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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셩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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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s1208 (토론 | 기여)님의 2019년 10월 21일 (월) 12:2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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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셩롱(邹胜龙, Zou Shenglong)
쉰레이(迅雷)

조우셩롱(邹胜龙, 추승룡, Zou Shenglong, zōu shèng lóng)은 중국 선전에 있는 클라우드 컴퓨팅 및 블록체인 분야의 개발 회사인 쉰레이(迅雷, xùn léi)의 창업자 겸 전 회장이다. 2017년 12월 12일 조우셩룽은 가족으로 인해 사임하고 왕촨(王川)이 새로 회장에 취임했다.

인물 소개

미국 Duke University를 졸업하고 컴퓨터 과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 말부터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쉰레이를 창업하고 있었다. 2003년에 귀국하였으며 선젼시에 3세대 과학기술 개발 유한회사를 설립하였다. 2005년 5월, 선젼시 쉰레이인터넷기술유한회사(深圳市迅雷网络技术有限公司)로 회사명을 정식으로 변경하였다. 2007년 구글, IDG캐피탈, 처위앤벤처스 등 5개 회사로부터 1,000만 달러의 자금을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2006년 8월 말, 쉰레이는 1억1000만 사용자와 8,000만 대에 달하는 장비를 보유했으며 50%가 넘는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면서 큐큐(QQ) 다음으로 중국 최대 인터넷 클라이언트 소프트웨어로 성장했다.

현재, 쉰레이는 가장 트랜드한 중국 인터넷 응용 서비스 소프트웨어 중 하나가 되었다. 중국 최대의 다운로드 서비스 제공업체인 쉰레이는 하루에 몇 십 개국에 수천만 번 이상의 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한다.

2010년 11월 5일, "이노베이션 10년" 선정 행사 시상식 및 2010 매니저 세계 연례총회가 베이징에서 성대하게 열렸으며 조우셩롱은 "미래 10년의 새로운 경제인물(未来十年新经济人物)"에 선정되었다.

생애

출국 전

중국 안후이화이난(安徽淮南人) 사람으로 1973년 출생이다.

1988년 16살에 조우셩롱은 부모를 따라 선전으로 가게 되며 선전남산하이테크단지에 있는 자녀고등학교인 선젼중점고등학교 써커우위차이고등학교(蛇口育才中学)에 다닌다. 조우셩롱은 발명가 집안출신이다. 후에 쉰레이를 창업한 곳도 바로 이 하이테크단지 북구역(北区)이다. 1992년 6월, 조우셩롱은 토익 600점을 받고 당당하게 광저우 영사관에 비자를 받으러 갔으나 유창하지 못한 회화능력이 토익점수와 매칭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후에 조우셩롱은 낮은 언어능력과 사전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아버지의 조언을 새겨듣고 다시 2차 비자를 신청하였으며 두번째는 순조롭게 통과되었다.

조우셩롱의 아버지 조우더쥔(邹德骏, 추덕준, Zou De Jun, zōu dé jùn)은 중국에서 유명한 대발명가이며 국제상도 여러번 받았다. 조우더쥔은 일반 노동자에서 자신의 엄청난 발명특허로 선젼과학기술단지에 회사를 설립하고 중국과학 스페이스 스테이션(space station)방면에 대한 연구를 하는 전설로 알려져 있다.

조우셩롱의 미국 유학은 미국 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威斯康星州立大学麦迪逊分校)에서 경제학 전공이었다. 당시 장학금이 없을때라 1만5,000단러에 달하는 학비와 생활비를 집에서 전 재산으로 부담해야했다. 후에 조우셩롱은 컴퓨터공학으로 전공을 바꾸지만 부모님과 전혀 상의가 없이 혼자 결정한 후에 통보를 했다. 조우셩롱은 매우 주견이 있는 사람으로 전학, 이직, 창업 모든 것을 혼자 결정했다.

1996년 7월 미국 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에서 컴퓨터학과 석사 졸업후, 1997년 12월 1년 6개월 만에 Duke University 대학교 컴퓨터학과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Duke에서 조우셩룽은 기술천재 청하오(程浩, Cheng Hao, chéng hào)를 알게 되며 두사람은 쉰레이를 공동 창업하게 된다.

미국에서 석사를 취득하자 조우셩롱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분야에 취직하여 그린카드를 신청하고 집을 사고 좋은 차를 바꿀 생각을 하며 미국생활에 서서히 적응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1998년 여름에 실리콘밸리로 여행을 가면서 그의 인생의 그래프가 바뀌게 되었다.

안정되고 훌륭한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조우셩롱은 알고 지내던 친구들이 속속 귀국해 중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당시에 큰 의욕을 보이지 않았던 그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그리하여 2003년 초 청하오와 함께 귀국해 창업을 결심하고 각각 5만 원을 출자하여 선젼에 자신의 회사를 차렸다. 인터넷 응용은 주로 검색, 포털, IM(즉시 통신), 소프트웨어 다운로드 등 네 가지 영역이다. 다운로드 소프트웨어 분야가 킬러급 운영업체가 없는 외에 검색 분야는 구글, 바이두가 포털 분야는 시나닷컴, 소호, IM 분야는 QQ, MSN이 있었다.

그래서 조우셩롱은 다운로드를 사업핵심으로 정하고 2003년 8월에 처음으로 개발한 다운로드 소프트웨어를 출시한다. 하지만 홍보가 안되어 별로 인기가 없었다. 2004년 1월, 신레이 2가 나왔는데 매일 신규 설치 사용자가 400명도 안 되었다. 또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3,4개월 동안 홍보를 했더니 쉰레이 사용자들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매일 수천명 사용자가 증가했다.

실리콘밸리 시절

1999년 여름 미국으로 떠난지 6년이 된 조우셩롱은 동창들의 초청을 받아 실리콘밸리로 여행을 떠났다.노스캐롤라이나주의 기온이 100°F(약 37.8℃)인 반면 실리콘밸리는 70°F 정도로 쾌적했던 여름 날씨였다. 게다가 비단같은 캘리포니아 햇살은 조우셩롱이 실리콘밸리를 단번에 좋아하게 되었다. 1999년 여름, 실리콘밸리는 글로벌 하이테크의 발상지이자 절대적인 중심지였고 넷스케이프(Netscape), 야후의 성공으로 실리콘밸리에서 다음 기적이 자신한테 올지도 모른다는 분위기에 휘청거려 조우셩롱은 일자리를 찾기로 했다.

먼로공원의 사구로는 사실 그리 넓지 않고, 길 옆에 나무가 많아서 그 가운데 그늘지고, 길가의 건물들은 1930년대의 집들로 색깔이 수수하고 두세 층의 작은 건물들이 많다.츄우승룡은 자신의 직장과 관련된 회사에 맞는 정보가 검색된 쪽지를 가지고 와서, 양가가 함께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는 들어가서 돌아다녔고, 오른쪽의한 가족이 2층을 차지하고 있고 왼쪽 집은 지하 차고일 뿐입니다.그래서 그는 오른쪽에 있는 그 회사를 선택해서 이력서를 냈다.츄는 왼쪽의 그 집에도 투표하지 않았는데, 그는 그의 교육적 배경과 경력, 그리고 당시 실리콘밸리의 세상 어느 집에도 던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한 가족만 던졌다. 츄우승룡은 곧 오른쪽의 그 회사 offer를 받았는데, 그는 곧 맞은편의 그 회사도 사실 아주 괜찮은 회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있는 회사와는 달리 반대편의 그 회사에는 출입하는 사람 등이 이복적이고, 독창적이라는 인상을 주었다.가장 잘 노는 일은 그 회사가 2층에서 거대한 프로젝터를 놓고, 그들을 최근에 주밀어낸 것이다.키워드가 도로에 던져져 옆 사람이 계속 발을 디딜 수 있도록 했다.이 흥미로운 회사는 바로 Google입니다. 창업 천국인 실리콘밸리에서도 두세 개의 작은 회사를 제치고 작은 팀을 형성했다.츄우의 팀 멤버 중 한 명이 어느 날 츄우승룡에게 중고차를 사고 싶은 일을 물었더니, 츄우승룽이 듣고 있다가 갑자기 반응해 차를 파는 사람도 알게 되었고, 서용이 백도연합의 창립자가 된 서용입니다. 서용은 당시 실리콘밸리에서 중국인 유학생으로는 풍운아였고, 1982년 베이징대 생물학과를 졸업한 서용은 막내로 실리콘밸리를 처음 찾은 중국인 유학생 중 한 명이다.박사학위를 마친 서용은 외향적이고 정열적이고 친구를 사랑하는 성격으로 실리콘밸리의 중국인 유학생 중심 인물이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동안 쩌우는 이언홍과 사귀었다.쩌우청과 함께 우레를 만든 청하오가 맨 처음 귀국해 바이두로 간 것은 이언홍에게 추승룡이 추천한 것이었다.한 번은 이언홍이 실리콘밸리로 돌아와 쩌우성룽을 찾아가 백도를 찾아 문호를 돌아 네티즌에게 직접 서비스해도 되는지 물어보는 등 두 차례나 이언홍과의 장담이 기억에 남는다.어떤 비즈니스 모델을 형성합니까?쩌우는 이언홍에게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낸 것으로 기억한다.또 한 번은 츄우승룡의 귀국을 앞두고 실리콘밸리 인근 원보중식당 츄우승룡 부부가 이언홍, 마동민 부부와 함께 식사를 대접하는 일상적인 만남이었다.회, 검색의 화제는 많지 않고 주로 국내 사정을 알고 싶다.이 때문에 식사를 정리한 이언홍은 말수가 적고 오히려 이 씨의 아내인 마동민이 수완이 좋다. 양녕은 추승룡에게 상당한 진동을 준 또 다른 실리콘밸리 유학생으로, 1999년 스탠포드 박사를 졸업한 양녕은 후에 차이나렌을 설립했고, 공중, 앞 두 개를 매각하고, 뒷 하나도 성공적으로 상장한 것으로 보인다.성장 궤적. 츄우승룽은 실리콘밸리에 있는 동안 두 조직의 활동에 참가했는데, 하나는 실리콘밸리 중국 엔지니어협회, 다른 하나는 첸훙이 설립한 화옌테크협회(진홍후도 雷)로, 두 조직은 항상 성공 인사와 투자를 요청하였다.나중에 천둥이 치더니 지금도 천둥의 이사다). 츄우승룽도 자신의 뜻에 맞는 친구들과의 모임을 좋아하는데,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세 자리는 햇빛이 잘 들면 스탠포드교 앞에 있는 초대야초편한 앞마당을 선택하고 저녁이면 보통 실리콘밸리 스타벅스에 간다. 2015년 12월 16일 제2회 세계인터넷대회 개막식에 게스트로 참석했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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