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허하오터시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후허하오터시(중국어: 呼和浩特市 hū hé hào tè shì)는 중국 네이멍구자치구 중부에 위치해 있는 지급시이며 네이멍구자치구의 수부(首府)이자 직할시이다. [1][2][3][4]
개요[편집]
후허하오터시의 면적은 17,186.1㎢이며 인구는 3,446,100명(2020년)이다. 내몽고 자치구의 정치, 경제 및 문화의 중심지이며 중국역사 문화명성(2차, 1986)으로 지정되어 있다. 후허하오터(呼和浩特)는 몽골어로 청색의 성(青色的城)이라는 의미이며 동쪽으로 베이징으로부터 470㎞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시인민정부는 후이민구(回民区, 회민구)에 있으며 행정구획은 후이민구(回民区, 회민구), 신청구(新城区. 신성구), 위취안구(玉泉区. 옥천구), 싸이한구(赛罕区. 새한구)의 4개 시할구(市辖区)와 퉈커퉈현(托克托县, 탁극탁현), 우촨현(武川县, 무천현), 허린거얼현(和林格尔县, 화림격이현), 칭수이허현(清水河县, 청수하현)의 4개 현, 투모터좌기(土默特左旗, 토묵특좌기)의 1개 기(旗)로 이루어져 있다.
도시의 이름은 몽골어로 "푸른 도시"를 뜻하며 도시의 대부분은 시의 시구로서 자리잡고 있다.
주민등록인구의 87.3%가 한족이었고 9.6%가 몽골족, 1.6%가 후이족, 1.2%가 조선족, 위구르족을 포함한 기타 민족이다. 후허하오터의 한족들 거의 대부분은 산시성 (섬서성)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으로 몇 세기 전부터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이후에 정부의 국경 지방 개발 장려책에 따라 둥베이와 허베이성에서 이주해온 사람들도 있다. 도시 사회의 주류로 통합됨에 따라 대부분의 몽골족은 표준 만다린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인구의 상당 수는 민족의 혼혈이 이루어졌다.
네이멍구 대학을 비롯한 교육기관, 축산관계의 연구소 등이 설치되었다. 농업기계·모직물·피혁·제분 등의 공업도 활발하다. 경내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속칭 오탑(五塔)이라고 불리는 금강좌사리보탑(金刚座舍利宝塔), 왕소군 묘(王昭君墓), 대소(大召), 50만 년 전의 구석기시대 유적인 대요유지(大窑遗址), 만부화엄경탑(万部华严经塔), 수원성장과 장군아서(绥远城墙和将军衙署), 칭수이허단(清水河段), 화석각정공주부(和硕恪靖公主府)가 있다.[5] [6]
자연환경[편집]
경내는 북부 다칭산(大青山, 대청산)과 동남부의 만한산(蛮汉山) 산지 지형과 남부 및 서남부의 투모촨평원(土默川平原, 토묵천평원) 지형의 두 부분으로 크게 나뉘며 동북에서 남서방향으로 점차 경사져 있다.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지점은 다칭산(大青山, 대청산) 금란전(金銮殿) 정상으로 고도는 2,280m이며 가장 낮은 지점은 퉈커퉈현(托克托县, 탁극탁현) 중탄향(中滩乡)으로 986m이다. 시내의 해발고도는 1,040m이다. 다칭산(大青山)은 인산산맥(阴山山脉, 음산산맥) 중간부분으로 세로 주향의 산맥과 산봉우리가 많으며 주요 산으로 주펑산(九峰山, 구봉산), 진미뎬산(金蜜殿山, 금밀전산), 판룽산(蟠龙山, 반룡산), 후터우(虎头山, 호두산), 만한산(蛮汉山) 등이 있다. 경내 주요 하천으로 다헤이하(大黑河, 대흑하), 샤오헤이하(小黑河, 소흑하)가 있다.
전형적인 사막성 기후이다. 연 강수량이 약 300mm로 매우 건조한 환경이다. 겨울철 실내에 빨래를 널면 2시간 만에 마른다. 원체 건조한지라 비는 구경도 힘들고 비가 내려도 금방 마르기 때문에 길가에 배수구가 없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이처럼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서 중국에서 가장 물이 부족한 도시 중 하나로 꼽히지만, 황하 및 요하에서 물을 끌어오는 덕분에 생활에는 불편함이 없다.
대륙성 기후라서 낮에 덥고 밤에 춥다. 마찬가지로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다. 대신 건조하기 때문에 낮이라도 그늘만 가면 비교적 시원한 편이다. 애초 몽골 기후가 다 이렇다. 짧은 여름엔 섭씨 40°C까지 올라가고 긴 겨울에는 영하로 -50°C까지 떨어진다. 조드라는 강풍은 덤이다. 조드 한방에 부자도 망한단 몽골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몽골인의 주택인 게르의 경우 여름 더위와 겨울 추위에 모두 대비가 되어 있도록 설계했으며 강풍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 점은 같은 사막에 사는 동계 유목민인 튀르크계 유목민들의 유르트도 똑같다.
여름이 짧은 편이라 호텔 같은 건물 제외, 대학이나 기숙사, 가정집, 식당 등에 에어컨이 없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기온이 들쭉날쭉하여, 5월에 난데없이 30°C까지 올랐다가 12°C까지 떨어지기도 한다. 벚꽃피는 계절에는 벚꽃 위에 눈이 내려앉기도 한다. 햇빛은 굉장히 강한 편이라 선글라스 없이 다니기 힘들다.
기압이 아주 낮아서 강풍이 심하다. 비행기도 남몽골 상공 비행 시 강풍에 심하게 흔들려서 몽골 고원을 통과하는 비행은 난이도가 꽤 높다. 남몽골이 어찌나 강풍이 심한지 바이킹을 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비행기가 수직하강과 상승을 반복하기도 한다. 북극항로 개척이 늦었던 이유 중 하나가 이렇게 까다로운 난이도의 기류대를 통과해야 하는데 비해 몽골, 중국, 러시아 3국의 관제시스템이 열악해서 그런 게 컸다.
의외로 황사는 짧다. 대신 심한 경우 공기에서 모래 내음을 맡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공기가 매우 좋다. 흐린 날이 드물고 하늘은 높고 푸르다. 우리나라의 가을 하늘을 연상하면 된다.
역사[편집]
대나라가 이 지역 일대에 존재했으며, 북방 민족에 대한 방비를 위해 운중군에서 호흐호트시 동부지역에 정양군을 분리신설했다.
후한말기 이민족의 선비족의 성장으로 인해 선비족이 이 지역을 정복하였다. 선비족들 중 탁발선비가 호린게르 현에 있던 성락을 자신들의 근거지로 삼고 다퉁시, 숴저우시일대를 약탈했다.
1565년에 몽골의 투메드 알탄 칸에 의해서, 투메드부의 지배 지역에 유입된 한족 노예 소작농민을 거주시키는 마을로 건설된 중국식의 성곽도시 바이신(大板升)이 후허하오터의 기원이 되었다. 바이신은 중국어 백성의 음역이다. 투메드부 유목 국가의 주요 영주 지배하에 있는 유목민은 지도자 가계의 혼인이나 분가 등의 이유로 분할과 융합이 빈번한 유목 집단 단위의 소속 의식을 강하게 가지며, 본래는 한인식 성의 개념은 가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동식 주거인 유르트에 거주하며 도시 내의 주거용 거주지에서는 거부감을 강하게 느껴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한인용 주거지를 위해서 만들어진 도시에 백성의 명칭이 부여된 것은 한족식 성의 개념을 가지지 않는 몽골인에게 부계의 성을 부여하여, 동성의 귀속 의식을 강하게 하고, 도시 정주생활을 좋아하는 한인의 거주지를 가리켰기 때문이다.
1571년에 알탄 칸이 명나라와 강화를 맺고 순의왕의 칭호를 받으면서 국경무역이 인정되자, 명나라가 귀화성이라는 부르는 후허하오터는 중국에서 몽골 고원으로 들어오는 물자의 집적지가 되어 번창했다. 알탄은 만년에 달라이 라마에 귀의해 티베트 불교로 개종했기 때문에, 후허하오터에는 수많은 티베트 불교 사원이 건립되어 오르도스 지방의 정신적 중심지가 되었다.
투메드부는 몽골과 중국 무역의 이권을 독점했기 때문에, 그 정주 거점인 후허하오터는 급속히 발전하지만, 1628년에 차하르의 링단 칸에 빼앗겼다. 게다가 1634년, 링단 칸이 병사하면 만주 민족의 후금이 후허하오터를 점령하고, 내몽고 전역을 지배해 1636년에 국호를 청이라고 고쳤다.
청은 귀화성의 북동쪽 근처에 수원성(綏遠城)를 쌓고, 오르도스 지방의 방위를 담당하는 팔기의 주둔지로 했다. 귀화성과 수원성은 아울러 「귀수」라고 불려 청대 이후, 중앙정부의 직할지로서 내몽고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후, 1913년에 귀수의 행정체가 귀화현에서 귀수현으로 개명되고, 1950년에 시로 승격하여 후허하오터시가 되었다. 1985년 국무원에 의해 전국역사문화명성으로 지정받았으며, 1992년에는 연변 개방성시로 지정되었다.
교통[편집]
후허하오터에는 베이징부터 바오터우까지의 징바오 철로가 놓여있다. 베이징까지의 열차는 중국 남부 및 만주의 목적지로 연결된다. 서쪽으로의 열차는 바오터우와 란저우를 통과한다. 또한 내몽골의 대부분 도시 및 울란바타르로 연결되는 철도가 있다.
후허하오터 바이타 국제공항은 도시 중심가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다. 베이징, 상하이, 선전, 청두, 톈진, 우한, 홍콩 및 몽골 울란바타르로 가는 직항 노선이 있다.
2019년 12월 29일에는 후허하오터 지하철이 개업했다.
음식[편집]
음식이 매우 짜다. 원나라 시대 이 지역에서는 한족들이 이주해왔고, 명나라 이후 감자가 중국에 전래된 뒤로는 전통적으로 감자 재배가 일반적이었다고 하는데, 이는 기후가 원인으로 보인다. 2010년대부터 도시 외곽에 우후죽순 생긴 신도시 지구가 1980년대~1990년대에는 전부 광활한 감자밭이었다는 얘기가 있다.
이 지역은 엄연히 남몽골 지역인지라 중국의 최대 소수민족을 이루는 몽골족, 즉 몽골인들이 많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몽골 요리도 자주 접할 수 있다. 주권국가인 몽골 즉 북몽골과 약간 다른 남몽골식 몽골 요리인데 이 남몽골식 요리가 만주 요리, 그리고 북방 중국 요리인 베이징 요리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
관광[편집]
원나라, 북원, 청나라 등 유목민 왕조 시대에 지어진 티베트 불교 사원들과 역시 이 지역 토착민인 회족에 의해 지어진 이슬람 사원 청진사, 흉노에 끌려간 한나라 궁녀 왕소군의 묘인 소군묘 등이 관광지이다.
시내 동쪽에 바이타 국제공항이 있으나 철도 교통이 애용된다. 바이타 국제공항 인근에 공항 이름이 비롯된, 요나라대 중후기에 세워진 백탑(白塔, 바이타), 만부화엄경탑()이 있는데, 시내버스가 통하지 않는다. 시내버스 종점에서 도보로 50분 거리인데 인도가 없다.
내몽골박물원도 규모가 크고 이 지역을 차지, 개발한 유목민 왕조인 요, 금, 원, 청대 및 흉노와 돌궐 시대 역사 유물을 다량 소장하고 있어 볼 만 하다. 특히 한국에서 보기 힘들고 잘못하면 튀르키예 이스탄불까지 가서 봐야 하는 돌궐 유물들을 여기서 대거 볼 수 있다.
지도[편집]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후허하오터시〉, 《위키백과》
- 〈후허하오터시〉, 《나무위키》
- 〈내몽골 자치구〉, 《위키백과》
- 〈내몽골 자치구〉, 《나무위키》
- 〈두산백과: 후허하오터〉, 《네이버 지식백과》
- 〈중국행정구획총람: 후허하오터시〉,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