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밥
찬밥은 지은 지 오래되어 식은 밥이거나 지어서 먹고 남은 밥을 말한다.
개요
찬밥은 내버려둬서 차게 식은 밥을 말한다. 따끈따끈할 때 머금고 있던 수분이 날아가 밥알이 굳어서 맛이 상당히 떨어진다. 이 때문에 대개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으며, 이를 빗대어 별로 좋지 못한 대접을 받는 것을 '찬밥 취급' 또는 '찬밥 신세'라고 부르기도 한다.[1]
보통 우리는 밥을 먹을 때 갓 지어 먹거나 데워서 따뜻하게 먹다. 그래서 예부터 더운밥은 온기와 정을 의미한다. 그와 반대로 찬밥은 어떤 물건의 효과나 효용이 없어짐을 뜻하다. 흔히 사람들에게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면 "나는 찬밥신세다."라고 하지요. 한마디로 말해서 더운밥은 좋은 상황을, 찬밥은 나쁜 상황을 가리킬 때 쓴다. '찬밥 더운밥 가리다'는 속담은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서 배부른 행동을 하는 것으로, 지금 사정이 급하고 어려운데 이것저것 따지는 것을 비꼬아 말할 때 흔히 쓴다.
고전 소설인 《춘향전》에도 이 속담에 걸맞은 상황이 나온다. 한양으로 과거 시험을 보러 간 이몽룡이 실제로는 급제를 하여 암행어사가 되었지만 낙방을 한 거지처럼 위장하여 장모인 월매를 찾아온다. 신의 딸은 사또의 수청을 거부하다가 감옥에 갇혔는데 사위랍시고 찾아온 위인은 추레한 몰골로 밥만 찾자, 월매는 온갖 구박을 하며 이몽룡을 내쫓으려고 한다. 그러자 이몽룡이 말했는데,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니 아무 거라도 좀 주시오."라며 애걸한다.
살면서 모든 상황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언제든 뜻하지 않은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으며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처지를 바로 보지 못하면 일을 더 그르칠 수 있다.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싫다'는 식으로 대책 없이 불평만 하기보다는 주어진 상황을 해결하는 데 가장 알맞은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2]
맛과 보관 방법
밥이라는 음식은 본래 여름엔 금방 쉬고 겨울에는 습도가 낮은 관계로 표면이 말라 붙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보온밥솥 등의 도구가 없던 시절에는 밥맛을 유지하면서 온전히 보관할 방법이 없어 끼니마다 밥을 지어 먹었는데, 이런 풍토상 찬밥은 전 끼니에 남은 밥이다보니 맛도 맛이려니와 신선도 및 인식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일례로 손님에게 찬밥을 주는 것은 대단한 푸대접으로 여겨졌으며, 이런저런 이유로 활용성이 떨어지는 바 찬밥이 나오지 않게 밥량 조절을 잘 하는 것도 옛시절 부인들의 덕목이었다. 하지만 맛 부분에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개인차도 있어서 찬밥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다. 이런 이들은 오히려 뜨거운 밥을 먹는 걸 싫어한다. 특히 보통 밥보다 찰기가 덜한 편인 찬밥이 맛을 내기 좋은 요리도 여러가지 있다. 물론 맛보다 그냥 빨리 먹을 수 있다는 편리성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단지 이 경우에는 찬밥보다 그냥 온도가 낮은 밥을 좋아한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보온밥솥이 보급된 이후에는 밥을 장기간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어 찬밥이 생기는 경우는 꽤 드물어졌다. 다만 보온밥솥에 밥을 오래 보관하면 밥이 삭거나 색이 변해서 맛이 없어지니 주의할 것. 이론상으로는 1주일 가까이(150시간 가량) 보온밥솥에 보존했다가 먹어도 건강에 지장은 없지만, 4~50시간만 보온 상태로 있어도 밥의 맛과 향이 현저히 떨어진다. 귀찮아도 밥은 2~3끼 분량씩 꼬박꼬박하는 것이 좋다. 보온밥솥이 없거나 지나치게 장기간 나눠 먹을 경우에는 갓 지은 밥을 랩으로 싸거나, 뚜껑이 있는 용기에 따로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을 때마다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으면 맛도 그리 떨어지지 않고 먹을 만 하다.
옛말에 '찬밥 먹으면 살이 안 찐다' 는 말을 종종 들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된 연구가 있는데, 스리랑카 화학 과학대 연구진이 미국화학학회(American Chemical Society) 연례회의에서 코코넛 오일 1 티스푼 가량을 넣은 후 밥을 지은 후 그 밥을 12시간 가량 0~5도의 냉장고에서 냉장을 할 경우 원래 밥 안에 들어있던 가소화 전분이 저항 전분으로 바뀌어 최대 60%의 열량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는데, 실험에서는 실제로 10~15% 전후의 효과밖에 있지 않았고, 60%나 줄인다는 건 연구자의 희망사항임으로 저항전분이 다이어트에 드라마틱한 도움이 된다고는 할 수 없다. 같은 방법으로 감자 등 탄수화물이 다량 함류된 식재료를 조리해도 마찬가지의 열량 감소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하며 빵에 대해서는 추가적으로 연구 중이라 밝혔다.
소장에서 가소화 전분은 포도당 등의 영양소로 분해되는데 반해 저항 전분은 분해가 되지 않아 그대로 몸 밖으로 배출되고 신체에도 별 영향을 주지 않는데 위의 방법대로 밥을 지은 후 냉장할 경우 녹말의 주요 성분이자 물에 잘 녹는 성분인 아밀로스 분자들 사이에 수소 결합이 이루어지면서 저항 전분으로 바뀐다. 가소화 전분이 저항 전분으로 바뀌어 체내에 흡수되는 포도당도 줄어들기 때문에 혈압의 상승량도 낮아지게 되는 원리로 코코넛 오일은 밥이 되는 과정에서 쌀알에 침투해 저항 전분이 되는 것을 돕는다. 이와 관련해 밥을 냉동하기만 하면 탄수화물이 파괴되어 열량이 감소한다는 냉동밥 카더라가 나오기도 했다.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박준우 기자가 언급해서 넓게 퍼지게 되었는데 이는 위의 정보가 알려지는 과정에서 몇 가지가 누락되면서 왜곡된 것이다.
먹거리 X파일 방송에서 전남대학교에 의뢰해 검사한 바에 따르면 갓지은 밥의 저항전분 비율이 3.83%일 때 냉장 보관한 밥의 저항전분이 5.18%로, 1.35%p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같은 기관에서 여러가지 밥과 오일을 사용해 실험해 보았지만 최대 2%p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밥을 먹고 혈당 차이를 비교해 보았지만 갓지은 밥을 먹고 120분 뒤 혈당이 163mg/dL일 때 냉장 보관한 밥의 혈당은 그보다 10~15mg/dL 정도 떨어지지만 현미밥의 120분 뒤 혈당이 120mg/dL인 것과 비교해 보면 미미한 수준인 것을 알 수 있다. 즉, 건강을 생각한다면 현미밥을 먹거나 한 숟갈 덜 먹는 게 훨씬 낫지 냉장 보관한 밥을 먹는 건 수치로 볼 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용례
- 찬밥을 데우고 싶다면, 큰 그릇에 물을 적당히 넣은 다음 찬밥을 담은 그릇을 중탕시킨 후, 비닐로 싸서 전자레인지로 대략 1분 정도 돌리면 된다.
- 국물이 있는 요리, 특히 라면에 밥을 말아먹을 때는 뜨거운 밥보다 찬밥이 훨씬 맛있다. 뜨거운 밥은 밥알 겉면에 수분을 머금고 있어서 국물이 잘 스며들지 않는데, 찬밥은 이미 겉면에 수분이 많이 날아간 상태이기 때문에 국물이 잘 스며들어서 간이 잘 되기 때문이다.
- 볶음밥을 만들 때도 고슬고슬한 찰기 없는 밥을 조달할 수 없을 때 찬밥을 대신 쓴다. 특히 식당이 아닌 집에서 해 먹을 때는 대부분 이쪽을 베이스로 삼을 수밖에 없다.
- 무더운 삼복더위에 입맛이 없다면 찬밥에 물을 말아서 먹는 것도 한 방법. 물에 말아 김치와 함께 먹는다든가, 밥 한 숟갈 고추 한 입 베어먹는 그 맛은 시원하면서도 매운맛이 있어 입맛을 돋운다. 이외에도 김과 간장만의 간단한 조합으로 즐기는 경우도 있으며 이러한 밥상에선 찬밥이 밥의 냄새가 적기 때문에 더욱 선호하는 사람도 많다.
- 아예 찬밥을 모아두었다가 한꺼번에 누룩을 넣고 막걸리나 쉰다리, 식혜 혹은 식초를 만들 수도 있다.[1]
기타
- 중요하지 않고 하찮은 인물이나 사물을 비유하는 말인데, 관련 속담으로 굉장히 급하거나 조건을 따질 때가 아님을 의미하는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가 유명하다.
- 전통명절 한식에는 찬밥과 찬 음식을 먹는 풍습이 있다.[1]
한식과 찬밥
찬 음식으로 차린 푸짐한 밥상
어둡고 추운 밤을 깨우듯 내리쬐는 햇볕만으로도 아침은 충분히 따뜻하고 포근하다. 하지만 그 아침을 더욱더 풍요롭게 하는 것은 아궁이마다 피어오르는 밥 짓는 내음이다. 가마솥에서 뜸이 들고 있는 밥의 구수하고 그윽한 내음은 잔솔가지가 타는 매캐한 냄새와 어우러져 더없이 푸근하다. 하지만 오늘만은 다르다. 오늘 아침에는 어떤 집의 아궁이에서도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다. 주부들은 평소와 달리 갓 지은 따뜻한 밥과 국 대신 어제 미리 만들어 둔 찬 음식을 상에 올렸다.
비록 찬밥과 식은 찬이었지만 그렇다고 오늘의 밥상이 결코 초라한 것만은 아니다. 음식의 온기를 대신해 눈으로 즐길 수 있는 예쁜 별식들이 함께 올라왔기 때문이다. 다진 쑥을 찹쌀가루와 반죽해 만든 쑥떡과 쑥단자는 가장 대중적인 별식이었다. 좀 더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제철에 피는 고운 빛깔의 꽃을 찹쌀부꾸미에 얹은 화전(花煎)과 진달래꽃을 넣어 빚은 두견주(杜鵑酒)를 냈으며, 궁중에서는 고운 분홍빛 창면과 화면이 유밀과와 함께 수라상 한쪽 자리를 차지했다. 오늘은 한식(寒食), 말 그대로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날이다.
음식, 차가워지다
우리의 전통 음식 문화에서는 음식의 따뜻한 온기(溫氣)도 음식의 맛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였다. 우리네 조상들은 차갑게 식은 음식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찬밥'이라는 말에 단지 '지은 지 오래되어 식은 밥(냉반, 冷飯)'이라는 본질적 의미 외에 '중요하지 아니한 하찮은 인물이나 사물'이라는 의미가 담기는 것에서, 밥에 '따뜻함'이라는 요소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음식을 먹는 순간에는 따뜻한 밥과 찬이 좋으나, 음식을 오래 두고 먹기를 원한다면 온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음식을 상온에 일정 시간 이상 방치하면 쉬거나 상해서 먹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식품은 대개 동식물의 일부로 이루어져 있기에 실온에 놓아두면 미생물이 증식하여 썩을 뿐 아니라 설사 미생물의 침입을 차단한다 하더라도 그 자체의 생물학적 특성에 의해서 스스로 변질되기도 한다.
즉, 무균 상태로 보관한다 하더라도 상온이라면 사과는 스스로 세포호흡을 하고, 효소 작용을 하고, 에틸렌을 분비하면서 서서히 익어 가다가 결국 물러진다. 따라서 미생물의 유입을 막더라도 식재료 자체의 생화학적 변화를 저지하지 못하면 음식은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를 저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그저 음식을 차게 보존하는 것이다. 음식을 차가운 상태로 보존하면 수분의 증발과 단백질의 변성을 지연시켜서 최대한 원형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오랫동안 신선도를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인공적으로 저온을 유발할 수 없었던 과거에는 저온 보존법이란 겨울에만 가능하거나 혹은 특수한 설비를 갖춘 일부만 사용할 수 있는 '귀한' 방법이었다. 사실 인류가 낮은 온도에서 음식물을 보관하려고 한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서늘한 온도가 늘 일정하게 유지되는 동굴이나 토굴에 음식을 보관한 것은 원시적인 저온 보존법이었다.
그 후에는 인공적으로 서늘한 곳에 토굴이나 지하실을 만들거나 혹은 커다란 저장고를 만들어 겨울 동안 얼음을 캐어 보관했다가 여름에 사용하는 방법을 이용하기도 했다. 때로는 눈이나 얼음 조각에 소금을 넣으면 온도가 더욱 내려간다는 사실을 발견해 식품을 냉동시키는 데 이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얼음에 섞어서 온도를 더욱 낮추는 물질을 기한제(freezing mixture)라고 한다. 하지만 식품을 차가운 상태로 보존하는 방식이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냉매를 이용해 낮은 온도를 유지시키는 장치, 즉 냉장고가 개발된 뒤였다. 19세기 초반에 에테르를 냉매로 이용한 냉장고가 처음 등장하였고, 19세기 후반 암모니아를 이용한 냉장고가 개발되면서 식품을 냉장 혹은 냉동하여 보존하는 것이 일상화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음식을 차게 보관하는 것은 음식을 오래 보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음식의 보존뿐만 아니라 종종 음식의 맛과 식감을 즐기기 위해서 저온을 이용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음식이 아이스크림이다. 달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의 비밀은 공기에 있다. 단순히 재료를 얼린다고 아이스크림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유를 그대로 얼리면 아이스크림과는 전혀 느낌이 다른 딱딱한 우유 얼음이 만들어질 뿐이다. 아이스크림은 아이스크림 원액에 공기를 분사해 이것들을 섞으면서 서서히 얼려야 한다. 어떤 물질을 냉동시킬 때 공기가 유입되어 부피가 증가되는 현상을 오버런(over-run)이라고 한다. 아이스크림 원액은 오버런 과정을 거쳐야 부드러운 질감을 가지는 아이스크림으로 변신한다. 일반적으로 아이스크림을 제조할 때 오버런 비율(아이스크림 원액에 대한 공기의 비율)은 80% 정도이므로 아이스크림의 약 45%가 공기인 셈이다.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얼린 공기의 시원함을 즐기는 것이다. 단지 음식을 데울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찬 음식을 먹던 시절에서, 저온을 이용해 음식을 보관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찬 음식을 즐기는 시대로 우리의 음식 문화도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3]
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