 날에는 탑이 흔들리기 때문에 안전상의 문제로 3층은 출입을 통제한다고 한다. 이외에도 대부분의 구조물이 그렇듯이 계절에 따라 미세하게 이완과 수축을 한다.

탑이 지어졌을 당시, 사람들은 그 대담한 모양에 놀라워했다. 에펠은 이 예술적인, 혹은 보는 사람에 따라 비예술적인 것을 만드는 데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기술이 아닌 그 디자인에 대해 욕설을 들었다. 하지만, 에펠과 그의 기술자들은 숙련된 다리 건설자로서 풍력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고 만일 그들이 세계 최고 높이의 구조물을 세우게 될 경우 그것이 바람을 버텨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Le Temps》 신문에서 취재한 내용에서 에펠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껏 내가 이 탑을 디자인하는 데 있어서 가장 신경쓰고 있는 현상이 무엇이었나? 그것은 바람의 저항이었다. 나는, 수학적인 계산이 알려주는 당연한 형태를 따르고, 강함과 아름다움의 커다란 인상을 심어주게 될 이 기념물의 바깥 모서리가 가진 곡선을, 결국 이것이 바라보는 이들의 눈에 묵직한 디자인 그 자체로 다가가도록 지켜내왔다. "

— 프랑스 신문 Le Temps 1887년 2월 14일자

탑의 형태는 바람의 영향을 고려하는 경험적인 방법과 도면적 방법으로부터, 전체적인 수학적 틀 없이 정해졌다. 탑에 대한 신중한 실험 결과 탑의 모양은 기본적으로 지수 형태를 나타냈다.

이에 대해 수 년간 몇가지 해석이 제시되었는데, 최근의 것은 탑의 모든 지점에서의 풍압과 각 지점의 건축 구조가 받는 장력간의 균형에 기반한 비선형 적분 방정식이다. 탑은 바람에 6~7cm 흔들린다.

사실 기술 실증용 20년짜리 가건물로 만들었기 때문에 가까이서 보면 거친 구조물이 있을 뿐, 섬세하다거나 화려한 장식은 없다. 단지 압도적으로 큰 크기와 복잡한 구조물만 있을 뿐.

보수공사[편집]

주로 녹을 방지하기 위해 7년에 한 번씩 도색작업을 하는데, 한 번에 50에서 60톤의 페인트를 칠한다.

미적인 고려[편집]

지면에 있는 관찰자가 보았을 때 균일한 모습을 나타낼 수 있도록 탑에는 세 종류의 페인트가 칠해졌는데, 아랫부분은 가장 어두운 색상을, 윗부분은 가장 밝은 색상의 페인트를 사용하였다. 페인트를 새로 갈 때가 되면, 탑은 회갈색빛으로 칠해진다. 첫 번째 층에는 다음 페인트 칠이 필요한 때를 정하기 위한 자동 투표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유일하게 비구조물인 부분은 스테펭 소베스트르의 스케치에 추가된 네 개의 장식용 격자 아치로, 방문객들에게 이 구조물이 안전하다고 안심시키는 역할과, 주변 건축물들을 바라보는 구도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였다.

새겨진 이름[편집]

에펠탑 1층 아래 부분에 새겨진 이름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에펠탑을 실제로 가까이에서 보면 1층 전망대 아래 부분(아치 위)에 탑의 4면을 따라 프랑스의 유명한 과학자, 공학자 및 수학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각 면에 18명씩 총 72명이 새겨져 있으며, 이공계 학생들이라면 수업중 한번씩 들어봤을 만한 유명한 학자들의 이름이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어 프랑스 학문사의 위엄을 새삼스레 느낄 수 있다.

명단은 에펠 본인이 직접 선정하였으며, 이러한 이름을 새긴 이유는 예술가들이 에펠탑 건설에 반대하는 것을 우려하여 '과학에 대한 관심 촉구'의 의미에서 작업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에펠탑은 문화와 예술의 도시 파리의 상징이 되어버렸으니… 각인된 이름들은 무슨 이유에선지 20세기 초반에 페인트로 덮었다가 1987년도에 다시 복원했다고 한다.

  • 북동쪽: 프티에(Petiet), 다게르(Daguerre), 뷔르츠(Wurtz), 르베리에(Le Verrier), 페르도네(Perdonnet), 들랑브르(Delambre), 말뤼(Malus), 브르게(Breguet), 폴롱소(Polonceau), 뒤마(Dumas), 클라페롱(Clapeyron), 보르다(Borda), 푸리에(Fourier), 비샤(Bichat), 소바주(Sauvage), 플루즈(Pelouze), 카르노(Carnot), 라메(Lamé)
  • 남동쪽: 코시(Cauchy), 벨그랑(Belgrand), 르뇨(Regnault), 프레넬(Fresnel), 드 프로니(De Prony), 비카(Vicat), 에벨망(Ebelmen), 쿨롱(Coulomb), 푸앵소(Poinsot), 푸코(Foucault), 들로네(Delaunay), 모랭(Morin), 아위(Haüy), 콩브(Combes), 테나르(Thénard), 아라고(Arago), 푸아송(Poisson), 몽주(Monge)
  • 남서쪽: 자맹(Jamin), 게뤼사크(Gay-Lussac), 피조(Fizeau), 슈네데르(Schneider), 르 샤틀리에(Le Chatelier), 베르티에(Berthier), 바랄(Barral), 드 디옹(De Dion), 고얭(Goüin), 주슬랭(Jousselin), 브로카(Broca), 베크렐(Becquerel), 코리올리(Coriolis), 케(Cail), 트리제르(Triger), 지파르(Giffard), 페리에(Perrier), 스튀름(Sturm)
  • 북서쪽: 스갱(Seguin), 랄랑드(Lalande), 트레카(Tresca), 퐁슬레(Poncelet), 브레스(Bresse), 라그랑주(Lagrange), 벨랑제(Bélanger), 퀴비에(Cuvier), 라플라스(Laplace), 뒬롱(Dulong), 샬(Chasles), 라부아지에(Lavoisier), 앙페르(Ampère), 슈브뢸(Chevreul), 플라샤(Flachat), 나비에(Navier), 르장드르(Legendre), 샤탈(Chaptal)

주요 사건[편집]

  • 1889년 09월 10일 : 토머스 에디슨이 탑을 방문했다. 그는 방명록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남겼다.
현대 공학의 거대한 기념비적 표본을 만든 용감한 기술자인 석사 에펠에게 가장 위대한 기술자인 '선한 신'을 포함한 모든 기술자들을 더할 나위 없이 존경하고 찬양하는 한 사람으로부터, 토머스 에디슨.
(To M Eiffel the Engineer the brave builder of so gigantic and original specimen of modern Engineering from one who has the Edison.)
  • 1910년 : 테오도르 불프 신부가 탑 꼭대기와 밑부분에서의 방사 에너지를 측정하여 꼭대기에서의 측정치가 예상보다 많음을 알아내고, 현재에 우주선이라 불리는 방사선을 검출하였다.
  • 1912년 02월 04일 : 오스트리아의 재단사 프란츠 라이헬트가 60미터 높이의 에펠탑 첫째 난간에서 그가 직접 재단한 낙하산을 착용하고 뛰어내렸으나 낙하산이 펴지지 않아 사망하였다.
  • 1914년 : 탑에 위치한 무선송신기를 이용해 1차 마른 전투 초반에 독일군의 무선 통신을 방해하였다.
  • 1925년 : 사기꾼 빅토르 루스티히가 탑을 두 번에 걸쳐 고철로 팔았다.
  • 1930년 : 뉴욕크라이슬러 빌딩이 들어서면서 세계 최고 높이의 건축물 자리를 내놓았다.
  • 1925년 ~ 1934년 : 시트로앵을 위한 야간 조명 광고가 탑의 3개 면에 설치되었는데,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광고물이었다.
  • 1940년 ~ 1944년 : 1940년, 파리가 독일에 점령 중이었을 때, 승강기 케이블이 프랑스군에 의해 끊겼으며, 복구는 전쟁 때문에 불가능했다. 독일군이 탑 꼭대기까지 직접 올라가서 하켄크로이츠을 내걸었지만, 깃발이 너무 커서 불과 몇 시간 뒤에 바람에 날아가 버렸고, 좀 더 작은 것으로 다시 걸렸다. 아돌프 히틀러도 탑에 오르려 했지만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포기하고 땅에 머무르기를 택했다. 사람들은 이것을 일컬어, 히틀러가 프랑스는 정복했으나 에펠탑은 정복하지 못하였다고 회자한다. 1944년 8월, 연합군이 파리에 접근하자 히틀러는 파리의 군정장관 디트리히 폰 콜티츠 장군에게 에펠탑과 도시 전체를 파괴하라고 명령했지만 폰 콜티츠가 이 명령을 어겨 에펠탑이 살아남을 수 있었고, 파리의 해방 불과 몇 시간 뒤 끊어놓았던 승강기 케이블을 복구해 운행을 시작하였다.
  • 1956년 01월 03일 : 탑 꼭대기가 화재에 의해 손상되었다.
  • 1957년 : 현재의 전파 안테나가 꼭대기에 설치되었다.
  • 1980년대 : 탑 중앙에 있던 식당 'Tour Eiffel Restaurant'과 그것을 지지하던 발판이 철거되었다. 이 부분은 중개업자인 존 오노리오와 대니얼 보노드가 구입하여 11,000 개의 부품으로 분해한 후 12 m 크기의 화물 컨테이너에 실려 미국으로 운송한 뒤 뉴올리언스에 'Red Room'이라는 식당으로 재건축하였다.
  • 1984년 03월 31일 : 로버트 모리아티가 비치크래프트 보난자를 몰고 탑 아래 아치 부분을 통과하여 비행했다.
  • 1987년 : A.J. 해킷이 그가 개발한 특수 끈을 이용해 에펠탑 꼭대기에서 번지점프를 했다. 해킷은 땅에 내려온 직후 파리 경찰에 체포되었다.
  • 1991년 10월 27일 : 티에리 드보가 허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마르스 광장을 향해 탑의 두 번째 층에서부터 연속으로 곡예 번지 점프를 했다. 티에리 드보는 한 번의 곡예가 끝난 후 전동 윈치를 이용해 다시 위로 올라갔으며, 여섯 번째 번지 점프를 한 직후 소방관이 도착해 점프를 멈췄다.
  • 1995년 07월 14일 : 바스티유의 날, 프랑스 신서사이저 연주가인 장미셸 자르가 유네스코를 돕기 위해 탑에서 공연(Concert for Tolerance)을 했다. 이 무료 공연은 마르스 광장을 뒤덮은 약 150 만여명의 사람들이 관람하였다. 공연 중에는 탑에 설치된 조명 장치와 영상 투영 장치, 그리고 대규모의 불꽃놀이도 동원되었다. 3년 뒤 그는 같은 장소에 돌아와 댄스 음악에 더 걸맞은 무대인 Electronic Night(일렉트로닉의 밤)을 마련했다.
  • 1999년 12월 31일 : 파리의 새 천년 기념식이 치러졌다. 이 행사에서, 반짝이는 조명과 강력한 탐조등이 탑에 설치되었으며, 탑 전체에 폭죽이 준비되었다. 현재도 첫 번째 층의 식당 위에 있는 전시회에서는 이 당시의 행사를 기념하고 있으며, 이 때 이후 매일 조명 쇼가 펼쳐지게 되었다. 꼭대기의 탐조등은 파리의 밤하늘을 비추는 표지가 되었고, 탑은 20,000 개의 전구 덕에 매일 정해진 시간 동안 반짝거리는 모습을 나타내게 되었다.
  • 2002년 11월 28일 : 탑에 2억 번째 관람객이 방문했다.
  • 2003년 07월 22일 : 오후 7시 20분, 탑의 꼭대기 방송 장비실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다. 탑 전체의 인원이 대피하였으며, 화재는 40분 만에 진화되었고 사상자 보고는 없었다.
  • 2004년 : 겨울에 첫 번째 층에서 스케이트장이 개장하였으며, 이후 매년 개장하고 있다.
  • 2008년 : 후반기에 프랑스가 유럽 연합의 의장국이 되자, 유럽기에 나타난 12개 금색 별이 탑에 설치되고 탑 전체는 푸른 빛으로 감싸여졌다.
  • 2014년 10월 : 첫 번째 층 일부의 바닥에 강화 유리를 설치하는 등 재조성하였다.
  • 2016년 6월~7월 : 유로 2016을 기념하여 데이비드 게타 콘서트를 했으며 에펠탑은 프랑스 삼색인 파랑, 하양, 빨강이 번갈아가면서 빛으로 축제의 분위기를 냈다.

2022년 하자 은폐 의혹[편집]

2022년 7월 4일, 프랑스 언론을 통해 에펠탑이 빠르게 부식되고 있으며 전반적인 보수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긴 기밀 보고서가 유출됐다.

프랑스 잡지 <마리안느>가 입수한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에펠탑 표면의 전체 페인트층 가운데 단 10%만이 견고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에펠탑에서 884개의 결함이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에펠탑을 폐쇄하고 전면적인 수리에 나설 것을 권고했으나, 에펠탑 운영사를 소유한 파리 시의회는 이를 무시했고, 심지어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인해 에펠탑 출입이 8개월 동안 중단됐을 때도 파리 시의회는 에펠탑 보수에 착수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마리안느>는 "에펠탑을 폐쇄할 경우 초래될 관광 수입 감소를 우려해 전면 보수를 선택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사실 겉에 아무것도 씌우지 않은 철골 구조물이 야외에 그대로 노출된 상태에서 130년 이상이 지났으니 녹슬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관광[편집]

관광지로는 필수 코스. 사실 에펠탑 자체는 정말 볼 것 없는 곳이지만 파리 시내는 작은데 관광지는 넘쳐나다 보니 다른 명소를 다니다 보면 에펠탑은 반드시 이동 경로 상에 위치하게 된다. 게다가 파리 여행 중에 에펠탑을 안 간다는 것도 찜찜하고.

에펠탑을 오르는 방법은 2가지로,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엘리베이터 쪽은 요금이 비싼 편이다. 그렇다고 계단 입장은 무료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꼭대기까지 올라가려면 28유로, 한화로 약 34,000원이다. 파리 주요 명소와 박물관을 무료입장 혹은 할인 입장할 수 있게 해 주는 "파리 뮤지엄 패스"도 에펠탑엔 적용되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에펠탑을 올라가지 않고 아래에서만 보는 사람도 많은 편이다.

에펠탑이 위치한 마르스 광장 자체도 상당히 아름답다. 맞은 편의 샤요 궁(Palais de Chaillot)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다. 마르스 광장 바로 앞에는 중국어, 한국어, 아랍어로 적혀진 '평화'가 반복되어 있는 유리벽이 세워져 있다. 마르스 광장에 왜 "평화"가 반복되어 있는 유리벽이 세워졌냐면… 프랑스 침공에 따라 아돌프 히틀러가 마르스 광장을 밟는 아래의 사진 때문이다. 프랑스 역사상 최악의 굴욕이 나온 곳이다.

새벽 1시가 되면 에펠탑의 노란 등이 모두 꺼지고, 완전히 점멸하기 전 흰색 등이 켜지는 이벤트가 있다. 한국에서는 흔히 화이트 에펠이라고 한다.

관람포인트
  • 1층 전망대 : 에펠탑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비디오실인 '시네막스'가 있는데, '시네막스'를 찾은 외국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아돌프 히틀러'이다. 한국 사람 중에 2층 전망대의 '시네막스'를 방문한 사람은 희귀하다. 맞은편에는, 매년 연례행사나 '혁명 기념일', 해가 바뀔때에 에펠탑이 주축이 되어 쏘아 올린 불꽃놀이의 화려한 장면을 감상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에펠탑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알아 볼 수 있는 곳이므로 꼭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당시에는 엘리베이터를 운전자가 운전을 하였는데, 2차 세계대전으로 운전자들이 모두 피난을 가서, '아돌프 히틀러'는 걸어서 계단으로 올라갔단다. 기념품 점과 식당, 우체국이 있고, 셀프 까페가 있는데 이곳에서 간단한 샌드위치나 ‘크래프’와 커피를 마시면서 전망대를 한 바퀴 돌면서 파리의 야경을 내려다 보면 환상적이다.
  • 2층 전망대 : 프랑스에서도 손꼽히는 식당 중의 하나인 '쥘 베른 식당 Restaurant Juels Vernes'이 있고, 기념품 점과 화장실이 있다. 1983년까지 운행되던 옛날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같이 전시하고 있는데, 3층 전망대로 오르는 엘리베이터를 갈아 타는 이 곳에서는 일단 줄을 먼저 서고 보자 !!! 사진은 천천히 ! 성수기에는 30분 정도 줄을 서야만 한다.
  • 3층 전망대 : 유리로 둘러싸인 전망대와 야외 전망대 부분으로 나뉘는데, 유리로 싸인 전망대에는 세계 각국의 국기들 밑에는, 중요 도시와 에펠탑 사이의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 서울까지 8천 킬로미터가 넘는다. 유리를 통해 펼쳐지는 방향을 찍은 사진들에는 주요 건축물들의 이름과 간단한 설명이 붙어있어 관람에 많은 도움을 준다. 계단을 올라가서 야외 전망대에 이르면, 유리 방안에 진열된 '에펠'과 발명왕 '에디슨'의 밀랍 인형이 전시되어 있고, 테이블에는 ‘에디슨’이 발명하여 1900년 '그랑 빨레 Grand Palais'에서 선 보인 축음기의 모형을 볼 수 있다.
  • 도색 작업 : 철골 구조는 탄소에 매우 약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붉은 산화철 유성 페인트를 먹이고 아마유를 두 번 덧칠을 한다. 1889년 5월에 아래에서 위로 가면서 명도가 다르게 적갈색으로 니스를 칠하는데 100만 프랑(약 20 억 원 정도)이 소모되었다. 1892년에는 그전의 페인트를 탈색하고는, 노란 황토빛 색소의 페인트를 칠하는데 5년 품질 보증과 유지 보수를 합쳐서 총 34억 원이 소요되었다. 1899년부터는 7년 주기로 페인트를 칠하는데, 25명의 전문 인력이 약 1년 정도 일하면서 52톤 정도의 페인트가 소모되는데, 1995년에는 2천만 프랑(약 40억 원)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 에펠탑 사진 촬영 명소 : 에펠탑 인근의 회전목마는 파리에서 가장 특별한 회전목마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훌륭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장소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밤에는 더 멋진 장면이 연출된다. 에펠탑 서쪽에 위치한 비르하켐 다리(Pont de Bir-Hakeim)에서는 유명한 날개달린 동상과 함께 에펠탑과 안테나를 담아낸 훌륭한 풍경의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교통안내[편집]

파리 지하철에서는 바로 앞에 내려주는 역은 없다. 6호선 비라켐역이나 8호선 에콜 밀리테르역에서 가면 된다. RER C선 샹 드 마르스-투르 에펠역이 가장 가까운 편. 6-9호선 환승역인 트로카데로역은 에펠탑 맞은 편인 샤이오궁과 매우 가깝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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