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밥
개요
쌀밥은 또는 이밥은 멥쌀(입쌀)로 지은 밥을 가리킨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의 주식이다. 열량은 1인분 기준으로 300킬로칼로리(356 킬로줄)이다. 멥쌀로 지은 멥쌀밥 찹쌀로 지은 찰밥이 있다. 쌀밥은 다양한 볶음밥 요리(예: 차오판, 카오팟), 밥요리(예: 비빔밥, 차즈케, 카레라이스, 달밧, 돈부리, 로코모코, 판타밧, 콩밥), 죽, 주먹밥/롤(예: 김밥, 오니기리, 스시, 종지), 떡 및 디저트(예: 떡, 약식)의 베이스로 사용된다. 쌀밥은 아시아와 중남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주식이며,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식품으로 꼽힌다. 미국 농무부는 쌀을 곡물 식품군의 일부로 분류한다. 영양학적으로, 조리된 찐 백미 200g은 여성과 남성의 일일 곡물 권장량인 170g(6 및 7oz)에 대해 각각 60g(2oz)을 제공하며 아연, 망간과 같은 미량 영양소의 좋은 공급원으로 간주된다.
멥쌀을 다른 종류의 잡곡 쌀(찹쌀, 보리쌀, 좁쌀 등)에 대비해 부를 때 입쌀이라 하고 입쌀로 만든 밥을 이밥이라 한다. 현대에는 이밥이 기본이라 따로 입쌀이나 이밥이라 하는 일은 많지 않고 그냥 쌀이라고만 해도 대개 멥쌀(입쌀)을 가리킨다. 이밥의 사투리로 이팝이 있는데, 경상도, 강원도, 평안북도, 함경도에서 사용한다. 북아권에서 주로 먹는 자포니카 쌀로 만든 밥은 찰기가 강한 편이고, 특유의 "밥 냄새"라 불리는 향이 있으며, 쌀알의 길이가 짧은 편이다. 반면 동북아를 제외한 대다수 지역에서 소비하는 인디카 쌀은 찰기가 별로 없고 대신 특유의 향이 있다.
쌀밥 가운데에서도 오늘날 가장 일반적으로 소비되는 것은 도정한 정백미를 사용한 흰쌀밥(백미밥)으로, 거친 현미로 밥을 한 현미밥 역시 쌀밥이지만 백미에 비해 색과 식감이 거친 것이 특징이다. '쌀밥은 백미로 만드는 것이 기본'이라는 인식 때문에 일각에서는 백미가 현미와 섞인 밥을 잡곡밥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물론, 백미와 현미의 차이는 도정의 정도이지 품종이 다른 것은 아니므로 엄밀히 말해서 틀린 말이나, 감각적인 인식 차이에 의해 구분되고 있다.[1][2]
쌀밥의 기원
우리 조상은 언제부터 쌀밥을 지어 먹었을까? 신석기 시대부터 기장, 피, 조, 수수 등의 작물을 먹기 시작했고 쌀은 그 이후인 듯하다. 쌀은 저습의 늪지대에 자생하는 열대 식물로, 원산지가 인도 벵골만의 오지인 갠지스 강과 부라마푸트라 강이 이루는 삼각주라는 설과, 중국의 운남성에서 인도의 아샘 지방에 걸치는 열대나 아열대의 고원 지역이라는 설이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부족국가 시대부터 벼를 재배하기 시작해 삼국 시대에 철제 농기구가 보급되면서 생산성이 높아졌다. 지형적으로 남쪽의 평야 지대가 벼농사에 적합하고, 북부 산간 지방에서는 밭농사가 적합하여 이곳에서는 잡곡이 주식이었으리라고 생각된다. 통일신라 시대에 이르러 쌀 생산량이 늘었으나 일반 백성이 주식으로 삼기에는 부족하였으며, 조선 시대에도 서민은 쌀보다는 보리나 잡곡을 많이 먹었다.
박제가의 『북학의』를 보면 삼국 시대까지도 한강 북쪽의 고구려에서는 벼농사를 지을 줄 몰랐다고 한다. 북쪽에서 가장 먼저 벼농사를 지은 곳은 신라에 속한 강릉 회양 지방이었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야 비로소 북쪽으로 퍼졌다. 일제 시대에는 쌀 생산량이 늘었으나 수출을 더 많이 해서 오히려 국내에서는 턱없이 부족했다. 우리 농민들은 1년 동안 먹을 양식을 비축할 수 없어 계절에 따라 주식이 바뀌었고, 음력 4~5월경에는 양식이 떨어져 보리 수확만 애타게 기다리는 '보릿고개'를 넘겨야 했다.
밥(飯(반))이란 곡물을 가열 조리한 음식으로 신석기 시대 이후 토기를 만들면서 지어 먹기 시작했다. 당시의 토기는 흙을 빚어 그대로 말리거나 낮은 온도에서 구운 것이어서 음식에 흙 냄새가 많이 났을 것으로 여겨지며, 시루가 생기고 나서부터 곡물을 쪄서 먹게 되었다.
철종 때의 『지문별집(咫聞別集)』「급가주서(汲家周書)」에서는 "곡물을 쪄서 밥을 얻는다. 한 번 찐 밥을 분(饙)이라 하고, 오래 쪄서 연하게 한 것을 류(餾)라 한다." 하였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도 시루에 밥을 찌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서는 "밥이란 『설문(說文)』에 식(食)이라 하였고, 『주서(周書)』에서는 황제(黃帝)가 비로소 곡식에 불을 때어 밥을 지었다고 하였다. 또 한 번 찐 밥을 분(饙)이라 하고, 기운을 머물게 한 것은 류(餾), 잡밥은 뉴(餾) 또는 유, 물에 만 것은 손(飡), 국에 만 것은 찬(饡)이라 한다"고 하였다.
지금과 같은 밥은 솥을 쇠로 만들면서부터 지어 먹은 듯하다. 『삼국사기』에 보면 1세기 초반인 고구려 대무신왕 때 "솥에 밥을 짓는다"고 한 것으로 보아 이미 삼국 시대에 쇠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쇠솥이 점차 널리 보급되면서 취반(炊飯)법이 널리 퍼졌다. '취(炊)'란 '밥 지을 취'로, 물을 넣고 삶거나 끓이는 '자(煮)'나 '팽(烹)'과는 다르다. 먼저 곡물을 씻어 솥에 담고 물을 부은 후 끓이면(煮(자)) 물을 충분히 흡수하여 솥 안에 수증기가 가득 차면서 찌는(蒸(증)) 상태가 되고, 뜸을 들이면 수분이 더 줄어들어 밑바닥이 노릇노릇하게 눌어서(燒(소)) 누룽지가 된다. 이처럼 밥은 삶고(煮(자)), 찌고(蒸(증)), 태우는(燒(소)) 세 단계를 거친다.[3]
특징
한국의 식단은 주식과 부식이 확연히 구분되어 밥을 주식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밥이라 하더라도 모두 쌀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밥 짓는 재료로 쓰이는 곡물은 지역에 따라 달랐다. 서유구가 지은 <임원경제지>(1827)에서는 "남쪽 사람은 쌀밥을 잘 짓고 북쪽 사람은 조밥을 잘 짓는다"고 하여, 남북의 주식이 달랐음을 시사하고 있다. 북쪽의 주식이 조였음에는 별다른 이론이 없다. 그러나 남쪽에서는 어느 정도의 경제력만 있으면 쌀밥을 먹었다. 물론 농촌에서 춘궁기부터 추수 전까지는 보리밥이나 잡곡밥을 많이 먹었겠지만 쌀밥이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만은 아니었다. 주식은 기본적으로 쌀밥이고 다만 북쪽에서는 조밥을 먹었다는 사실은 국내 기록은 물론 외국인 견문기에도 무수히 많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는 남쪽에서는 보리나 잡곡이 곁들여진 쌀밥이, 북쪽에서는 조밥이 주식이었고 경제력에 따라서도 사정이 달랐다고 할 수 있다.
쌀을 주로 먹는 것은 단순한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벼농사를 지어야 수많은 사람이 먹고 살 수 있었던 것이다. 18세기 중엽 유럽에서는 밀을 1알 뿌리면 6알을 수확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쌀은 1알을 뿌리면 평균 25알에서 30알 정도를 수확했다. 그러므로 이중환(1690-?)은 <택리지>에서 "볍씨 1말을 뿌려 60말을 거두면 살기 좋은 곳이고, 40~50말을 거두는 곳이 그 다음이며, 30말을 거두면 살기 힘든 곳"이라 하였다. 벼농사는 노동량이 많이 투여되지만 여러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밀처럼 이포제, 삼포제 농업으로 경작지를 묵혀 두지 않아도 되고 조건이 좋은 곳에서는 이모작, 삼모작을 행할 수 있어 경지 이용도와 단위 면적 당 생산량 모두 높았다. 또한 밀에는 필수 아미노산이 부족하여 고기를 곁들여 먹어야 하지만, 쌀은 기본적인 영양소가 고루 갖추어져 있어 약간의 영양소만 보충하면 될 뿐이었다. 그러기에 쌀을 재배하여 100명이 먹고 살 수 있는 넓이의 땅에 밀을 심으면 75명이 먹고 살 수 있고, 목초지를 만들어 고기를 먹는다면 9명이 먹고 살 수 있다고 한다. 불교나 힌두교 등 고대 인도의 종교가 쇠고기를 먹는 것을 금한 것은, 이 종교들이 발생할 무렵에 인구밀도가 적정선을 넘어서서 육식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인류학자도 있다.
요즘이야 쌀이 흔하고 잡곡이 비싸져서 거의 흰 쌀밥으로 짓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쌀밥은 귀했고 대부분 잡곡을 절반 정도 섞은 밥이었다.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거의 잡곡에 쌀을 약간 넣은 수준이었다. 또 거슬러 올라가면 그것도 없어 만주산 조밥이나 멀건 보리죽을 먹었었고, 특히 철원을 제외한 강원도 지역에서는 쌀이 다른 지역보다도 더 귀해서 수수나 강냉이로 밥을 대체했고 본격적으로 쌀을 맛본 것은 6.25 전쟁 이후로 원조로 들어온 안남미가 보급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그래도 국내 쌀 생산량이 소모량을 따라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1960~1970년대에는 혼식을 강제하기도 했었다. 맛은 없었지만 수확량이 많은 통일벼가 보급되고 쌀 생산량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주식이 되기에 이른다. 그 이전까지 쌀밥은 부의 상징으로 선호되는 음식이었으나, 요즘에는 역전되어 잡곡밥이 더 비싸고 건강식으로 더 선호받고 있다. 이는 빵에서도 비슷해서 과거에는 부의 상징이었던 흰빵보다 호밀빵 같은게 더 비싸다.
단맛도 있으며, 느끼하고 기름지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현미밥이나 잡곡밥을 먹다가 하얀 쌀밥을 먹으면, 쌀밥이 얼마나 미끈미끈하고 부드러운지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도정된 하얀색 쌀밥만 먹으면 비타민B1 부족으로 각기병에 걸릴 수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20세기 초기만 하더라도 흰 쌀밥을 먹는 것이 부의 척도였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쌀밥을 먹길 선호했다. 완전 부자들은 반찬도 풍족하게 먹고 가난한 사람들은 현미를 먹어서 문제가 없었지만, 애매하게 돈이 있는 사람들이 반찬을 포기하고 흰 쌀밥만 먹다보니 각기병에 많이 걸렸다. 타임슬립 닥터 JIN에서도 잡곡밥을 한사코 거부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부터 각기병이 유행처럼 번져서 사회 문제가 되었고, 일본군은 쌀은 부대에서 지급했지만 부식은 부식비를 줘서 병사들이 따로 사먹는 식이었는데, 부식비를 아끼려고 반찬을 최소한으로만 먹던 많은 병사들이 각기병에 시달렸다. 서양에서는 감자와 돼지고기를 자주 먹었기 때문에 각기병이 드물었다. 여담으로 일본 해군에서는 각기병이 단백질 부족 때문이라고 보고 부식비를 지급하는 대신 부식으로 돼지고기와 콩을 많이 먹였는데 우연히도 둘 다 비타민 B가 많은 식품이라 효과를 보게 된다. 그리고 이 식단 개선 과정중 카레를 도입하여 쌀에 얹어먹는 식으로 카레라이스를 만들었고, 이후 일본의 주식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2]
조리법
전기밥솥
- 1. 쌀을 물로 서너 번 씻어준 후 최소 10분 이상 불린다.
- 2. 물양은 쌀이 잠겨서 손등 언저리까지 차오르는 양을 기준으로 하고 전기밥솥에 내솥을 앉힌다.
- 3. 취사 버튼을 누른다.
- 4. 완성되면 약간을 시간을 두고 뜸을 들인 후, 밥을 주걱으로 뒤적거려서 위와 아래가 고르게 수분이 전달되게 한다.
냄비
- 1. 전기밥솥 조리법의 1,2와 같다.
- 2. 센불에 올려서 냄비의 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 약불로 줄인후 대략 10~20분 정도 가열한다.
- 3. 뜸을 들인 후 주걱으로 뒤적거리거나 혹은 그냥 먹는다.
압력밥솥
- 1. 압력밥솥도 위의 1, 2와 같다.
- 2. 압력밥솥을 불에 앉히고 증기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불을 최대한 약하게 줄인다. 누룽지를 원하면 1~2분 정도 불을 줄이지 않고 좀 더 기다린다.
- 3. 그 상태로 10분 정도 뜸을 들이고 불을 끈다.
전자렌지 컵밥
- 1. 계량컵에 2/3 정도의 불린 쌀을 담는다.
- 2. 물량은 검지 한마디 정도로 넘치게 담은 후 컵의 바닥과 입구에 작은 접시를 받쳐서 물이 넘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한다.
- 3. 3분 정도 돌린 후, 접시에 흘러내린 넘친 물을 다시 컵에 붓고 1~3분 가량 돌린다.
- 4. 1분 정도 뜸을 들인 후 내용물을 확인해봐서 제대로 되었다면 완성이다.
전자레인지에 1분 정도만 데우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밥도 많이 나와있다. 상표명이지만, 보통 싸잡아서 햇반이라고 한다. 그리고 전자기기에 의존할 필요도 없이, 자체 화학반응으로 가열하는 발열도시락도 있다.
주의점
- 불조절과 뜸조절이 추가되는 압력밥솥은 난이도가 껑충 뛰어오른다. 가마솥밥은 밥의 로망이다.
- 냄비밥처럼 고슬고슬한 밥을 선호한다면 압력밥솥이나 고압력 전기밥솥을 쓰면 안된다. 냄비밥은 1기압(무압) 100도에서 조리되는 반면 압력밥솥은 2기압에서 120도에 조리되므로 찰진 밥이 된다. 따라서 압력기술 마케팅을 보고 무작정 고압력 밥솥을 사지 말고 무압(비압) 방식을 채용한 전기밥솥을 사용해야 한다.
- 응용법으로는 콩밥, 콩나물밥, 밤밥, 팥밥, 버섯밥 등이 있다. 밥을 지을 때 해당 재료들을 같이 넣고 지으면 된다.
- 물 양을 잘못 조절하면 너무 진 밥이 되거나, 혹은 죽이 되는 수가 있다. 밥을 짓는 것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만 밥만 몇십 년 한 어머님들도, 심지어 그걸로 먹고 사는 요리사들도 밥맛을 늘 같이 내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계량기를 이용해 매번 정확히 재고 일정한 화력을 정확히 출력하는 레인지를 이용한다 해도 미묘하게라도 밥맛이 매번 다른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 이는 쌀의 품종, 햇수, 작황에 따라 쌀 상태가 전부 달라져 물을 머금는 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쌀의 상태에 따라 물의 양을 미묘하게 조절해야 하는데 쌀을 맨눈으로 본다고 이게 상태가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 바리에이션으로 누룽지, 누룽밥, 노란밥이 있다. 자취생들의 필수 코스라 할 수 있는 식단이다. 밥을 해놓고 오래 먹지 못하면 누렇게 뜨기 때문이다. 맛도 퍽퍽해지니 이미 지은 밥은 오래 두지 말고 빨리 먹자. 그나마 이를 예방하려면 시간이 많을 때 잔뜩 밥을 한 후 한 주먹씩 뭉쳐서 냉동실에 넣어두면 된다. 그리고 나서 먹을 때마다 꺼내서 전자렌지에 데워 먹으면 햇반 못지 않다. 전기밥솥은 취사보다도 보온에 더 많은 전기를 쓴다.[2]
서양에서의 쌀밥
남아프리카에서는 예로부터 쌀이 주요한 식량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마다가스카르는 폴리네시아인들이 아시아에서 이주해 올때 쌀을 가지고 들어온 곳이기 때문에 특히 즐겨먹는다.
북미쪽 백인 가정에서도 주식으로 쌀밥을 먹는 가정들이 가끔 있는데, 동양인들처럼 밥과 여러 반찬과 같이 먹는 식이 아니라 덮밥 식으로 밥 위에 고기볶음이나 각종 요리를 얹어서 먹는다. 그 이유는 이들이 보통 접하는 동양식 음식은 프랜차이즈점에 파는 덮밥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프렌차이즈점에서 동양식을 먼저 접한 백인들이 제대로 된 식당에 갔을 때와의 반응이 상당히 다르다.
튀르키예, 스페인 등 유럽에서도 쌀밥을 먹는데, 튀기거나 구운 감자와 같이 쌀밥을 먹는, 한국인이 보기에는 괴상한 조합이 나오기도 한다. 중남미에서도 스페인 요리나 화교들의 영향을 받아 쌀밥 요리가 있다. 이 중 콜롬비아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국가인데, 밥을 앉힐 때 소금으로 미리 간을 해 둔다.[2]
쌀밥의 효능과 보관법
밥을 지을 때는 벼를 도정해서 알곡으로 짓는데 볍씨의 외피만 벗긴 것을 현미, 도정할 때 겨층을 30% 없앤 것은 3분도미, 50% 없앤 것은 5분도미, 70% 없앤 것은 7분도미라고 하며 완전히 없앤 것이 백미이다. 겨를 제거하면 쌀눈(胚芽(배아))도 함께 떨어져 나가므로 현미에 비하여 단백질, 지방, 비타민, 무기질 함량이 적지만 섬유소가 적어 소화가 잘 되고 부드럽다. 쌀의 열량을 알아보면 100g당 현미가 351kcal, 백미는 356kcal이므로 하루에 필요한 열량을 쌀로만 보충하려면 백미 3~4홉(450~600g)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사람은 섭취 열량의 반 정도와 단백질의 약 15%를 쌀밥에서 섭취하고 있다.
곡식과 채소를 먹는 편이 육식을 하는 것보다 두뇌 발달을 좋게 한다는 실험 보고가 있다. 쌀은 알곡을 그대로 입힌 입식(粒食)이고, 채소는 섬유소가 많아서 오래 씹어야 하므로 저작근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전두엽을 자극하여 두뇌가 좋아진다고 한다. 육식 동물은 힘이 세나 지구력이 떨어지고 초식 동물은 힘은 약하지만 굶주림에 오래 견디는데 이는 내장의 길이 때문이라고 한다. 쌀과 채소를 많이 먹는 한국 사람의 소장은 고기와 밀가루를 먹는 서양 사람보다 평균 80cm가 더 길어 지구력이 있지 않은가 한다. 일부에서는 요즘 아이들이 무슨 일이든 꾸준히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쌀보다 고기와 빵을 많이 섭취하는 식습관 때문이라고도 한다.
쌀을 보관할 때는 청결하고 건조한 용기에 담아 두는 것이 좋다. 용기에 먼저 먹던 쌀이나 쌀겨가 남아 있으면 새 쌀의 질이 바로 나빠진다. 또 통풍이 잘 되고 습기와 악취가 없는 실온에서 낮은 장소에 보관하는 것이 좋으며, 여름에는 2주일, 겨울에는 1개월 정도 먹을 만큼의 양이 알맞다.
『규합총서』와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밥을 보관하는 법이 나오는데 날비름(生莧菜(생현채))을 밥 위에 덮어 놓으면 다음날까지 상하지 않으며, 연잎으로 싸 두면 여름에도 쉬지 않는다고 하였다.[3]
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